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호

최중경 “성급하게 결론 내려 말고, 미국 측 의중 파악에 집중하라”

[Interview] ‘최틀러’ 최중경 국제투자협력대사가 말하는 한미 통상 협의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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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입력2025-04-24 15: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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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미 2+2 통상 협의, 차기 정부가 협상 마무리하도록 해야

    • 트럼프 1기는 ‘미국산(産) 사라’, 지금은 ‘미국에서 만들라’

    • 생산성 향상·경쟁력 강화 위해 노사, 머리 맞대고 고민해야

    • 국내 제조업의 세계 경쟁력 위해 지속적 투자는 필수

    • 외국인 고급 인력 확보 위한 인프라 투자도 적극 나서야

    • G8 진출, 규칙 순응국에서 규칙 제정국으로 신분 전환할 기회

    최중경 국제투자협력대사. 박해윤 기자

    최중경 국제투자협력대사. 박해윤 기자

    4월 24일 오전 8시(현지 시각), 우리 시간으로 오후 9시에 미국 워싱턴 DC에서 ‘한미 2+2 통상 협의’가 진행된다. 한국에서는 최상목 경제부총리와 안덕근 산업통상부장관이 참여하고, 미국에서는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과 제이미슨 그리어 무역대표부 대표가 참석할 예정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로부터 상호관세율 25%를 부과받은 한국으로서는 이날 협상이 한미 관세 협상의 중요한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앞서 계엄과 탄핵으로 국내 상황이 혼란스러웠던 때 국제사회를 무대로 우리나라의 국익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이가 있다. 최중경(69) 국제투자협력대사가 그렇다. 지난해 12월 14일 당시 윤석열 대통령에 이어 12월 27일 한덕수 국무총리까지 탄핵당하자, 우리나라 신인도에 빨간불이 커졌다. 대통령 권한대행을 겸하던 최상목 경제부총리는 2025년 1월 10일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국제투자협력대사에, 최종구 전 금융위원장을 국제금융협력대사에 임명해 ‘경제외교’를 당부했다. 두 대사의 임기는 1년. 국제투자협력대사 임명 직후 최중경 대사는 2월 중동 국가를 방문해 중동 국부펀드에 한국 스타트업 투자를 권유해 긍정적 반응을 이끌어냈고, 현재 실무 협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3월에는 한국 배터리 기업 공장이 있는 미국 테네시와 켄터키, 오하이오, 미시간, 인디애나, 애리조나 등 6개 주 정부를 방문했다. 최 대사는 미국 주 정부 인사들에게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세제 혜택(AMPC·Advanced Manufacturing Production Credit)이 유지돼야 공장 운영이 가능하다”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후 미국 워싱턴을 방문해 헤리티지재단과 브루킹스연구소,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 한미경제연구소(KEI) 등 주요 싱크탱크 관계자를 만나 “AMPC는 혜택이 아니라 임금 수준이 높은 미국의 투자 환경을 고려해 투자 유치를 위한 필수 수단”임을 강조했다. 특히 공화당 계열 싱크탱크로 트럼프 행정부 정책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알려진 헤리티지재단에서 그는 한미 산업 협력 방향에 관해 기조연설을 했다. 여기서도 최 대사는 IRA의 투자 유치 순기능을 강조했다. 

    대미 투자로 ‘한국 국격’ 상승 기대

    트럼프발 ‘관세전쟁’으로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우리 국익을 지켜나가려면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최 대사에게 물었다. 그는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후 1978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과장, 외화자금과장, 국제금융국장을 두루 거쳐 2008년 개획재정부 1차관, 2010년 대통령실 경제수석비서관을 지낸 뒤 2011년 이명박 정부에서 지식경제부 장관을 지냈다. 관료 시절 그는 현안 해결을 위해 강력한 추진력을 발휘한다고 해서 ‘최틀러’로 통하기도 했다. 최 대사를 4월 10일 서울 중구 한미협회 회장실에서 만났다. 24일에는 ‘한미 2+2 통상 협의’에 관해 전화통화를 했다. 한미협회는 한미 양국 국민의 상호 이해와 우호 관계를 증진해 양국 간 문화와 경제 등 여러 분야에서 교류를 촉진하기 위해 1963년 설립된 민간 단체다.



    오늘(24일) ‘한미 2+2 통상 협의’가 열리는데 어떻게 보고 있나.

    “트럼프 행정부가 세계 각국에 관세율을 높이려는 지금의 상황은 미국이 주도하는 주관식 시험에 비유할 수 있다. 아직 미국 측 의중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가 먼저 성급하게 결론에 이르려 하면 자칫 우리 국익을 해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신중하게 협상에 임해야 한다”

    우리 협상팀이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고 보는가.

    “협상 타결같은 성과에 집착하기 보다 우선 미국 측 의중이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는 게 급선무다. 40여 일 후면 새 정부가 출범하게 되는 만큼 차기 정부가 한미 통상 협의를 효과적으로 마무리 할 수 있도록 이번 협상에서는 미국 측 의중 파악에 집중하는 게 좋다.”

