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호

“고통은 습격처럼 찾아와…어머니 존엄 위해 존엄사 결정”

[특집 | 초고령사회 대한민국, 존엄한 삶과 죽음을 말하다] 어머니의 존엄사 동행한 남유하 작가

  • 정혜연 기자 grape06@donga.com

    입력2025-06-01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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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온몸에 암세포 퍼진 어머니, 스위스행 선택

    • 자유의지로 살던 어머니, 고통만큼은 통제 불가

    • 마지막 소원 이뤄드리려 다른 생각 않고 경주마처럼 달려

    • “인사하고 떠나는 게 얼마나 좋아”라던 어머니

    • 출생이 생의 시작이라면, 죽음은 생의 마지막일 뿐

    • 생명 경시? 통증 겪는 사람에겐 존엄사가 생명 존중

    • 마지막 미리 생각하고, 준비하는 분위기 형성되길

    남유하 작가는 2023년 8월 어머니의 조력 존엄사 선택을 존중해 스위스행에 동행한 이야기를 책을 출간하고, 현재 한국존엄사협회 회원으로서 국내 존엄사 제도 도입에 힘쓰고 있다. 홍태식 객원기자

    남유하 작가는 2023년 8월 어머니의 조력 존엄사 선택을 존중해 스위스행에 동행한 이야기를 책을 출간하고, 현재 한국존엄사협회 회원으로서 국내 존엄사 제도 도입에 힘쓰고 있다. 홍태식 객원기자

    1944년 12월 함경도 출생 원숭이띠 조순복 씨. 스물다섯에 평범한 남자와 결혼해 아들과 딸을 낳고 주부로 살던 그녀는 2009년 예순다섯에 유방암 2기 진단을 받는다. 우측 유방 전절제 수술 후 10년간의 항암 치료 끝에 가까스로 완치 판정이 내려졌다. 기뻐한 시간도 잠시,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2020년 9월 골반과 허리, 무릎에 광범위한 전이가 발견돼 말기암 판정을 받았다. 

    모든 암은 통증을 유발하지만 뼈로 전이된 암은 그야말로 악질이다. 불시에 찾아오는 뼈의 통증은 “칼로 콱콱 찌르는 듯한 통증”이었고, 항암 치료로 각질화돼 벗겨진 피부의 가려움증은 펄펄 끓는 물로도 가라앉지 않아 마약성 진통제로나마 겨우 진정시킬 수 있었다. 그마저 시간이 흐를수록 내성이 생겨 통증이 가시는 시간은 점점 짧아졌다. 1년여 고통의 시간을 견뎠으나 2021년 겨울, 암은 다른 뼈와 위장으로까지 2차 전이됐다. 잠을 자다가도 저절로 비명이 터져 나오는 밤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2차 전이 판정 이후 조순복 씨는 일상적으로 죽음을 상상했다. 집, 산, 바다 등 여러 장소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죽음을 상상했고, 딸에게 의견을 구했다. 처음엔 어머니의 자포자기 심정을 안쓰러워하며 무조건 말리기만 하던 딸도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어머니를 차츰 이해하기에 이르렀다. 마치 점심 메뉴를 고르듯 죽음에 이르는 방법을 고르던 어머니는 어느 날 “나도 스위스 갈까?”라고 말했다. 딸과 함께 본 영화 ‘미 비포 유(Me Before You)’에서 남자 주인공이 선택한 스위스에서의 조력 존엄사를 선택하겠다는 뜻이었다. 

    죽음을 허가받다, 죽음을 다시 생각하다

    조력 존엄사, 조력 사망, 안락사 등 여러 명칭으로 불리는 자발적 죽음의 방식은 전 세계에서도 허락하는 국가가 많지 않다. 23년 전 세계 최초로 안락사를 합법화한 네덜란드와 스위스, 벨기에, 미국의 몇 개 주에서 허용하고 있다. 외국인에게도 열려 있는 곳은 스위스가 유일해서 현재까지 한국인이 10명 정도 도움을 받아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 씨는 디그니타스에서 조력 사망한 여덟 번째 한국인이다. 

    조순복 씨의 딸이자 소설가 남유하 작가는 어머니의 선택을 존중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어머니의 마지막 가는 길을 도왔다. 1998년 설립된 안락사 기관 ‘디그니타스’에 메일을 보내 의사를 밝혔고, 회원 가입 후 필요한 문서와 병원 진단서 등을 영문으로 번역해 보냈다. 2023년 7월, 디그니타스로부터 그린라이트(허가)가 내려졌다. 디데이는 10월 31일로 결정됐다. 



