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호

“교전규칙 얽매인 건 형식주의와 기회주의에 빠진 탓”

조성식 기자의 Face to Face 21 - 한나라당 국가안보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 김장수 의원

  • 조성식│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입력2010-12-21 11: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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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평도 사태에서 가장 아쉬운 건 공군력 쓰지 못한 것
    • 지휘부와 통수권자의 결심이 중요하지 교전규칙 개정이 능사 아니다
    • 확전과 전면전은 달라… 전투기로 때려도 전면전 안 일어난다
    • 연평도에 장거리미사일 배치하자는 건 포퓰리즘 발상
    • 때릴 때 때리더라도 대화채널은 유지해야
    • 노무현 정부 시절 안보 관련 회의 때 혈혈단신 느낌
    “교전규칙 얽매인 건  형식주의와 기회주의에 빠진 탓”

    ●1948년 광주 출생<br>●육군사관학교 27기<br>●합참 작전본부장,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육군참모총장<br>●2006년 국방부 장관<br>●18대 국회의원(한나라당, 국방위)

    인간이 만든 게임 중 가장 잔인한 것이 전쟁이다. 국가 간 폭력의 충돌인 전쟁은 반(反)지성의 극치다. 하지만 인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 할 만큼 크고 작은 전쟁이 문명의 물줄기를 바꿔왔다. 지금도 세계 곳곳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거나 전운이 감돌고 있다. 이는 인간이 아무리 지적인 체해도 세계를 움직이는 근원적인 힘은 폭력이고, 결정적인 순간엔 폭력의 결정체인 전쟁에 공동체의 운명을 맡긴다는 걸 뜻한다.

    북한의 연평도 도발 이후 과연 남북 간 전쟁이 벌어질지 세계의 촉각이 곤두서 있다. 전쟁의 유형 중 가장 비극적인 것 두 가지를 꼽는다면 종교 간 전쟁, 동족 간 전쟁일 것이다. 이데올로기가 다르다는 이유로 같은 민족끼리 피를 보는 건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광란의 학살극을 벌이는 것 못지않게 비참하고 어처구니없다. 21세기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치킨게임은 그 어처구니없음의 극치를 보여준다. 예수의 가르침대로라면 백령도도 때려달라고 북에 정중히 부탁해야겠지만, 현실은 그렇게 거룩하지 않다. 북의 뺨을 더 세게 때리거나 다리몽둥이를 부러뜨리고 싶은 게 지배적인 국민정서다.

    안보문제가 국민의 최대 관심사로 떠오른 가운데 한나라당 김장수(62) 의원을 만난 건 전쟁 얘기를 해보고 싶어서다. 반지성이든 폭력이든 전쟁은 그 자체로 문명이고 기술이고 생활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국민 누구나 싸워야 한다. 지적인 세계에 머물다 조국 독일에 대한 국민적 의무를 다하기 위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는 소설 ‘마(魔)의 산’의 주인공 한스 카스토르프처럼 말이다.

    국회에 넘쳐나는 군사교본 용어

    병역미필자들이 화려한 상층운(上層雲)을 형성한 현 여권에서 몇 안 되는 안보 전문가로 통하는 김장수 의원은 연평도 사태 이후 한나라당에 신설된 국가안보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그는 노무현 정부 시절 육군참모총장과 국방부 장관을 지냈다.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 때 김정일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아 ‘꼿꼿장수’라는 별명을 얻으며 국민적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김 의원은 “조 기자와 인터뷰한다니까 주변에서 ‘공격적인 인터뷰로 소문 나 있으니 조심하라’더라”며 농을 건넸다. “뭐, 안보문제에서 공격적일 게 있겠느냐”고 그를 ‘안심’시켰다. 단정한 8대 2 가르마와 노란 넥타이가 눈길을 끈다. 그리고 길고 가느다란 담배.

