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회현동, 옛 대연각호텔 맞은편 도로변에 ‘배원식한의원’(전화 02-752-3398)이 있다. 의원이 세들어 있는 건물은 인근의 현대식 고층 건물들에 견주면 퇴락해 보이는 외양을 하고 있고, 한의원 간판도 자못 고전적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밝고 넓고 산뜻한 요즘의 한의원들과는 달리 18평의 비좁은 공간을 그나마 약제실과 진찰실로 쪼개 쓰고 있다. 조명마저 침침하다.
당당한 현업 한의사
그러나 그 한의원은 상당히 특별하다. 우선 배원식(裵元植·86)이라는 할아버지가 원장으로 있기 때문이다. 처음 신동아 편집실로부터 여든여섯 살이나 된다는 배옹을 만나보라고 권유받았을 때 두 가지 걱정이 앞섰다. 그 연배에 이른 할아버지라면 귀도 어둡고 총기도 흐려서 대화가 제대로 되기 어려울 것 같다는 것이 첫째 걱정이었다. 그리고 특정한 분야에 평생을 바쳐 일가를 이뤘다는 사람은, 세상 흐름 따위를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 고집쟁이인 경우가 많더라는, 다분히 경험에서 비롯된 걱정이 다른 하나였다.
두 가지 걱정 중에서 하나는 적중했고, 하나는 빗나갔다. 그는 미수(米壽)를 목전에 둔 노인답지 않게 목소리가 쩌렁쩌렁했다. 뒷전에서 젊은 의사에게 훈수나 몇 마디씩 보태고 있을 것이라는 예상을 뛰어넘어, 홀로 진찰실을 지키고 앉아서 밀려드는 환자들의 맥을 짚고 처방을 내리는, 당당한 ‘현업(現業)’이었다.
그는 고집이 셌다. 얘기 나누는 중간중간에 “그건 사술(邪術)이야” “틀려먹었어” “나는 할 수 있지” 등의 언사를 거침없이 구사했다. 그러나 그가 평생 동안 외길로 천착해온 분야가 첨단 의료기기나 과학기술에 의존하는 양의(洋醫)가 아니라 전통의학인 한방(韓方)인 바에, 그의 고집은 더 이상 풍부할 수 없는 임상경험을 바탕으로 한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보통 사람들은 생명을 부지하기에도 숨찬 67년이라는 세월을 한의사로 지내왔으니, 그는 일제 말기부터 지금까지 우리 전통 의학의 변천사를 육성으로 증언해줄 수 있는, 유일하다시피 한 사람이다.
“작가 선생이 온다기에 예쁜 여자분이 오나 해서 가슴 두근거렸는데….”
오전 11시, 한의원을 찾았을 때 처음 건네온 인사가 그런 농담이었다. 작달막한 키에 넉넉한 체구, 그리고 얼굴 생김새가 중국인을 닮았다. 그와 한의원을 통째로 북경이나 상해로 옮겨놓아도 어울릴 것 같은 풍경이다. 개원 초기에 그를 찾아왔던 사람들은 그 생김새를 보고 ‘중국에서 온 사람’이라고 했었다. 물론 그는 ‘왕서방 할아버지’가 아닌 토종 한국인이다. 그러나 ‘중국에서 온 사람’이라는 말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그가 스무 살 되던 해에 한의사 생활을 시작한 곳이 중국이었으니까.
그는 안경에 돋보기 렌즈를 끼운 채 뭔가를 열심히 정리하고 있었다. 그가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진맥하고 처방한 내용을 기록한 진료부(診療簿)였다. 위쪽 귀퉁이에 ‘강’ 혹은 ‘일’이라고 표시해둔 진료부가 섞여 있다.
“‘일’이라고 표시해둔 것은 일본 사람이 나한테 찾아와서 진료받고 간 기록입니다. ‘강’ 표시는 후배 한의사들 모임에 나가서 강연할 때 자료로 쓰기 위한, 특수한 질병의 경우고요. 서울 시내에만도 한의원이 1700 개요. 그런데 40~50대 의사들은 모르는 병이 너무 많아. 내가 그 사람들한테 물려줄 게 뭐 있겠어요. 이런 임상경험을 전수하는 게 큰 보람이지.”
배원식옹은 서울시 한의사회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 참고자료로 쓰기 위해 표시해둔 진료부 한 장을 빼낸 다음 설명을 시작했다.