    하지만 조 씨의 몸 상태는 석 달여를 버티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악화됐다. 하반신 마비 증상까지 나타나 잘못하다가는 비행기를 탈 수조차 없을 듯했다. 견디기 힘든 통증으로 몸부림치던 조 씨는 일정을 당기고 싶어 했다. 남유하 작가는 디그니타스에 문의해 9월 초, 다시 8월 말, 결국 8월 초로 날짜를 앞당겼다. 조 씨는 친인척에게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그의 남편, 남 작가와 함께 스위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갈 때는 세 사람이었으나 한국으로 돌아올 때는 두 사람뿐이었다. 

    남 작가는 일련의 과정을 매일같이 기록했다. 어머니와의 예기치 않은 이별을 그냥 흘려보낼 수 없어 기록했던 글들을 엮어 올해 초, 책 ‘오늘이 내일이면 좋겠다’를 출간했다. 또한 남 작가는 어머니의 존엄사 이후 일반인의 존엄하게 죽을 권리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2023년 12월 7일에는 존엄사법 통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 및 집회에 참석했고, 28일에는 존엄사 허용에 관한 헌법소원 심판 청구서를 제출하는 존엄사협회 및 사단법인 ‘착한법 만드는 사람들’과 동행했다. 그녀는 재판 과정에서 증언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나서주기로 약속했다.

    건조하게 전달한 문장 사이사이에는 조순복 씨와 그의 남편, 남유하 작가 가족이 흘린 눈물이 생략돼 있다. 겪어보지 않고서는 설명할 수 없는 고통과 슬픔, 이별이었으리라. 그 긴 시간의 끝에 서서 ‘존엄하게 죽을 권리’에 대해 말하고 있는 남유하 작가를 만났다. 지난해 12월,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20% 이상인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우리나라도 이제 이 존엄하게 죽을 권리에 대해 현실적으로 논의해야 할 시기에 직면했다. 

    어머니의 마지막을 곁에서 지켜보고, 책으로 쓰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듯하다. 이런 결정을 내린 이유는 무엇인가. 

    “가장 큰 이유는 어머니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조력 존엄사를 결정하고 스위스로 가는 13시간의 비행에서, 낯선 스위스 현지에서 시간을 보내는 가운데 또 다른 고통과 존엄성의 훼손이 있었다. 귀국했을 때 어머니처럼 회복 가능성이 없는 환자들이 이런 선택을 할 때 우리처럼 고통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컸다. 그래서 우리나라에도 조력 존엄사 제도가 생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머니의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하기 어려운데, 가족들조차 모두 찬성한 건 아니었을 듯하다. 아버지와 오빠, 친인척은 어머니가 스스로 선택한 죽음에 어떤 입장인가. 

    “어머니의 결정에 반대하는 가족도 있었고,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분도 계신다. 마지막에 병원이든 요양원에 갔으면 1~2년 더 살지 않았겠냐고. 어머니를 가장 가까이 지켜본 아버지와 나는 어머니의 결정을 존중해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엄밀히 말하면 찬성한 건 아니다. 그 고통스러운 통증에 시달리는 어머니를 보며 감히 반대할 수 없었던 거다. 어머니의 결정을 지지하는 것이 가족으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었다.”

    모든 죽음은 존엄해야 한다

    스위스 디그니타스에 회원 가입부터 조력 존엄사를 허가받기까지 절차가 까다롭고, 부대비용까지 수천만 원을 썼을 정도로 만만치 않은 과정이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이행할 수 있었던 건 무엇 때문인가. 

    “어머니의 마지막 소원을 이뤄드려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리자’고 하셨다. 우리가 다른 생각과 감정에 휩쓸리기 시작했다면 아마 못 해냈을 거다. ‘엄마가 더는 아프지 않도록 도울 사람은 우리밖에 없어’ 그 한 가지 생각만으로 정말 달렸다. 왜냐하면 어머니의 삶이고, 마지막을 본인 스스로 결정하셨고, 그런데 몸이 쇠약해져서 혼자서 갈 수 없으니 당연히 가족이 동행해야 하고 뭉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과정에서 어머니와 작가님 각자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나. 

