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기준 ‘매출 3조 원 클럽’에 입성
기존 제품서 라인업 강화…시장 예측·대비 속도
안정적 포트폴리오 ‘장점’, 높은 내수 의존도 ‘약점’
농심·삼양 등 경쟁사는 글로벌 무대 ‘훨훨’…오뚜기는 제자리
“‘갓뚜기’ 이미지 확장, 외국인 타깃 히트 상품 절실”

충북 음성군 대소면 오뚜기 대풍공장. 오뚜기
과거에는 낮은 품질과 기대에 못 미치는 맛으로 인기가 낮았지만, 최근에는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기술 발전과 식문화 트렌드 변화가 맞물리면서 하나의 선택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 특히 비린내가 나고 뼈가 많아 HMR로 만들기 힘들었던 수산물도 첨단 과학기술의 발달로 하나둘 제품화되는 추세다. 여기에 차별성을 확보하기 위한 식품업체의 자발적 노력도 지속되고 있다. 원산지까지 꼼꼼하게 살피는 스마트한 소비자가 늘어남에 따라 100% 국산 재료만 사용하거나, 원물감을 높이는 등 품질을 개선해 프리미엄 건강식으로 거듭나고 있다.
HMR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기업으로 ㈜오뚜기가 있다. 오뚜기는 식품업계 ‘최초’, 1위 품목 ‘최다’라는 수식어를 가장 많이 보유한 식품 회사다. 2022년 기준 ‘매출 3조 원 클럽’에 입성하며 눈에 띄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오뚜기는 HMR, 조미식품, 유통 제품 전반에서 안정적 포트폴리오를 구축해 위기 대응력 또한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라면, 즉석밥, 케첩, 마요네즈 등 다양한 카테고리에서 1위를 기록하며 소비자와의 접점을 넓혀온 오뚜기는 최근 HMR과 밀키트 시장에서도 라인업을 강화하고 있다. 1969년 오뚜기가 최초 생산한 ‘오뚜기 분말 즉석 카레’는 1981년 레토르트 형태 ‘3분 카레’로 발전해 국민 카레로 자리매김한 제품이다. 드림리테일에 따르면 국내 분말 카레 시장에서 오뚜기는 올해 4월 기준 약 83%의 시장점유율로 굳건한 1위를 지키고 있다. 변화하는 소비자 니즈에 따라 진화를 거듭한 점이 인기 요인이다.
그런데 최근 오뚜기의 ‘성장통’이 깊어지고 있다. 현재 오뚜기는 국내 HMR 시장에서 약세를 보이며 라면 외 여러 식품군에서 점유율을 확대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즉석 섭취 조리식품도 한때 50% 점유율로 1위였지만 현재 CJ제일제당에 밀려 20%에 머물러 있다. 냉동 피자 시장에서도 오뚜기가 기존 제품에 의존하는 사이 CJ제일제당은 신제품을 출시하며 최대 36%였던 오뚜기와의 시장점유율 격차를 15%로 줄였다.
오뚜기는 궁여지책으로 ‘가성비’에 주목했다. 2020년 3월 진비빔면 출시 당시 경쟁사 비빔면 대비 20% 늘린 중량으로 제품 경쟁력을 높여 매출 상승을 이끌었다. 같은 해 7월에는 업계 최초로 컵밥에 들어 있는 밥의 양을 20%씩 늘리고, 판매가격은 인상하지 않는 묘수를 뒀다. 이에 대해 오뚜기 관계자는 “상품 가치를 향상하고, 판매 또한 증대하기 위해 다양하게 노력하고 있다. 계속해서 소비자와 소통하며 빠르게 변화하는 소비자 니즈를 반영해 다양한 제품 포트폴리오를 꾸준히 확장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농심·삼양 글로벌 무대로 ‘훨훨’…오뚜기 한계 드러내
문제는 내수 의존도다. 오뚜기는 국내 라면 3사 중 사업 포트폴리오는 가장 안정적이지만 신성장동력이 부족하다. 내수시장이 정체 국면에 접어든 상황에서, 오뚜기의 보수적 해외 진출 전략은 중장기 성장 한계를 더욱 부각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HMR과 같은 유망 분야에서 꾸준히 신제품을 선보이고 있지만, 시장을 선도할 만큼의 차별화된 혁신이나 공격적 투자 전략은 아직 부족하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실제로 오뚜기의 지난해 전체 매출은 3조5391억 원으로 농심(3조4387억 원)보다 많은 수준이었지만, 해외 매출은 3614억 원에 불과했다. 전체의 10.2%로, 삼양식품(77%)이나 농심(35%)에 비해 수출 비중이 현저히 낮다.