    인터뷰 주제와는 상관없지만 워낙 흥미진진한 사건이라, 새해 예산안 처리과정에서 벌어진 국회폭력사태를 두고 잠시 얘기를 나눴다. 여러 건의 폭력행위 중 단연 돋보인 건 군(육군 대령) 출신인 한나라당 김성회 의원이 운동권(전남대 삼민투위원장) 출신 민주당 강기정 의원에게 날린 깔끔한 훅이었다. 비록 김 의원만큼 위력적이진 않았지만 강 의원이 먼저 주먹을 썼기 때문에 김 의원의 한 방은 카운터펀치인 셈이다.

    “정치판이 제 기능을 못할 뿐 아니라 국민에게 잔뜩 실망만 안기고 있으니 참 할말이 없지. 나도 국회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지만 너무 실망스러워. 육박전이니 공격개시니 사수, 탈취… 군사적인 용어가 난무해요.”

    ▼ 군 출신 의원들이 빠르게 적응해가는 것 같아요.

    “나도 그런 얘기 들으면 되게 싫어요. 군사교본에 나오는 용어가 국회에서 사용된다는 게. 또 의원들 보면 말로 죄를 너무 많이 지어. 나는 의원총회를 거쳐 당론으로 정해진 법안에는 찬성표를 던지지만 내가 잘 모르는 법안에 대해선 기권해요. 어떤 법안이든 순기능 뒤에는 역기능이 있거든. 소수와 약자, 소외된 계층에 대한 배려가 담겨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국회의원 개개인의) 선택의 문제지만 그런 게 늘 두렵더라고.”

    ▼ 김 의원께서 직접 발의한 법안으로는 어떤 게 있지요?

    “제정입법으로는 ‘국방정보화 기반조성 및 정보자원 관리에 관한 법률’이 있어요. 현재 우리 군에는 각종 정보자원을 통합 관리하는 컨트롤 타워가 없어요. 장관 할 때 뼈저리게 느꼈지요. 국회에 들어와 1년여에 걸쳐 조사한 뒤 관련 법안을 만들었습니다. 또 일부 개정법률안으로 국방군사시설이전특별회계법이 있습니다. 지금은 군에서 쓰던 땅을 팔면 (대금이) 기재부(기획재정부)로 들어가요. 국고로. 군사시설 이전으로 생긴 땅은 군이 팔아서 그 대금을 군이 쓰게 하자는 게 법안 취지예요. 기재부에서 반대가 심했지만 내가 군의 실정을 설명하며 설득했어요.”

    그가 위원장을 맡은 국가안보대책특별위원회는 6개월 한시기구다. 6개월 동안 안보대책을 연구해 정부에 보고서를 제출하는 게 임무다. 구성 인원은 한기호 의원과 육해공군 예비역 장성 세 명, 한국국방연구원(KIDA), 여의도연구소, 한나라당 정책위원회 등에서 지원받은 인력 등 안보전문가 10명이다.

    “공군력 사용했어야”

    그는 연평도 사태 직후 연평도에 다녀왔다. 소감을 묻자 “비참했다”고 말했다.

    “민가가 파괴되고 사상자가 발생한 데 대해 주민들한테 굉장히 미안하더라고. 한때 군에 몸담았던 사람으로서 이런 일을 사전에 예방하지도 못하고 야무지게 응징하지도 못한 것이. 한편으로는 그 어려운 여건에서도 우리 해병대 용사들이 최선을 다했다는 걸 느꼈어요. 실제로 현장에 가보니 알겠더라고. 병사들의 등을 두드려주면서 격려했어요. 기술적인 문제 몇 가지를 지적하긴 했어요. 왜 고폭탄만 쐈느냐, 피해를 더 줄 수 있는 DPICM(이중목적개량탄)을 쏘면 더 좋지 않았느냐. 포상(砲床)이 왜 주진지 한 군데밖에 없느냐. 자주포는 진지를 자주 옮길 수 있는 이점이 있거든요. 한 번 쏜 다음 다른 데로 이전하면 적은 처음 포탄이 날아온 곳만 겨냥하거든. 따라서 주진지 외에 예비진지나 보조진지를 갖추고 있으면 좋다는 거지. 물론 (자주포) 여섯 문을 정상적으로 다 쐈다 해도 (북한 포에 비해) 절대적으로 열세지만.”