    “그린라이트를 받기 위해 이메일을 주고받을 때가 힘들었다. 어머니가 작성한 서류를 영문으로 번역해서 보내고, 한 단계씩 통과될 때마다 ‘죽음에 앞장서는 기분’이 들어서 죄책감이 커졌다. 뭔가 세상이 나를 짓누르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어머니의 경우 최종 결정을 내리기 전에 ‘갈까 말까’ 고민하던 그때가 정신적으로는 가장 힘드셨던 것 같다. 사실 우리도 다른 사람들처럼 호스피스도 알아보고, 암 병동에서 마지막을 보내는 걸 고민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고통이 심해졌고, 끝내는 방법이 이것밖에 없게 되자 어머니께서 결심하셨다. 육체적으로는 아무래도 스위스에 가는 13시간의 비행이 힘들었다. 책에도 썼지만 어머니가 하반신 마비 상태여서 화장실에 가려면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했는데, 자꾸 가는 게 미안하셨는지 참으셨다. 도착했을 때 물으니 ‘조금 쌌다’고 하시더라. 깔끔하셨던 분인데…. 당시 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훼손되는 상황과 과정이 너무나 참담했다.” 

    한편으로는 떠밀리다시피 조력 존엄사에 동행한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후회로 남은 부분은 없나. 

    “어머니의 선택을 존중하는 과정에서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그 부분에서 후회는 없다. 어머니가 휴대전화에 남겨놓은 음성 일기를 들어보니 ‘사실은 더 빨리 가고 싶었는데 우리 딸이 이렇게 열심히 노력하니 더 재촉할 수가 없다’고 하시더라. 어머니도 내가 최선을 다하는 것을 아셨던 거다. 아버지와도 얘기를 많이 나누는데 ‘어디 한 군데라도 성해야 그냥 있어라 붙잡고 늘어졌을 텐데 그렇지가 않았다’고 하신다. 약을 열심히 드셔도 전신에 암이 퍼져 나갔다. 후회되는 점을 굳이 꼽자면 스위스에서 더 편안하게 못 모신 거다. 하반신 마비가 갑자기 와서 휠체어를 가지고 가야 한다는 걸 생각지 못했고, 예약한 호텔에 엘리베이터가 없어 고생하셨다. 떠나시기 전날 마지막으로 드시고 싶은 음식이 수프라고 하셨는데 그걸 못 구해드린 것, 그런 손쓸 수 없던 순간들이 아쉬움과 후회로 남는다. 고통을 끝내기 위해 먼 길을 가서까지 부가로 고난을 겪어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국내에도 조력 존엄사 제도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 중 하나다.”

    남은 가족에게 쏟아진 낯선 시선과 비난은 차치하고, 본인의 선택을 달성했다는 점에서 어머니의 마지막은 행복했을 거란 생각도 든다. 

    “어머니는 암이 전이되기 전에도 ‘나는 죽는 날까지 내 발로 걷고 내 손으로 밥을 먹을 거야’라고 하셨던 분이다. 원하는 방식으로 평온하게 떠나신 것은 생전의 어머니다웠다. 그런 면에서 어머니의 죽음은 행복한 죽음이라고 생각했다. 마지막 순간 더는 아프지 않으실 거란 사실만큼은 너무나 기뻤다.”

    일반적으로 존엄사라고 칭하는데, ‘존엄한 죽음’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그리고 어머님의 죽음은 존엄한 죽음이었다고 생각하는가.

    “모든 죽음은 존엄하다. 어떤 방식의 죽음이든 삶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은 엄숙한 면이 있지 않나.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어머니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신의 마지막 장을 덮었다. 어머니의 죽음도 당연히 존엄하다고 생각한다.”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하여

    우리나라는 지난해 12월 23일을 기준으로 65세 이상 주민등록 인구수가 1024만4550명으로 전체 주민등록 인구의 20%를 차지했다. 2000년 고령화사회 진입, 2017년 고령사회 진입, 2024년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이 속도라면 노인인구가 2035년에는 30%, 2050년에는 40%를 넘을 전망이다. 100세 시대에 모두가 건강하게 장수를 누리기를 소망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은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죽지 못하고 살도록 방치하는 것이 능사는 아닐 수 있다. 

    존엄사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할 시점이라는 의견도 늘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단지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것 때문만 아니라 건강수명과 ‘삶의 질’ 문제다. 우리나라 평균수명이 83세인데, 70세부터 크고 작은 질병에 시달린다고 치면 약 10년의 질병 기간이 있는 셈이다. 의학의 도움으로 살아가지만 더는  회복이 불가능한, 고통을 단순히 견디기만 해야 하는 시기가 온다. 아이러니하게도 의학이 발달했기 때문에 어느 순간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된다. 이제는 호스피스의 확충과 더불어 하나의 선택권으로 존엄사를 논의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 존엄사가 합법화되기가 쉽지 않다.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나. 

