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형 대령의 익명 인터뷰가 세상에 선을 보인 것은 지난 3월3일 KBS와 MBC 밤 9시뉴스를 통해서였다(원래 MBC ‘시사매거진 2580’에 보도할 것을 전제로 인터뷰한 것이었다). 이날 아침 한겨레신문은 공군시험평가단이 작성한 344페이지 분량의 기종평가 보고서를 특종보도했다.
국방부에 비상이 걸렸다. 몇 차례 연기와 축소를 거듭해오던 FX사업이 외압의혹에 휩싸인 것이었다. 부산스러운 수사과정에서 방송사 인터뷰에 응한 공군장교가 문건 유출 용의자로 지목됐다. 수사망은 점점 좁혀졌다. 공군 내에서 FX사업의 진행과정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조주형 대령을 비롯해 몇 명에 지나지 않았다. 조대령의 신원은 곧 파악되고 말았다.
“나도 잘못한 게 있다”
3월4일 밤 10시15분경, 헌병대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조대령은 집을 나섰다. 그는 곧바로 헌병대로 연행됐다. 다음날 새벽 5시경까지 조사를 받은 후 귀가하지 못한 채 사무실로 출근조치됐다. 오전 9시15분경, 서울에서 내려온 기무사 요원들은 그를 서울로 압송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문건 유출 및 인터뷰 동기에 대한 조사를 받게 된다.
참여연대가 공군장교의 연행소식을 듣고 몇몇 간부 중심으로 대책을 숙의한 것은 3월5일 점심 무렵. 우리는 공익제보(내부고발)라는 직감이 들었다. 군대라는 조직사회에서, 그것도 장성 진급을 앞둔 고위장교가 ‘양심의 호루라기를 불었다’는 것은 역사적인 일임에 틀림없었다.
먼저 당사자를 접견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조대령의 소재를 파악할 수 없었고, 무엇보다도 가족들과 연락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뭔가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면서 먼저 가족과 연락을 취해보기로 했다.
다음날인 3월6일 오전. 조대령의 부인 문옥면씨와 연락이 됐다. 오후 1시경, 문씨가 사무실로 찾아왔다. 뜬눈으로 밤을 새워 피곤한 기색이 엿보였지만 침착한 모습이었다. 뜻밖에도 문씨는 남편과 휴대폰 통화가 가능한 상태였다.
그녀를 통해 우리는 조대령에게 접견의사를 밝혔다. 처음에 조대령은 거부했다. “나도 잘못한 것이 있고 군 내부 문제이니 금방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그의 말대로 된다면 좋겠지만 외압·조작의혹을 폭로한 장교를 그냥 풀어준다는 것은 예상하기 어려웠다.
우리는 전화를 끊은 후 부인을 설득했다. “조대령은 구금상태이니 자유롭게 의사를 밝혔다고 보기 어렵다”는 우리의 주장은 남편이 무사한지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부인의 마음을 움직였다. 우리(문옥면씨, 안병희 변호사, 필자 등)는 OO동에 있는 기무사령부로 향했지만 실제 조사를 받는 곳은 기무사 분실이었으므로 시간약속을 다시 하고 기무사 분실이 있는 XX동으로 이동했다.
오후 4시경, 드디어 조대령을 대면했다. 첫인상은 강인한 군인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었다. 오히려 맘씨 좋은 이웃집 아저씨 같은 느낌이었다. 크지 않지만 단단한 체구였다. 눈매는 날카로웠지만 한편으로 부드러웠고 밤샘조사 때문에 초췌한 모습이었다.
그는 변호인단을 크게 반가워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부인과의 만남에 대해서는 꽤 안도하는 눈치였다. 수사관들을 내보낸 후 이야기를 시작했다. 곧 그가 변호인단을 반가워하지 않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몇 시간 전 전화통화에서 ‘자신의 잘못’이라고 인정했던 부끄러운 고백 때문이었다. 금품수수(그는 처음부터 뇌물이라고 자책했다)! 이는 방송사 인터뷰 동기에 대한 조사를 받다가 수사관의 끈질긴 추궁에 못이겨 털어놓은, 그야말로 ‘고해성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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