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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발적 문제제기|한국인이 영어 못 하는 이유

대한민국 영어 선생님들 당신네 죄를 아는가

  • 이문장 영국 에딘버러대 교수·신학

대한민국 영어 선생님들 당신네 죄를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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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국 신문에 ‘내년부터 조기유학 전면 자유화 추진’이라는 제하의 기사가 실렸다. 교육부의 재외동포 교육담당관이 자비유학 규제완화 방안 공청회에서 내년부터 초·중·고교생이 누구나 자유롭게 해외 유학을 갈 수 있도록 할 계획임을 밝혔다고 한다.

이 기사가 특별히 필자의 관심을 끈 것은, 이 계획의 이면에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하나의 흐름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흐름이란 다름아닌 영어에 대한 한국인의 좌절감이다. 영어로 인해 쌓인 좌절감은 그동안 영어연수 자유화, 초등학교 조기 영어교육 시행 및 영어 공용화론 등으로 표출돼 왔다. 여기에 국내 교육환경에 대한 불만이 겹치면서 조기 유학 욕구를 상승시켰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세계화의 바람과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정보화 시대의 도래가 영어의 필요성을 더 절박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국내 교육환경에 대해 불만이 많고, 영어에 대한 좌절감 및 필요성이 함께 고조돼 있는 상황이라면, 더 이상 조기 유학을 막기는 어려울 것이다. 유학으로 발생하는 비용이 연간 몇억 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하지만, 그것이 국내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분석도 일반의 정서를 억제하는 데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조기 유학이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에 손상을 가져오고, 국내 교육의 황폐화를 불러올지도 모른다는 우려는 매우 중요한 지적이다. 그러나 암울한 국내 교육환경에 계속 변화가 없고 교육 내실화가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는, 설득력있게 받아들여지기는 어렵다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겐 조기 유학 이외에 이런 현실을 타개할 방책이 정녕 없는 것일까? 영어로 인한 한국인의 좌절감과 한을 풀어줄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한국의 영어 공교육은 자포자기 상태로 방치될 수밖에 없는가? 이 글은 영어에 맺힌 한국인의 한은 한국의 영어 교육계가 발벗고 나서 풀어야 하며, 한국인에 맞는 영어 방법론를 찾아낸다면 엄청난 돈을 낭비하면서 ‘민족이동’을 감행하지 않아도 영어를 정복할 수 있음을 제시하려는 것이다.



영어 한(恨)은 풀어야 한다

우리 민족은 한이 많은 민족이다. 한은 우리 민족의 내면 정서를 가장 잘 대변해주는 개념으로 여겨져 한에 대한 학술적 연구도 여러 분야에서 이뤄지고 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아도 한이 많다는 한국인들에게 영어 때문에 또 다른 한이 맺히는 기막힌 상황을 본다. 우리 부모들처럼 교육열이 높은 민족도 그리 많지 않다. 초·중·고교 시절에 한국 학생들처럼 열심히 공부하는 나라도 드물다. 그렇게 학교에서 시키는 대로 열심히 했는데, 10년을 공부해도 외국인과 자연스러운 대화는커녕 영어로 말 한 마디 제대로 나오지 않는 것은 도대체 누구 잘못인가? 내가 영어를 열심히 공부하지 않아서인가, 아니면 잘못 배워서 그런가?

중학교 1학년 때 같은 반 친구가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그는 별로 똑똑한 친구가 아니었고, 학교 성적도 신통치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런데 한 3년쯤 지난 뒤 그 친구를 만났는데,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다른 것은 접어두고라도, 완벽한 발음의 유창한 영어를 구사했다. 필자도 그 사이 한국에서 거의 대부분 시간을 영어 공부에 할애하며 그야말로 죽어라 공부했는데, 그 친구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 어린 나이에 필자는 영어에 관해 처음으로 좌절을 맛보았다. “나도 미국에 가면 너보다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이 어린 가슴에 한으로 맺혔다. 영어에 대한 그런 한은 그 후 오랫동안 풀리지 않고 오히려 쌓여만 갔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영어에 대한 한국인의 한은 지금도 여전하다. 아이고 어른이고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다. 직장인은 직장인대로, 대학생은 대학생대로 영어가 골치다. 대학마다 취직을 위해 전공은 제쳐두고 영어 공부에 매달린다는 말도 들린다. 유학생들은 스트레스가 더 많다. 학기마다 제출하는 논문들, 시험들…. 한 마디로 영어가 원수다.

