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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태르포|춤추는 중년들

“쉘 위 댄스? 스탭을 밟으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 박은경 자유기고가

“쉘 위 댄스? 스탭을 밟으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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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세 이상 부부들만 가입할 수 있는 파라클럽은 회원심사 기준이 엄격하기로 소문나 있다. “애인은 안되고 반드시 부부여야만 한다. 가입을 희망하는 사람들은 부부임을 확인받기 위해 호적등본을 제출한다. 언젠가 1년 이상 회원으로 활동하던 커플이 부부가 아닌 게 드러나 강제로 탈퇴시킨 적이 있다”고 홍씨는 귀띔한다.

이밖에 인터넷 검색 사이트에 들어가면 각종 댄스모임, 댄스파티 행사는 물론이고 댄스스포츠와 관련한 정보를 담은 홈페이지가 수백개나 뜬다. 각종 댄스스포츠협회는 물론이고 댄스동아리, 댄스전문 바에서 댄스 마니아 개인홈페이지에 이르기까지. 이 가운데 댄스스포츠 열기를 가장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은 자칭 ‘춤꾼’들이 체험담을 올린 게시판이다.

“이제 사적인 대화를 할 정도로 강습 아줌마 아저씨들과 친해졌어요. 요즘은 자이브(라틴댄스 종목)하는데 머리가 아파요. 차차차 기본 스탭 열가지 배워서 익히나 했더니 자이브…. 헉! 암튼 즐거워요, 재미있고. 진작에 배울 걸.”

“춤보다는 인생이 중요하다. 인생에서 춤보다는 반려자가 더 중요하다. 춤은 취미이고 오락이고 좋은 사람들과 같이 하기 위한 수단이다”

네티즌 ‘바렌티노’의 말처럼 ‘춤은 취미이고 오락이고 좋은 사람들과 같이 하기 위한 수단’이긴 하지만 직장인들에겐 때로 회사와 일자리가 걸려 있는, 목숨을 걸고 배워야 하는 그 무엇이 되기도 한다. 광고회사 기획자로 근무하는 40대 초반 이정국(가명)씨는 올해 초 있을 인사이동을 앞두고 2개월 동안 춤에 매달렸다.



“아이디어와 젊음, 개성이 생명인 광고회사에서 나 같은 40대는 일찌감치 쉰내 나는 퇴물로 찍히기 십상이다. 승진에서 떨어지면 당장 보따리를 싸야 할 판인데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여러 가지 묘안을 궁리하다 연말 고위간부들이 모이는 회식자리에서 무조건 튀고 보자, 강한 인상을 심어주자고 작정했다.”

춤은 비즈니스의 비밀병기

이씨가 택한 것은 재즈댄스. 그의 아내는 “당신 나이에 무슨 재즈댄스냐. 젊은 애들이나 배우는 춤 배우러 나섰다 허리라도 다치면 어떡하느냐”며 펄쩍 뛰었ㅈ만 “한 살이라도 젊어 보이려고 개인레슨까지 받아 가며 노력했다”는 이씨는 그의 바람대로 올해 초 보란 듯이 승진했다.

또다른 30대 중반 회사원은 남미쪽 바이어를 잡으려고 지난 6개월간 라틴댄스 강습을 받았다.

“남미 시장 개척 임무를 맡아 처음 브라질 지사로 나갔다. 그런데 브라질 뿐만 아니라 남미지역 어딜 가도 룸바 살사 자이브를 모르고는 비즈니스를 할 수가 없었다. 그 사람들은 모든 비즈니스가 파티를 통해 이루어졌다. 파티에서 바이어를 잡아야 하는데 이건 망부석처럼 앉아 있어야 하는 꼴이었다. 할 수 없이 돌아와 춤을 배웠다.”

그는 지난 5월 국내에서 개봉된 ‘쉘위댄스’의 한 장면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고 한다.

대낮, 회사 사무실에 앉아 있는 주인공 스기야마. 경리과장답게 책상은 서류들로 어지럽고, 스기야마는 아랑곳없이 일에 몰두해 있다. 하지만 책상 아래로 보이는 그의 발은 춤 스탭을 밟으며 바쁘게 움직인다. 어느새 스기야마의 마음은 댄스교습소 플로어로 훌쩍 날아간다. 누군가와 춤을 추는 착각에 빠진 듯한 스기야마. “당신과 한번만이라도 좋으니 춤을 추어보고 싶었다”는 스기야마의 간절한 바람. 그러나 그의 손엔 마이가 아닌, 계산기가 들려 있다. 마치 다정한 파트너처럼.