    그는 “연평도 사태에서 가장 아쉬웠던 건 공군력을 운용하지 못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위권을 행사하는 데 무슨 놈의 교전규칙이냐 말이야. 국제적으로도 인정받는 게 자위권을 행사할 때는 상대방의 기본적인 권리까지 제한할 수 있다는 겁니다. 교전규칙은 유엔사령부가 정전(停戰)협상과 관련해 평시에 우발적인 충돌이 있을 때 단계별로 취할 수 있는 조치를 제한한 것이에요. 이른바 전면전으로 비화하는 걸 막기 위해. 그런데 이건(연평도 도발) 교전규칙에서 벗어난 거예요. 자위권 차원에서 무력을 사용하는 건 교전규칙과 상관이 없어요. 내가 합참 작전부장과 작전본부장을 지냈기 때문에 잘 알아요. 그렇다면 당연히 위에서….”

    ▼ 만약 그때 F-15K로 때렸다면 어떻게 됐을 것 같습니까.

    “적이 쏜 게 122㎜ 방사포인데 당시 (개머리 지역 외에) 다른 지역에도 적 포병이 전개돼 있었어요. 사격대열을 유지하고 있었지. 우리가 122㎜포를 공중 폭격했다면 사전에 준비돼 있던 다른 포병부대에서 또 다른 도발을 했을 가능성이 있어요. 다시 도발하면 다시 응징하는 거지. 우리 비행기가 4대만 있는 게 아니니. 추가로 출동하면 되니까.”

    ▼ 일각에서 우려하는 확전인데요.

    “확전을 전면전으로 생각하면 안 돼요. 전면전은 쉽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북한도 전면전을 하려면 준비가 필요해요. 후방 부대를 전방으로 내보내야 해요. 보병사단이든 기갑사단이든. 예비군도 동원해야 하고. 전방 DMZ(비무장지대) 지역 포병진지도 사격준비를 갖춰야 하고. 그런 준비와 절차 없이는 전면전을 벌일 수 없지요. 그 정도 징후는 우리가 다 파악해요. 아주 원시적인 방법에 의한 적 침공은 막기 힘들겠지만. 베트남전에서 미군이 팍팍 나가떨어진 것처럼.”

    “확전이 곧 전면전 아니다”

    ▼ 대통령이 확전과 전면전 개념을 구분하지 못하니 당시 청와대에서 확전 방지 지침이 나온 것 아닙니까. 국방부 장관이나 합참의장이 그런 문제에 대해 대통령에게 제대로 주지시키지 못했거나.

    “대통령이 군사상황에 대해 빠삭하실 필요는 없어요.”

    ▼ 그렇겠지요. 그런데 그 문제는 (통수권자로서) 기본 아닌가요?

    “옆에서 조언을 해드려야죠. 장관이 시의적절하게 건의도 하고. 그런데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청와대) 홍보라인 혼선으로 ‘확전 방지’라는 말이 나왔다는 것 아닙니까.”

    ▼ 그 말이 청와대 내부에서 나온 건 사실이잖아요?

    “모르겠어요. 누구의 입에 의해 어떻게 전달된 건지. 그러나 나중에 대통령께서 합참을 방문해 하신 말씀을 보면, (상황을) 다 아시던데요.”

    ▼ 어쨌든 그 말 때문에 여론이 몹시 안 좋게 돌아갔지요.

    “원칙대로 하자면, 군이 ‘세게 때려야 한다’고 말하면 대통령이 ‘적당히 하라, 절제된 무력을 사용하라’고 지시하는 게 맞지요. 그것이 문민통제원칙에도 맞아요.”

    “교전규칙 얽매인 건  형식주의와 기회주의에 빠진 탓”

    2007년 4월 중국을 방문한 김장수 국방부 장관이 원자바오 총리와 환담하고 있다.