영어를 정복했다는 사람들의 체험담을 읽으면, 길거리에 지나가는 외국인을 붙잡고 영어 한 마디를 연습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필자 역시 그런 일을 많이 했다. 그때는 용기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얼굴이 붉어진다. 말 한 마디 구걸하려고 그런 궁색한 짓을 했다는 것이 한심한 것이다.

외국에 살면서 한국을 바라보니 더 속상하다. 영어 때문에 한국인들이 수모를 당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영어에 쏟아붓는 돈은 얼마인가? 학교에서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영어 교육을 시키는가?

이제 한국의 영어교육은 정말 근본적인 전환 없이는 정말 곤란하다. 영어에 대한 한국인의 한은 영어 공용화나 조기유학 규제 완화로는 결코 풀리지 않는다. 그러면 조기 유학을 허용할 경우, 조기 유학을 못 하는 아이들은 어떻게 되는가? 한국에 남아 있는 어른들은 자포자기한 상태로 살아야 하는가? 영어에 대한 한국인의 한은 영어 교육계가 풀어야 한다. 조기 유학을 보내려는 생각이나 영어 공용화라는 발상의 근원이 영어에 맺힌 한이기 때문에, 이 문제의 해결은 영어 교육을 통해서 풀어야 한다.

모두가 잘못된 영어 교육의 피해자

지금까지 한국에서 영어 교육을 받고 학교에서 시키는 대로 열심히 따라 한 사람들이야말로 영어 교육의 피해자다. 그 이유는 일차적으로 한국의 중·고교 영어 교과서의 수준과 분량 때문이다. 현재 국내 중·고교에서 사용하는 영어 교과서는 한 마디로 한심할 정도로 수준이 낮다. 그런 수준의 교재와 분량을 가지고 영어를 잘하리라고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것이다.

현재 중학교 1학년 영어 교과서의 내용을 보라. 그 내용을 한국어로 번역해 보면 어떻게 이런 내용을 1년씩이나 가르칠 수 있을까 답답하기 짝이 없다. 중 1 영어 교과서와 중 1 국어 교과서를 비교해보면 영어 교과서의 내용이 형편 없다는 사실은 더욱 분명해진다. 고등학교 3학년 영어 교과서의 내용을 한국말로 번역해봐도 중 1 학생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다.

중학교 1학년이면 신문이나 잡지를 읽고 이해할 나이다. 만일 중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를 영어로 번역한다면, 대학생들이 읽는 영어 교재 수준에 육박할지 모른다. 물론 영어를 배우려면 쉬운 것부터 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고 외국어로 배우는 영어와 모국어로 익힌 한국말은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전통적인 설명이고, 상투적인 발상일 뿐이다.

현행 중·고 영어 교과서를 갖고는 절대로 영어를 제대로 배울 수 없다. 영어 교과서의 분량을 보자. 현행 교과서의 한 과 본문 분량은 4∼5쪽밖에 안 된다. 1년에 12∼13과를 공부하는데, 그 정도 분량으로 어느 세월에 영어다운 영어를 익힐 수 있겠는가? 학교 수업시간에 가르치기에는 그 정도가 알맞은 분량 아니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교과서 이외의 독해는 각자 알아서 해야 한다고 할 수도 있다. 또는, 그 정도의 진도도 따라오지 못하는 학생이 부지기수라고 변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현행 중·고교 영어 교육을 충실하게 받고서 영어를 읽고, 말하고, 듣고, 쓰는 데 과연 어느 정도 실력을 키울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영어 교육 시스템 자체에 문제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영어에 관한 잘못된 고정관념들

한국인은 모두 잘못된 영어교육 방법론의 피해자들이다. 한국의 영어 교육은 언어 습득에서 가장 중요한 능력을 죽이는 교육이다. 두 가지만 예를 들어 보자. 첫째는 한국의 영어 교육은 소리를 듣지 못하게 만들었다. 둘째는 한국의 영어 교육은 영어식 사고를 못 하게 만들었다.

