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듭해서 양당제로 개편하자고 강조하시는데 현재까지 지역정당 구조를 규정해온 근본요소는 3김을 정치적 대변인으로 하는 지역감정이었습니다. 그게 온존하는 상태라면 여권이 신당을 창당하거나 합당을 한다고 근본원인이 제거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저는 양당제가 되고 정당들이 연구기능을 확충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인물과 정책을 갖고 경쟁하는 양상이 나타날 것으로 확신합니다. 우리 국민들의 정치의식수준은 매우 높지 않습니까. 두 당이 감정만 가지고 밤낮 싸울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경제 사회 복지 교육 문화 환경 이런 정책을 놓고 계속해서 서로 경쟁하게 될 것입니다.”
─ 현재의 여야정당구조에서 양당제라면 결국 자민련과 국민회의의 합당을 통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데요, 자민련 지도부의 태도가 왔다갔다 해, 국민들은 도대체 그분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비판이 많습니다. 자민련과의 통합이 진통을 겪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허허 웃으며)글쎄요, 바둑 5급이 놓는 수는 의도가 보이는데 9단이 놓는 수는 왜 거기에 놓았는지 쉽게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지금 자민련의 진정한 의도를 쉽게 읽을 수 없죠. 국민들도 그래서 좀 답답할 테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우리 목표가 양당제라 해도 현실이 따라주느냐는 별개 문제입니다. 그러나 저는 솔직히 말씀드려서 자민련의 지도자들이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따라줄 것으로 굳게 믿고 있습니다. 다만 그분들대로 거쳐야 할 절차, 또 풀어야 할 문제가 있을 테니까 여건이 성숙되는 데 시간이 필요하겠죠. 궁극적으로는 자민련의 지도자들이 대통합에 동의해주실 것으로 믿고 있어요.”
이위원이 말하는 ‘절차’와 ‘풀어야 할 문제’는 물론 자민련 내부의 만만찮은 반대의견을 어떻게 설득하느냐는 문제, 그리고 이와 연관된 김종필 총리와 박태준 자민련총재의 통합신당에서의 위상문제라고 할 수 있다.
자민련을 합당 쪽으로 설득하기 위해서는 특히 JP(김총리)를 통합신당의 총재로 ‘모실’ 수 있느냐와 JP에 총선공천권을 줄 수 있느냐의 문제로 요약된다. 합당에 관해서는 대체로 뜻이 일치하는 국민회의 내부에서도 이 대목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그래서 이고문에게 이에 관한 의견을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았다. 이에 대해 이위원은 단계론을 전제하긴 했지만 의외로 선선히 ‘JP 총재’를 수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즉 현단계에서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자민련과의 통합이며 이를 위해서는 ‘JP 총재’도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며칠 전 역시 차세대 주자의 한 사람으로 거명되는 김근태 부총재가 ‘16대 총선에서 여권이 안정의석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하다’면서 ‘JP총재론’에 ‘총대’를 멘 직후여서 이위원의 발언은 특히 관심을 끌었다.
‘JP 총재’ 안 될 것 없다
─ 합당을 위해서라면 JP를 총재로 ‘모실’ 각오도 돼 있습니까? 당내에서는 “JP를 총재로 받드는 것만은 못 하겠다” “JP를 총재로 내세워 과연 총선에서 이길 수 있겠느냐”는 의견도 제법 있는 것 같은데요.
“새로 만들어지는 당은 지금까지의 정당과는 많이 달라야 합니다. 우선 대중적인 정당이 돼야 합니다. 말하자면 정당이 표방하는 큰 이념·정책·노선에 호응하는 국민들이 광범위하게 참여할 수 있고, 그 대중당원들로부터 생명력이 나오는, 상향식 민주적 대중정당의 모양새를 갖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연히 당원들의 의지에 따라 지도부도 구성되고 노선도 설정돼 나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직 당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또 대통합의 정치적 결단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총재를 누가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순서가 뒤바뀐 것입니다. 특히 누구는 될 수 있고 누구는 절대 안 된다고 하는 전제에 저는 반대합니다. 당을 이끄는 데 최선의 인물이라면 누구든지 지도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선 양당제의 틀을 만드는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대중적인 상향식 민주정당은 시간을 두고 차츰 발전시켜 나가면 되는 것이죠. 우선 양당제의 큰 틀을 만드는 것이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 11월25일 신당창당준비위원회에서는 ‘국민적 개혁정당’을 표방했습니다. 그런데도 신당이 과연 그런 정당이냐에 관해서는 의문을 표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호남정당’ ‘DJ당’이라는 인식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게 사실인데요, 한마디로 신당이 형성과정에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랄 수 있겠죠. 그런 인식이 왜 생겨날까요?
신당창당의 과정과 방식에 문제점은 없다고 보십니까?
“현재는 국민회의와 재야가 모여서 신당을 만들어나가는 도중입니다. 이제 겨우 창당준비위원회가 구성됐을 뿐 기초가 되는 법정지구당 창당 절차도 아직 밟지 못하고 있죠. 그것이 다 되고 나서 중앙당이 창당되는 먼 과정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현재는 자민련이 대통합의 결단을 내리지 않은 상태고요. 그렇다 보니까 국민들은 이것이 과연 전국정당이냐는 생각을 갖는 것 같아요. 그러나 앞으로 자민련도 참여하는 대통합으로 나아가고, 또 본격적인 지구당 창당, 중앙당 창당, 지도부 건설, 정당운영 등이 진행되면, 이런 과정에 대중이 참여하고 당원들의 의지가 기초가 되어 지도부가 결성되고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것을 보여준다면, 국민들의 기대가 모이고 신뢰도 생겨날 겁니다.”