    ▼ 말씀을 듣고 보니 군 지휘부도 확전과 전면전 개념을 구분하지 못했던 게 아닌가 싶네요.

    “성경에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교훈을 주의하라’는 예수님 말씀이 있어요. 그 사람들의 완고하고 위선적인 형식주의를 경계한 말씀이지요. 우리 군 간부들에게 해당되는 얘기예요. 교전규칙에 얽매인 게 바로 형식주의입니다. 거기에 정치적인 기회주의와 현세적인 물질주의….”

    ▼ 기회주의라는 건 보신주의를 뜻합니까.

    “자기 앞길 생각한 보신도 될 수 있고 상부 눈치를 살피는 것도 될 수 있고.”

    내가 ‘형식주의, 기회주의, 물질주의…’라고 되뇌자 그가 덧붙였다.

    “우리 간부들이 그런 걸 조심해야죠. 자기 직분에 충실해야죠.”

    그는 맑은 피부에 걸맞지 않게 담배를 많이 피웠다. 또 팔짱을 자주 끼었다. 말할 때 습관적으로 팔짱을 끼는 사람은 자신감이 넘치는 유형이다. 장관을 지낸 사람으로서 자신의 전공 분야에 대해 인터뷰하는 것이니 그럴 만도 하리라.

    “지난 3년간 뭐 했나”

    ▼ 노무현 정부 때 육군참모총장과 국방부 장관을 지내셨잖아요? 노무현 정부와 김대중 정부 때는 햇볕정책을 폈고 군도 거기에 보조를 맞춘 면이 있지요. 보수 진영에서는 연평도 사태의 원인이 햇볕정책이라고 주장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그럼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3년이 다 돼 가는데 그동안 뭐한 겁니까.”

    그의 표정이 굳어졌다. 목소리도 높아졌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때는 (북한과의 관계 설정에서) 두 가지 축이 있었습니다. 화해·협력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든든한 안보. 군이라고 해서 정치적 분위기나 사회 분위기에서 완전히 동떨어질 순 없어요. 독립된 섬이 아니에요.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지요. 그 와중에도 군은 우리의 가장 현실적인 적은 북한군이라고 교육을 해왔어요. 모든 전술훈련에서 적은 늘 북한군이었습니다. 평화를 추구하되 북한군에 대한 적개심과 필승의 신념은 지켜가야 한다는 게 우리 군 수뇌부와 간부들의 고민이었습니다.”

    ▼ 정부의 햇볕정책이 군 정신력을 약화시키지 않았습니까.

    “전혀 영향을 안 받았다고 부정할 순 없지만, 군은 그 와중에도 최선을 다했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런데 나를 부정하는 질문을 하니…(웃음)…아니, 내가 그 시절 육군참모총장을 하고 국방부 장관을 했는데 나를 부정하는 질문을 하니 할 말이 없네.”

    그가 어색하게 웃었다.

    ▼ 육군참모총장과 국방부 장관을 지내고 현재 국회 국방위에 몸담은 분으로서 연평도 도발의 원인을 어떻게 보십니까.

    “우리가 아무리 잘해도 북한은 체제유지를 위해 뭐든지 하는 집단이에요.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이상희 국방장관 시절 김정은 이름이 나올 때 내가 국회 상임위(국방위)에서 말했어요. 분명히 후계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해 우리가 예상치 못한 도발을 할 것이고 그 중심은 서북도서가 될 거라고. 앞으로도 후계체제를 위해 또 다른 도발을 할 가능성이 있어요. 후계체제를 안정시키는 데는 군부의 지원이 절대적인데 군부에 강한 인상을 심어주는 길은 남조선과 미 제국주의를 혼내는 것이거든요.”

    ▼ 햇볕정책과는 별 상관이 없어 보이네요.

    “햇볕정책이건 달빛정책이건 중요한 건 그네들의 체제유지야. 거기에 더해 경제지원을 받겠다는 거예요.”

