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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파리로 떠나는 오구라 가즈오 주한 일본대사

“프랑스 주재 한국 대사로 기억해 주세요”

  • 이영이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프랑스 주재 한국 대사로 기억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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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일 양국 정상의 상호방문, 한일 어업협정, 일본문화의 단계적 개방이라는 업적을 남긴 오구라 가즈오 일본대사. 재임기간에, 양국관계를 개선하려면 상대방 문화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며 문화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터득해야 한다는 지론을 실천한 것으로 유명하다. 한국 친구들이 마련한 환송회에서 그는 판소리 한 대목을 열창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12월7일 저녁 서울 신라호텔에서는 한 외국인과의 이별을 아쉬워하는 ‘특별한’ 모임이 있었다. 주인공은 오구라 가즈오(小倉和夫·61) 주한 일본대사. 97년 10월 서울에 부임해 1월10일 프랑스 주재 일본대사로 떠난다.

이날 모임은 그의 장도를 축하하기 위해 김수한 전 국회의장, 권오기 전 부총리 등 정·관계, 재계, 학계, 문화계 유력인사 70여명이 마련한 민간차원의 환송회였다. 누가 주최랄 것도 없이 서로 비용을 갹출하고 바쁜 시간을 쪼개 오구라 대사를 만나러 왔다.

2년 3개월 동안 주한대사로 일했다는 사실만으로는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오구라 대사가 한국 유력인사들로부터 이렇게 따뜻한 대접을 받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재임기간에 양국정상 상호방문, 한일 어업협정, 양국간 경제협력 등 굵직굵직한 현안을 순조롭게 해결해 양국관계를 크게 개선시킨 것도 있지만 이와 같은 외교적 성과의 바탕에는 한국문화에 대한 ‘남다른 사랑’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한일 양국관계의 개선을 위해서는 상대방 문화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며 문화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터득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 그는 한국에 부임하자마자 판소리나 전통악기 전통미술 등을 직접 배우며 가슴으로 한국문화를 익혔다. 그의 뛰어난 ‘음감(音感)’ 때문인지 판소리 실력은 수준급이다. 신라호텔에서 있었던 환송모임에서는 명창(名唱) 안숙선씨와 함께 판소리 ‘쑥대머리’를 불러 뜨거운 박수를 받기도 했다. 이임을 앞둔 오구라 대사를 12월10일 서울 교보빌딩 9층 일본대사관 집무실에서 만났다.

─ 한국에 부임하기 전부터 판소리 등 한국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별한 배경이 있습니까?

“15년 전 도쿄에서 열린 판소리 공연에 간 적이 있습니다. 제목은 잊었지만 판소리가 대단히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그후 ‘심청전’ ‘춘향전’을 일본어로 읽었는데 상당히 재미있었습니다. 일본에서 다시 판소리를 들을 기회가 없어 안타까워하던 중 한국에서 직접 배울 기회가 생겼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과거반성’을 자주 이야기하지만 말로만 하는 반성은 충분치 않습니다. 일본 사람이 한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학이나 역사, 음악 등을 배울 필요가 있지요. 머리보다는 가슴으로 알아야 합니다. 특히 한국의 ‘한(恨)’은 머리만 갖고는 알 수 없습니다. 전통음악인 판소리를 배우는 사이 자연스럽게 감각적으로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그는 대사관 직원들에게도 판소리와 전통악기를 배우라고 권유해 7월에는 함께 작은 공연을 갖는가 하면, 이임을 앞두고 열린 각종 환송모임에서도 부인과 함께 아쟁을 연주하거나 판소리로 한국문화에 대한 사랑을 전했다. 또 한국 전통그림도 배워 살풀이를 하거나 단소를 부는 한국 여성의 모습을 화폭에 담기도 했다. 그의 뜨거운 한국 사랑이 널리 알려지면서 12월 9일에는 경원대에서 명예 문학박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한국 젊은이들과 재즈로 대화했다

─ 문화를 통해 한국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오셨는데 그래도 한국생활에서 어려운 점이 있었다면 무엇입니까?

