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인물탐구

뽕짝 테크노의 원조 ‘신바람 이박사’

“자 한번 놀아 봅시다, 우르리리히~”

  • 이나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뽕짝 테크노의 원조 ‘신바람 이박사’

1/4
  • 《‘카 드라이브 뮤직계’의 황태자 이용석. 신바람 이박사로 더 잘 알려진 그는 관광버스 안내원 출신의 뽕짝 메들리 전문 가수다. 키지(Kitch)와 테크노(techno)의 유행을 타고 N세대 우상으로 부상한 40대 남자. 그 때묻지 않은 ‘블루 칼라의 목소리’를 듣는다. 》
우르리리히~! 안녕하세요, 저는 코리아의 신바람 이박삽니다~!

만장하신 여러분, 정말 반갑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요즘 ‘반갑습니다’라는 북한 노래가 유행이라지요? 그 노래도 잘 배워놔야겠어요. 그쪽 노래꺼정 합치면 제 트로트 메들리 레퍼토리가 훨씬 풍부해질테니까요.

자, 그럼 도대체 신바람 이박사가 누구냐, 법학박사냐 의학박사냐 미술박사냐, 그것이 궁금한 분들을 위해 제 소개를 좀 헐까 합니다.

제 이름은 이용석이라고 합니다. 54년 생이니 우리 나이로 마흔 일곱이지요. 구구절절 살아온 인생사는 퍽퍽하기 한이 없지만 그건 좀 있다 풀어놓는 걸로 하고, 한마디로 말해 저는 관광버스 안내원 생활 11년 만에 탁월한 목청과 애드립으로 카 드라이브 뮤직계(그러니까 리어카 판매 카세트테이프 업계)를 평정, 이후 또 11년 동안 전국 운전기사 여러분들의 절대적 사랑과 지지를 한 몸에 받아 온 뽕짝 디스코 메들리의 황태자입니다.

이거 너무 지 자랑이 심한 거 아니냐고 하실 분도 있으실 텐데, 사실 저는 건방진 거 하고는 거리가 한참 먼 사람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지요. 카세트테이프야 원 없이 팔아봤지만 큰돈을 벌었나요, 스타 대접을 받아봤나요, 그야말로 끼 하나 타고난 거말고는 쥐뿔도 없는, 우리나라 방방곡곡 어디를 가도 길가다 툭 어깨 마주치기 십상인 40대의 평범한 남잡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런 제가 요즘 어린 친구들 사이에서 마구 뜨고 있다는 거 아닙니까. 홍대 앞 테크노 바, 여러분 그런 데 가 보셨어요? 저는 가 봤습니다. 그냥 가 보기만 한 게 아니라 거기서 공연을 했어요. 모두 두 번을 했는데 장소가 어디였느냐, 요즘 그 동네에서도 제일 잘 나간다는 ‘명월관’이랑 ‘nbinb’였어요.

뽕짝 테크노, 애드립의 황제

그럼 여러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지난 6월 ‘nbinb’에서 이루어졌던 제 공연의 이모저모를 아주 사실적으로다가 묘사해드릴까 합니다. 아, 그리고 제가 그 테크노 바 이름을 한글이 아닌 영어로 써서 ‘역시 저 인간은 잘난 체를 해’ 하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으시다면 그만 오해를 풀어주십시오. 사실 저 그걸 우리말로 어떻게 읽어야 되는지 몰라서 헐 수 없이 이러고 있는 거거든요.

하여튼, 거두절미허고, 제가 그 바에 공연을 하러 뜩 갔는데 이건 가게 자체가 장난이 아니에요. 인기 탤런트 이제니 송혜교 씨, 인기 힙합그룹 DJ DOC 같은 분들이 자주 찾는다길래 참 좋은 덴가보다 짐작은 했는데 역시 대단하더라구요. 시쳇말로 ‘물’이 아주 다르더라 이 말입니다. 노란 머리, 빨간 머리, 보라색 머리, 총천연색 칼라 머리카락에 위로 솟아 묶은 분수형, 조명발에 반짝반짝 윤이 나는 빡빡이형까지 정말 없는 게 없는 거라. 그야말로 싸이키델릭 하더만요.

제 공연 시간은 밤 11시 좀 넘어서였는데 그 전에 웬 예쁜 언니 셋이 무대에 등장해 ‘바비인형의 해체기’라는 퍼포먼스를 했어요. 뭐 저야 거기 무슨 깊은 뜻이 숨어 있는지 아나요, 그냥 제 공연 준비에만 바빴지요. 하여튼 그 언니들 춤이 좋고 메시지도 좋았는지 관객들이 소리를 질러가면서 열광하더라고요. 그 다음 순서가 바로 저였는데, 사실 약간은 긴장이 됐죠. 과연 저 10대 청소년들이 내 모습, 내 노래, 내 무대 매너를 좋아할까 싶어서요.

그러나 제가 누굽니까. 노래 부르는 거라면 산전 수전 공중전 다 겪은 자칭타칭 대한민국 언더그라운드 대중음악계의 숨은 재주꾼 아닙니까. 무대에 서면 그저 기분 좋지 떨리는 건 없는 저인지라 평소대로 기세 좋게 달려나갔지요. 모시 바지저고리 정갈하게 차려 입고 초록색 반짝이 조끼까지 딱 걸쳐 입고요. 아, 탬버린, 탬버린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이박삽니다~!” 재빨리 인사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지요. 제 특기 있잖습니까, 뽕짝 디스코 메들리에 죽이는 애드립. 어허어허, 뛰리디리, 좋아좋아, 미쳐미쳐, 또로로로로로하, 넘어가요, 요시요시, 돌리고 돌리고, 짜라잔짠, 하 아 어 허 허… 한번 놀아 봅시다!