    ▼ 천안함 사건 이후 우리의 안이한 안보태세가 연평도 도발을 촉진했다는 진단도 있지요?

    “안타까운 일인데, 지자체 선거 때 ‘전쟁이냐, 평화냐’ 떠들어대니 국민이 불안했지. 어차피 우리가 극복해야 할 과제예요.”

    “병력 증강한다고 좋은 게 아니다”

    연평도 사태 이후 군은 황급히 이런저런 대책을 내놓았다. 골자는 지금보다 훨씬 더 강력한 무기들을 배치해 연평도 방어 전력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 여론을 의식한 전시성 조치가 아니냐는 지적이 있습니다. 특히 장거리미사일 배치 검토가 논란이 됐는데요.

    “장거리미사일을 연평도나 서북도서에 배치하겠다는 건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얘기예요. 상식적으로도 말이 안 되죠. 전술작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죠. 포 사거리 내에 있는 곳을 (사거리) 300㎞, 500㎞인 전략무기로 공격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전략무기는 거리 개념이 아니에요. 그건 결심의 문제죠. 올바른 결심을 할 수 있는 시스템만 갖춰져 있으면 거리는 상관이 없어요. 결심을 못하면 아무리 전방에 배치해도 소용없고요.”

    ▼ 그런 걸 보면 우리 군의 전략적 사고가 유연하지도 치밀하지도 않다는 불안감이 듭니다.

    “군에서도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아요. 잘못된 거라고.”

    ▼ 지금 여론에 두들겨 맞으니까 (무기를) 마구 갖다놓겠다는 발상 아닙니까.

    “포퓰리즘에 젖은 거죠. 뭔가 해야 하는데 국민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게 뭔가. 내가 국방예산 질의 때 전임 장관(김태영)에게 말했어요. 장거리미사일은 거리 개념이 아니라 시간 개념 아니냐. 김 장관이 동의하면서 언론에 부정확한 내용이 보도됐다고 하더군요. 신임 장관(김관진) 청문회 때도 확인했어요. 그랬더니 내 의견에 공감한다고 하더군요. 고급 무기 배치보다 중요한 게 생존성을 보장하는 대책을 수립하는 겁니다. 그리고 거기서 곧바로 응징한다는 것도 문제가 있어요. 응징이 아니라 즉각 대응이지요. 응징은 후방에 있는 공군력 등으로 하는 거예요. 포탄이 떨어지면 즉각 대응해 피해를 최소화하는 게 중요합니다. 만약 미사일을 배치한다면 사거리 40㎞의 단거리미사일이 적당하죠. 공격한 적의 포병부대를 제압할 수 있는 무기체계를 배치해야 합니다.”

    ▼ 거기에 적합한 무기는 다연장로켓 정도입니까.

    “36연장 MRL이나 MLRS가 가능하지. 그런데 에이태킴스(ATACMS= Army Tactical Missile System·육군전술미사일시스템)를 갖다놓는다는 건 말이 안 되지.”

    Multiple Rocket Launcher의 약자인 MRL은 우리말로 다연장로켓발사대다. 말 그대로 한번에 여러 발의 로켓을 발사하는 무기다. 북한의 방사포도 MRL의 한 종류다. MLRS(Multiple Launc -her Rocket System·다연장로켓시스템)는 미국이 개발한 특정 다연장로켓의 이름이다. 현재 한국군은 구룡이라 불리는 K-136 130㎜ MRL과 M270 227㎜ MLRS를 보유하고 있다. 전자는 사거리가 23~36㎞, 12연장인 후자는 45㎞에 달한다. 다연장로켓은 곡사포나 자주포 등 일반 야포에 비해 명중률이 떨어지지만 넓은 지역을 동시에 포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에 비해 ATACMS는 사거리가 300㎞에 달하는 장거리미사일이다.

    “교전규칙을 병사들에게 교육할 것인가”

    ▼ 해병이 아니라 대규모의 육군 병력이 연평도를 지켜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지요?