    “‘생명 경시’라는 오해가 가장 큰 것 같다. 고통은 철저히 주관적인데, 나 역시도 어머니를 곁에서 보고 간접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었다. 통증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피상적으로 받아들이기에 고통을 끝내고 싶어 하는 당사자의 간절한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고통을 멈출 수 있다’는 게 희망인 사람들에게는 존엄사가 오히려 생명 존중의 방책인 셈이다. 관련 내용의 기사가 간혹 나가면 굉장히 많은 분이 댓글로 지지하고, 찬성한다. 악플이 달리면 거기에 다른 분들이 ‘너도 아파봐라’ 하고 댓글이 달리더라. 그리고 또 문화적 차이도 있는 것 같다. 아시아 국가 가운데는 조력 존엄사가 합법화된 곳이 없다. 유럽, 미국 일부 국가들은 개인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는 경향이 더 강한 것 같고. 우리나라는 그래도 아시아 국가 가운데 빠르게 변화를 받아들이는 사회니까 먼저 시행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책에 ‘죽음을 결정하고 나니 삶이 더 소중해졌다’라고 했다. 이렇게 느낀 이유는.

    “고통이라는 건 습격처럼 찾아온다. 인간은 항상 자유의지로 선택하고 행복을 느끼는데, 고통만큼은 통제가 불가능하다. 어머니는 자주적이고 능동적인 사람이었는데 고통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더 두려워하셨다. 역설적이지만 마지막 날을 결정하고 나서 삶의 희망을 갖게 됐고, 삶의 중요성을 느끼며 남은 시간을 하루하루 소중하게 보낼 수 있었다.”

    한국존엄사협회 회원인데, 비슷한 상황에 놓인 회원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도 궁금하다.

    “디그니타스 가입을 준비할 때 관련 내용을 한국존엄사협회에 문의한 적이 있다. 어머니를 보내드리고 나서 같은 처지의 분들을 돕는 활동을 하고자 협회에 가입했다. 2023년 11월 ‘죽을 권리의 날’ 행사에 참석해 회원들을 만났다. 정말 놀랍게도 그분들을 만나면서 위안을 받았다. 하나같이 ‘진짜 좋은 딸’이라며 부러워했다. 스위스에 가고 싶어도 동행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막막해하는 분이 많다. 사실 어머니의 의지가 확고하셨지만 가끔은 ‘내가 자식으로서 잘한 걸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그럴 때 협회 회원들이 ‘아니다, 어머니는 죽음을 원하신 게 1000% 맞고 당신은 정말 잘한 거다’라고 말해 줘 위로를 받았다.” 

    남유하 작가는 “죽음을 미리 생각하고, 마지막을 준비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홍태식 객원기자

    남유하 작가는 “죽음을 미리 생각하고, 마지막을 준비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홍태식 객원기자

    굳이 존엄사를 합법화해 기관을 만들어야 하느냐는 시선도 존재한다. 이런 이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가.

    “자살은 엄청난 고통과 불확실성을 수반하고, 남은 사람에게 트라우마로 남는다. 통증을 끝내고 싶어서 자살을 상상하는 사람들은 성공하지 못해 더 나쁜 상황이 올 것을 제일 두려워하더라. 그리고 무엇보다 자살은 고립된 죽음이다. 혼자 떠나야 하는 거니까. 반면 존엄사는 가족과 함께할 수 있기에 큰 의미로 남는다. 우리 어머니도 ‘인사하고 떠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아’라고 하셨고, 우리한테도 행운이었다. 사실 그린라이트를 받고도 몸 상태가 급속도로 나빠져 거기까지 가지 못하고 사망하는 경우도 너무 많다. 우리나라에 기관이 있다면 원하는 마지막을 맞이할 수 있을 텐데 안타깝다.”

    죽음을 터부시하고, 스스로 선택하는 죽음에 대해 아직은 닫힌 시각을 가진 우리 사회에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린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꺼린다. 그런데 스위스에 갔을 때 동네 한가운데 공동묘지가 있는 걸 보고 놀랐다. 그게 자연스러운 것이다. 죽음을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출생이 생의 시작이라면 죽음은 생의 마지막일 뿐이다. 삶의 마지막으로 죽음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했으면 좋겠다. 임종기 환자들이 병원에서 마지막을 맞는 방법은 자연스럽지 않다. 과거에는 집에서 돌아가시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는 병원에서 임종을 맞는 일이 보편화됐다. 사회가 바뀐 만큼 죽음에 대해 미리 생각하고, 나의 마지막을 준비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됐으면 한다.” 

    남유하 작가는…
    ‌● 2018년 ‘미래의 여자’ 제5회 과학소재 장르문학 단편소설 공모전 우수상 수상
    ● 2019년 ‘푸른 머리카락’ 제5회 한낙원 과학소설상 수상
    ● 소설집 ‘다이웰 주식회사’, 창작동화집 ‘나무가 된 아이’, 에세이 ‘오늘이 내일이면 좋겠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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