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호

세계시장도, 韓 시장도 ‘中 공습경보’

[재계 인사이드] 저렴한데 기술력까지…“과거의 중국 아니다”

  • 김형민 아시아경제 기자 khm193@asiae.co.kr

    입력2025-02-15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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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딥시크 탄생 = 중국 공습 정점 찍은 ‘사건’

    • BYD 점유율 23.6%, 1년 만에 테슬라 2배

    • 세계 2000대 中 기업, 10년 새 405개 늘어

    • 미국 장벽 높아지자 한국 러시 본격화한 中

    • 韓 기업, 기술 부서 점검 및 M&A 검토

    중국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딥시크(Deep Seek)’가 출시한 AI 챗봇 ‘딥시크 R1’. 
Gettyimage, [딥시크 홈페이지 캡쳐]

    중국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딥시크(Deep Seek)’가 출시한 AI 챗봇 ‘딥시크 R1’. Gettyimage, [딥시크 홈페이지 캡쳐]

    “Wake-up call.”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월 말 중국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딥시크(Deep Seek)’가 출시한 AI 플랫폼(정확히는 챗봇) ‘딥시크 R1’이 세계를 놀라게 한 것을 두고 이런 표현을 썼다. 미국 기업들에 “경종(警鐘)을 울렸다”는 취지다. 그러면서 미국 기업들로 하여금 “경쟁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AI 분야는 물론이고 세계시장 전역이 중국으로 뜨겁다.

    딥시크의 출현은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그리고 우리나라를 깨웠다. 미국 중심으로 흘러갈 것 같던 바다는 중국의 거센 파도가 등장함에 따라 새 국면을 맞게 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딥시크의 탄생을 세계시장 전역에서 진행 중인 ‘중국의 공습’이 정점을 찍은 사건으로 바라본다. 딥시크는 2023년 5월 설립된 중국의 AI 회사로 세상에 나온 지 불과 2년이 채 안 됐다. 이들이 출시한 딥시크 R1은 미국의 간판 기업 오픈AI가 만든 챗GPT와 견줄 정도의 성능을 구현해 세계의 모든 이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딥시크 R1을 만드는 데 들인 비용이다. 외신을 종합하면, 딥시크는 엔비디아가 미국의 대중(對中) 규제 조치에 맞춰 시중 제품보다 성능을 낮춘 ‘H800’ 칩을 시간당 2달러에 두 달간 빌려 AI 모델을 학습시키는 데 쓴 것으로 전해진다. 다 합쳐도 600만 달러(약 86억 원)가 안됐다. 그 이전까지 기업들은 챗GPT 등 고성능 AI 플랫폼을 600만 달러보다 훨씬 비싼 돈을 주고 써야 했다. 업계의 상식을 뒤엎은 결과다.

    세계시장은 온통 ‘中 판’

    혁신의 바탕엔 상상 이상으로 높아진 중국의 기술력이 있었다. 예전 우리나라, 일본, 또는 미국에서 기술자를 모셔 와 최신 기술을 배웠던 ‘견습생’ 시절의 중국은 이제 없다. 지금의 중국은 많은 인구와 값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구현된 가격경쟁력과 물량 공세 등 본래의 강점은 그대로 가지고서 기술, 성능까지 겸비했다. ‘중국산’이라면 일단 품질 면에서 의심부터 받았는데 이제는 세계 소비자들이 중국 기업들의 제품을 달리 보기 시작했다.

    중국의 부상은 우리 기업들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중국 기업들이 활기를 띠고, 시장에선 ‘미·중 기술경쟁’이 더욱 심화할 것이란 전망 아래 우리 기업들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적절한 위치를 선점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중국을 상대로 ‘관세 전쟁’에 나선 트럼프 행정부의 영향도 불가피하다. 우리 안방에서 벌어질 경쟁도 심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중국의 간판 기업들이 잇달아 우리나라 진출을 선언하고 지사 설립, 신제품 출시로 공세를 펴기 시작했기 때문. 우리 기업들은 안방을 사수하고 세계시장에서도 경쟁해야 하는, 전례 없는 시대에 직면해 있다.

    지난해부터 상황을 돌이켜보면 중국은 거의 모든 시장에서 부각되고 있다. 중국 자동차 기업 BYD(비야디)는 미국의 자랑, 테슬라를 넘어 세계 전기차 시장을 점령했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가 2024년 1~11월 전 세계에 등록된 전기차 현황을 조사한 결과, BYD는 가장 많은 367만3000대의 전기차를 세계시장에서 판 것으로 나타났다. BYD 시장점유율은 23.6%였다. 2위 테슬라는 158만3000대를 판매하는 데 그쳐 점유율은 10.2%였다.