비슷한 상황을 연출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부장 직책에 있는 40대 초반 남성은 “사장 이하 간부들이 다 모여 회의 중이었는데 한 간부의 보고가 지루하게 길어졌다. 전날 배운 동작을 익히느라 열심히 스탭 밟는 상상을 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발이 따라 움직였던 모양이다. 옆에 있던 전무님 발을 밟고 번쩍 정신이 들었다”고 한다.

50대 초반 성형외과 의사는 “진료실에서 환자가 없는 틈을 타 연습을 한다. 몸이 굳어서 그런지 말을 잘 안 듣는 데다 열심히 외워도 금방 잊어버려 다음 수업시간에 가면 애를 먹는다”고 털어놓는다. “춤에 빠져 있으면 어느새 환자가 들어와도 모를 때가 있다. 그럴 땐 무척 민망하다. 머리가 허연 의사가 가운까지 입고 ‘원투 차차차’하고 있다고 생각해 봐라. 얼마나 우스웠겠나.”

강습 도중 만난 한 50대 남성은 자신을 ‘정년퇴임자’라고 소개한다.

나한테 춤은 레포츠이자 여가를 즐기는 아주 훌륭한 방법이다. 그런데 아직까지 파트너를 자연스럽게 잡는 게 익숙하지 않다. 우리 나이엔 남자 여자가 붙잡고 뭘 한다는 게 어색해서 그런 것 같다.

젊은 나이에 춤을 접하지 못한 게 마냥 아쉬운 듯한 그는 인터넷에 ‘댄스가든(Dance garden)’이라는 홈페이지를 열고 쓸쓸하지 않은 ‘중년의 뜰’을 가꾸고 있다.

요즘 우리 사회 중년 남성들을 ‘춤바람’나게 한 댄스스포츠의 매력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함께 춤을 배우는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자식들도 다 키웠고, 부부 둘이 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얼마전까지는 아무 재미없이 그저 멀뚱멀뚱 쳐다보며 살았다. 그런데 춤을 시작하고 나니까 옛날에는 잘 몰랐던 부부간의 정이 새록새록 느껴진다. 왜 진작 이런 좋은 느낌을 나누며 살지 못했나 싶다.”

“생활에 활력이 생기고, 몸도 가벼워진 것 같고. 신나게 춤추다 보면 한결 젊어진 기분이 된다.”

“부부 공동의 목표가 생겨서 좋다. 크고 작은 대회가 국내에만 일년에 20여가지 있는데, 우리 부부가 함께 출전해서 입상하는 게 꿈이다.”

“우리 부부는 틈만 나면 음악을 틀어놓고 집에서 연습한다. 엄마 아빠가 같이 춤추니까 아이들도 좋아한다. 대회에 출전하면 아이들이 응원도 열심히 하러 온다.”

한우용댄스스쿨의 한 원장은 “댄스스포츠에 빠진 사람 중에는 부부가 함께 외국에 나가서 춤을 배우고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정통 사교문화와 춤을 알고 싶은 욕구 때문이다. 두 달 가량 레슨을 받느라 5000만원 정도를 썼다는 사람도 있다. 어떻게 보면 자기 인생에 투자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춤을 알면 인생이 달라진다

매주 토요일 춤을 배우러 춘천에서 올라온다는 강원대 체육교육과 강사 신혜숙(47)씨 역시 열성 댄서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댄스학원까지 운영중인 그가 6개월째 춘천과 서울을 오가며 춤을 배우는 이유가 궁금했다.

“개인적으로 댄스스포츠를 시작한 건 5년 정도 된다. 하지만 춤에는 끝이 없다. 배우면 배울수록 완성도가 높아지지 않을까 하는 욕심 때문이다.”

ID가 ‘soogil’이라는 네티즌이 ‘나의 댄스스포츠 체험기’를 통해 고백한다.

“누구 못지 않은 영화 마니아로 지난 10년간 영화와 함께 살았던 나를 춤의 길로 인도했던 그런 귀중한 영화였습니다. 97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처음 보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나도 춤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얼마전 종영된 영화 ‘쉘위댄스’는 이 땅의 많은 중년남성들을 ‘춤’에 눈뜨게 했다. 예전과 달리 요즘 댄스교습소에선 주인공 스기야마처럼 ‘일상탈출의 행복’에 젖은 중년들을 쉽게 마주칠 수 있다.

신동아 2000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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