서울 한 대형마트에서 고객이 진라면을 고르고 있다. 뉴시스
진출한 국가의 수만 비교해도 타사에 뒤처진다. 농심과 삼양식품이 100여 개국에 진출한 것과 달리 오뚜기는 미국·중국·베트남 등 현재 60여 개국에만 진출한 상태다. 심지어 이제는 라면 업계가 3강 체제가 아닌, 오뚜기가 밀려난 2강 체제로 재편되고 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이렇다 할 성장 모멘텀이 없다는 인식이 강해지며 최근 주가도 지지부진하다. 지난해 6월 기준 51만 원까지 올랐던 주가는 4월 기준 20% 이상 빠진 40만 원 선에서 움직이고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포트폴리오 안정성으로 위기 대응에는 강하지만, 도약을 위한 ‘리스크 감수형’ 전략이 부족하다”며 “오뚜기만의 글로벌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렇다면 현재 경쟁사 상황은 어떨까. 농심과 삼양식품은 지난해 해외 시장에서 눈에 띄는 성적을 냈다. 농심은 1994년부터 농심아메리카를 설립하고 현지에서 생산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현지 생산 제품은 월마트, 코스트코 등 미국 주요 기업간거래(B2C) 채널로 빠르게 납품하는 확실한 유통망을 구축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제1공장에 이어, 2022년 5월 텍사스에 3000억 원 규모의 제2공장을 완공하며 현지 생산을 본격화했다. 미국에서만 연간 3억 개 이상의 라면을 생산, 현지 맞춤형 채식·저염 라면 등으로 시장을 세분화하고 있다.
삼양식품도 ‘불닭’이라는 글로벌 브랜드 경쟁력을 앞세워 미국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불닭볶음면은 글로벌 누적 판매량 50억 개를 돌파한 것으로 추산된다. 현재는 불닭 시리즈를 활용해 소스, 스낵, 컵밥 등으로 제품군을 다각화하며 ‘불닭 브랜드화’ 전략을 본격 추진하고 있다. 동남아는 물론 미국·유럽·중남미까지 진출했고, 최근 중국 저장성 자싱시에 약 2014억 원을 투자하는 한편 밀양2공장과 중국 공장을 수출 전진기지로 활용하는 등 수요 증가에 대응한다는 목표도 세웠다.
오뚜기의 글로벌 진출 성과는 동종업계는 물론 식품업계 전반과 비교해도 확연히 뒤처져 있다. ‘착한 기업’ ‘갓뚜기’라는 호평과 달리 사업 외연을 넓히는 데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CJ제일제당은 국내 식품기업 중 가장 공격적으로 해외시장에 진출한 사례로 꼽힌다. 대표 브랜드 ‘비비고’는 이미 미국·중국·동남아를 비롯해 유럽 시장까지 진출하며 K-푸드의 프리미엄화 전략을 이끌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지난해 해외 식품 사업 부문에서 연간 매출액 5조5814억 원을 기록했다. 이는 식품 매출의 49.2%에 해당하며, 이 중 상당 부분은 미국에서 발생했다. 관계자에 따르면 북미 지역 매출만 4조7138억 원으로 전체의 84.5%를 차지했다. 풀무원은 2016년부터 10년째 미국 두부 시장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식 김치’를 미국 대형 유통망에 입점하며 대표적 한식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구축하기도 했다. 미국뿐 아니라 중국·일본·동남아 등에서도 냉장·냉동 HMR 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이 두 기업은 오뚜기와 달리 글로벌 수요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한편, 제품 다변화 및 현지화 전략이 뚜렷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오뚜기의 보수적 내수 위주 전략과 비교하면, 기업 철학과 투자 방식의 차이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글로벌 시장 진출은 선택이 아닌 ‘필수’