“40, 50대의 한국 중년층과 사귀는 것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60대가 넘은 노인들은 반일감정을 가진 사람도 있지만 일본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많습니다. 일본어를 하지는 못해도 유교나 한자 등 동양적인 문화를 공유하고 있지요. 또 젊은 세대는 영어로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재즈나 록음악을 얘기하면 쉽게 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40, 50대 중년층, 정확하게 말하자면 30대후반부터 50대중반까지의 사람들은 일본측에서 보면 ‘잃어버린 세대’입니다. 이들은 일본어나 영어 어느 것으로도 대화하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일본에 대해 잘 모르고 일본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 경우가 많지요.”

노년층은 노년층대로, 젊은층은 젊은층 대로 나름대로 공유할 수 있는 무엇인가 있지만 중년층은 아무래도 공감할 수 있는 ‘끈’이 없다는 고백이다. 그러나 그는 곧바로 희망을 말한다.

“젊은 사람들의 의식이 국제적·개방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일본에 대한 사고방식도 유연해지고 있는데, 이런 젊은이들이 많아지면 한국과 일본이 더욱 자연스럽게 교류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한일간 수평적 분업체제 바람직

62년 일본 외무성에 들어온 오구라 대사는 도쿄대학 법학부와 케임브리지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동북아시아 과장,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일본대표부 공사, 경제국장 등을 두루 거친 동북아와 경제전문가. 대화는 자연스럽게 한국의 경제문제로 이어졌다.

─ 97년말 한국이 IMF지원을 받기 직전 서울에 와서 IMF를 극복해가는 과정을 보셨습니다. 한국 경제를 전망한다면….

“한국은 IMF 위기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을 순조롭게 극복하고 있습니다. 수치상 외화보유고가 40억달러에서 650억달러로 늘었다는 것도 평가할 만하지만 그보다는 한국이 경제위기를 통해 자신의 결점이 무엇인가 직시하고 경제체제를 고쳐나갈 수 있었다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경제위기는 한국 국민에게 자신감을 주었지요. 이번 경제위기를 계기로 국민들이 일치 단결해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 보면 한국경제는 아직 남은 과제가 많습니다.

무엇보다도 앞으로 한국 경제가 중점을 두고 풀어야 할 문제는 사회복지입니다. 노령화 인구나 평균연령 등을 보면 아직 한국은 일본에 비해 훨씬 젊어 실감이 나지 않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사회복지 환경 등의 문제에 부닥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의 생산제일, 소비제일주의에서 벗어나 앞으로는 삶의 질을 생각하고 사회복지나 환경 레저 문화산업을 중시해야 할 것입니다.”

그는 경제통 외교관답게 한일경제비교 수치를 조목조목 제시하며 설명했다. 일본과 한국은 산업구조가 비슷한만큼 한국은 일본의 현재 상황을 연구해 장래에 닥칠 문제를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 한국이 중단기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로 인플레이션 압력과 노사관계를 꼽았다.

“단기적으로는 경기가 회복되면서 인플레 압력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내년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고려와 경제정책의 효율성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가 큰 문제가 될 것입니다. 좀더 멀리 보면 역시 노사관계도 중요합니다. 노동자와 사용자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해나갈지가 관심사가 될 것입니다.”

오구라 대사는 작년 전국경제인연합회 최고경영자 월례조찬회에서 ‘한일 공동 자유무역지대’의 창설을 공식 제안하는 등 재임기간 내내 한일 경제협력을 강조해왔다. IMF위기에 처한 한국기업에 일본 자금을 적극 유치한 것도 그의 외교적 성과중 하나다.

─ 작년 자유무역지대 창설을 제안한 후 한국과 일본은 구체적인 경제협력방안을 연구중입니다. 그러나 한일 경제협력에는 아직도 여러 가지 장애가 있다고 봅니다만.

