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호

민주당=‘수도권 중산층 정당’, 국민의힘 돌파구 ‘친서민’에 있다

[이동수의 투시경] 이재명은 왜 ‘상속세 개편’ 카드를 꺼냈을까

  •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

    입력2025-04-25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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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규모 신도시 조성, 민주당의 ‘수도권 정당화’ 가속화

    • 민주당, 종부세 등 수도권 중산층 이슈에 포획돼

    • 서민·비정규직·블루칼라 진보에 실망

    • 국민의힘, 히스패닉 지지층 확보한 美 공화당 배워야

    3월 7일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배우자 상속세 면제는 타당성이 있다”며 “이 부분에 우리도 동의할 테니 이번에 (국회에서) 처리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뉴스1

    3월 7일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배우자 상속세 면제는 타당성이 있다”며 “이 부분에 우리도 동의할 테니 이번에 (국회에서) 처리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뉴스1

    4월 2일 재·보궐 선거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지역은 단연 전남 담양군이다. 정철원 조국혁신당 후보가 이재종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누르고 담양군수가 된 이 선거는 지역 대 중앙의 싸움으로 흘러갔다. 3선 군의원인 정 후보는 ‘토박이론’을 내세웠고, 문재인 정부 청와대 행정관을 지낸 이 후보는 중앙 정치인들의 화려한 지원사격을 등에 업은 채 선거운동에 나섰다. 이 장면은 오늘날 민주당이 갖는 정체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수도권 기반 정당이 된, 그래서 역설적으로 호남에는 중앙에서 투입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자원이 없는 현실 말이다.

    민주당의 심장인 광주에는 다선 의원이 없다. 22대 국회에선 민형배 의원이, 21대 국회에선 송갑석 전 의원이 유일한 재선이었다. 나머진 모두 초선이다. 지도부도 마찬가지다.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민형배 의원은 최고위원 선거에 출사표를 던졌다. 순위권에 들지 못한 건 물론 ‘반명 논란’을 빚었던 정봉주 전 의원보다도 적은 표를 얻었다. 

    민 의원은 2022년 대선 경선부터 이재명 전 대표를 전폭적으로 지원한 친명 인사였다. 2022년 검수완박 정국에선 당을 탈당하고 다시 돌아오는 데 따르는 비난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당원들은 그를 선택하지 않았다. 2022년 전당대회에선 송갑석 전 의원이 같은 위치에 있었다. 광주시당위원장까지 지냈지만 선출직 최고위원이 되지는 못했다. 이재명 1·2기 선출직 지도부는 모두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의원으로 채워졌다.

    선거법 개정이 문 연 민주당 전성시대

    민주당의 ‘수도권 정당화’는 제법 긴 시간 동안 점진적으로 이뤄졌다. 노무현 정부 당시 2기 신도시가 추진되면서 서울 위례를 비롯해 성남 판교, 화성 동탄, 수원 광교, 파주 운정, 김포 한강, 남양주 다산·별내 등 수도권 각지에 대규모 신도시가 조성됐다. 젊은 중산층이 이들 도시에 모여들었고, 경기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나라 전체가 인구절벽 위기에 직면해 광역시마저 인구 유출로 신음하고 있지만 경기는 달랐다. 2005년 1085만 명 수준이던 경기도 인구수는 지난해 말 약 1416만 명으로 증가했다.

    사람 수가 많아지면 그에 비례해 목소리도 커진다. 여기에 2014년 선거구 인구 편차를 기존 3대 1에서 2대 1로 줄여야 한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더해졌다. 인구가 가장 많은 선거구의 유권자 수가 가장 적은 선거구 유권자 수의 두 배를 넘으면 안 된다는 내용이다. 표의 등가성이 이유다. 이 결정으로 2016년 제20대 총선 직전 경기 의석수가 무려 8석이나 증가했다. 서울·인천도 각각 1석씩 증가했다. 경북(2석), 전북(1석), 전남(1석), 강원(1석) 의석은 줄었다.



    이때의 선거법 개정 이후 민주당 전성시대가 열렸다. 수도권 의석이 크게 증가한 상황에서 수도권 중산층 지지를 받는 정당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민주당은 전통적 지지기반이었던 호남 의석 대부분을 국민의당에 넘겨주고도 새누리당(현 국민의힘)에 이겼다. 수도권에서 크게 이긴 덕분이었다. 당시 서울·경기·인천의 의석수는 모두 122석이었는데, 민주당은 이 가운데 82석을 가져갔다. 새누리당은 35석이었다. 65대 43이었던 제19대 총선보다 격차를 벌린 것이다. 이 격차는 2020년 21대 총선에서 103대 16으로 확대됐다. 2024년 22대 총선도 102대 19로 별반 다르지 않았다.

