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아이자 동성애자였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 기독교의 세기에 무신론자의 길을 간 레오나르도는 시대의 이단아였다. 다원성과 구체성의 삶을 치열하게 살다 간 그의 걸작 ‘모나리자’에는 어떤 진실이 숨어 있는가.
동양사상은 전통적으로 비이분법적이었으나 20세기 전후에 서양의 이분법에 젖어들고 말았다는 견해가 있다. 인간사를 온통 선과 악으로 구분짓는 근본주의 기독교나 마르크스주의가 그렇다는 것인데, 그 점에서 남북한은 모두 이원론적 병을 앓고 있는 ‘한통속’이라는 것이다.
최근 베스트셀러가 된 책 ‘예수는 없다’에 나오는 이야기다. 그런 동양사상의 대표격이 도가사상이나 화엄사상이라지만, 과연 그것이 동양적 사고의 전통인지는 의문이다.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유교, 그중에서도 주자학만이 유일하게 인정받았고, 불교를 비롯한 다른 사상은 배척되었다.
그런 배타주의의 정신풍토에서 역시 배타주의적인 근본주의 기독교나 마르크스주의가 뿌리박은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극복해야 할 대상은 배타주의이지 어느 종교나 사상이 아니다. 그 어느 것이든 본질적으로 자유로워야 한다. ‘예수는 없다’ 역시 성경을 문자 그대로 읽지 말고 예수처럼 완전한 자유인이 되자고 주장한다.
이 책은 다원주의를 주장한다. 기독교, 불교, 유교가 서로 만나 대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마르크스주의를 포함시켜도 좋을 것이다. 이 책이 ‘배타적인 근본주의 기독교는 이미 여러 지역에서 비판당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그래야 한다’고 주장하듯, 마르크스주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수와 진보는 공존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도, 통일을 위해서도.
여러 종교의 대화로 모든 것이 해결될까? 지금 우리가 믿는 근본적인 이념은 무엇인가? 그 실질이야 어떻든 남북한 모두, 아니 세계의 남북 모두 주장하는 기본이념은 민주주의가 아닐까? 그런데 그 민주주의는 과연 무엇인가?
민주주의를 하나의 생활양식이라고 한다. 그것은 자유로운 지성을 갖춘 시민의 삶이다. 그리스나 로마, 르네상스의 민주적 인간상은 개성을 가진 개인이자 공사 모든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인간이다. 특정 분야에서의 전문성이 아니라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으로서의 능력이다. 하나의 직능만을 전문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자유인과 어울리지 않는 비열한 행위로 간주되며, 특히 최대이윤을 추구하는 것에만 혈안이 되는 것은 경멸의 대상이 됐다. 그 생활양식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