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심판들과 관계가 부드러워지면서 한 고비 넘겼다고 안도하는 순간 이번에는 한국 축구계의 관행이 그녀를 가로막는 장벽으로 다가섰다. 그라운드에서 ‘칼심판’으로 통할 만큼 규칙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이 그녀의 스타일. 그래서 프로심판으로 입문한 지 1년도 안 되는 기간에 선수들을 가장 많이 퇴장시킨 심판이라는 꼬리표를 달았다. 지금까지 그녀가 퇴장시킨 선수는 총 3명.
특히 99년 5월 열렸던 대한화재컵 울산 현대와 부산 대우 간의 4강전에서 울산 현대의 윤재훈과 부산 대우의 안정환을 연달아 퇴장시킨 것은 ‘사건’이었다. 안정환이 자신의 프리킥을 방해한 울산의 이길용을 발로 차자 즉시 퇴장판정을 내렸던 것. 당시 안정환은 ‘결승전에 뛰어야 하니 제발 퇴장만은 시키지 말아주세요’라며 경고판정을 부탁했으나 단호하게 퇴장판정을 고수했다.
“그건 누가 봐도 100% 퇴장감이었습니다. 볼을 차려다가 상대편 선수를 잘못 찬 게 아니라 볼과 상관없는 행동이었거든요. 더구나 제가 뒤를 돌아보는 순간에 찼기 때문에 의도적이라는 사실이 명백했죠. 다른 사람들은 못 봤는지 모르지만 퇴장판정을 내린 순간 안정환이 두 손으로 빌면서 부탁했어요. 저도 사람인데 왜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안정환 한 사람 봐주는 것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거든요. 그날 안정환을 봐주었다면 다른 경기에서 다른 선수들도 봐줘야 하는 겁니다. 그래야 형평성에 어긋나지 않죠.”
그녀가 가장 경계하는 것은 판정 원칙이 무너지는 것이다. 단지 규정을 제대로 지키기 위한 평범한 판정이었는데도 퇴장선수가 스타플레이어라는 이유로 그녀는 ‘스타플레이어 안정환을 퇴장시킨 대담한 심판’으로 화제가 됐다. 안정환을 퇴장시키기 전 그를 심하게 방어하던 상대팀의 윤재훈을 퇴장시킨 판정은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갔다.
“판정 원칙을 세우는 것과 함께 심판에게 중요한 일은 선수보호라고 생각합니다. 그때 윤재훈이 너무 과도하게 안정환을 방어하는 바람에 안정환이 다칠까 봐 선수보호 차원에서 퇴장판정을 내렸던 거예요. 마찬가지로 안정환에게 챈 이길용을 보호하고 규칙을 제대로 적용하기 위해 안정환을 퇴장시킨 것이구요. 스타플레이어라고 해도 심판에게는 다 같은 선수일 뿐입니다. 안정환을 퇴장시킨 것이 특별한 화젯거리가 되는 것은 이해할 수 없어요.”
그러나 주변의 시각은 달랐다. 구단장들도 “다른 사람이라면 못 했을 것”이라며 놀라워했고 허정무 감독도 “과감하게 잘했다”고 격려했다. 심판 임은주에게는 ‘당연한’ 판정이 축구계에서는 ‘용기 있는’ 판정으로 비칠 만큼 우리 축구계가 규정보다 관행에 휘둘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저와 선수들 사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규정을 엄격하게 적용해도 반드시 풀고 넘어가거든요. 경고나 퇴장판정을 받고 안 좋은 얼굴로 경기장을 떠났던 선수라도 다음에 만나면 꼭 농담을 건네서 기분을 풀어줍니다. 그래야 서로 앙금이 안 남죠. 안정환한테도 ‘정환아, 너 삐졌냐?’ 하는 말로 웃고 넘어갔습니다.”
그러니 제발 “스타플레이어 운운하며 큰일이나 되는 듯” 두고두고 회자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우리 선수들 규정 너무 모른다
“제가 규정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은 원칙을 지킨다는 측면도 있지만 우리 축구가 국제무대에 제대로 서기 위해서도 규정을 엄수하는 자세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나라 심판들과 얘기해 보면 하나같이 ‘한국선수들만큼 판정에 불만이 많은 선수들이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 선수들도 외국팀과 경기할 때마다 자꾸 억울하다고 하구요. 그건 규정보다 관행에 따라 축구를 해왔기 때문이에요. 외국에서는 규정에서 벗어난 관행이 통하지 않거든요. 그러니까 우리나라에서는 이렇게 했는데 왜 너희는 그렇게 하냐는 소리가 나오는 겁니다.”