    2월 이재명 전 민주당 대표가 띄운 상속세 개편은 이런 이해관계에 기초한다. 문재인 정부 당시 아파트 가격이 급등하며 주택 보유자들의 상속세 부담이 커졌다. 그 부담은 주로 아파트 가격이 높은 수도권 거주자들에게 집중됐다. 2023년 기준 전국 피상속인(사망자) 수 대비 상속세 과세 대상자 비중은 6.82%였는데 서울은 15.0%나 됐다. 

    상속세뿐만이 아니다. 황희(서울 양천구갑), 고민정(서울 광진구을) 등 서울에 지역구를 둔 민주당 의원은 종합부동산세를 완화하거나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수도권 중산층의 이익에 포획된 민주당의 현실을 보여준다.

    ‘먹고살 만한’ 사람들의 고담준론에 지친 서민

    20년 넘게 지속된 세계화는 계층의 분절을 가져왔다. 수도권과 지방, 중산층과 서민, 정규직과 비정규직,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의 격차는 점점 심화하고 있다. 이 현상은 비단 한국뿐 아니라 서구 선진국 사이에서도 나타난다. 2011년 미국 뉴욕에서 “월가를 점령하라”는 구호의 시위가 확산했을 때만 해도 진보 진영은 상위 1%와 나머지 99%의 대결 구도를 강조했다. 그러나 이제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은 없다. 99%에서도 중간 이하 계층 상당수가 극우를 표방하는 우파 포퓰리즘 정당으로 이탈했기 때문이다.

    진보는 서민과 약자를 더는 온전히 대변하지 않는다. 이는 2010년대 들어 진보 진영에서 소수자 인권이나 기후 위기 등의 이슈가 각광받으며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는 목소리가 확대된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소수자 인권은 당연히 존중돼야 하고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한 재생에너지의 확대 또한 반드시 이뤄내야 할 과제다. 하지만 속도와 정도에 따라 그것은 약자들이 짊어진 삶의 무게를 더욱 가중하기도 한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나라가 독일이다. 독일은 2000년 재생에너지법(EEG)을 제정하고 2002년 탈원전 정책을 수립했다. 원래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는 집권 초 전임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려 했으나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방향을 선회했다. 그 결과 현재 독일의 전력 생산에서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60%를 넘기게 됐다. 반대로 원자력발전은 2023년 4월 문을 닫은 네카베스트하임2, 이자르2, 엠스란트 발전소를 끝으로 모두 중단됐다. 

    독일에선 전력 생산원 1위가 태양광이고, 2위가 풍력이다. 재생에너지는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독일은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러시아에서 천연가스를 값싸게 들여왔다. 그런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며 문제가 생겼다. 러시아에서 들여오던 천연가스가 끊기면서 에너지 가격이 폭등한 것이다. 가뜩이나 형편이 어려운 계층은 더 큰 고통을 받아야만 했다.

    탈원전·친환경 재생에너지로 전환하자고 주장함으로써 도덕적 권위를 누리는 쪽은 어디고, 현실에서 그 피해를 감수하는 쪽은 어디인가. 두 주체가 다르면 불만은 커진다. 2월 독일에서 열린 21대 연방의회 선거에서 극우로 분류되는 ‘독일을 위한 대안당(AfD)’이 동독 지역을 싹쓸이한 건 그런 이유에서다. 

    독일 전역에는 3만 개가 넘는 풍력발전기가 있는데, 땅값이 저렴하다는 이유로 주로 동독 지역에 몰려 있다. 풍력발전 단지는 경관을 해치고 소음공해를 일으킨다. 동독 지역 주민들은 이를 서독 대기업이 만든 경제적 착취의 상징으로 여겼다. 이 분노를 감지한 알리스 바이델 AfD 대표는 “수치스러운 풍차를 없애겠다”고 약속했다. 독일 전역의 풍력발전기를 모두 없애겠다는 공약에 동독 지역 주민들이 압도적 표로 화답했다.

    멕시코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넘어오는 불법 이민자들, 유럽 각지로 밀려드는 중동 난민 문제도 맥락은 비슷하다. 개인적으로 이민·난민에 대해 각 선진국이 수용성을 높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는 대도시에서 편하게 눌러앉아 고담준론을 늘어놓는 사람의 의견일 수 있다. 

