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총예산의 30% 이상을 국방비에 투입하고 있다는 주장은 비현실적이다
군사비는 일국의 무장력을 위한 인적·물적·조직적 역량에 투자한 ‘요소비용의 총계’로서 군사력의 가장 중요한 척도가 될 수 있다. 군사비는 인력이나 무기 및 지원시스템의 양적·질적 차원과 조직적 효과성 등 질적 차원의 투자비용으로서, 개수비교나 동태적 분석보다 우월한 군사력의 지표이다. 그러나 먼저 군사비에 관한 몇 가지 방법론적 문제를 밝혀야 한다.
첫째, 매연도의 군사비(유량)가 아니라 군사비 혹은 군사투자비 누계(저량)가 군사력의 척도가 된다. 또 여기에는 민간기업의 자산재고와 같이 감가상각을 포함해야 한다.
둘째, 전력증강 투자비는 주로 물적 요소만을 포함할 뿐, 조직적 역량에 대한 투자를 배제한다. 부대 및 장비 운영유지(O·M) 비용은 바로 ‘조직적 자본’에 대한 투자로서, 투자비에 합산해야 한다. 실제로 국방부는 한국군의 운영유지비 대 군비재고 비율의 하락을 우려한다. 병력유지비는 소비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배제하기로 한다. 그러나 리브시 UN군 사령관은 “국경을 지키는 군인에게조차 식량을 제공할 수 없는 국가는 실로 심각한 곤란에 처해 있는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셋째, 남북한 무기의 가격 대비 효과를 보면 국방부는 과거 미국의 ‘가격 대비 파괴력’ 논의를 답습하고 있다. 즉 사회주의경제의 특성 때문에 북한의 인건비·운영유지·무기구입(투자비) 가격이 훨씬 더 낮다고 한다. 그러나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고가·고기술 무기를 비교하면 소련형 무기의 가격 경쟁력은 급격히 감소한다. 개별무기의 성능과 질, 그리고 무기체계의 통합적인 운용·지원능력이 발휘되는 실제전투의 교환율에서 비용효과성이 매우 낮다. 한국전쟁에서 걸프전에 이르기까지 소련형 공군력과 방공체계는 명백한 실패작이었다. 소련 무기체계의 열악한 가격 경쟁력은 공군력 및 방공능력뿐만 아니라 전략핵전력이나 해군력에도 적용된다. 서방 회사들이 제3세계의 소련제 무기를 개조해온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마지막으로 군사비자료의 방법론적 문제, 특히 신뢰성을 보자. 남한의 경우에는 국방비와 군사원조를 합산한 ‘총국방비’를 산정할 수 있다. 문제는 북한의 공식 국방예산이 1967∼71년간 정부예산의 평균 30.9%에서 1972년 17.0%로 격감한 이래, 군사비의 상당부분이 국방예산에 포함되지 않고 은닉되어 왔으리라는 점이다.
북한의 ‘실제’ 군사비에 대한 남한의 추정은 국가예산의 30.9%이다. 이는 미 국방정보국이 소련 국방비를 예산의 3분의 1로 추정한 것과 같이 ‘단순추정’에 불과하다. 그러나 북한이 경제사정이나 국내외 정세를 무시하고 수십년간 계속 총예산의 30∼30.9%를 국방비에 투입하고 있다는 주장은 비현실적이다. 또한 한·미측의 추정은 군사원조를 고려하지 않았다. 1980년대 후반 북한은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소련의 군사차관에 힘입어 공군력(MIG-23·MIG-29 전투기 및 SU-25 공격기) 및 방공능력(SA-3·SA-5 대공 미사일 및 레이더망)을 개선했다. 이 사실은 북한의 군사비가 이 시기에 상당히 증가했음을 시사하나, 남한측 추정에는 이 점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본고에서는 1967∼71년의 평균치인 총예산의 30.9%가 아니라 1960∼71년간 평균(25.4%)에 근거하여 1972년 이래 북한의 군사비를 추정했다. 그 결과는 대략 공식 국방비의 1.5배, 또는 국방비+총예산의 8.5%이다. 또한 ACDA 자료에 의거한 북한의 무기도입 총액을 군사원조로 추가함으로써 추정 ‘상·하한선’을 구할 수 있다.