    앞서 BYD는 2023년 1~11월 전기차 시장점유율 20.7%를 기록하며 13.1%에 그친 테슬라를 앞지른 바 있다. 그런데 불과 1년 만에 그 격차를 2배 이상으로 벌린 것이다. 이 추세가 올해도 계속되면 전기차를 포함한 완성차 시장에서 미국 포드, 일본 혼다 등을 모두 제칠 것으로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로이터 통신은 BYD가 올해 600만 대 이상을 판매해 “제너럴모터스(GM), 스텔란티스와 같은 세계 자동차 시장의 선두 그룹과 어깨를 나란히 할 것”이라 내다보기도 했다.

    유통에선 중국의 이커머스 기업들의 기세가 매섭다. 우리나라에도 진입해 있는 온라인 마켓 테무, 알리익스프레스, 쉬인 등은 전 세계에서 물건을 많이 팔아왔다. 특히 미국에서 이들은 800달러 미만의 가격으로 거래되는 상품의 배송에 대해선 관세를 받지 않아온 미국 법 조항의 반사이익을 받아 영향력을 키웠다. 미국 CNBC 등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미국에서 이뤄진 800달러 미만 가격의 상품 배송은 13억 건 이상에 이르렀고,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는 테무·쉬인에서 발송한 택배가 중국에서 미국으로 배송되는 전체 택배의 약 30%를 차지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다만 이들 중국의 이커머스 기업들은 앞으로 미국으로 상품을 배송하기가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다. 미국 우정청(USPS)은 트럼프 행정부의 중국 관세 10% 부과 방침에 따라 중국에서 들어오는 택배 수령을 중단했다. 앞으론 800달러 미만 가격의 물품들에 대해서도 과세될 것으로 보인다.

    가정에서 쓰는 가전제품에도 중국산이 많이 스며들어 있다. 중국 전자제품 업체 TCL은 저렴한 가격에 화면 크기를 키운 ‘가성비 TV’로 미국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위상을 높였다. 이 밖에 로보락, 샤오미 등은 로봇청소기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의 입지를 다졌다.

    中 10년 기술·사람에 투자, 무기 됐다

    최근 중국이 강세를 보이는 분야는 대부분 딥테크(Deep Tech)에 해당한다. 기초과학을 밑바탕으로 해서 기술을 심층적으로 다루는 경지에 오른 것이다. 미국의 강한 압박과 제재에도 굴하지 않고 앞선 기술력을 바탕으로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중국의 기술력이 남달라졌음을 시사한다.

    이는 10년에 걸쳐 이뤄진 장기 투자의 결실로 보인다. 기술을 연구, 개발하는 R&D와 인재 육성 등에 돈을 쏟은 결과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하며 중국의 가장 큰 무기가 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유럽연합(EU) 공동연구센터의 ‘2024년 R&D 투자 스코어보드’의 2000대 기업 명단을 분석해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중국은 2013~2023년, 10년 새 2000대 기업에 포함된 기업 수가 405개나 늘고 투자액은 11.5배 증가했다.

    구체적으론, 2013년 2000대 기업에는 중국 기업이 119개 포함된 데 반해 2023년에는 그 숫자가 524개까지 늘었다. 투자액은 2013년 188억 유로에 불과했지만 2023년에는 2158억 유로에 달했다. 상위 10개국 중 10년간 기업 수와 투자액이 계속 증가한 국가는 중국이 유일하다. 박기순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교수는 “중국은 미·중 간 기술 패권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기초기술 R&D 강화, 반도체 대기금, 배터리 보조금 등 대규모 투자 자금 및 R&D 지원, 각종 세금감면 등 세제 지원, AI 육성 위한 규제 완화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기업들을 지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인재 육성을 위한 투자도 큰 동력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2006년께부터 기초과학 인재를 육성하는 데 온 힘을 쏟아온 것으로 전해진다. 이를 통해 길러진 인재들이 최근 들어 곳곳에서 등장하고 있다. 딥시크를 만든 이들 대부분이 해외 유학을 통해 과학 지식을 쌓은 영재들이 아니라, 중국 본토에서 뿌리내리고 길러진 인재들이란 점이 이를 잘 대변해 준다. 딥시크를 개발한 량원펑은 1985년생, 중국 광둥성 출신이다. 그는 공학 분야에선 명문으로 알려진 저장대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고, 해외에서 유학한 이력은 없다.

    美 대체할 시장으로 韓 ‘정조준’

    1월 16일 인천 중구 상상플랫폼에서 열린 중국 BYD 브랜드 론칭 미디어 쇼케이스 행사에서 조인철 BYD KOREA 승용부문 대표가 차량들을 소개하고 있다. [뉴시스]

    1월 16일 인천 중구 상상플랫폼에서 열린 중국 BYD 브랜드 론칭 미디어 쇼케이스 행사에서 조인철 BYD KOREA 승용부문 대표가 차량들을 소개하고 있다. [뉴시스]

    우리 입장에서 사뭇 심각한 문제는, 중국이 뜨거운 분위기를 타고 우리나라를 정복할 시장으로 정조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 러시’는 가전 시장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이미 우리나라 로봇청소기 시장에서 1위를 독차지하고 있는 로보락은 올해 안으로 로봇 팔이 나오는 신제품 ‘로보락 사로스 Z70’을 우리나라에 출시할 예정이다. 이 제품은 지난달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5’에서 먼저 선보인 바 있는데, 흡입하는 먼지 등을 구별하지 않고 모두 빨아들였던 이전 로봇청소기와 달리, 이 제품은 바닥에 떨어진 양말을 팔로 들어 올려 빨래 바구니로 옮길 수 있을 정도로 앞선 지능을 지녔다.

