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의 서적역사가들은 독서의 유형이 18세기 무렵에 ‘집중형 독서’에서 ‘분산형 독서’로 바뀌었다고 말한다. 집중형 독서란 한 권의 책을 완전히 익힐 때까지 읽는 것으로 과거 우리나라의 서당에서 이뤄졌던 독서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책의 종수가 늘어나면서 독자들은 한 권의 책을 읽은 다음에 바로 다음 책으로 옮겨가는 분산형 독서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수많은 텍스트를 컴퓨터 액정화면을 통해 읽게 된 지금은 무슨 독서라고 불러야 할까? 아직 서적역사가들이 정확하게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지만 ‘검색형 독서’라고 부르면 어떨까?
나의 직업은 책을 읽고 소개하고 비평하거나 출판시장의 흐름을 분석하는 일이다. 그래서 항상 책을 끼고 산다. 언제나 나의 책상에는 온갖 책들이 나뒹굴게 마련이다. 출판사들이 연구소로 보내주는 수많은 신간들을 최소한 제목이라도 일별해야 하고, 관심을 끄는 책은 일부라도 ‘무조건’ 읽어보아야 한다. 또 화제가 되거나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은 내 개인의 취향을 떠나 ‘무조건’ 훑어보아야 한다. 그래서 아무리 책을 보아도 이 시대의 트렌드를 읽어내기 어려울 때는 무수한 책을 처음에는 검색형 독서로, 그래서 골라진 책은 되도록 완독해야 하는 것이 마치 ‘노동착취’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책을 소비하는 대상(독자), 만들어내는 주체(출판사), 책이 유통되는 장(場=세계)은 엄청난 속도로 변하고 있다. 일본의 한 출판인은 “편집자란 아프리카 사바나 지대를 달리는 트럭 위에서 날고 있는 새를 쏘아 맞히는 사람”이라 정의했다. 날아다니는 새(독자)를 맞히는 것도 쉽지 않은데 편집자가 타고 있는 트럭(세계)도 움직이고 있으니 이중으로 어려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는 대중의 욕구를 정확히 읽어내어 “강의 상류에 목표를 정하고 보이지 않는 바닥의 흐름을 포착”해내는 일이 바로 나의 일이다.
3∼5월에는 재테크 서적이 강세
한 해의 경제·경영서의 흐름을 살펴보면 3∼5월에는 재테크 서적이 강세다. 휴가철인 6∼8월은 비수기이고, 9∼11월에는 처세서가 유행한다. 기업들이 새해의 계획을 세우기 시작하고 신규인력을 뽑기 시작하는 12월 이후에는 마케팅과 비즈니스 관련서 등 큰 테마 중심의 책으로 옮겨간다. 이 시기에는 트렌드, 세계 경제동향, 미래진단서 등도 좋은 반응을 얻는다.
겨우내 움츠러들었던 몸을 떨치고 일어나서 새롭게 돈을 벌어보자고 기지개를 펴는 3∼4월에 유행하는 재테크 서적의 유형을 살펴보면 그해 시중의 돈이 어디로 튈지 예측해 볼 수 있다. 2000년 봄에는 ‘나는 사이버 주식투자로 16억을 벌었다’나 ‘나는 초단타매매로 매일 40만원 번다’와 같이 ‘대박 신화’를 다뤄 은근히 ‘묻지마 투자’를 유혹하는 책들이 기승을 부렸다.
2001년에는 주식시세가 바닥을 기어 주식책의 인기 또한 형편없었지만, 주식투자에서 자칭 ‘재야고수’를 자처하는 사람들이나 ‘사이버 애널리스트’들이 주가가 만들어내는 차트와 거기서 나타나는 신호를 보고 매수와 매도를 결정하는 투자방법을 제시하는 ‘기술적 투자’에 관련된 책들이 그나마 대중의 선택을 받았다.
올해에는 주가가 오랜만에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어 주식책이 좋은 반응을 얻을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 당연하다. 과거에는 보통 주가가 750 이상이면 ‘개미군단’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주식책도 덩달아 널을 뛰곤 했지만 올해에는 그런 징후가 전혀 포착되지 않고 있다.
그런 와중에도 올해 3월에 가장 좋은 반응을 얻은 책은 ‘한국형 가치투자전략’(서울대 투자연구회, 은행나무)이란 책이다. ‘가치투자’란 좋은 가치를 지닌 기업을 발굴하고 그 기업의 주식이 가치 이하로 거래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주식을 매수한 다음 그 주식을 바로 되파는 것이 아니라 지속해서 보유하는 것이다. 즉 제한된 돈으로나마 돈의 흐름을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여 사회적 부를 증가시키는 능동적인 사회기여의 한 방법이다.
‘묻지마 투자’와 같은 도박은 한쪽에서 돈을 따면 다른 한쪽은 반드시 돈을 잃게 되는 자금 순환논리가 적용된다. 하지만 바람직한 주식투자인 ‘가치투자’에서는 꼼꼼히 따지고 자세히 살펴서 투자하기만 하면 누구나 돈을 벌 수 있다. 따라서 가치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업의 가치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 책은 그런 능력을 키우는 방법을 일일이 제시한다. 이렇게 불과 몇 년 사이에 ‘묻지마 투자’에서 ‘기술적 분석’으로, 다시 ‘가치투자’로 투자의 유형이 크게 달라지는 것은 분명 긍정적 변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