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만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는 사정들을 보면 일이 아주 순조로운 것 같다. 시리아의 양대 권력 중추인 집권 바트당과 군부가 그를 대통령 후보로 추대한 데 이어 중장으로 승진시켜 군 총사령관에 임명했고, 의회 또한 6월25일 만장일치로 대통령으로 추대했으며, 7월10일의 국민투표에서도 그는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 대통령에 올랐다.
국외로 추방됐던 바샤르의 숙부 리파트가 자신이 형의 적법한 후계자라고 주장했다고 하지만 아직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또한 미국의 중동담당 특사 데니스 로스는 ABC방송과의 회견에서 바샤르의 권력승계를 가리켜 “매우 매끄러운 권력이행 과정”이라고 평한 바 있고,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도 바샤르에게 전화를 걸어 애도의 뜻을 전했으며,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도 ‘깊은 슬픔’을 전했다고 외신이 다투어 보도하는 것으로 봐서 바샤르의 대통령직 승계 그 자체에는 별다른 문제가 있을 것 같지 않다. 굳이 문제를 찾자면 그가 얼마나 자신의 의도대로 권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냐 하는 정도일 것이다.
권력 핵심기관인 군이 서둘러 바샤르에게 충성을 맹세한 것은 지금 시리아가 갑자기 권력진공 상태가 되어 혼란에 빠진다면 국가의 안위는 말할 것도 없고 그들 자신에게도 이로울 것이 없다는 판단 때문이 아닐까 하고 추측된다. 북한이 김일성 사망 이후 과도기적 조치로 ‘유훈통치 기간’을 뒀다고는 하지만, 그 사이에 별다른 권력투쟁 없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중심의 체제가 굳어진 것을 볼 때 북한과 시리아의 기득권층은 아무래도 체제의 관성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경제제재는 오히려 역효과
잘 알다시피 이라크는 이웃 쿠웨이트를 침공해 걸프전을 일으킨 죄로 90년부터 지금까지 서방측으로부터 경제제재를 받고 있다. 그 많은 원유를 수출하지도 못하고 생활필수품마저 수입할 수 없어 국민들의 생활은 말이 아니다. 최근 이라크 보건당국이 밝힌 바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아사자만도 무려 135만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96년에 필자가 이라크를 찾았을 때에도 사정은 아주 어려웠다. 그런데도 외부에서 생각하는 것과는 아주 딴판으로, 후세인에 대한 주민들의 지지는 전쟁 전인 89년에 이라크를 방문했을 때보다 오히려 더 확고한 것 같았다. 후세인이 쓰러지면 미국의 식민지가 돼버릴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그런 상황을 만들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경제봉쇄가 계속되면 생활은 곤궁해지겠지만 그렇다고 후세인이 손을 들 것으로 보이진 않았고, 이라크 국민들도 그걸 원하는 것 같지 않았다.
미국이 그 동안 리비아 이라크 북한 이란 등에 경제제재나 경제봉쇄를 취했지만, 그 때문에 최고권력자가 내부의 권력투쟁이나 외세의 힘에 의해 물러난 적은 한 차례도 없었고, 그에 대한 국민들의 충성심 또한 식은 적이 없었다. 호메이니가 세상을 떠났을 때 이란 국민들이 어떻게 했으며, 김일성이 사망했을 때 북한 주민들은 또 어떤 반응을 보였던가. 아사드 대통령의 유해가 다마스쿠스 시내를 지날 때 시리아 국민들이 보인 슬픔은 또 어떠했던가.
이제 미국은 이런 나라들에게 휘두를 만한 마땅한 수단을 갖고 있지 못하다. 전쟁도 벌여봤고, 경제제재도 취해봤건만 예상했던 효과를 거두기는커녕 무너뜨려야 할 권력자의 권력기반만 더 탄탄하게 다져주고 말았다. 오히려 죄 없고 힘없는 사람들만 희생됐다.
궁핍화 통치는 자연 폐쇄지향적이게 마련인데, 서방이 경제제재나 경제봉쇄조치를 취한다면 그건 그쪽의 권력자가 원하는 바대로 이뤄지도록 거들어주는 꼴이 되고 만다. 그럴 때 그들은 ‘이때다’ 하면서 빈곤과 굶주림이 모두 서방의 경제제재 때문이라며 국민의 분노를 서방으로 향하게 한다. 이보다 더 확실한 권력유지 비법이 또 어디 있겠는가.