“이 환자는 버거씨병을 앓는 사람이오. 이 병에 걸렸다 하면 발가락부터 온몸이 썩어들어가요. 첨단 의술을 자랑한다는 양의들도 이 병의 원인과 치료법을 몰라요. 젊은 한의사들도 모르고. 그래서 나한테 찾아오는 건데, 내가 거뜬히 치료를 했단 말이야. 그런데 양의들은 나한테 치료 경위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라고 그래요. 설명을 하지. 음과 양의 균형이 얼마나 중요한지 역설하고 역학, 오행, 상생, 상극, 허실… 등등의 원리를 들어서 설명하면 양의사들이 알아듣기나 하나? 귀신 푸닥거리하는 소리로 여기지. 자기들이 못 알아듣는다는 생각은 안 하고 ‘한방은 비과학’이라고 매도를 하는 겁니다. 양방병원에 가서 병이 다 낫는다면 한의원들 모두 문 닫아야 돼요.”
“불임 환자가 많아요”
다른 진료부는 신장병의 일종으로 혈액 속 단백질이 오줌 속에 다량 배출되며 몸이 붓는 네프로제(Nephrose) 환자의 임상기록이다. 이 환자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S대학병원을 2년 동안 다니고 치료하지 못한 것을 배옹의 처방으로 낫게 됐다는 것이다. 신기(腎氣)가 허(虛)해서 생긴 병이다. 한의사들이 까다롭게 느끼는 질환자를 배원식옹에게 보내는 것은 물론이고, 근래에는 양의들도 그에게 문의를 하거나 아예 치료 자체를 떠넘기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나를 가장 곤혹스럽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불임(不姙)을 치유했다는 그의 ‘화려한’ 전력이다. 아이를 갖고 못 갖는 것이야 단순한 질병 차원을 넘어 조물주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내가, 수백 명의 불임여성에게 아기 갖는 기쁨을 선사했다는 그의 자신감 넘치는 자랑을 받아들이기는 여간 조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자칫, 아이를 못 가진 전국의 신동아 독자들에게 “어느 한의원에 가면 당신도 애를 낳을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됐을 때, 그 다음 일이 걱정스러웠기 때문이다. 못 미더워하는 내 눈초리를 눈치챘는지 배옹이 별도로 보관하고 있던 한 무더기의 진료부를 꺼냈다.
“이거 보시오. 그 동안 내가 불임여성을 상대로 처방해준 진료부의 일련번호가 643번 아니오? 이 643명은, 나를 찾아온 사람들의 누계가 아니라 내가 처방해서 애를 낳게 해준 사람들의 숫자요. 불임여성뿐만 아니오. 아이를 갖지 못하던 사람들이 뒤늦게 임신을 하면 유산 확률이 높아요. 지켜보면 알겠지만 우리 한의원에는 양의원에서 유산 징후가 보여서 찾아온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중국에서 더 유명
─불임의 경우 원인이 어디 있습니까?
“자궁 발육이 약하거나 자궁에 문제가 있는 경우지요.”
─그것을 한방 처방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말씀이지요?
“나는 찾아온 환자들에겐 어떤 문제로 찾아왔느냐고 묻지 않습니다. 맥을 짚어보면 알아요. 당신 이 상태로는 임신이 불가능한데 애는 낳았느냐, 이렇게 물으면 아니나 다를까, 그 문제로 찾아왔다는 겁니다. 내가 진맥을 해서 문제를 먼저 발견해야 처방을 해주는 것도 신나지. 여기 이 진료부에 적힌 환자의 경우 한약 석 제 먹고 3개월만에 임신했어요.”
─시도해도 안 되는 경우가 있잖습니까?
“있지요. 하지만 병원에서 죽는다는 판정을 받은 사람이 벌떡 살아나는 경우도 있고, 문제 없다는 판정을 받은 사람이 죽는 경우도 있잖습니까. 마지막까지 정성을 다 해보는 거지요. 소설가 선생이 내 말을 못 믿는 모양인데, 내가 이래봬도 일본이나 중국에서까지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사람이오. 그런 권위를 가진 사람이, 권위 있는 신문사에서 발간하는 잡지에 헛소리를 하면 안 되지.”
일본과 중국에서도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는 얘기는 근거가 있다. 그는 외국 인으로는 최초로 일본의 ‘동아의학회’로부터 명예회원증을 받았으며 이 단체의 명예고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중국에서의 그의 명성은 조금 더 특별하다. 섬서성(陜西省) 중의과대학을 비롯한 두 군데 대학에서 명예교수로 추대됐으며 중국 중의과연구원에 ‘배원식장학회’를 설립해두고 있다.
서안(西安)에 가면 당나라 시대의 전설적인 중의학자 손사막(孫思邈)의 묘지가 있다. 중국 당국에서는 중국 전체의 중의학 의사 중에서 20세기에 가장 빛나는 의술활동을 한 명의(名醫) 95명을 선정하여 99년 5월18일에 성대한 발표행사를 갖고, 이들의 이름을 새긴 기념비를 손사막의 묘지에 세웠는데, 여기에외국인으로는 유일하게 배원식옹의 이름이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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