“자유무역지대를 국가간의 차원에서 다루려면 여러 이견이 있겠지만 우선 지역간 교류로 생각하면 접근하기가 쉽습니다. 예를 들면 최근 몇 년전부터 한국의 전라도와 일본의 규슈처럼 지역간 무역 교류가 활발해져 일종의 지역경제권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자유무역지대를 만들면 이처럼 지역단위의 경제교류가 더욱 활발해지겠지요. 처음부터 서울과 도쿄가 직접 손을 잡지 않더라도 지방에서 시작하면 멀지 않아 한일 경제협력은 저절로 이뤄지리라 봅니다.

한국과 일본은 가능하면 수평적 분업체제로 가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일본이 엔진을 만들고 한국이 그것을 수입해 자동차를 조립하는 수직적 분업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한국도 엔진 일부를 만드는 등 같은 분야에서 함께 협조하는 수평적인 분업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되면 한국과 일본이 국제시장에서 불필요한 가격경쟁을 하지 않아도 되지요.

또 하나는 구조조정 협력입니다. 한국과 일본은 둘다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지만 서로 협력하지 않으면 효과를 볼 수 없게 됩니다. 예를 들면 한국 조선산업이 설비의 30%를 감축한다고 해도 일본 업계가 30%를 늘리면 세계 생산능력은 전혀 줄어들지 않아 과잉공급문제는 해결할 수 없지요. 한국과 일본은 반도체나 조선 등 세계시장 점유율이 높은 업종을 중심으로 서로 상의하며 구조조정을 해나가야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경제협력을 위해서는 우선 문화적 이해 등 기본적인 이해가 필수적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외자유치를 하는 과정에 일부에선 ‘일본기업이 한국기업을 헐값에 먹으려 한다’는 비판이 일어나는 등 경제협력과정에 적지 않은 오해가 생기고 있기 때문이었다.

“경제협력은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일방적으로 집어삼키는 식이 되어선 안 된다”며 “서로 오해를 없애고 마음을 열어 협력하기 위해서는 양국 국민이 문화 심리 사회적인 면을 이해하고 교류를 넓혀가는 것이 더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강조했다.

─ 대사께서는 OECD주재 공사를 역임하는 등 국제협상과 관련해서도 상당한 식견을 갖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세계무역기구(WTO)가 추진하는 뉴라운드에 임하는 한국정부에 조언을 한다면….

“뉴라운드와 같은 국제협상에서 한국이 상대방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며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거꾸로 상대방을 공격하는 적극적인 전략이 필요합니다. 농업문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농산물 수출국들의 농업개방요구에 대해 ‘한국은 토지가 좁다’ ‘농업수출국과는 다른 특수성이 있다’는 등 변명만 해서는 안됩니다. 그보다는 농산물 수출국의 수출보조금 문제를 제기하고 농산물 수출원조를 없애라고 공격할 필요가 있지요.

또 국제협상에서 비슷한 처지에 있는 나라들을 자기편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반덤핑규제 남용방지 요구라든가 농업협상 등에서 다른 나라들과 연합전선을 펴서 힘을 모아야 하지요. ‘달걀은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WTO의 뉴라운드도 좋지만 한일자유무역협정이나 APEC 등 여러 종류의 통상협정이나 회의를 통해 보완할 필요가 있습니다.”

─ 재임 중 가장 큰 성과라는?

“역시 김대중 대통령과 김종필 총리의 방일이 가장 큰 성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대중대통령의 방일은 한일 정상의 상호방문으로 양국 관계 개선에 큰 도움이 됐지요. 또 여러 어려움이 있었습니다만 경제위기에서 한일경제계가 서로 협력한 것과 한일어업협정을 무사히 마무리지은 것도 성과로 꼽을 수 있습니다. 재임중에 이렇게 큰일이 많았던 적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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