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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로는 인류 미래 없다

신자유주의로는 인류 미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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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 디플로마틱’ 라모네 주간의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은 날카롭다. 문자와 물건, 몸과 정신, 자연과 문화 등 모든 것을 거래 대상으로 만드는 총체적 상품화는 사회의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세계의 기초식량생산은 110%에 이르지만 매년 3000만명 이상이 굶어죽고 있으며 8억 이상이 영양부족상태에 있다.

1960년에는 전세계적으로 소득고위층 20%의 소득이 저소득층 20%의 소득보다 30배가 더 많았으나 오늘날 그 소득차는 82배로 벌어졌다. 지구상 60억 인구 중 안락한 생활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은 5억에 불과하며 55억이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70개국 이상에서 국민 1인당 소득이 20년 전보다 더 떨어졌다. 인류의 절반인 30억이 하루 10프랑(2000원)이하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으며 개도국 주민 45억 중 3분의 1이 식수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발상지인 미국을 보자. 세계에서 가장 돈 많은 이 나라에 문맹자가 5000만명, 빈곤선상에 있는 사람이 4500만명,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4000만명에 이른다. 신자유주의는 빈부의 격차를 더욱 벌려놓고 있다.

99년 8월 미국의 친 노조 연구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대기업의 최고 경영자와 일반 노동자의 보수 차이가 80년대에는 42 대 1이던 것이 최근에는 419 대 1로 10배 이상 벌어졌다. 이것이 신자유주의의 아킬레스건이다.

레이건과 대처는 신자유주의와 ‘시장의 종교’를 전파하는 선교사들이었다. 그러나 90년대에 들어 사람보다 시장을 앞세우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의문이 하나둘 제기되기 시작했다. 영국에서는 빈부의 차가 벌어지고 노동조건, 복지서비스가 열악해지면서 대처 총리의 인기가 하락하기 시작했다.



97년에는 대처의 후계자인 존 메이저정권이 제3의 길을 내세운 토니 블레어의 노동당에 정권을 넘겨주게 된다. 한 달 뒤 프랑스에서 사회당이 총선에 승리, 리오넬 조스팽정권이 들어서고 1년 뒤에는 독일에서도 슈뢰더의 사민당 정권이 출범한다. 유럽연합(EU) 15개 회원국 가운데 13개국에서 사민당 또는 사회당 정권이 집권하며 유럽에 좌익정권시대가 열린 것이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유럽인의 생각이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이 곧 시장경제의 부정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이제 시장경제의 원칙을 근본적으로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경제적 논리를 강조한 나머지 인간에 대한 배려를 소홀히 하는 신자유주의, 신자유주의의 대외적 형태인 세계화에 대해서는 비판이 일고 있다.

멕시코의 외환위기, 아시아의 외환위기가 일어나면서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에 대한 비판은 더욱 그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시장경제 옹호론자들 안에서까지 근본주의적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시인하고 그 처방을 찾아야 한다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신자유주의의 전개에 빨간 불이 켜진 것이다. 지금까지는 신성 모독으로까지 여겼던 규제가 필요하다는 호소가 늘고 있다. 98년 가을 G7의 정상들은 IMF의 강화와 함께 새로운 금융규제를 지지했다.

전통적 경제질서를 대표하는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Financial Times)’와 미국의 ‘월스트리트 저널(Wall street Jour nal)’까지 일정한 조건하에서는 현재의 폐해를 줄일 수 있게 자본이동을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시아의 외환위기 가능성을 예언했던 미국의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이 확언했듯이 지배적인 경제 사고(思考)에 극적인 변화가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 크루그먼은 “현재 개방적인 경제학자들의 견해가 대담하게 변화하고 있다. 이들은 신생경제(Emerging economy)에서 단기자본의 완전한 자유화를 촉진하는 것은 불을 가지고 노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유럽지식인들은 지구차원의 좀더 과감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특히 자본이동의 비합리적 팽창으로 촉발될 국제금융질서의 혼란과 약소국의 피해 가능성을 차단하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들은 투기자본의 이동에서 파생될 외환시장의 불안정을 예방하기 위해 1972년 노벨 경제상을 받은 토빈 교수의 발상인 토빈세 실시를 주장한다. 토빈세는 외환거래마다 0.1%의 세금을 징수해서 그 돈을 국제공동체에 활용하라는 것이다. 0.1%의 세금만 걷어들여도 그 돈이 연간 1800억 달러에 달하며 세계에서 극단의 빈곤을 제거하는데 소요되는 연간 자금총액의 2배보다 많다. 그래서 최근 토빈세 징수를 위한 시민단체가 조직돼 하나의 압력단체로 활동을 시작했다.

시장경제 시장사회

신자유주의의 개선방향을 놓고 작년 이후 토니 블레어의 ‘제3의 길’과 슈뢰더의 ‘새로운 중도’가 접근했고 이들과 거리를 두고 사회민주주의 전통에 더 충실한 노선을 유지해 온 것이 프랑스의 리오넬 조스팽이었다.

지난 11월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열린 미국과 유럽 6개국 중도좌파 정상들의 모임에서도 그 차이가 그대로 드러났다.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은 지금의 번영을 유지하는 방법으로 세계화 추진과 제3세계의 채무 탕감, 국제테러리즘과 조직범죄로부터 국가를 보호할 국제적 협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실용주의를 중시하는 미국인답게 그는 이론을 제시하기보다는 실용적이고 구체적인 조치를 열거했지만 그 제안의 바탕에는 기본적으로 신자유주의가 깔려 있었다.

영국의 토니 블레어와 독일의 슈뢰더는 중도좌파를 표방하지만 시장경제를 중시하는 ‘사회자유주의’의 냄새를 강하게 풍겼다. 자신의 생각을 가장 분명하게 밝힌 것이 리오넬 조스팽이었다.

