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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의 색깔 있는 문화이야기

‘모나리자’에 살아 있는 진보주의

  • 박홍규

‘모나리자’에 살아 있는 진보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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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를 만능인이라고 한다. 화가 건축가 음악가 과학자 정치가 등등. 그러나 그는 먼저 자연인이었다. 이는 어린 시절을 보낸 조용한 시골에서 형성된 고독한 자연관찰, 자연사랑에 기초한다. 그후 도시에서 보낸 날들은 그에게 혐오감을 준다. 그에게 도시는 거대한 자연 속의 작은 인간사회일 뿐이다. 따라서 그는 도시에 운하를 파거나 건물을 지을 때 언제나 자연 전체로부터 조감하는 자세, 즉 멀리서 바라보는 자세를 취한다. 그는 늘 도시의 에트랑제였다. 웅대한 자연 속의 ‘모나리자’가 그것을 상징한다.

레오나르도는 1452년 4월15일, 피렌체 부근의 빈치에서 태어났다. 빈치는 피렌체에서 40km 정도 떨어진, 사탑으로 유명한 도시 피사로 가는 길에 있는 올리브와 포도의 마을이다. 그가 태어난 시골 오두막집은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그 마을은 얼마 전까지도 한갓 시골에 불과했으나, 1993년 그곳에 ‘유토피아예술과 지구문명에 관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라는 기념관이 들어서면서 다시 눈길을 모으게 됐다. 그런데 그 이름이 흥미롭다. 레오나르도의 예술이 유토피아적이며 그 학문이 ‘지구문명적’이라는 시각은 그의 전인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고향 풍경과는 달리 레오나르도는 사생아라는 불행을 타고났다. 그러나 그 점은 오히려 그를 권력이나 부에 종속되지 않는 자유인으로 살게 한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 평생 직장도 없이 아이들처럼 장난감을 만들거나 들판을 누비며 순진하고 자유로운 삶을 산 숙부는 레오나르도의 일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프로이트는 그를 레오나르도의 동성애 형성자로만 보았고, ‘모나리자’를 비롯한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상의 양성적 요소를 강조하는 견해도 있으나, 그가 정말 동성애자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레오나르도를 이해하기 위한 핵심은 그가 그 시대와 결코 친하지 못했고 도리어 시대를 반역한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그가 동성애자였다면 그 점도 시대에 대한 반역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반역은 무신론자였다는 점이다. 이는 정치도 경제도 과학도 도덕도 전쟁도 모두 신의 이름으로 행해진 시대에는 대단한 반역이었다.

당시 가톨릭에 저항하는 것만도 대단한 반역이었는데, 무신론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사형에 처해질 범죄였다. 따라서 그는 결코 자신이 무신론자임을 밝히지 않았고 과학연구나 예술 표현을 통해 간접적으로 드러냈을 뿐이다. ‘모나리자’나 ‘최후의 만찬’도 과학연구에서 비롯한 생명의 신비에 대한 탐구에 바탕을 둔 것이다.



레오나르도는 미술이나 건축뿐 아니라 자연과학·의학·물리학(광학)·항공학까지 여러 학문에 정통해 근대 예술과 과학의 막을 열었다. 우리는 흔히 예술과 과학은 상극이라 생각한다. 예술가와 과학자는 전혀 다르다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다. 그러나 르네상스에서는 예술과 과학은 물론 어떤 문화도 서로 구별됨 없이 모두 하나였다.

레오나르도를 더욱 뚜렷한 개성의 소유자로 만든 또 하나의 요인은 청소년기에 한 아틀리에 그림 공부다. 이는 레오나르도만이 아닌 르네상스 예술가 모두에게 해당하는 것이어서 더욱 중요하다. 즉 개인주의적 예술가의 탄생 비밀이 아틀리에 교육에 있다는 것이다.

당시 아틀리에는 단순한 개인 작업실이 아닌 거대한 공동작업실이자 미술연구소이며 또한 유일한 미술교육 장소였다. 말하자면 미술 그 자체, 미술의 전부였던 셈이다.

르네상스 이후 아카데미가 생겨 미술교육의 중심이 되었으나, 우리나라의 종합대학교 미술대학에서처럼 교육이 이루어지는 곳은 극히 드물었다. 서양에서는 아틀리에든 아카데미든 간에 입학시험부터 졸업까지의 미술교육 전체가 그야말로 ‘미술’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고등학교 교육 성과를 시험하는 모든 대학 공통의 획일적 입시제도(물론 실기시험이 있으나 그 비중은 크지 않다)를 기본으로 해 획일적인 미술교육을 시킨다.

이런 방식을 통해 ‘천재’ 예술가가 탄생할 수 있을까는 중대한 의문이다. 물론 이는 지난 반세기, 대학에서 배출된 ‘천재’ 예술가들을 부정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함에 불과하다.

르네상스 아틀리에에서는 스승과 제자가 함께 생활하며 제자가 스승의 작업을 돕는 과정에서의 인간적인 교류를 통해 그야말로 몸으로 기법을 익혔다. 그래서 르네상스 예술의 발전과 보편성의 근본원인을 아틀리에 교육에서 찾는 학자가 적지 않다. 삶·노동·지성·사회와 함께하는 예술교육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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