아랍은 대부분 이슬람 국가이고 이슬람 국가는 자신의 이슬람 전통을 지키려는 경향 때문에 외부세계와의 교류에 적극적이지 못한데, 시리아는 의도적으로 그런 태도를 보인 탓에 폐쇄의 정도가 이웃 나라에 비해서도 극심한 편이다. 그것은 물론 권력자가 독재정치를 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독재국가란 내부적으로는 권력지상주의를 지향한다. 그러므로 권력보다 더 우선하는 가치는 존재하지 않으며, 그런 권력은 자연 국지적인(local) 성격을 띠게 마련이다. 이런 곳에서는 기업이 자랄 수 없다. 기업은 이익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갈 수 있어야 하고, 무엇이든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권력이 그것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시리아가 산업국가로 탈바꿈하지 못하는 데에는 자원과 인프라의 빈곤, 기술축적의 부족 같은 이유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독재국가라는 정치체제가 기업활동을 가로막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업이 존재할 수 없는 나라
이 점은 북한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북한은 60년대까지만 해도 공업 발전이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었다. 남한을 크게 앞섰을 정도였다. 그랬으면서도 지금은 바닥을 헤매고 있는 원인을 산업정책의 실패에서 찾는 사람들도 있으나, 그것보다는 그들의 독재체제 강화, 폐쇄지향적인 정책이 더 큰 원인을 제공한 것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한 진단일 것이다. 북한의 산업생산이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한 시기와 그들이 독자노선을 추구하기 시작한 시기가 너무도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이런 사정을 이해한다면, 북한의 ‘회사’라는 것이 아무리 ‘기업’이란 이름을 내걸고 있다 해도 그것이 관청 또는 당 조직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릴 것이다.
폐쇄주의 권력집단이 갖는 또 하나의 속성은 의사결정이 어떤 절차를 거쳐 이뤄지며, 권한이 단계별로 어떻게 배분돼 있는가를 외부세계에서 전혀 알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북한의 권력서열을 신문지상을 통해 보곤 하지만, 그것만 알고서는 어떤 특정한 사안에 대해 누가 책임을 지고 있는지를 알 수가 없다. 그 동안 정부 관계자나 기업인, 적십자사 대표, 문화계·종교계 인사 등이 북한의 누구누구와 만나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고 또 합의까지 하고 돌아왔다고 했지만, 그대로 실현된 경우는 최근의 몇몇 사례를 제외하고는 극히 드물었다. 이는 권력이 오직 한 사람에게 집중돼 있기 때문에 일어난 결과인 것이다.
국민의 뜻이 처음부터 존재할 수가 없는 폐쇄주의 국가에는 여론도 존재하지 않는다. 여론에 의해 대통령도 신념을 바꿀 수 있는 체제와는 너무나 다른 것이다. 국제 심포지엄 참석차 최근 서울을 다녀간 프랑스의 문명비평가 기 소르망은 “남북정상회담을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 “한 대통령과 한 독재자의 만남이었다”고 짤막하게 대답했다. 정곡을 찌른 현답이었다.
시리아는 어떤가. 바샤르가 바트당 실력자와 국방장관 등 군부 실세들과 함께 담소하는 장면을 외국 통신기자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또 비록 홍보 목적이긴 하지만 아사드 대통령의 홈페이지까지 만들어 국민과의 대화채널을 눈곱만큼이라도 열어두고 있으니까 완벽한 폐쇄주의 국가는 아닌 셈이다.
흔히 권력은 나눠 가질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바샤르는 아직 자신의 권력기반이 약하기 때문에 얼마간은 실세들과 권력을 공유하는 방식을 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사드의 발목을 잡았던 골란고원 문제(그렇지만 그는 이를 최대한 이용해 독재정치를 폈다)에 대해서도 그는 한결 유연한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있다. 또한 그는 젊기 때문에 변화를 추구하려 할 것인데, 그 과정에서 아사드의 주위에 있던 구세력들을 하나 둘 제거할 가능성도 점쳐볼 수 있다.
폐쇄성이 과거지향적 성향 강화
폐쇄적인 정치체제는 또한 과거지향적이다. 국민을 과거 속에 가둬두려는 속성이 있는 것이다.
시리아에는 고대문명 유적지가 참으로 많다. 지금도 곳곳에서 그런 유적과 유물이 속속 발굴되고 있다. 시리아 문화재관리청의 아드난 부니 고고국장은 필자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이집트나 이라크는 찬란한 고대문명의 유산을 갖고 있긴 하나 어느 특정한 시대의 것에 한정돼 있다. 그렇지만 시리아는 메소포타미아, 히타이트, 페니키아,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비잔틴, 그리고 이슬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대의 것을 모두 다 갖고 있다. 그것들을 살펴보면 중동 고대사의 수수께끼가 풀릴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문화가 혼재돼 있어서인지 시리아 사람들은 매우 개방적으로 보였다. 이질적인 것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이해하려는 태도를 보였고 관용을 베풀었다. 아랍의 이슬람국가 가운데서 시리아만큼 다른 종교에 대해 폭넓은 신앙의 자유를 허용하는 나라도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시리아의 권력자는 이런 문화적 전통을 국민을 진취적으로 발전시키는 데 이용하기보다는 오히려 과거지향적으로 만들어 앞을 못 보게 만드는 우를 범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앞을 보고 앞서 나간다면 독재권력이 기댈 언덕은 없다는 사실을 그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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