    “적절한 군사밀도라는 게 있어요. 1개 연대가 담당하면 충분한 지역에 1개 사단을 깔아놓는다는 건 말이 안 되죠. 조그마한 섬에다 병력을 막 넣었다가 자칫 몰살당할 수 있죠. 병력을 증강한다고 꼭 좋은 게 아닙니다.”

    ▼ 연평도 도발을 통해 우리 군의 전비태세에 상당한 문제가 있다는 게 드러났습니다. 무기가 없어 못 싸운 게 아니라 정신력의 문제라는 비판도 있지만 실제로 동종의 무기 대응 에서 상당히 열세라는 지적도 있지요?

    “북한군의 포병화력과 서북도서의 우리 화력은 비대칭적이에요. 적은 언제든지 집중할 수 있지만 우리는 아무리 많은 무기를 배치한다 해도 한계가 있지요. 지형적인 불리함 때문이죠. 그 지역에서 포병화력의 비대칭은 숙명적이에요. 따라서 똑같이 포병화력으로 맞대응한다는 건 문제가 있지요.”

    ▼ 그런 비대칭 개념을 확장하면 수도권 북방이나 서울까지 해당되는 것 아닌가요?

    “수도권을 겨냥한 장사정포가 340여 문 있지요. 사정거리 45~50㎞인 170㎜ 자주포와 60㎞ 이상의 240㎜ 방사포. 이것들은 우리 수도권에 큰 위협이지요. 그래서 개전 초기 우리가 중점을 두는 게 대(對)화력전이에요. 대화력전의 주체는 포병 플러스 공군전력입니다. ‘Prepositioned Air Task Order(사전항공임무명령)’라고 초전 3~5일 동안 적의 화력을 완전히 무력화한다는 작전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게 해도 저쪽에서 먼저 도발하는 거니 포격을 당하는 건 불가피하죠.”

    ▼ 초기에 어느 정도 얻어맞는 건 불가피하다는 거죠?

    “불가피하죠. 포병전력만으로 대응하는 건 맞지 않아요.”

    ▼ 우리 군의 포 전력을 두고 많은 비판이 제기됐지요. 혹시 과장된 건 없나요?

    “(자주포 K-9) 6문 중 2문은 파편에 맞아 조준경이 고장 났는데 바로 교체해서 임무수행을 했습니다. 1문은 그날 오전 사격훈련을 할 때 마지막 발이 불발해 포구에 걸린 바람에 임무수행이 안 됐던 거죠.”

    ▼ 참 빈약해 보여요.

    “대포병(對砲兵)레이더인 AN/TPQ-37이 그날 09시부터 가동되고 있었다는데 적의 1차 사격 때 사격지점을 못 잡은 건 문제가 있었다고 봐요. 앞으로 Q-37 대신 아서(ARTHUR)를 배치한다고 하는데 그걸로 모든 게 해결되는 건 아니에요. 그것 역시 기계적인 한계가 있으니까요.”

    미국제 AN/TPQ-37은 날아오는 포탄을 역추적해 적 포대의 위치를 알아내는 이동식 레이더 시스템이다. ECCM(전자전대응수단) 능력이 취약한 게 단점. 연평도 사태 때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도 북의 전파방해 때문이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뇌대우소(雷大雨小)’

    교전규칙 개정도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국방부는 연평도 도발에 대한 후속조치로 유엔군사령부가 정한 교전규칙을 적극적이고 공세적으로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현장지휘관의 재량권을 확대하겠다는 게 골자다. 이를 두고 부실했던 초기대응 과정의 문제점을 호도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담겨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한마디로 책임전가라는 것이다.

    ▼ 마치 교전규칙이 잘못됐기 때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논리로 비치는데요.

    “상황 조치와 관련된 것까지 교전규칙에 포함시키겠다는 발상은 문제가 있어요. 전투나 전쟁은 병사가 하는 게 아니라 간부가 하는 겁니다. 간부의 판단과 지휘관의 결심에 따라 병사가 움직이는 거죠. 그 복잡한 교전규칙을 병사들에게 일일이 교육시킬 겁니까.”