그는 시장경제의 원칙을 받아들이면서도 경제와 사회정의를 조절하기 위해서는 신자유주의의 과도한 자유를 제한하는데 주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조스팽 총리는 “우리는 사회의 구석구석에 시장의 브랜드를 붙이고 민주주의에 도전하는, ‘화학적으로 순수한’ 자본주의라고 부르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19세기의 자유주의를 가지고 21세기에 들어갈 생각은 없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의 윌리엄 파프는 최근 그의 칼럼에서 흔히 유럽에서는 블레어가 말한 ‘새로운 스타일의 사회주의’가 대륙의 ‘전통사회주의’를 정복했다고 생각하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조스팽은 사회주의 연대의 가치를 철저히 믿고 소외계층에 대한 국가의 지원을 약속한 전통적 사회주의자다. 그는 시장경제는 받아들이지만 ‘시장사회’ 즉 사회의 시장화는 반대한다. 그가 97년 5월 집권했을 때 영-미의 비판가들은 그의 사회주의적 프로그램이 성공하지 못하고 프랑스는 적자지출과 경기침체, 고율의 실업사태를 맞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모든 예상은 빗나갔다. 오히려 슈뢰더가 아주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주로 블레어식 새 사회주의로 개종한 탓이다. 그는 경제계의 지지를 얻는데 실패하고 같은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지지를 받는데도 실패했다. 독일의 고 실업률(10.5 %)은 내려갈 줄 모르고 있다.

슈뢰더의 사민당 내 전통주의자들은 그가 사회정의와 평등정책에 대한 당의 전통적 공약을 버렸다고 보고 반항한다. 그가 주 선거에서 참패한 요인도 여기에 있다. 영국의 블레어도 유럽의회선거에서 슈뢰더처럼 심각한 패배를 맛보았다. 노동당은 보궐선거에서 졌고 블레어 총리의 인기도 떨어졌다. 영국경제는 99년에도 침체를 벗어나지 못했다.

세계화의 첨단무기 매스미디어

반면 프랑스에서는 경제가 호황이다. 조스팽은 유럽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정치인이다. 집권 2년을 넘긴 그는 지난 4반세기에 등장했던 어느 프랑스 총리보다 더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프랑스의 실업률은 아직 독일보다는 높지만 최근 6년 중 가장 낮다. 정부는 99년 직장창출이 미국만큼 높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주(週) 35시간으로 노동시간을 단축한 결과 정말로 일자리가 더 늘고 있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노동현장의 분위기는 많이 개선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영국, 독일, 프랑스 3국의 경제실적 차이는 이념 때문이라기보다는 각국이 처한 특수상황과 더 관련이 깊다. 그런데도 프랑스 경제가 호황을 누리게 된 데는 이념적인 요인도 작용하고 있다. 조스팽 총리와 그의 내각은 경제성장은 사회적 희생의 대가로만 얻을 수 있다는 시장이론을 무시하고 사회정의를 강조하면서 경제성장을 달성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희망의 복음’으로 전세계에 전파된 데는 매스미디어, 특히 영-미 미디어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세계의 실질적인 지배자로 등장하고 있는 대자본그룹들은 매스미디어와 정보고속도로를 장악하는데 생사를 걸고 있다. 역사상 처음으로 위성으로 중계되는 TV채널을 통해 온갖 메시지가 지구전체에 하루 24시간 방송되고 있다.

이들 미디어는 정치지도자보다 앞서 메시지를 전하고 정치인들의 행동을 앞지른다. 국가보다 더 강한 대자본 세력이 민주주의의 가장 귀중한 재산, 즉 정보를 약탈하고 있다고 프랑스의 사회학자인 르노 드 봄(Renaud de Ba ume)과 장-제롬 베르톨뤼(Jean-Jerome Bertolus)는 경고하고 있다.

앞으로 디지털 위성방송이 실시되면 수십개의 위성TV채널이 이들 새로운 세계정복자들의 메시지를 전파하고 이들의 법을 전세계에 강요하는 도구 노릇을 할 것이다. 이들에게는 민주적인 토론은 필요가 없다. 언론매체를 통해 세계인을 자기들 팬으로 바꿀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들은 공익이나 사회의 행복, 개인의 자유와 평등 같은 개념에 무관심하다.

그들은 부를 더 늘리고 축적하고 자기들이 제품을 많이 파는 것 외에는 별관심이 없다. 이들의 눈에는 정치권력은 권력서열에 있어서 3위에 지나지 않는다. 제1은 경제권력이다. 그 다음이 미디어의 권력이다. 이 두 권력만 장악하면 정치권력을 잡는 것은 하나의 형식에 불과하다. 90년대 초 이탈리아에서 금융재벌이며 미디어 재벌인 베를루스코니가 하루 아침에 총리로 변신한 것은 아주 좋은 실례다.

세계의 새 정복자들은 그들이 장악한 막강한 매체를 통해 국가의 주권을 무력화(無力化)하고 그들의 군림을 정당화해 주는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를 유일한 진리처럼 전파하고 이에 반대하는 사상은 ‘이단’으로 매도한다. 유일사상의 강요이며 언론자유라는 가면을 쓰고 자행되는 새로운 형태의 사상통제고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다.

유럽의 진보적 지식인들이 신자유주의의 위험을 경고하는데 열을 올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행히 이들의 주장이 차츰 여론의 동조를 얻게 되고 다국적 대기업들의 지나친 이기주의가 소비자들의 분노를 촉발해서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연원지인 미국으로 반 세계화운동이 역류하는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막대한 자본의 후원을 받고 있는 세계화 공세는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다. 그 어떤 투쟁보다 꾸준한 시민운동이 요청된다.

신동아 2000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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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행훈 경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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