아주 제가 신이 나서 막 불러 제끼니까 이 어린 친구들이 얼마나들 좋아하는지요. 형형색색 머리채를 마구마구 흔들며 노래를 따라 부르고 어떤 애들은 아예 ‘꺄아아악’ 비명을 질러요. 이거 솔직히 천호동 둥근달 캬바레 식인데 그냥 여자 친구를 돌려가며 그렇게 춤을 잘 추더라구요. 아, 그 놀러온 사람들 중에는 제 팬클럽 회원들이 적지 않았다는 말씀도 드려야겠네요. 어떻습니까, 이 정도면 제가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뜨고 있다는 사실, 이제 여러분도 믿으실 수 있겠지요?

국악인이었던 아버지, 어머니

사실 제게 이런 날이 올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습니다. 물론 96년 일본 진출해 한 3년 대단한 인기를 누렸지만, 한국에서는 어렵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걸랑요. 저처럼 배운 것 없는 사람이, 비쩍 마른 게 볼품도 없고 나이도 많고 남의 노래나 요리조리 돌려 부르는 사람이 어찌 스타 되기를 꿈꿀 수 있겠습니까. 또 애초 마음적으루다가 그렇게 큰 욕심도 없었구요. 어 이 친구 보게, 이젠 또 지나친 겸손 부리네, 그렇게 비웃고 싶으신 분들, 제 살아온 얘기 한 번 들어 보실랍니까. 아마 이런 제 심정 100% 이해가 가실 겁니다.

저는 경기도 양주군 마석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요즘엔 거기 통기타 가수 나오는 라이브 카페가 참 많지요? 저 어릴 때만 해도 다시 없는 촌구석이었어요. 하여튼 제가 거기서 태어났는데 그때 우리 아버지 연세가 예순 하나였다고 그래요. 어머니요? 그 한 반쯤밖에 되지 않으셨죠. 참 우리 아버지 재주가 좋으셨던 모양이라.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아버지가 근동에서 유명한 국악인이셨어요. 소리만 잘 하시는 게 아니라 공부 많이 해 학식도 있고 자존심도 강하고, 하여튼 타고난 한량이셨답니다. 그런 양반이 어디 집에 가만히 붙어 계시겠습니까. 일제 때는 비행기 타고 일본 공연도 갔다 오고 해방 난 다음에도 방방곡곡 유랑 다니는 게 일이셨다니, 젊디 젊은 우리 어머니 밤톨같은 아들 셋 데리고 무진장 고생하며 사신 거죠.

우리 아버지는 임종도 객지에서 맞으셨데요. 제가 갓난애 때라니 당연히 아버지 얼굴이야 본 기억이 전혀 없죠. 그런데 속으로 보고 싶다 보고 싶다 자꾸 생각해서 그런지, 언젠가는 아버지가 제 꿈에 나타나셨어요. 갓 쓰고 도포 입고, 아주 인품 있게 잘 생긴 어른이십디다. 저는 지금도 꿈에 본 그 모습이 우리 아버지 꼭 그대로일 거라고 믿고 있어요.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나 생시 같을 수가 없지요.

우리 어머니도 소리를 참 잘 하셨어요. 얼마나 목청이 좋았느냐, 근동 어디 무슨 자리가 있다 하면 뽑혀다니면서 부를 정도였으니까. 육자배기도 하시고 경기민요도 하시고, 참 깐깐하고 말수도 적은 양반이셨는데, 제가 노래 좀 하는 거, 그거 다 아버지 어머니한테 대물림 한 것 같아요. 이건 증거도 있다니까요. 위로 쉰아홉 된 농사 짓는 우리 큰 형님, 지금도 논 매다 소리 한 자락 구성지게 뽑아내면 동네 아줌마들이 막 오줌 싸고 야단이야. 또 올해 쉰일곱 먹은 둘째 형님, 젊은 시절 읍내 콩쿨대회 나가면 상이란 상은 다 휩쓸었던 타고난 소리꾼이었어요. 우리 집안 내력이 대강 이렇다 그 말씀입니다.

각설하고, 전 딱 초등학교 졸업하고 공부는 땡 쳤습니다. 원래 공부를 싫어하고 잘 하지도 못했지만 아마 집에 돈푼만 좀 있었으면 울 어머니가 중학교쯤은 어떻게든 보내주셨겠지. 그때야 다들 어려웠으니까 뭐 그렇게 죽자고 나혼자 불쌍한 처지는 아니었다고 봐야지. 하여튼 그 와중에도 노래 부르는 거 하나는 참 좋아해서 초등학교 3학년쯤부터 남인수 씨 노래 같은 건 아주 꿰고 다녔어요. 애수의 소야곡, 무너진 사랑탑, 뭐 그런 것들 있잖아요.

초등학교 졸업하고 집 농사일 거들면서 그냥저냥 몇 해를 보냈어요. 그래도 아주 공부를 안한 거는 아니었어요. 다 우리 어머니 극성 때문이었는데, 먹을 양식도 없는 처지에 한 달에 겉보리 한 말씩을 주고 친구 아버지인 스님한테 가 한문을 배운 거라. 그걸 한 달도 빼놓지 않고 꼭 3년 동안 했어요. 어찌 보면 어린 놈이 제법 근성은 있었던 모양이지. 또 어머니한테 본격적으로 소리를 배웠지요. 지금도 그때 배운 가락들은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기억하고 있어요.
1/4
이나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목록 닫기

뽕짝 테크노의 원조 ‘신바람 이박사’

댓글 창 닫기

2018/1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