    샤오미도 우리나라에 현지 법인을 세우고 스마트폰, 웨어러블 기기, TV, 보조배터리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1월 15일에 연 신제품 공개 간담회는 선전포고나 다름없었다. 샤오미는 ‘14T’ ‘레드미 노트 14 프로 5G’ 등 스마트폰을 50만 원대에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말 그대로 된다면 우리 스마트폰 시장에선 최저가격이 될 것으로 전해진다.

    세계 TV 출하량 2위 기업인 TCL은 2023년 설립한 한국법인을 발판으로 올해도 TV, 냉장고, 세탁기, 청소기, 에어컨 등 판매를 확대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진다. 전기차 기업 BYD도 우리나라에 법인을 세우고 홍보에 만전을 기하며 우리 시장 공략을 본격화하고 있다.

    이를 통해 중국이 노리는 건, 미국 시장을 장기적으로 대체할 곳이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으로 미국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중국이 넘어야 할 장벽은 점차 높아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의 경제성장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 수입품에 대해 10%의 관세를 부과할 계획이다.

    중국과 교역하는 곳 가운데 미국은 규모가 큰 세 지역 가운데 하나로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중국 국가외환관리국의 자료에 따르면, 2023년 미국과의 교역 규모는 6645억 달러로, 중국의 수출입 총액의 11.2%를 차지해 ASEAN(동남아, 15.4%), 유럽연합(13.2%) 다음으로 많았다. 중국으로선 지리적으로 가깝고 문화적 유사성, AI 등 시장에 대한 호응도가 좋은 소비자가 있는 우리나라를 미국의 대안으로 낙점한 것으로 보인다.

    혁신적 기술을 입힌 제품들로 시장에서 새 장을 연 것은 큰 의미가 있지만, 아직은 중국의 상황을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는 주장도 계속 나온다. 제품을 만들어낸 과정이 과연 합법적이고 정당했는지 명확하지 않을뿐더러 고성능을 유지할 수 있는지, 기술 유출 등으로 악용할 목적이 없는지 등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 우리 유통가에서 소비되는 알리·테무·쉬인발(發) 배송 상품들이 쉽게 고장 나고 훼손되는 것처럼, 중국의 AI·전기차·가전 등도 내실이 없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의심과 우려 여전… “예의 주시하며 대응 준비”

    이재웅 외교부 대변인이 2월 6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에서 열린 정례 브리핑에서 딥시크 정부 부처 차단과 관련한 외교부 후속 조치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이재웅 외교부 대변인이 2월 6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에서 열린 정례 브리핑에서 딥시크 정부 부처 차단과 관련한 외교부 후속 조치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정보 유출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고 중국의 범법 행위 여부도 확인 중이어서 그 결과를 지켜볼 필요는 있다. 2월 6일 외교부·국방부 등 우리 정부 부처들은 딥시크 접속을 차단했고, 금융기관들도 동참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딥시크 접속을 차단하고 나선 가운데 우리도 같은 문제를 인식하고 관련 조치에 나선 것이다.

    오픈AI는 딥시크의 기술 도용 의혹에 관해 조사하고 있다. 오픈AI는 딥시크가 ‘증류(distillation)’ 기술을 통해 자사의 AI 모델로부터 대량의 데이터를 무단으로 추출했는지 여부를 확인하겠단 방침이다. 증류 기술이란 AI 모델이 다른 모델의 출력 결과를 훈련 목적으로 사용해 유사한 기능을 개발하는 것을 말한다. 딥시크 출시 초기엔 “흥미롭다”고 했던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는 2월 3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새로운 모델은 아니다”라고 평가를 바꿨다.

    상황을 예의 주시하는 가운데서도 우리 기업들은 대응책 마련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 일부 기업들은 다가오는 1분기 경영진 전략회의, 주주총회 시즌에 맞춰 중국 기업들의 상황 전반을 파악할 수 있는 영상, 문서 등 자료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시에 기술 관련 부서들을 점검하고 경쟁력 확보를 위한 인수합병(M&A) 등도 검토하고 있다.

    국회에선 더불어민주당이 논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밝혀 반도체 업계가 염원하던 ‘R&D 주52시간제 예외’ 조항을 담은 특별법 통과에 대한 희망도 생겼다. 김현수 대한상의 경제정책팀장은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중국 딥시크의 등장에서 보듯 산업별 선도기술을 둘러싼 기업 간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상황”이라며 “우리도 세제 지원을 통해 연구개발을 촉진하고 과감한 선제적 지원을 통해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R&D 투자에 나설 수 있도록 정부와 국회가 제도적인 환경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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