─ 이위원은 지난 9월 ‘1인 정당’을 비판했습니다. 내각제론자들은 대통령제의 문제점으로 1인정치의 폐단을 지적하는데, 이위원이 말하는 1인정당 체제의 대표적 폐해는 무엇이며 어떻게 극복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내각제 개헌을 해야 합니까?
“대통령제의 모델국가는 미국인데요, 미국은 정당이 대통령을 만들어서 백악관으로 보냅니다. 또 상원·하원 의원을 만들어서 의회로 보냅니다. 그리고 대통령이 할 일과 의회가 할 일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대통령은 국가를 대표하고 행정부를 통해서 국가경영에 참여합니다. 의회는 예산, 법률, 그 밖에 의회가 가지고 있는 고유권한을 그야말로 행정부와는 독립해서 독자적으로 수행해냅니다. 정당이 대통령도 만들고 의원을 만들어서 국회를 구성해서 그런지 대통령이 정당을 지배하고 정당을 통해서 의회를 지배하는 일은 없습니다. 우리나라도 빨리 이렇게 바뀌어야 합니다.
대통령은 국가를 대표해서 방대한 행정력을 가지고 국가를 차원 높게 경영하면 됩니다. 정당과 국회는 국민의 다양한 정치적인 욕구, 또 다양한 목소리가 마치 용광로에서 쇳물이 녹는 것처럼 복잡한 토론, 대화, 협상, 투쟁 등을 거쳐 해결되는 질그릇입니다. 그런 과정에 대통령이 직접 발을 들여놓을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정당과 국회는 복잡하고 뜨거운 정치과정을 수행해내는 중심으로 자리를 잡아야 하고, 그러다 보면 거기에서 크고 작은 지도자들이 성장하게 됩니다. 대통령이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우리 국정운영 시스템은, 대통령이 국가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도 시급히 개선돼야 합니다. 왜 조그마한 정치적 갈등 때문에 대통령이 도덕성에 상처를 입고 발이 묶여야 합니까. 대통령의 불행은 곧 국가의 불행으로 직결되기 십상인데 말입니다.”
당정분리, 대통령은 국정전념해야
이고문은 ‘1인정당’ 시스템의 대안으로 “대통령은 행정부를 통한 국정에 전념하고 복잡한 이해관계의 갈등·조정 문제는 당과 국회가 자율적·독립적으로 담당해야 한다”는 점을 힘주어 강조했다. 이는 신당창당 논의과정에 물밑에서 맴돌아온 김대통령의 당적이탈 또는 명예총재로의 ‘2선후퇴론’을 한층 분명하게 수면 위로 끌어올릴 소지가 있는 언급이다. 그러니 김대통령의 2선후퇴론에 관해 직접적으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이위원은 이에 대해 “대통령의 탈당은 옳지 않다”고 반대하면서도 (대통령이) 총재직 또는 당권을 쥐고 정당과 국회를 컨트롤하는 현 체제는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을 분명히 했다. 대신 의회를 이끄는 리더, 즉 원내총무가 정치적 대화와 타협을 이끄는 시스템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 결국 지금 여당과 여당의원들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대통령의 여당총재 위상에 대해 질문하지 않을 수 없군요. 이위원의 언급은 대통령이 여당에서 탈당하거나 제2선으로 후퇴, 국정에 전념하고 국회나 당은 이쪽에 맡겨야 한다는 이른바 ‘당정분리론’과 맥이 닿는다는 느낌입니다. 그러나 청와대와 당의 핵심에 자리잡고 있는 동교동계 인사들은 “대통령제에서 대통령 없는 여당이 있을 수 있느냐, 또 DJ 자체가 개혁의 상징이고, 득표에 가장 큰 무기인 현실에 DJ가 정치과정의 2선으로 후퇴하면 당과 개혁을 누가 이끄느냐, 선거에서 고정표마저 흔들릴 것이다”라는 걱정을 합니다. 이런 우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대통령이 탈당한다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대통령은 그 당의 지도자임에 틀림 없고 동시에 국가의 지도자 아닙니까. 내가 하고픈 말은, 사회의 복잡한 대립과 갈등 양상을 띠고 있는 여러 정치적인 욕구를 조정하고 타협해내는 것은 정당과 국회가 할 일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거기서 법률과 예산을 만들어내는 것 아닙니까. 그런 일들을 의원들과 정당이 자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들어주지 않으면 그 과정이 멈추게 됩니다. 우리 국회가 돌아가지 않습니다. 조그만 문제가 있어도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국민들은 제때 정치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사회의 갈등은 더 깊어지고 사회의 병리현상은 더 심각해지고 그 결과 정치를 불신하게 되는 거죠. 정치과정이 생동감 있게 돌아가려면 여기에 자유와 자율을 줘야 합니다. 대통령과 의회는 상하 관계가 아니라 수평적 협력관계라는 것이죠. 우리 사회가 지금은 그러한 정치문화를 필요로 하는 수준에 와 있다고 나는 판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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