요즘에는 학교에서 듣기 훈련을 강화하고 듣기 평가도 도입해서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학교에서 실시하는 듣기 교육은 방향이 잘못돼 있다. 학교에서는 영어 단어를 가르치면서 철자(spelling)를 외우게 한다. 그런데 이것이 듣는 능력을 죽이는 것임을 모르고 있다.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면 철자는 힘들이지 않고도 알게 된다. 영국이나 미국에는 철자 맞추기 대회(spelling bee)가 있다. 여러 음절의 단어를 발음하면 아이가 철자를 맞추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영어에 입문할 때부터 철자를 외우게 했다. 몇 년에 걸쳐 그 엄청난 단어의 철자를 일일이 다 외웠다. 철자를 모른다고 야단도 많이 맞았다. 그 결과 소리를 듣고 철자를 알아맞추는 능력이 죽어 버렸다.

한국에서 웬만큼 영어를 공부했다는 사람들도 영어의 소리 그 자체를 듣지 못한다. 눈앞에 스펠링이 어른거리기 때문이다. 영어의 소리 자체는 철자를 익히기 전에 습득해야 한다. 문자의 세계로 들어가기 이전에 소리의 세계로 들어갔어야 했다. 일단 문자의 세계로 들어가고 나면 소리의 세계는 들어가기가 어려워진다.

예컨대 ‘스쿨’이라는 소리가 들리면 머릿속에서 학교가 연상돼야 하는데, s-c-h-o-o-l이라는 철자가 눈앞에 어른거린다. 영어를 들을 때, 뜻을 듣지 말고 소리를 들으라고 해도 영어 단어가 눈 앞에 어른거리고 영어 문장이 어른거린다. 영어 소리를 들으면 곧장 뜻을 알아야 하는데, 대부분 사람들은 일단 단어나 영어 문장이 눈앞에 나타나고, 그것을 해석하고 있다.

원래 듣기(listening)는 소리를 들으라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가 말하는 듣기는 뜻을 들으려고만 하고 있다. 우리 귀에 들어오는 것은 소리다. 소리가 들어오고, 그 소리가 자동적으로 뜻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소리는 듣지 않고 뜻을 들으려고 한다. 영어가 잘 들린다는 말을 뜻을 알겠다는 의미로 사용하는데, 이건 말이 안되는 소리다.

영어에 대한 잘못된 고정 관념들이 너무 많다. 한국의 영어 학습자들은 영어 방송이나 테이프를 틀어놓고 무슨 뜻인지 들으려고 하는데, 이것이야말로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소리를 듣는 능력을 죽여놓고서 뜻을 듣도록 듣기 훈련을 시키는 것은 병 주고 약 주는 꼴이다.

영어식 사고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영어교육은 영어식 얼개를 습득하도록 가르친 적이 없으면서도 한국인 학습자들에게 영어식으로 사고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인들은 오히려 영어의 얼개를 갖지 못하게 하는 교육을 받았다. 분통 터지는 일이지만 사실이다.

한국인은 영어에 입문할 때부터 영어 문장을 번역하도록 교육받았다. “This is a book.”을 읽고 “이것은 책이다”로 번역했다.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영어 수업, 교실 바깥의 모든 독해는 이런 연습의 연장이었다. 읽기는 영어를 읽었는데, 그것을 한국어로 깨트려 한국식으로 생각하도록 가르쳤다. 영어식 사고는 “이것은/이다/한 권의 책”인데, 우리는 그런 영어식 논리를 익혀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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