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호

“3‧1운동은 대한민국이 시작된 뿌리”

106세 철학자 김형석 교수가 말하는 3‧1운동 106주년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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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입력2025-03-01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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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운동 계기로 ‘나라 찾자’ 민족의식 확산

    • 나라다운 나라 만들려 ‘인재 양성’에 매진

    • 6‧25전쟁 겪으며 ‘자유’와 ‘민주’에 대한 목표 뚜렷

    • 4‧19 희생 발판 삼아 민주주의 확립

    • 문민정부, ‘권력국가’에서 ‘민주국가’ 탈바꿈

    • 나라다운 나라는 법치주의 확립된 자유 민주 국가

    • 문화도, 경제도 대한민국이 세계 최고…정치는?

    • 다른 나라가 닮고 싶은 ‘질서국가’ 문턱에서 ‘계엄’ 터져

    • 정치 바로 잡으려면 국민 스스로 성장하는 수밖에

    ‘106세 철학자’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가 2월 26일 오후 서대문구청 대강당에서 명사 특강을 하고 있다. [구자홍 기자]

    ‘106세 철학자’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가 2월 26일 오후 서대문구청 대강당에서 명사 특강을 하고 있다. [구자홍 기자]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큰 나무로 성장한 대한민국의 뿌리는 어디에 있을까. 바로 3‧1독립만세운동이다. 그때 대한민국이라는 자유민주국가의 뿌리가 생겨나지 않았으면 지금처럼 큰 나라로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1920년생, 동아일보와 출생연도가 같은 106세 철학자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는 2월 26일 서울 서대문구청 대강당에서 행한 명사특강에서 또렷한 목소리로 3‧1운동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일제 강점기는 우리 집 안에 ‘일본 사람’이 들어와 살면서, 우리를 하인 부리듯 하면서 주인노릇 하던 때다. 나라를 빼앗기고는 가정도, 학교도, 사회도 제대로 안 되겠구나. 그런 자각이 우리 민족 사이에 생겨 일어난 게 3‧1운동이다. 3‧1독립만세운동을 계기로 ‘목숨을 걸고라도 나라를 다시 찾겠다’는 민족의식이 우리 민족 전체에 퍼졌다.”

    교육 없이 희망 없다

    나라를 되찾기 위해 3‧1운동 이후 우리 민족이 선택한 것은 ‘배움’이었다. 김 교수는 “‘교육 없이 희망 없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우리 민족 전체가 배움에 매달렸다”고 회고했다. 실제로 3‧1운동 이후 근대식 학교가 전국 방방곡곡에 생겨났다. 김 교수는 학창시절 도산 안창호 선생 강연 때 들었던 얘기를 들려줬다.

    “자기 자신만 생각하면 그 정도 밖에 성장하지 못한다. 가정만 걱정하면 그만큼 밖에 자라지 못한다. 항상 나라와 민족을 생각해라. 그래야 너도 모르는 사이에 나라와 민족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한다.”

    도산 선생 강연을 통해 김 교수는 “이 다음에 나도 작은 도산이 돼 우리 사회를 위해 일하는 정신적 지도자가 됐으면 좋겠다”는 꿈이 생겼다고 한다. 김 교수의 그 꿈은 현실이 됐다. 교수로, 또 철학자로 한국에 큰 울림을 주는 지성인으로 존경받고 있다는 점에서다. 이날 김 교수 강연을 듣기 위해 대강당에는 청중이 꽉 들어찼다. 김 교수가 펴낸 책은 세대 구분 없이 즐겨 있는 필독서이자 교양서가 됐다. 김 교수는 최근 ‘100년의 지혜’란 책을 펴냈다.

    3‧1운동을 계기로 ‘배워서 나라를 되찾겠다’는 열정으로 똘똘 뭉친 우리 민족은 1945년 광복을 이뤘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민족 분단의 아픔을 겪어야 했고, 38선 북쪽에는 ‘일본인’ 대신 ‘공산당’이 주인 노릇하는 나라가 되고 말았다. 김 교수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광복이 돼 이제 내 나라에서 집주인으로 살게 되겠구나 생각했는데, 북쪽에서는 문을 열어보니 공산당이, 김일성이 주인 노릇하는 나라가 됐다.”