심판으로 그라운드에 서서 답답함을 느낄 때는 규정을 너무 모르는 선수들이 항의해올 때다. 규정에 명백하게 나와 있음에도 정반대로 알고 있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다른 심판의 판정과 비교하며 항의하는 경우도 잦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그녀는 우리 심판계의 판정원칙이 바로 서야 한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융통성을 발휘하는 것도 좋지만 진정 축구를 사랑하고 선수들을 아낀다면 제대로 된 규정부터 축구관계자들에게 인식시켜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야만 선수들을 비롯한 축구관계자들과 심판들 사이에 신뢰가 싹트고 ‘판정이 공정치 못하다’느니 ‘편파판정’이라느니 하는 오해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축구팀 가운데는 일종의 징크스를 가지고 있는 팀도 있어요. ‘어느 심판만 들어오면 우리는 진다’ 하는 식이죠. 단순한 징크스일 수도 있지만 그건 곧 편파판정을 의심하는 겁니다. 그렇지만 오심은 있어도 편파판정은 있을 수 없습니다. 심판을 배정할 때부터 학연·지연까지 다 따져서 시비가 일지 않도록 배정하고 지켜보는 눈도 많은데 어떻게 편파판정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만큼 축구관계자들과 심판들 사이에 믿음이 없는 것이지요.”
특히 자기 팀이 불리하다 싶으면 누가 잘못했건 일단 심판에게 소리부터 지르고 보거나 경기에 진 이유를 심판의 편파판정으로 뒤집어 씌우는 감독도 종종 만났다. 처음에는 단순히 규정을 몰라 그러겠거니 여기다가 심판경력이 쌓이면서 한가지 특징을 발견했다. 바로 계약기간에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계약만료 시점이 임박한 감독일수록 경기성적이 재계약 여부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판정에 항의하는 일이 잦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자기편의에 의해 함부로 판정을 평가하는 관행도 결국 심판판정에 권위가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프로 축구는 관중을 위한 쇼
“돌아가신 대우 신윤기 감독님이 이런 얘기를 하셨어요. 경기 끝나고 나면 서로 인사도 없이, 마치 원수진 것처럼 돌아서버리는 축구계가 너무 무섭다고, 꼭 전쟁 같다구요. 그 말씀에 정말 공감했습니다. 경기성적이야 어떻든 어차피 정정당당하게 한판 승부를 겨룬 것인데, 이긴 팀이든 진 팀이든 마치 다시 안 볼 사람들처럼 경기장을 떠나버려요. 휑하니 빈 양쪽 벤치를 볼 때마다 기분이 참 이상합니다. 모두들 축구가 좋아 모인 사람들인데 꼭 그렇게 살벌하게 굴어야 할까 싶어요.”
물론 경기성적에 생계가 달려 있기는 해도 프로축구가 관중을 위해 존재하는 만큼 축구인들은 한가족이라는 생각을 가졌으면 하는 것이 그녀의 바람이다. 관중을 즐겁게 하기 위해 기량과 기술을 개발하고 좋은 경기를 펼치려는 노력이 경기성적보다 우선되어야 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라운드에 설 때마다 그녀는 경기를 최대한 재미있게 진행하려고 노력한다. 규정은 엄격하게 적용하되 경기 흐름은 끊지 않는 것이다. 그냥 넘겨도 좋을 만한 파울은 양쪽팀에 다 허용함으로써 선수들이 약간의 신경전을 펼치도록 하면 한결 박진감 넘치는 경기가 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심판의 존재를 자주 드러내지 않는 경기운영 방식이다.
이런 방식으로 99년 K리그 시즌에는 심판으로서 보람을 느끼는 경기장면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수원공설운동장에서 열린 수원 대 LG 경기. 수원팀 선수가 파울을 범했을 때 그대로 경기를 진행시켜 결국 최용수가 첫 골을 뽑게 했던 것이다. 이른바 어드밴티지를 살린 것인데 파울이 났을 때 뒤에서 뛰어들어오는 최용수를 보고 다음 상황을 예측할 수 있었기에 가능한 판단이었다.
“심판을 보면서 바로 그런 때 보람을 느낍니다. 선수들의 잘못을 잡아내는 것이 아니라 경기를 정정당당하고 박진감 넘치게 운영해 관중을 즐겁게 만드는 거죠. 그 일로 선배심판들과 부심들에게 엄청나게 칭찬 들었습니다. 웬만큼 노련한 심판도 경기를 끊을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판단이 절묘했다면서.”
