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민주당엔 진보 정치 청사진 없어… 보수 진영에서 개혁 이룰 것” [+영상]

국민의힘과 합당 선언한 조정훈 시대전환 대표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입력2023-10-27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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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도 우도 아닌 앞으로’는 보수 개혁의 기치

    • 여당은 국가를 운영할 능력과 품격 보여줘야

    • 문재인 정부 5년, 낡은 진보와 헤어지는 시간

    • ‘안티 586’ 넘어 97세대의 ‘따뜻한 개인주의’ 정치

    • “父子가 내리 9선?” 민주당 텃밭 마포갑 도전 이유

    • “다음 세대 위해 딱 15년만 정치할 결심”

    [+영상]



    꼼수 위성정당으로 국회 입성, 당적만 4번 바꾼 철새, 시대전환에서 자세 전환한 기회주의자, 무원칙한 1호 영입. 9월 19일 ‘김기현 인재 영입 1호는 조정훈…총선 겨냥 빅텐트 시동’(매일경제)이라는 제목으로 국민의힘과 시대전환의 합당 첫 소식이 전해지자 부정적 반응이 우세했다. 한때 시대전환 지도부로 함께 활동했던 이는 ‘탐욕’과 ‘협잡’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맹비난을 했고, 국민의힘 내부에선 견제가 시작됐다. 조선일보는 이례적으로 1면에 ‘민주 위성정당 올라탄 의원 1순위 영입한 무원칙 국힘’이라는 기사를 올리며 조 의원과 여당을 동시에 비판했다. 비판 일색이라지만 의석수 1의 초미니 정당 대표가 이처럼 주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한꺼번에 받은 적이 있던가. 10월 5일 만난 조정훈 의원은 지난 2주 동안 하루가 1년 같은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예고 없이 합당 소식이 알려져 문의 전화가 쇄도했다. 당일 오후 4시에 의원회관 544호 앞 복도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진행했는데 지난 3년 반의 의정 활동 중 가장 많은 기자가 왔다. 이후 개별 인터뷰 요청을 50건 이상 받았다. 대선주자도 아닌 초선의원이 이런 관심을 받은 적이 있나 싶다. 합당을 비판하는 기사가 많았지만 그 기사에 달린 수천 개의 댓글은 오히려 격려와 응원의 내용이 많아서 감동하고 감사했다.”

    조정훈 시대전환 대표 겸 원내대표, 1972년 서울 출생, 연세대 경영학 학사,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국제개발학 석사, 공인회계사, 세계은행 국제 경제개발 전문가, 2020년 2월 중도 실용주의 정당을 표방한 시대전환 창당, 21대 국회에 더불어민주당 중심의 비례연합정당인 더불어시민당에 합류해 비례대표 6번으로 당선된 후 시대전환으로 복당.

    개인 이력은 남부러울 것 없지만 스스로 “‘듣보잡 당 300등 국회의원”이라 할 만큼 아웃사이드 정치인이었다. 그러나 돋보이는 의정 활동으로 금세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양쪽으로부터 ‘러브콜’을 받는 유력 정치인으로 부상했다. 21대 국회 후반부에는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캐스팅보터로 ‘김건희 특검법’을 무산시키는 등 친(親)여권 행보를 이어갔고, 드디어 국민의힘과 합당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시대전환의 최근 슬로건 ‘좌도 우도 아닌 앞으로’는 지금 어느 방향을 가리키는가.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9월 19일 국민의힘과의 합당 소식을 알렸다. 그는 “보수 진영 변화를 위해 ‘질서 있는 전진’을 추구하겠다”고 말했다. [박해윤 기자]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9월 19일 국민의힘과의 합당 소식을 알렸다. 그는 “보수 진영 변화를 위해 ‘질서 있는 전진’을 추구하겠다”고 말했다. [박해윤 기자]

    “9월 초 국민의힘이 합당 제안, 11월 안에 마무리”

    합당 결정에 대한 초반 여론은 호의적이지 않다. 예상했나.