    국제투자협력대사로 중동과 미국을 다녀왔는데, 해외에서는 우리나라 계엄과 탄핵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던가.

    “대통령이 탄핵되고,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심판이 이뤄지는 과정이 다소 혼란스럽더라도 법과 절차에 따라 차분히 진행되는 상황을 비교적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반도체와 자동차, 배터리 등 우리 주력 기업들의 대미 투자가 크게 늘었다. 바람직한 현상인가.

    “바람직한 면도 있고 우려되는 점도 없지 않다. 바람직한 측면은 세계 1등 국가인 미국 국민에게 한국의 국가 이미지를 크게 높이는 효과가 있다는 점이다. 이는 금전적으로 계산하기 힘든 엄청난 효과다.”

    최 대사는 3월 미국 인디애나주에 있는 삼성 SDI 배터리 공장을 방문했을 때 일화를 소개했다.

    “미국의 조그만 지방 소도시에 우리 기업이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공장이 위치한 지역은 물론 주변에 사는 미국 국민에게까지 ‘한국은 발전된 선진 산업국가’라는 이미지가 전파되는 효과가 있었다. 그만큼 우리 국격이 크게 올라간 것이다.”

    최 대사는 “산업정책 측면에서도 미국이라는 큰 소비시장을 상대로 마케팅할 때 100% 국내에서 생산해 수출하는 것보다 국내 생산과 미국 내 생산을 적절하게 섞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자리 창출 등으로 미국 경제에 이바지하는 친근한 모습을 미국 소비자에게 보임으로써 미국 내 매출이 더 많이 늘어날 수 있다. 기아자동차 공장이 진출한 미국 조지아주 한 가정집 뜰에 꽂혀 있던 팻말이 생각난다. ‘우리 마을에 기아를 보내주신 신께 감사드립니다(Thank you Jesus for bringing Kia to our town!)’”

    대미 투자 증가로 우려되는 점은 무엇인가.

    “국내 생산과 미국 내 생산 간 균형이 깨져 미국 내 생산이 지나치게 늘어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더욱이 트럼프 행정부가 높은 관세를 부과하면서 국내 생산 제품의 가격경쟁력이 떨어져 미국 내 생산 비중이 늘어날 가능성이 현실화하고 있다. 국내 강성 노조로 인한 비용 부담 증가 문제와 맞물려 미국 내 생산을 늘리는 방향으로 쏠릴 수 있다. 지금은 국내 생산성 향상을 통한 경쟁력 강화를 위해 노사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때다. 노조의 협조 여부가 중요한 변수가 되고 있다.”

    ‘아메리칸 드림’ 여전히 유효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에 대한 투자를 늘렸지만, 트럼프 대통령 귀환으로 상황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국 이민이나 취업, 특히 노동비자(H1)를 받는 것과 영주권을 얻는 것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점은 예상이 가능하다. 하지만 자격을 갖추고 미국의 경제, 사회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외국인의 미국 이민과 취업은 계속 환영받을 것이다. 아메리칸 드림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글로벌 한국 기업의 해외투자가 늘어나면서 국내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는 목소리가 있다. 

    “일리 있는 걱정이다. 그러나 해외투자의 성격에 따라 오히려 일자리가 더 생길 수도 있다. 국내 생산 거점을 해외로 옮기는 성격의 해외투자는 국내 일자리를 줄인다. 그러나 새로운 분야로 진출하는 경우와 국내 산업의 전후방 연관 분야에 투자하는 것은 오히려 일자리를 늘릴 수 있다. 기업의 해외투자가 자유화돼 있지만 국내 생산거점을 해외로 이전하는 경우 일자리 관리 차원에서 정부가 개입해 들여다볼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있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시작한 관세전쟁이 환율전쟁으로 확대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관세전쟁의 목적이 무엇인지에 따라 가능성의 크기가 달라진다. 관세전쟁이 미국의 제조업을 부활시키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면 환율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있다. 달러 약세를 유도해 제조업의 국제경쟁력을 높이려는 시도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다만 관세전쟁이 무역수지 역조를 해결하고 외국과의 현안을 유리하게 매듭짓기 위한 목적이라면 환율전쟁으로까지 번질 가능성은 낮다. 

    두 가지 시나리오별로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스티븐 미란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이 저서(A User’s Guide to Restructuring the Global Trading System)에서 징벌적 관세를 협상 카드로 삼아 환율 협정을 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을 상기해 보면 관세와 환율을 무기로 삼아 무역수지도 개선하고 제조업도 부흥시키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미란 위원장이 금융계 인물이라는 점에서 환율을 중시할 것이라는 예측도 어느 정도 가능하다. 