국내 식품기업들이 글로벌 시장 진출을 확대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국내 인구가 줄고 있어서다. 2024년 기준 대한민국 총인구는 감소세로 전환됐다. 동시에 식품 소비도 정체된 상황이다. 특히 가공식품이나 라면·밥류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다.국내 플레이어가 늘고 가격경쟁이 치열해진 것 역시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주요 요인으로 손꼽힌다. 내수 중심 기업일수록 장기 성장성이 제한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런 가운데 한류의 확산이 글로벌 진출의 동력이 되면서 글로벌 시장 진출에 속도가 붙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조리 편의성을 중시하는 트렌드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고 있는 데다, 유튜브 드라마 등 각종 콘텐츠를 통해 접하는 ‘먹방 문화’가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자연스레 한국인의 음식 섭취 문화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HMR 수출 규모가 느는 추세다. 국내 주요 식품기업은 나라별 검역 정책과 식문화에 맞춰 시장 진출 전략을 짜고 있다. 식품업체들은 축산물 수출이 제한됨에 따라 해외에 공장을 설립하거나 현지 기업을 인수하는 방법으로 수출 판로를 넓히고 있다.
특히 미국 시장은 우리나라 농식품 수출 ‘1위 시장’인 만큼 글로벌 진출 전략이 불가피하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우리나라의 농식품 대미(對美) 수출 실적은 지난해 기준 약 15억9290만 달러(한화 약 2조3358억 원)로 전년 대비 21.2% 상승했다. 수출 규모 및 상승률 모두 미국 시장이 가장 컸다. 농식품부에 의하면 우리 농식품 수출은 2015년 이후 성장세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K-Food+’ 수출액은 130억 달러(약 19조619억 원)를 웃돌며 ‘역대 최고’ 실적을 경신했다. K-Food+는 농식품과 스마트팜·농기계 등 농업 자재, 동물용 의약품, 펫푸드 등 전후방 산업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수출 호조세는 라면·쌀가공식품·과자류 등 가공식품이 견인했다. 특히 수출 1위 품목인 라면은 지난 한 해 동안 미국 수출액이 전년 대비 70% 이상 증가했다. 올 1분기 역시 K-Food+ 수출은 순항했다. 지난 1~3월 수출액이 31억8000만 달러(약 4조6666억 원)로 잠정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9% 증가한 수치다.
내수 침체와 고환율 장기화가 맞물리면서, 국내 식품기업들이 글로벌 시장 진출을 생존 전략으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최근 고물가와 소비심리 위축으로 국내시장 성장성이 정체되면서, 내수 비중이 높은 식품기업들은 뚜렷한 한계에 직면했다. 수입 원가 상승이 불가피해졌고, 이에 따른 수익성 악화 압박도 커지고 있다. 특히 오뚜기처럼 내수 중심 구조를 갖춘 기업들은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국내 소비자의 구매력이 약화하면서 가격 인상도 쉽지 않고, 해외 매출 비중이 낮아 환율 효과를 통한 방어도 제한적이다. 이에 따라 글로벌 시장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야 한다는 요구가 힘을 얻고 있다. 글로벌 원자재 시장과 환율 변동성까지 고려한 다변화 전략이 핵심 경쟁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내수 침체를 극복하려면 해외시장에서 안정적 수익 기반을 확보해야 한다.