    그레그 애벗 미국 텍사스 주지사의 ‘난민 버스’는 이상과 현실이 맞닿았을 때 일어날 수 있는 변화를 보여준다. 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은 집권 후 트럼프 행정부(1기)에서 시행됐던 불법 이민자에 대한 강경책을 완화했다. 이는 멕시코와 국경을 마주한 텍사스 지역에 남미 불법 이민자가 급증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텍사스 주민들의 피로와 분노가 고조됐다. 애벗 주지사는 “민주당을 지지하는 지역이 난민을 수용하라”며 난민들을 버스에 실어 뉴욕과 캘리포니아, 매사추세츠 등지로 보냈다. 타임스퀘어에 난민이 쏟아지면서 뉴욕의 표정은 바뀌었다. 급기야 2023년 말 에릭 애덤스 뉴욕시장은 ‘난민 버스’의 진입을 제한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불법 이민·난민의 증가는 중산층 이상의 사람보다 그 아래 놓인 사람들의 삶에 더 큰 영향을 준다. 국경을 넘어온 사람들이 위협하는 일자리는 화이트칼라 일자리가 아니라 저숙련 일자리다. 이들이 주로 어디에 살게 될지를 생각해 보면, 불법 이민 증가에 따른 치안 불안을 느끼게 될 집단이 어느 쪽인지 또한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동안 언론인 토머스 프랭크나 조지 레이코프 미국 캘리포니아대 교수와 같은 학자는 가난한 사람들이 왜 부자의 이익을 옹호하는 정당에 투표하는지, 이른바 계급 배반 투표의 원인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물어왔다. 그들의 답은 문화적 가치라든지 ‘언론의 프레임’과 같은 것이었다. 

    한국 정치권의 인식도 비슷했다. 이재명 전 대표는 2022년 7월 “고학력, 고소득자 등 소위 부자라고 하는 분들은 우리 지지자가 더 많다. 저학력에 저소득층이 국민의힘 지지가 많다. 언론 환경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이 발언이 논란이 되자 추미애 민주당 의원은 “저소득층이 그루밍당한 것”이라고 거들었다. 과연 저소득층의 보수정당 지지는 단지 언론의 악의적 프레임과 유권자들의 무지에서 비롯된 것일까. 산업, 불법 이민, 에너지 등의 이슈에서 저학력·저소득층이 만족할 만한 답변을 못 내놨기 때문은 아닐까.

    2024년 4월 10일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앞줄 가운데) 및 지도부가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 마련된 국민의힘 개표상황실에서 22대 총선 개표방송 출구조사 결과를 시청하고 있다. 뉴스1

    2024년 4월 10일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앞줄 가운데) 및 지도부가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 마련된 국민의힘 개표상황실에서 22대 총선 개표방송 출구조사 결과를 시청하고 있다. 뉴스1

    자산가·강성보수 … 좁은 지지층에 집중하는 한국 보수

    2010년대부터 본격화한 우파 정당 열풍은 현재진행형이다. 미국·유럽 등지에선 세계화의 번영으로부터 소외된 집단의 분노가 10년 전까지만 해도 존재감 미미했던 인물과 정당을 주류 반열에 올려놓았다. 자유무역의 확대로 일자리를 잃은 서민·노동자, 대도시 집중이 심화하며 황폐화한 지방 도시와 농촌의 주민들이 ‘위대했던’ 옛 영광을 그리며 그들에게 동력을 제공하고 있다. 진보 진영이 단어 하나하나에 시시비비를 따지고 있는 사이, 극우라 불리는 사람들은 진보의 전통적 지지층을 잠식해 나갔다. 보수가 제시했던 신자유주의의 폐단을 진보가 아닌 극우가 해결하겠다고 나서는 모순적 상황이다.

    민주당은 세금·부동산 등의 이슈에서 과거보다 보수적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중도 확장’이라는 단어로 포장된 이 현상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핵심 세력인 86 운동권 그룹이 나이를 먹으며 기득권 반열에 올라섰고, 지역 지지기반 역시 수도권 중심으로 재편됐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지역·계층 차원에서 범위를 넓힐수록 국민의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국민의힘은 여전히 기존 지지층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한국 최상위 자산가들, 이념적으로는 뉴라이트로 대표되는 강성보수가 그들이다. 한때 국민의힘 핵심 지지층이었던 2030 남성들의 빗발치는 요구에도 불구하고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상법 개정에 반대한 장면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월가의 원성에도 불구하고 “제조업을 되살리겠다”며 관세전쟁을 벌이는 모습과 대조적이다. 

    트럼프의 무모한 도전이 성공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입지는 계층적으로나 지역적으로나 좁아지는 반면, 미국 공화당은 지역은 물론 히스패닉 노동자 계층으로까지 지지층을 넓히며 지난 대선에서 압승을 거뒀다. 이 세계적 흐름에 올라타지 않는다면 국민의힘은 자유한국당 시절처럼 다시 어두운 터널을 지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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