    “지금까지 모범생으로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비판을 받아보니 진짜 정치인이 돼가는구나 싶다. 정치란 ‘결과 책임의 업’이다. 아무리 변명하고 주장해 봤자 의미 없다. 당장 이제부터 하는 조정훈의 정치가 국가와 국민에게 어떤 기여를 하느냐로 판단받을 것이다. (언론의 관심과 비난에 대해)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한다. 내년 총선(22대 국회의원 선거) 즈음해 이 난리가 나면 판이 흔들릴 수 있지 않나. 나의 정치적 결정에 대해 국민들께 한 번은 고해성사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방식과 내용을 고민하던 차에 언론이 생각보다 빨리 내게 마이크를 쥐여주고 링 위에 올린 셈이다. 덕분에 합당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고 총선을 준비해 가는 과정을 보여드릴 수 있게 됐다. ‘저러려고 (국민의힘에) 들어왔구나’ 하는, 검증받을 기회가 생긴 것이다.”

    합당은 국민의힘 쪽에서 먼저 제안했나.

    “국민의힘 지도부에서 차 한잔 마시자고 찾아온 것이 9월 초다. 그전에도 국민의힘 의원들이 본회의장이나 상임위에서 만날 때마다 ‘같이 하자’는 얘기를 종종 했지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지도부가 찾아와 ‘합당합시다’라고 하기에 ‘농담이십니까, 아니면 조율된 제안입니까’라고 되물었다.”

    조정훈 개인의 당선을 위한 합당 아니냐는 비판도 있는데 시대전환 내부에서 어떻게 합의가 됐나.

    “합당은 대표 혼자 결정하는 게 아니다. 일단 최고위원회는 만장일치로 찬성했고, 확대최고위라 할 수 있는 중앙대표당원회의에서는 17대 1로 가결됐다. 마지막으로 10월 말 열리는 전국대표당원회의서 합당안이 통과되면 수임기관을 구성해 국민의힘과 실무 논의에 들어갈 예정이다. 11월 말쯤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이 원하는 것은 조정훈 의원인가, 시대전환인가.

    “제3지대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나 마찬가지다. 그만큼 어려운 길이다. 정당 활동을 하면서 가장 마음이 아플 때가 사람들이 조정훈 ‘시대정신’ 의원이라고 부를 때다. 조정훈 개인 인지도는 올라가는데 당 인지도가 따라붙지 않았다. 시대전환 의원이 두세 명만 돼도 정의당처럼 될 수 있을 텐데 안타까웠다. 조정훈 개인 유튜브는 누적 조회수가 6000만 이상인데 당 유튜브는 그것의 20분의 1 수준이다. 똑같은 내용인데도 그렇다. 대신 1인 정당이어서 나와 당을 분리해 생각할 수 없다는 장점도 있다. 예를 들어 내가 김건희 특검법에 반대하면 그것이 자연스럽게 당론이 된다. 주요 투표가 있을 때마다 먼저 당 최고위원회와 협의하고 다수결을 따랐다. 법안 발의도 그렇게 했다.”

    합당이라고 하지만 국민의힘에 흡수되는 것 아닌가.

    “정당법상 신설합당과 흡수합당 두 종류만 있기 때문에 새로운 당명으로 바꾸지 않는 한 흡수합당이 맞다. 창업자의 목표는 사업에 성공해서 기업을 상장시키는 것이고, 직원들에게 자사주도 나눠주고 싶다. 그런데 우리는 상장까지 못 가고 ‘엑시트’한 셈이다. 자기 명의로 사업하다 폐업한 사람의 심정이 바로 이런 거구나 싶다.”

    민주당의 운동권 순혈주의 정치, 유효기간 끝나

    시대전환의 합당 전제 조건은 뭔가.

    “합당 선언을 하면 실무 논의를 위한 수임기구가 구성돼 당직자를 어떻게 나누고 하는 세부 문안을 협상한다. 지난해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의 합당은 이 과정에서 결렬될 뻔했다. 그러나 우리는 전제조건이 없다. 작은 배에서 큰 배로 올라타는 건데 1등석 달라 3등석 달라 이러지 말자고 했다. 우리가 들어가서 배를 더 키우자고 했다. 물론 서운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몇 자리는 약속받아야 하지 않느냐, 우리 당직자는 어떻게 하느냐. 시대전환 당직자가 5명이다. 그들은 내가 사재를 털어서라도 먹여 살리겠다고 했다. 국민의힘에 딱 100명의 자리가 있다. 만약 우리에게 5개를 내주면 누군가 5명이 직장을 잃는다. 이건 답이 아니다. 다음 총선에서 시대전환과의 합당이 도움이 됐음을 입증하고 지방선거든 공직이든 선택하기로 했다. 비례대표 몇 자리 약속받았다면 벌써 뉴스에 나왔을 것이다.”

