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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수’ 정수일 박사의 이슬람 문명 산책 11

명예살인의 과격함에서 차 한잔으로 밤새우는 느긋함까지

이슬람 생활문화

  • 정수일

명예살인의 과격함에서 차 한잔으로 밤새우는 느긋함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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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림들의 중용적인 의식구조는 그들만의 여유성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아랍 속담에 “빨리 하는 것은 사탄이나 하는 짓이고, 천천히 하는 것이라야 알라가 기뻐한다”는 말이 있다. 자칫 굼뜨고 게으름을 변명하는 것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이 말 뒤에 그들은 “천천히 하는 것이 빠를 수도 있다”는 말을 잊지 않고 덧붙인다.

요즈음 무슬림들의 ‘IBM’에 골탕먹은 이야기들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I’는 ‘인샬라’ ‘B’는 ‘부크라’ ‘M’는 ‘마알라이쉬’라는 아랍어 단어들의 첫 자 모음이다. ‘인샬라’는 ‘알라가 원한다면’ ‘부크라’는 ‘내일’ ‘마알라이쉬’는 ‘괜찮아, 무얼 그러느냐’라는 뜻이다. 이 세 글자의 합성(合成)은 그야말로 멋진 3박자 화음이다.

어떤 고객이 한 주일 후에 제품을 인수하기로 계약서를 쓰고 도장까지 찍고는 아랍인 화주(貨主)에게 약속을 지킬 것을 거듭 강조하니, 화주는 “인샬라”라고 대답한다. 낯선 고객은 굳은 서약인 줄 알고 안심한다. 고객이 약속한 날짜에 갔는데 제품이 마련되지 않았다고 하기에 화를 내니 화주는 태연하게 “부크라”라고 응수한다. 다음날 지켜줄 것을 믿고 다시 찾아갔더니 또 마련되지 않았다고 한다. 홧김에 심하게 추궁하니 화주는 여전히 별일 없는 듯 덤덤하게 “마알라이쉬”라고 능청을 부린다. 알고 보니 이것이 그들의 ‘IBM’ 관행이다.

전지전능한 알라가 함께하고 소털 같은 세월이 있는데 무얼 그리 설치냐는 여유작작함과 자신감, 그리고 조급한 세태에 대한 그들 나름의 대응일 수도 있다. 정녕 ‘인샬라’(盡人事待天命)는 그들만의 전유물인 성 싶다.

이러한 관용적인 여유를 누리는 무슬림들이지만 표현에서는 상당히 외향적인 성향을 보이고 있다. 무슬림들은 대체로 내용과 형식, 실(實)과 명(名), 분(分)과 격(格)에서 형식과 명, 격에 치우치는 이른바 외부표출 지향적인 의식구조를 가지고 있다. 때로는 이것이 어떤 표리부동한 2중적 의식구조로 비치기도 한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체면의식이 남달리 강하다. 명예(샤라프)와 품위(카라마), 자존심을 중시한다.



서아시아 무슬림 국가들, 특히 유목사회 전통이 많이 남아있는 보수적인 국가들에서는 아직까지 듣기에도 끔직한 이른바 ‘명예살인’이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다. 정조(이르드)를 여성의 최고 명예로 자부하는 이슬람 사회에서 여자의 부정이 가문의 명예를 더렵혔다고 하여 가족의 손에 죽임을 당하는 일이 매년 500여 건씩이나 발생한다고 하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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