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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DJ 처남 앞세운 펀딩 사기극의 하수인이었다”

掌紋 인식시스템 벤처 ‘핸디콤코리아’ 자금팀장의 폭로수기

  • 이윤철 (가명)

“나는 DJ 처남 앞세운 펀딩 사기극의 하수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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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번호에 나온 주소를 보고 부자 동네를 골라, 낮 시간에는 집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모님(주부)’을 찾는 전화를 거는 것이다. 사모님이 받으면 그때부터 마케팅에 들어간다.

“사모님, ○○컨설팅의 ○○○입니다. 전남 여수 지역에 좋은 부동산 매물이 나왔는데, 여유자금이 있으시면 투자하실 생각이 없으십니까. 2010년 여수시가 개최하기로 한 해양박람회 개최지에 인접한 곳인데, 해양박람회가 개최되면 땅값이 수십 배 오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대부분의 사모님은 “저는 그런 것 몰라요” 하고 전화를 끊는다. 그러나 100여 통쯤 전화를 걸다보면 개중에는 “그래요?”하고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있다. 그러면 입이 닳도록 선전을 한 후 “전혀 부담갖지 말고 ○○동에 있는 저희 사무실로 오셔서, 좀더 구체적인 설명을 들어보시지요”라고 권한다. ‘밑져야 본전’이므로 이런 사람들 중에는 진짜로 사무실로 찾아오는 사람이 있다.

컨설팅회사의 사무실은 강남 요지의 깨끗한 빌딩의 한 층을 빌려, 세련된 치장으로 꾸며놓았다. 이 회사를 찾아온 사모님은 잘생긴 도우미의 안내를 받아 브리핑 룸으로 안내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브리핑의 귀재’로 불리는 직원들로부터 부동산에 관한 갖가지 설명을 듣는다. ‘브리핑의 귀재’들은 이때 사실감을 주기 위해 여수 인근 지역을 찍어온 사진이나 비디오를 보여준다. 대전엑스포 후 인근 지역의 지가 변동표를 보여주며 은근히 투자를 권유하는 것이다.

이렇게 공을 들이면 투자를 결심하는 사모님이 나오게 마련이다. 텔레마케팅은 꼭 사모님만 상대하지 않는다. 강남에 주소를 둔 회사로 전화를 걸어 ‘사장님’과 통화를 시도해, 통화가 이뤄지면 같은 방법으로 사장님을 브리핑룸으로 끌어내기도 한다. 텔레마케팅을 잘 한 사람은 브리핑 전문가가 된다.



이러한 브리핑 전문가 중에서 사무실로 나온 사모님과 사장님을 상대로 매매를 성사시킨 이른바 ‘승률 100%’들이, 벤처기업의 주주를 모집하는 펀드세계로 진출하게 된다. 다단계 판매에서 혁혁한 전과를 세운 영업사원들도 펀드세계로 들어오는 핵심 세력이다.

다단계 판매나 부동산 거래는 투자에 실패했더라도 물건이나 부동산은 남는다. 그러나 벤처기업이 무너지면, 그 날로 그 회사의 주식은 ‘휴지’가 되기 때문에, 투자자들은 아무것도 건질 수 없다. 이렇게 위험성이 높기 때문에 벤처펀드는 훨씬 더 높은 수익성을 보장한다. 이러한 고수익성 때문에 텔레마케팅과 다단계 판매에서 ‘세치 혀’로 사람을 설득하는 데 경력을 쌓은 영업사원들이 벤처 펀드세계로 들어온다. 진짜 도박의 세계로 들어오는 것이다.

알음알음으로 이들을 참여시킨 펀드팀은 주로 코스닥에 상장되지 않아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벤처기업과 연계돼, 이 기업의 주식을 판매해주는 일을 한다. 벤처(venture)는 ‘모험’ ‘투기’ 등의 뜻을 갖고 있는데, 벤처기업과 펀드팀의 만남 자체가 벤처고 도박이다.

벤처기업 대표와 펀드팀 대표가 함께 일을 하기로 약속하면, 두 사람은 주식 매매에 관한 ‘약정서’를 체결한다. 약정서는 ‘벤처기업 대표가 주식 1만주를 넘겨주면, 펀드팀 대표는 액면가 500원인 이 주식을 시가 1만원으로 한 달 내에 판매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 약정서에는 아주 중요한 내용이 빠져 있다. 주식 매각 대금을 벤처 대표와 펀드팀 대표가 어떻게 나누는가 하는 부분이 누락돼 있는 것이다. 펀드세계에서는 벤처 대표와 펀드 대표가 주식 매각 대금을 5대5로 나눈다는 것이 불문율이다.

시가 1만원 하는 주식을 1만주 팔았다고 하면 1억원의 돈이 들어온다. 그러면 정확히 5000만원은 벤처기업이 가져가고, 나머지 5000만원은 펀드팀이 가져가는 것이다. 주식을 팔아주기만 하면 총 매각대금의 50%를 먹을 수 있다는 매력 때문에 ‘영업에 이골이 난’ 사람들이 펀드 세계로 진출하는 것이다.

펀드팀이 벤처기업의 직원으로 위장한다는 것도 약정서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그러나 약정서가 체결되면 펀드팀은 그 즉시 벤처기업의 ‘자금부’로 위장해 들어간다. 이때부터 펀드팀 대표는 그 회사의 고문이나 전무로, 그 밑의 중간 팀장은 상무·이사 등으로, 영업사원으로 불리는 팀원은 자금부 팀장 정도로 명함을 새긴다. 그러나 이들이 받는 월급은 대개 30만원 선이다. 이 돈은 벤처회사에서 주는 것으로 돼 있지만, 실제로는 펀드팀에서 나온다. 왜 이들의 월급은 30만원 대일까.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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