    이럴 거라면 뭐 하러 합당하느냐는 말이 나올 법하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보수 진영을 개혁할 수 있을까에 집중하기로 했다. 민주당의 방식을 그렇게 비판하고 국민의힘으로 왔다면 달라져야 하지 않겠나.”

    민주당의 방식이란 무엇인가.

    “민주당은 ‘클럽정당’이다. 1980년대에서 90년대 초반까지 학생운동을 했다는 순혈주의 마크가 없으면 영원히 ‘손님’ 취급을 받는다. 비슷한 하소연을 비운동권 민주당 의원들로부터 많이 들었다. 운동권 족보가 없으면 특정 계파 밑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런 식의 정치는 이미 유효기간이 끝났다. 더욱이 현재 이재명의 민주당은 김대중의 민주당, 노무현의 민주당과 완전히 다르다. 이재명은 김대중의 지역주의 타파, 노무현의 기득권 교체와 같은 ‘상징자본’을 다 소진했다. 이재명의 상징자본은 뭔가. 부도덕성, 방탄, 진영 정치 아닌가. 그것은 진보가 아니다. 진보는 도덕성에 대해 ‘1’도 양보하면 안 된다. 스스로 부끄러움을 알고 물러나야 한다. 그래서 노회찬 전 의원이 아직도 박수받고 있는 것 아닌가. 민주당에서 그 도덕성은 지금 어디로 갔나. 나 하나 들어가서 변화될 민주당이 아니다.”

    ‘이재명의 민주당’ 이어서 같이할 수 없다는 건가.

    “만약 민주당과 합당했으면 이렇게 욕을 먹었을까. 법사위에서 민주당이 그렇게 원하는 특검 두세 개 합의해 주고 개인적으로 커리어 관리 잘하면 지역구 하나 못 받았을까. 이재명 대표가 찾아와 ‘김건희 특검법’을 요청하면서 ‘대한민국 운명을 조정훈 의원이 갖고 계시네요’라고 하더라. 일부 진보 진영 분들은 시대전환의 합당을 욕하는 게 아니라 국민의힘으로 간 것을 괘씸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5년간 ‘내로남불’도 문제였지만 더 나쁜 것은 진보 정치의 청사진이 없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했던 정책 중 지금 우리 국민들이 그리워하는 게 있나. 3억 원짜리 집이 6억, 10억 원이 된 부동산 정책? 전기요금을 1원도 올리지 않아서 한전을 가장 위험한 공기업으로 만든 산업정책? ‘삶은 소대가리’라는 말을 들으면서 밀어붙인 외교정책? 교사들을 죽음으로까지 몰아세운 진보 교육정책? 아무것도 없다. 진보가 재집권할 이유를 하나도 설득하지 못했다.”

    김종인의 정치철학 가장 잘 구현할 사람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도 조 의원을 기회주의자라고 공개 비판했다.

    “귀동냥이라도 내가 정치에 대해 배운 분을 꼽으라면 김종인 전 위원장을 빼놓을 수 없다. 다만 금태섭 새로운선택 대표와 함께 제3지대로 갈 것이라 기대했다가 갑자기 국민의힘과 합당한다는 얘기가 들려오니 괘씸하게 여긴 것 같다. 그럼에도 장담컨대 김종인 전 위원장의 정치철학과 정치 방식을 구현한 사람을 꼽으라면 나도 후보에 든다고 생각한다. 김 전 위원장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라면 민주당도 국민의힘도 개의치 않았다. 심지어 금태섭 대표도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국민의힘 ‘빨간 점퍼’를 입고 야권 단일후보를 지원하지 않았나.”

    보수 진영을 변화시킬 조정훈식 정치는 무엇인가.