휘슬 부는 연습을 따로 하고 멋진 사인 폼을 익힌 것도 모두 관중을 즐겁게 하려는 의도였다. 그라운드에서 되도록 가볍게 뛰기 위해 은광여고 육상부를 찾아 달리는 자세를 교정받았다. 또 휘슬 소리를 좋게 하기 위해 휘슬 잘 불기로 유명한 선배심판을 괴롭혀가며 노하우를 전수받았고 거울 앞에서 심판 사인을 끊임없이 연습한 후 가장 좋은 폼을 골라내기도 했다.
요즘 그녀가 몰두하고 있는 것은 집중력 기르기와 단점 교정. 선수들의 순간적인 행동을 보고 재빨리 판단을 내려야 하기 때문에 시야를 넓게 가지면서도 예리하게 관찰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기 위함이다. 거리를 걸으며 ‘방금 나를 지나쳐간 사람이 모두 몇 명이지?’ ‘무슨 옷을 입고 있었더라’ 하는 식의 훈련이 아예 습관처럼 돼버렸다. 그리고 그라운드에서 선수들 사이로 너무 깊게 파고들다가 선수들과 부딪치거나 공에 맞거나 하는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그동안 녹화해 둔 비디오테이프를 보며 개선책을 찾는 중이다.
올림픽까지만 뛰면 미련없다
여성심판으로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여자축구경기에서 심판을 볼 기회가 너무 적다는 것이다. 1년에 남자 경기를 300번 정도 보면 여자 경기는 1∼2건에 그칠 만큼 침체돼 있는 실정. 그래서 어쩌다 여자경기를 맡으면 오히려 어색하다.
“우리나라 여자축구가 침체된 것은 역사도 짧고 팀도 너무 적은데다 축구협회의 지원도 없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도 아시아권 16개팀 중에 5위 안에 든 것을 보면 역사에 비해 성과는 크다고 봐야 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여자축구팀이 너무 없다는 거예요. 7∼8년 동안 호흡을 맞춘 대표팀만 강한데 대표팀 선수들이 모두 인천제철팀이니 실력을 겨룰 만한 상대팀이 국내에는 없어요. 당장 시급한 문제가 선수들을 많이 길러내는 겁니다.”
문화부는 99년 8월 여자축구 실업팀을 대거 창단하고 대폭적인 재정지원도 하겠다는 여자축구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좀 늦긴 했어도 반가운 일입니다. 우리나라는 여자구기 종목이 강하잖아요. 선수층만 두터워지고 지원만 확실히 된다면 틀림없이 인기 스포츠가 될 겁니다. 실제로 중국이나 일본, 북한 같은 곳은 여자팀도 남자팀 못지않게 실력도 좋고 관중들에게 인기도 높습니다. 선수를 기르는 일과 함께 여자 감독, 코치, 트레이너 등 여자 지도자들을 기르려는 노력도 물론 해야지요.”
국제여성심판으로서 세계 랭킹 1위이자 아시아 랭킹 1위. 여성심판의 역사가 오래된 아시아권에서조차 결승전에 여성심판을 투입하지 않는 관행을 깨고 97년 아시안게임컵 대회 결승전 심판으로 투입돼 ‘타이거’라는 심판계 최고의 명성을 얻기도 했다. ‘최초’에서 ‘최고’로 타이틀이 발전을 거듭했으니 그녀에게 더 이상의 난관은 없을 것처럼 보인다.
“아닙니다. 이대로 머물 순 없습니다. 제가 심판을 하면 몇 살까지 할 수 있겠습니까? 프로축구, 아시안게임, 월드컵 다 뛰어봤으니 이제 올림픽만 남았어요. 올림픽 결승전에서 뛰어보는 것이 심판으로서 제 마지막 소망이거든요. 그러고 나면 크게 미련은 없을 것 같습니다.”
심판직에 대한 미련이 없어질 그날을 대비하기 위해 그녀는 슬슬 새로운 도전을 꿈꾸고 있다. 스포츠마케팅을 공부한 후 장차 체육 행정인력이 되는 것. 우선 국내 대학원에서 스포츠마케팅을 공부하다가 유학을 떠날 계획을 세워두었다. 그러나 심판직을 그만두는 날까지 그녀는 ‘칼심판’의 ‘악역’을 고수할 작정이다. 명예로워서가 아니라 관행에 물든 우리 축구계가 자신 때문에 조금이라도 달라졌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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