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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난의 땅’ 아프가니스탄을 가다

  • 이영일 < 한민족복지재단 아프가니스탄 의료지원단장 >

‘수난의 땅’ 아프가니스탄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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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운 ‘봄 초원’은 온데간데 없고 황량한 사막과 지평선이 눈에 들어오는 것의 전부다. 버려진 평야 곳곳엔 전쟁이 할퀴고 간 상처가 그대로 남아있다. 장갑차와 전차의 형해가 나뒹굴고 폭격으로 지붕을 잃은 폐가가 끝없이 이어졌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수난의 땅’ 아프가니스탄은 신음하고 있었다.

3월8일 우즈베키스탄의 타슈켄트를 떠나 아프가니스탄의 북부 도시 마자르 이샤리프로 향했다. 일행은 한의사 1명을 포함한 4명의 의사와 3명의 간호원, TV취재기자 3명과 한민족복지재단의 홍보대사인 탤런트 정영숙씨, 인솔책임을 맡은 필자까지 모두 12명이다.

우즈벡에서 아프가니스탄으로

타슈켄트의 고려인 마을 백지미르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우즈벡 최남단의 국경도시 테르메스에 도착했다. 장장 780km에 달하는 육로이동이었다. 사마르칸트를 통과하는 바로 이 길이 알렉산더 대왕과 칭기즈칸이 지나갔다는 그 유명한 실크로드다.

우즈벡 군인들의 수많은 검문을 받으면서 일그러진 포장도로를 14시간 동안 달려서 겨우 테르메스에 닿을 수 있었다. 들녘엔 봄기운이 완연했지만 파미르고원 서남단에서 뻗어내려온 산등성이엔 아직도 흰눈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아프간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나무 한 그루 없는 산들이 시야를 채웠고, 산도 들도 아닌 낮은 구릉과 초원이 이어졌다.

풀밭 위에선 양떼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2000년 봄 스코틀랜드를 여행하면서 본 풍경과 매우 흡사했다. 이곳 농부들은 춘분 때부터 시작되는 이슬람의 정월을 기점으로 농사일을 시작한다. 터번을 둘러쓴 농부가 말라빠진 나귀를 타고 가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띈다.

유엔에 등록된 NGO를 통해 입국허가를 신청한 사람과 단체에 한해서만 초청장과 아프간 비자가 발급된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의료선교와 문화선교를 하는 IACD(Institute of Asian Culture and Development)의 도움으로 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이 단체의 리더들은 의료선교사 혹은 목사로 한국의 교회들과 긴밀히 협조하고 있다.

일행은 서울 온누리교회에서 보낸 의료선교사 고세중씨의 가이드를 받으면서 이동했다. 고씨는 테르메스에서 저녁식사가 끝나자마자 아프간 입국시 주의사항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다. 요지는 다음과 같다.

“아프간에선 중앙정부의 지시를 지방정부가 따르지 않고, 부족간에 반목과 갈등이 심하다. 민간인들도 전쟁 때 지녔던 무기를 반납하지 않고 그대로 지니고 있어 사실상 무법천지나 다름없다. 따라서 누구도 안전을 보장할 수도, 받을 수도 없다.”

고씨는 또 아프간에 도착하면 개인행동은 물론 저녁 6시 이후에 숙소 밖으로 나가서는 안된다고 경고했다. 그가 하는 말을 듣는 순간 필자의 뇌리에는 아프간 여행을 줄곧 반대하던 아들과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당시 내가 인터넷을 통해 파악한 정보는, 알카에다 소속의 외국인 병사들이 아프간으로 다시 집결하면서 카불 남쪽 가데즈 지방에서 최후의 저항을 시작했고 미군은 알카에다 잔당을 소탕하기 위해 ‘아나콘다’ 작전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아프간 북부지방은 비교적 안전하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었다.

“북부지방도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고씨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필자는 그런 말을 듣고 동행한 사람들의 표정을 살펴봤다. 단단히 각오하고 왔는지 신앙이 돈독해서인지 모두들 아무런 동요가 없어 보였다. 일행 대부분이 유고슬라비아의 코소보, 인도 등지에서 의료봉사에 참여한 경험이 있고, 정영숙 홍보대사도 소말리아와 미얀마에서 구호사업에 나선 경험이 있기 때문인지 크게 당황하지 않는 눈치였다. 필자는 속으로 벌벌 떨었지만, 유엔이 주도하는 다국적군이 아프간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려할 만한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자위하면서 ‘여기서 되돌아갈 수는 없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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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일 < 한민족복지재단 아프가니스탄 의료지원단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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