    다만 관세정책으로 예상되는 인플레이션에 더해 달러 약세에 따른 인플레이션 압력까지 가중될 경우 미국 경제가 얼마나 견뎌낼 수 있는지 의문이다. 더군다나 물가상승으로 고통을 겪을 미국 국민을 설득해서 2년 후 중간선거에서 정치적 지지를 이끌어내야 하는데 결코 쉽지 않은 과제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미국을 다시 제조업을 하는 나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였기 때문에 환율전쟁 가능성에 방점을 찍고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1기가 ‘Buy America(미국산 사라)’였다면 트럼프 2기는 ‘Made in USA(미국에서 만들라)’라고 할 수 있다.”

    최중경 국제투자협력대사가 3월 10일(현지 시각) 미국 외교·안보 싱크탱크 헤리티지재단에서 한미산업투자 협력을 주제로 기조연설하고 있다. 한미협회KAA 유튜브 캡처

    최중경 국제투자협력대사가 3월 10일(현지 시각) 미국 외교·안보 싱크탱크 헤리티지재단에서 한미산업투자 협력을 주제로 기조연설하고 있다. 한미협회KAA 유튜브 캡처

    현장감 있는 기술교육 필요

    해외투자자들의 국내 투자 활성화를 위해서는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한다고 보는가.

    “우리나라의 투자 환경이 경쟁국보다 양호해야만 해외투자를 유치할 수 있다. 해외투자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규제를 완화하고 세금을 깎아줘야 한다. 아울러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늘려야 한다. 규제 완화의 방향은 ‘외국에는 없고 우리나라에만 있는 규제’를 모두 없애는 것이다. △CEO의 형사처벌을 지나치게 강화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경직적인 주 52시간 근로제, △경제력 집중 완화와 관련된 공정거래법 규제는 반드시 손질해야 한다. 경쟁국보다 높은 법인세도 낮춰야 하고, 외국인들이 정착하기 좋은 교육·의료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투쟁 위주의 강경한 노조도 분명한 부담 요인이다. 노조 활동을 정치 중립을 지키며 좀 더 합리적이고 온건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월드 클래스인 우리 제조업이 세계적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한국 경제가 지속해서 성장해야 한다는 점이다. 추락하는 제조업, 마이너스 성장을 하는 국가에 투자할 해외투자자는 없다. 세계적 경쟁력을 갖고 있는 국내 제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지속적 투자가 필요하다. 우리 제조업이 경쟁력을 잃는 순간 한강의 기적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이다.”

    제조업의 미래가 불투명하니 서비스업을 키우자는 주장도 나온다.

    “관념에 사로잡혀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어설픈 주장이다. 우리가 한참 뒤처진 서비스업을 뒤늦게 발전시켜 반도체, 원자력발전소, 고급 선박, 자동차 등을 대신해 그만큼의 수출 실적을 올릴 가능성이 있을까. 제조업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신기술 개발을 위한 R&D 투자를 지속해야 하고 공정관리 효율을 높이는 투자를 계속해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수한 기술 인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공계 학생에 대한 장학금 지급을 늘리고 대학 커리큘럼도 기술발전 속도에 맞춰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해야 한다. 산학협동을 더욱 체계적으로 실시해 현장감 있는 기술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외국인 고급 기술 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투자도 중요하다. 출산율이 낮은 것은 장기적으로 산업인력 수급 구조에 문제를 유발하기 때문에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투자도 매우 중요하다. 한국 경제의 앞날을 우울하게 보는 외국의 시각도 모두 낮은 출산율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만큼 바짝 긴장해야 한다. 역량 있는 외국인의 이민을 받아들이고 활성화하기 위한 인프라 확충에도 과감하게 투자해야 한다.”

    한국이 G8이 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올해 1월 보수 성향 싱크탱크로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수립에 상당한 영향력이 있다고 알려진 미국 헤리티지재단에서 한국을 G8으로 영입해야 한다는 보고서가 나왔다. 재단 2인자인 모건 수석부총재가 공동 집필자로 참여했다. 한국은 경제력과 민주주의 성숙도, 자유를 추구하는 시장경제라는 측면에서 볼 때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 있다. 우리 경쟁국은 호주, 스페인 정도인데 스페인은 유럽 국가여서 유럽 국가의 과다대표성이 문제가 되는 G7에 추가되기 어렵다. 호주도 백인 국가인 데다 아시아를 대표하기 어렵다는 문화적 문제 때문에 경쟁에서 한발 뒤져 있다. 쿼드(QUAD)의 경우 헤리티지재단에서 주장한 후 수년이 지나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현실화한 전례가 있는 만큼 기대감이 커지는 상황이다. 그러나 G8 진입을 위해서는 한미 관계가 원활해야 하는 만큼 대미 외교에 큰 노력이 필요하다. 미국 외의 G7 국가들과도 긴밀하게 대화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G8이 된다면 국제사회의 리더 그룹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게 된다. 정해진 규칙에 순응하는 입장에서 규칙 제정에 참여하는 입장으로 신분 전환이 이뤄지는 큰 역사적 의미가 있다.” 



    구자홍 기자

    구자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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