이정희 중앙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세계적으로 K-푸드가 확산하면서 식품기업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자신감이 붙고 있다”며 “특히 경기침체가 오래되고, 인구도 지속해서 줄어 식품산업 전망이 밝지 않다는 점에서 수요층이 넓은 쪽으로 무대를 확장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오뚜기의 해외시장 개척은 향후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았다. 라면뿐만 아니라 비교적 많은 제품을 생산하는 ‘종합 식품기업’ 오뚜기는 그동안 삼양식품·농심에 비해 라면 수출에 집중하지 못했다. 하지만 내수 부진이 장기화하며, 실적이 부진해지자 해외 사업 확대에 뒤늦게 속도를 내는 모양새다. 국내 가정간편식 시장은 사실상 포화 상태에 접어든 만큼, 외형 성장을 이루기 위해선 반드시 해외로 눈을 돌려야만 한다는 분석이 뒤따른다. 내수시장 의존도와 대형 할인점·편의점 채널 비중이 높은 오뚜기는 HMR 경쟁이 심화하면 위태로울 수 있다는 해석도 적지 않다. 이에 최근 오뚜기는 2028년까지 해외 매출을 1조1000억 원까지 늘리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현재 3600억 원 수준임을 고려하면, 세 배 이상 성장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전 세계 65개국에 수출하는 라면도 70개국으로 늘릴 방침이다. 업계에서는 미국과 동남아 등 새 시장을 얼마나 잘 개척하느냐가 목표 달성의 관건이라고 보고 있다.
오뚜기의 해외 법인은 미국, 중국, 베트남, 뉴질랜드 등 4곳에 있다. 이 법인을 주축으로 그동안 해외 현지 생산 및 유통망을 늘려왔다. 편의점(CVS)과 실수요 공장, 외식업체를 공략하는 등 현지 맞춤형 제품 판매에도 주력했다. 해외 사업 성과는 계속 늘고 있다. 2020년 2409억 원이던 해외 매출 규모가 2023년 3325억 원으로 성장했다. 해외 주력 법인인 미국의 ‘오뚜기 아메리카’는 2023년 1044억 원 매출을 올려 전년 대비 13.21% 도약했다. 다만 이 정도로 만족할 수 없다는 게 오뚜기의 판단이다.

오뚜기 진라면 글로벌 모델 방탄소년단 진. 오뚜기
BTS 앞세우고 해외 사업 속도…“메가 히트 제품 나올까”
오뚜기는 올해 많은 걸 준비했다. 해외 매출 확대를 위한 전략 재정비에 나섰다. 우선, 지난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영어 사명을 바꿨다. 영문명인 ‘OTTOGI’ 대신 발음과 식별이 쉬운 ‘OTOKI’로 바꿨다. 영어 사명 변경 등을 통해 오뚜기는 올해부터 ‘해외 현지화’를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글로벌 식품 시장에서 ‘K-푸드’는 인지도가 높아지는 추세와 맞물려, 오뚜기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상표권도 새로 출원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오뚜기는 그룹 방탄소년단(BTS) 멤버 진을 글로벌 모델로 발탁하고, 영문 표기인 ‘JIN’을 진라면 전면에 적용했다. 세계 무대에 대표 상품 ‘진라면’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서다.
함영준 오뚜기 회장. 오뚜기
식품업계에서는 오뚜기가 추진하는 미국 생산 공장 설립이 해외 실적에서 새로운 분기점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오뚜기는 미국 현지 공장 설립을 통해 수출 과정에서 발생하는 물류비는 물론 원재료 현지 조달로 원가절감 효과까지 노리고 있다. 문제는 2022년 공장 설립을 위해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부지를 매입한 이후 3년째 첫 삽조차 뜨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뚜기 관계자는 “인허가 절차가 까다로워 진행 상황은 확인이 안 되지만, 상반기 중에는 착공이 가능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히트작 부재에 대한 아쉬움도 있다. 글로벌 기업이라는 소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이나 농심의 ‘신라면’처럼 메가 히트 상품이 필요한데, 진라면의 경쟁력이 아직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BTS 진을 앞세워 진라면의 해외 인지도가 조금씩 높아지고 있지만, 브랜드 정체성이 약하다는 평가다. 서용구 숙명여자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오뚜기가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국내에 구축한 ‘갓뚜기’ 이미지를 확장하는 동시에 ESG 경영 활동을 해외에 널리 알리는 전략이 뒷받침돼야 할 것”이라며 “특히 농심과 삼양식품처럼 글로벌 팬덤이 두텁지 않기 때문에 외국인을 타깃으로 브랜드 하나를 리뉴얼하거나 새로 만든 다음 주력 시장을 정해 꾸준히 공략하는 것이 점유율 확보의 열쇠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