    “보수는 ‘멈춰 섬’이 아니라 ‘질서 있는 전진’이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국힘은 연어처럼 제자리로 돌아간다. 이건 후진이다. ‘질서 있는 전진’을 하려면 보수도 진보의 의제를 묻어버리지 말고 적극적으로 재해석해야 한다. 예를 들어 기후위기, 기본소득, 주4일제 같은 의제다. 국민의힘 정강정책 1호가 기본소득이다.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 시절에 만든 것이다. 당시 김 위원장이 직접 나를 불러 기본소득에 대해 설명해 보라고 했다. 최근 김 전 위원장은 방송 인터뷰에서 국민의힘이 내년 총선에서 승리하려면 정강정책을 실천하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동의한다. 국민의힘 정강정책은 좋은 출발점이 된다고 본다. 태양광 비리는 철저히 파헤쳐야 하지만 기후위기가 진보의 의제라고 눈감아서는 안 된다. 그것이 질서 있는 변화, 질서 있는 전진이다.”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장기화하고 있음에도 여당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 이유는 뭔가.

    “야당의 업은 비판이다. 아니 비판 아니면 할 게 없다. 반면 집권 여당의 업은 국가 운영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여당은 ‘네가 한 대 때리면 나도 한 대 때린다’ 식의 핑퐁 정치를 했다. 핑퐁 정치에선 야당만 득점을 한다. 유창훈 판사가 이재명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면 국민의힘 지지율이 폭발했을까. 기껏 2~3% 오르다 말았을 것이다. 야당은 링 위에 올라가기 위해 여당을 끌어내리려 하지만 이미 링 위에 오른 여당은 국가를 운영하는 능력과 품격을 보여줘야 한다. 하나 더. 불리한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 ‘질문에 답하지 않는 샤이 유권자가 있다’는 식의 책임 회피도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갑자기 목돈 드는 일 없는 사회’ 만들 것

    22대 총선의 목표를 ‘586 운동권 퇴진’으로 삼은 이유는 뭔가.

    “87년 체제가 너무 오래갔고, 권력은 스스로 내려가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97세대가 나서려면 86세대가 자리를 내줘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97세대라고 다 같지 않다. 민주당의 97세대 의원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아직도 마지막 직선 학생회장, 마지막 운동권 학생회장으로 생각할 만큼 86세대 운동권 선배의 후배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보수 진영의 97세대는 ‘따뜻한 개인주의자’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내가 대학 92학번인데 학생운동의 끝물도 경험했지만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도 부를 줄 아는 세대다. X세대라는 말은 선배들 눈에 ‘도저히 해석이 안 되는 놈들’이라는 뜻이라고 하더라. 개인과 인권의 가치가 민족과 국가를 앞서기 시작한 첫 세대, 배낭여행을 경험한 글로벌 첫 세대, 외국인과 서서 하는 칵테일 리셉션이 어색하지 않은 첫 세대다. 내 휴대전화에는 국회의원 300명의 연락처보다 더 많은 전 세계 정치인의 연락처가 입력돼 있다. 세계은행 시절 교류하던 그들과 지금도 앱으로 채팅을 한다. 따뜻한 개인주의자들은 국가를 위해 개인이 희생하는 게 아니라 개인을 위해 국가가 운영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달라지는 국민의 눈높이에 맞게 정치도 변해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다. 정치권에 두 종류의 97세대가 존재한다며 향후 누가 우리 사회를 더 잘 이끌 수 있을까. 다음 총선에서 그런 경쟁을 해야 한다. 물론 시대도, 시간도 우리 편이라고 생각한다.”

    조정훈이 그리는 97세대 정치의 핵심은 뭔가.

    “97세대의 트라우마가 IMF 외환위기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 세상이 우리를 보호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했다. 살벌해진 세상에 내쳐진 두려움이라는 단어가 86세대보다 깊게 각인돼 있다. 평생 직장이란 없다는 것을 느낀 첫 세대이기도 하다. 나만 해도 지금 직장이 여섯 번째다. 97세대 정치의 핵심은 시민들이 느끼는 이 두려움을 줄이는 것이다. 세속적으로 말하면 뜻밖의 일로 갑자기 목돈 드는 일이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가난할수록 그런 일이 생기면 인생이 결판난다. 그런 위험을 하나씩 제거하고 완화하는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김세연 전 의원과 만나면 항상 하는 얘기가 있다. ‘우리 세대(97세대)의 정치는 짧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86세대에 밀려 늦게 정치를 시작했다고 해서 자리를 내주지 않으면 다음 세대는 환갑이 돼야 정치를 시작할 수 있다. 나는 딱 15년만 정치를 하겠다고 선언했고, 이미 4년째다. 62세에 남은 임기만 마치면 무조건 집으로 갈 거다.”

