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이 몸에 뱄다. 인사하기가 취미인 것 같다. 만나고 헤어질 때 악수 한번이면 족한데도 민망할 정도로 꾸벅 인사를 한다. 도무지 미국사람 같지 않다. 스티브 린튼. 한국명 인세반. 1950년에 태어났으니 우리 나이로 53세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 서교빌딩 605호. 사무실 벽면에는 북한에서 만든 ‘조선 지도’가 걸려있고, 그 지도엔 유진벨 재단이 북한에서 운영하는 결핵요양소와 병원이 위치한 도시가 표시돼 있다. 언뜻 50~60군데는 넘어 보인다.
전라도 촌놈
그는 “미국사람이 아닌 것 같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고 했다. 스스로 “자기정체성을 잃어버린 미아”라고도 했다. 전라도 억양이 강한 말투, 예의 바른 행동은 토종 한국인보다도 더 한국인 냄새를 풍긴다.
“아내는 미국인이 돼있고 저는 한국인이 됐습니다. 그것도 도시에 사는 한국인이 아니라 촌구석에 사는 촌스러운 한국인이에요.”
린튼이 미국에 공부하러 갔을 때의 일이다. 그는 아버지 고향인 미국 남부 사투리를 썼는데 상대가 자신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고 한다. 린튼도 뉴요커가 내뱉는 말에 어리둥절하기는 마찬가지였다고.
“전라도에서 선교사로 일한 아버지는 남부출신인 할아버지의 말투를 배웠습니다.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랐으니 저도 남부사투리를 썼겠지요. 그런데 문제는 제가 쓴 말이 1900년대 초의 남부 말이란 거예요. 본토와 단절된 곳에서 3대가 격리돼 살아왔으니, 옛 말씨를 그대로 쓸 수밖에요. 별 우스운 시골뜨기가 다 있다 했을 겁니다.”
린튼은 미국에선 ‘남부 촌놈’이고 한국에서는 ‘전라도 촌놈’이다. 그는 “미국인의 정체성도 한국인의 정체성도 지니고 있지 않지만 영원한 촌놈인 것은 분명하다”며 씩 웃었다.
-김일성 주석을 세 번 만났다고 들었습니다. 김주석의 인상은 어떻던가요. 우리 세대는 그가 ‘최고의 악인’이라고 교육받고 자랐습니다.
“1992년 빌 그레함 목사와 함께 방북했을 때 처음 만났습니다. 그리고 1993년 그레함 목사의 아들과 함께 북한을 찾았을 때도 봤고, 마지막으로 1994년 카터 대통령의 방북 2개월 전에 마지막으로 자리를 함께 했습니다. 세번째 만남에선 카터 대통령의 방북 관련 구두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지요.
통역한다는 구실로 김주석을 세 번이나 만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입니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 김주석이 그레함 목사의 부인에게 많은 관심을 표명하더군요. 부인은 선교사의 딸로 어린 시절 평양에서 자랐다고 해요. 그레함 목사도 아내의 소녀시절 얘기를 하며 평양과의 특별한 관계를 말하더군요. 미북, 남북 사이에 긴장이 고조돼 서로를 경계하던 때였는데 덕분에 딱딱한 분위기가 금세 녹아버렸습니다.”
-김주석이 무섭지 않던가요. 부시 대통령의 발언을 원용하면 원조 ‘악의 축’인 셈인데요.
“목소리가 우렁차고 카리스마가 있는 사람이에요. 나이 든 사람들도 김주석이 질문하면 벌떡 일어나 대답하더군요. 그를 무서워하기보다는 존경심을 갖고 있는 것 같았어요. 일화를 한 가지 소개해 드릴게요. 아무리 한국말을 잘해도 통역하면서 실수할 때가 있지 않습니까.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 머뭇거리면 곧바로 ‘조선말을 잘하는군요’ 하고 칭찬을 해줘요. 당황하지 않게 배려하는 것 같았습니다. 통역이 마땅찮다고 한마디 할 법도 한데 거꾸로 ‘조선말 수준이 조선사람보다 낫다’고 치켜세워주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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