한국군의 재래식 전력 우세
북한은 경제력의 열세로 인해 재래식 군비경쟁에서 완패했다
이상에 의거하여 군사원조·감가상각 및 구매력평가환율(PPP)을 고려한 좀더 객관적인 남북한의 국방비 및 ‘투자비+운영유지비 누계’(불변 미국 달러 기준)를 구할 수 있다. 북한 군사비의 ‘투자비+운영유지비 누계’는 총국방비에서 추정 병력유지비를 공제함으로써 산출했다. 앞의 는 필자의 결과를 기존의 연구와 비교한 것으로, 남한이 1980년대 초부터 투자비+운영유지비 누계에서 앞섰고, 1980년대에는 그 격차가 현격해졌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1970년대 전반 남한의 군비재고(투자비 누계)는 북한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은 반면(1973년 0%, 1975년 3.3%, 1976년 10.4%), 전력지수는 50.8% 이상이었다. 이와 같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의 이유는 한국군 전력증강사업인 ‘율곡사업’ 이전까지 한국군의 투자를 전담했던 미 군원(軍援)을 제외했기 때문이다(이상우 교수와 랜드연구소도 같음). 북한의 군사비를 과장했고 감가상각을 배제한 것도 부차적 원인이다. 국방부는 또한 1988년 주한미군의 전력지수를 인민군의 5%(한국군 65%의 13분의 1)로 평가한 반면, 주한미군의 군비재고는 159억∼160억 달러(탄약비축 46억 달러 및 조기경보시스템 35억 달러 포함)로서 남한 군비투자 누계의 60%로 평가했다. 즉 주한미군의 우수한 조기경보·정보수집능력을 중시하면서도, 전력지수 산출에는 포함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정부가 주장해온 기존의 남북한 군사력 비교는 적절하지 못하다. 첫째, 현존의 ‘상비전력’만 중시하는 것은 동원능력을 포함하지 않기 때문에 군사력을 충실히 반영하지 못한다. 둘째, 전투서열 비교에 의거한 단순개수 혹은 전력지수비교는 ‘저량’이 아닌 ‘유량’ 개념이며, 병력·무기·조직의 질적 요소를 포함하지 않고 있다. 셋째, 군사자본재(투자비 누계)가 인적·물적·조직적 요소비용의 총합을 반영하는 가장 타당성 있는 척도이다.
따라서 군원과 감가상각 등을 포함한 객관적인 추정에 의거한 남북한의 군사비(투자비+운영유지비) 누계를 비교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 결과 먼저 ‘국방의 자위’에 착수한 북한이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전반에는 우위를 누렸으나, 정부의 주장과 달리 1980년대부터는 남한이 군비투자의 우위를 확보하기 시작했고 점차 그 격차가 커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남한은 마음만 먹으면 그토록 강조한 ‘수적 열세’를 만회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양보다 질’을 중시해 왔고 특히 정보화 전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발견’은 전혀 새로운 주장이 아니라, 정부당국이 주장해온 방법에 단지 더 철저한 자료조사 및 분석을 가한 결과일 뿐이다.
북한은 경제력의 열세로 인해 재래식 군비경쟁에서 완패했다. 인민군의 무기체계는 매우 노후화된 모델이며, 같은 소련형 장비에 비해서도 품질이 열악하다. 또 노후화된 무기나마 적절히 운영·유지할 수 있는 연료·부품·보급물자는 물론 군량미마저 부족하다. 특히 지난 수년간 북한의 재래식 군사력은 더욱 약화되었다. 군사원조의 상실로 인한 무기수입의 극적인 감소는 북한의 군수산업으로는 보완하기 어렵다. 오늘날 북한의 전쟁수행 능력은 1994년 핵 위기 당시에 비해서도 현격히 감소했다. 99년 6월15일 서해 교전의 결과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비대칭적 균형과 군비경쟁의 한계
남북한의 군비투자에는 ‘수확체감의 법칙‘이 적용된다
오늘날 남한이 군사력에서 우위를 장담할 수 없는 부문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미국에 의존하는 이른바 ‘독자적 전략기획 능력의 부재’일 것이다. 한편 북한은 전쟁수행 능력의 현대화보다는 염가의 ‘전략무기’ 확보에 힘쓰게 되었다. 즉 북한은 재래식 군사력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하여 비재래식 대량살상무기 개발로 전환했던 것이다. 북한은 또한 탄도유도탄을 중요한 외화획득의 수단으로도 활용하였다. 북한은 핵 확산을 우려하는 미국과 협상을 통해 사실상 생존을 보장받았다. 또 ‘가난한 자의 핵무기’인 화학무기의 개발·비축 의혹을 받고 있다.
물론 북한의 억지전력은 이른바 ‘방어 충분성’을 넘어선 것이다. 최근에는 남한에 대한 공멸 위협과, 부차적으로 동북아 관련 당사국에 대한 도발 위협을 제기함으로써 한·미·일의 ‘평화부담금’ 지불을 강요하고 있다. 북한이 98년 8월 사회주의 강성대국을 선언하고 ‘인공지구위성’(혹은 대포동 미사일)을 발사한 것도 미·일측에 대한 위협의 신빙성을 높이고자 한 것이다. 물론 남한에 대하여는 재래식 억지력도 지니고 있는바, 수도권을 타격할 수 있는 240mm 방사포와 170mm 자주포 등 장사정 포대를 보유하고 있다.
요컨대 남북한간에는 남한의 전쟁수행능력 우위 대 북한의 억지력 우위라는 ‘비대칭적 군사력균형’이 존재하고 있다. 북한이 저렴한 비용으로 억지력을 확보하기 때문에 남한의 군사적 접근방법, 즉 군비증강을 통한 안보의 추구에는 한계가 있다. 즉 남북한의 군비투자에는 이미 ‘수확체감의 법칙’이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또한 통일한국의 군사력이 주변 4강 어느 한 나라에도 미칠 수 없음을 뼈아프게 자각해야 한다. 북한이 ‘고슴도치 전략’을 추구한 결과 경제가 파탄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통일한국이 중·일 등 강대국과 군비경쟁을 벌이는 일이 얼마나 무모한가를 경고해 준다. 남북한이 한반도 및 동북아의 공동안보와 군축을 추구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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