    합당 절차가 마무리되면 바로 22대 총선 공천이 시작될 텐데…

    “21대 국회에서 가장 무서웠던 장면이 ‘임대차 3법’ 통과였다. 그 법을 통과시킨 의원들은 국회 본회의장에서 방망이 세 번 두드리면 미친 듯이 치솟는 부동산 가격이 잡힐 거라고 믿었을까. 법은 본질적으로 규제이기 때문에 세상을 바꾸는 데 필요한 가장 투박한 도구일 뿐이다. 이제 시장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사람, 글로벌 스탠더드를 아는 사람이 정치를 해야 한다. 둘째, 정치를 이기고 지는 게임이 아니라 타협과 협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민주당의 97세대는 국민의힘 의원을 자기들이 민주화를 위해 싸웠던 ‘적’의 후손 정도로 생각한다. 악수조차 할 수 없고, 한자리에서 밥을 먹는 것도 꺼림칙하게 여긴다. 오죽하면 법사위에서 그만 싸우라고 국회의장이 초청한 공관 만찬이 성원이 안 돼 무산됐다. 정치를 전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마포는 왜 강남 진입의 교두보가 됐나

    22대 총선의 1차 전선이 정치의 세대교체라면 2차 전선은 무엇인가.

    “있는 자와 없는 자의 갈등이다. 진보 진영은 아파트 가격이 오르면 자신들에게 불리하다고 말하고, 보수 진영은 10억~15억 원만 넘어가면 우리 편이라고 할 만큼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계층 투표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진보 진영은 우리 사회의 기득권자, 부자를 악마화하는 경향이 있다. 부자들한테 빼앗아 나눠주지 않으면 가난한 사람들은 살길이 없다는 담론이 팽배하다. 위험한 생각이다. 부자 증세가 복지를 위해 필수인가. 아니다. 복지를 위해 필요한 건 성장이다. 보수 정치의 핵심은 부자를 끌어내려 가난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을 넉넉하게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물론 더 많이 가진 자가 더 많이 부담하고 기여하는 것이 옳다고 해도, 사회적 약자가 기득권자에게 ‘너는 나를 도와줄 의무가 있어’라는 식의 청구권적 개념으로 접근하면 사회적 갈등만 커진다. 내년 총선은 그 지점에서 격돌할 것이다.”

    민주당 노웅래 의원의 지역구인 ‘마포구갑’에서 출마하려는 이유는 뭔가.

    “얼마 전 설렁탕을 먹으러 마포구 공덕동에 갔는데 길 가던 부부가 내게 응원한다는 말과 함께 ‘9선이 말이 됩니까’라고 하더라. 한 가문이 40년 동안 국회의원을 했다.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다. 교육부 자료를 보니 지난해 마포구 전체에서 ‘수시’로 서울대에 간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설마 하지만 사실이다. 그래서 마포는 자녀가 초등학교 졸업하면 목동이나 반포로 이사 가는 동네, 강남 진입을 위한 교두보일 뿐이다. 대한민국의 욕망이 폭발하는 동네이기도 하다. 앞으로 이사 갈 준비만 하는 곳이 아니라 끝까지 살 수 있는 지역으로 만들 생각이다.”

    인터뷰 도중 조정훈 의원은 지지자가 보내준 작은 선물을 보여주었다. 초록색 때수건 그림과 함께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라는 문구가 적힌 액자와 ‘배추가 배추이기를 고집하면 김치가 될 수 없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액자. 시대전환 조정훈이 날배추였다면 국민의힘 조정훈은 두고두고 먹을 수 있는 묵은지가 될 수 있을까.

    [신동아 11월호 표지]

    [신동아 11월호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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