    북한이 공산화된 후 김 교수는 38선을 넘어 서울로 내려왔다. 김 교수는 ‘제자를 많이 키워 그 제자들과 함께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교편을 잡았고, 지금까지도 그런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다른 사람이 나를 키우는 게 아니고, 내가 스스로 나를 키울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이웃과 더불어 사는 공동체 의식이 있어야 한다. 가정은 가정답고, 직장은 직장다워야 나라도 나라다워진다. 3‧1운동 때 ‘목숨 걸고 나라를 다시 찾겠다’고 우리 민족 전체가 뭉쳤다면, 6‧25전쟁을 겪으면서 대한민국이 ‘자유 민주 국가’로 가야겠다는 목표가 뚜렷해졌다. 이승만 박사가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는 방향을 잘 정하고 큰 업적을 남겼지만 마지막에 (3‧15) 부정선거 논란으로 실패했다. 4‧19는 학생 218명이 희생된 역사적으로 가슴 아픈 비극이다. 그래도 그 희생이 큰 강물이 돼 ‘대통령이나 정부가 힘으로 국민을 다스려서는 안 된다’ ‘독재정권은 용납하지 않는다’는 민주주의가 확립됐다.”

    절대 빈곤에서 벗어나자

    2월 9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달개비에서 ‘백년의 지혜’ 출판 기념 기자간담회를 하는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동아DB]

    2월 9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달개비에서 ‘백년의 지혜’ 출판 기념 기자간담회를 하는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동아DB]

    박정희 정권에 대해 김 교수는 “처음에는 군사정권이 들어서서 어떡하나 그랬는데, 박정희 정권이 ‘반공’을 국시로 내걸어 미국의 협력을 이끌어냈다”며 “가난해서는 나라 구실도 못하고 국민도 행복할 수 없으니 ‘절대 빈곤에서 벗어나자’면서 생산 능력을 키우고, 외국에 수출을 많이 해서 자유무역으로 자유시장 경제를 통해 나라 경제를 살렸다”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전두환 정권 때도 경제는 계속 성장했다”며 “노태우 대통령 끝나고 김영삼 대통령 때가 되면서 대한민국은 세계가 인정하는 나라다운 나라가 됐다”고 설명했다. 문민정부 이전까지는 ‘권력자’를 중심으로 국가가 운영돼 독재가 가능한 ‘권력국가’ 성격이 강했지만, 이후부터 ‘법치국가’로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자유민주주의국가가 됐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김 교수는 “세계적으로 ‘우리도 저렇게 살아봤으면 좋겠다’는 ‘질서 국가’로 한 단계 올라서야 하는데, 지금 우리나라가 그런 나라가 될 수 있을지 걱정이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K-팝과 K-무비, 노벨문학상 수상자까지 배출한 문화선진국이 됐고, 삼성전자와 현대차 등 글로벌 대기업을 여럿 배출한 글로벌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밤낮없이 싸우는 정치가 발목을 잡고 있어 ‘질서국가’, 세계적 ‘모범국가’로 성장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는 게 김 교수의 토로다.
    김 교수는 “똑같은 것도 여기서 주장하면 저기서 반대하는 지금과 같은 정치로는 국민이 행복할 수 없다”며 “여야가 밤낮없이 싸우는 동안 계엄령까지 선포 돼 정치 수준이 더 내려갔다”고 개탄했다. 그는 “우리 정치를 바로 잡으려면 주권자인 국민이 성장하는 길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국가 이익과 국민 행복은 도외시하고, 자기 진영, 자기 정파 이익만 고집하는 정치인을 주권자 국민이 걸러내는 수밖에 없다는 호소였다.




    구자홍 기자

    구자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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