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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의 색깔 있는 문화이야기

‘모나리자’에 살아 있는 진보주의

  • 박홍규

‘모나리자’에 살아 있는 진보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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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정신이나 사고 일변도가 아닌 육체와 정신의 합일을 인정한다. 육체 부정이 아닌 육체 긍정이다. 인간의 본능을 모두 인정하며 그를 어떤 하나의 가치에 환원시키지 않는다. 육체관계의 양식도 고정될 수 없으므로 이성애나 동성애 모두 사랑으로 존중한다. 신체에 대한 과학적 관심이 생긴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는 둘째 생활양식인 다원성과도 연결된다. 즉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구별이나 경계 짓기에 따른 배타가 아닌,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는 다원성의 인정이다. 하나의 절대(絶對)가 아닌 다수의 상대(相對)다. 단수가 아닌 복수다. 배타는 고립 아집 분열이나 다원은 연합 연결 연대다.

셋째, 다원성은 유일한 도그마나 교리가 아닌 다양한 사고 경험 실천을 존중한다. 보편이 아닌 특수의 인정이며, 일반적 원리를 강요하는 것이 아닌 특수한 상황의 상호 이해다. 논리적 조작이 아닌 수사적 이해이며, 이상의 수학적 이론화가 아닌 현실의 상황적 이해다. 공간적으로 모든 것을 하나의 자리나 형상에 짜넣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것을 서로 다르게 묘사하고 설명하고 이해하며, 시간적으로는 초시간의 영원이 아닌 특정 시점의 상황을 그대로 인정한다.

넷째, 따라서 다원성은 억압이나 구속이 아닌 자유, 상하의 계급이 아닌 평등을 전제한다. 육체나 정신의 구속은 있을 수 없다. 정신적·육체적 자유는 극한까지 인정되어야 하고, 범죄가 아닌 한 인간의 행위에 대한 어떤 제한도 있을 수 없다. 따라서 그것을 제한하는 ‘불의’에 대해서는 ‘순종’이 아닌 ‘저항’이라는 사회적 태도가 생긴다. 모두가 자유인만큼 모두는 평등하다.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구별이 없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직접 민주주의를 추구한다.

다섯째, 전문화가 아니라 통합화다. 일부러 경계를 지어 보는 것이 아니라 본래의 전체로 보는 것이다. 인간사를 공과 사로 구분하지 않고 일치시키며, 지성이나 감성의 여러 영역을 구분하지 않고 통일시킨다. 나아가 예술·과학·철학도 구분하지 않는다. 따라서 프로페셔널이 아니라 아마추어다. 정치적으로는 전문관료에 의한 것이 아닌, 시민이 모든 분야에 참여하는 방식을 추구한다. 물론 시민이 모든 정치기구에 직접 참여할 수 없는 까닭에 대표가 필요하나, 그 대표에게는 시민의 감시를 통해 책임을 지운다. 참여와 책임,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 정치의 원리다.



르네상스가 이상적인 민주주의를 구가한 시대는 아니나, 민주주의 생활의 토양이 어느 정도 형성된 때인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민주주의 토양에 나는 자연에 대한 사랑을 더하고자 한다. 르네상스에서 자연을 재발견한 것은 아니나, 17세기 자연에 대한 인간의 정복을 주장하기 전, 인간은 자연 속에 존재함을 르네상스는 ‘당연히’ 인정했다. 그런 ‘자연애’의 자세로부터 우리는 레오나르도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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