    ▼ 지휘부가 판단하고 결심해야 할 것을 부하들에게 떠넘기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있습니다.

    “교전규칙 고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군 최고 수뇌부와 통수권자의 결심이 중요한 거죠.”

    ▼ 현장지휘관 권한과 책임을 확대하는 건 자칫 위험한 면도 있지 않나요?

    “현장지휘관들이 운용할 수 있는 무기체계를 교전규칙에 포함시키겠다는 뜻이지 모든 걸 현장지휘관한테 위임한다는 뜻은 아니에요.”

    ▼ 일부 외국언론한테 조롱도 받았지요. 한국군이 저렇게 약할 줄 몰랐다고. 우리나라 국방예산은 세계적으로 많은 편입니다. 그동안 그렇게 많은 국방비 갖다 쓰면서 도대체 뭐 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죠.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다 보니….”

    ▼ 우리의 무기체계가 부실해서 그런 건 아니죠?

    “무기체계는 적보다 월등하지요.”

    “교전규칙 얽매인 건  형식주의와 기회주의에 빠진 탓”

    2007년 10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일과 악수하는 ‘꼿꼿장수’.

    ▼ 전반적으로요?

    “병력면에서는 적이 강하고 무기 성능면에선 우리가 월등해요. 연평도에서 당한 것은 수백 문 포병전력에 6문으로 맞서다 보니 불가피하게 일어난 일이고요. 비대칭전력이니까. 반대로 적의 관점에서 우리의 비대칭전력은 정밀 유도무기와 공군전력이거든. 그걸 활용했어야지. 그 결심을 못한 게 안타깝죠. 그건 국민한테 어떤 질타를 받더라도 할 말이 없어요. 교전규칙 때문에 그랬다는 건 형식주의이고 기회주의입니다.”

    ▼ 사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 북한에 대해 ‘눈에는 눈, 이에는 이’식으로 강경한 대응방침을 밝혀 왔지만, 정작 군 지휘부는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도발에서 나타났듯 적의 기습적인 공격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작전개념이 없었던 게 아닌가 싶네요.

    “없었지요. 천안함 때도 일전불사(一戰不辭)의 각오로 대응했어야 해요. 중국 속담에 ‘뇌대우소(雷大雨小)’라고 있어요. 천둥소리는 큰데 비는 조금 오더라는 거죠. 대북 확성기 방송 등 심리전 한다는 얘기가 나오다가 슬그머니 사라졌어요. 혹자는 나보고 호전적이라고, 전쟁 하자는 거냐고 따져요. 아니, 그런데 그게 전쟁이냐는 거죠. 우리가 당연히 할 일을 하는 건데. 도발은 저쪽에서 먼저 했으니. 천안함 사건 때 직접적인 타격이든 NLL(Northern Limit Line·북방한계선) 해상봉쇄든 무력시위든 뭐든 했어야 해요. 그런데 아무것도 안 했지.”

    “전투기 폭격했더라도 보복 못했을 것”

    김 의원은 2007년 11월 국방부 장관 재임 중 평양에서 열린 남북국방장관회담에 참석해 김일철 인민무력부장과 몇 가지 의미 있는 합의를 했다. ▲군사적 적대행위 금지 ▲장성급 회담에서 NLL 공동어로수역 협의 ▲북 민간선박 해주 직항로 허용 ▲6·25전쟁 전사자 유해 발굴 남북공동 추진 등이 그것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이 합의는 물거품이 됐다.

    ▼ 그때만 해도 북측과 대립하면서도 나름대로 평화를 관리하려는 노력이 있었지요?

    “대화는 필요합니다. 어떤 수단을 이용하든 대화는 유지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서로 욕지거리를 할지언정. 의사전달은 가능하거든. 그런데 지금은 오로지 무력에 의해서만 의사전달이 가능하잖아요. 대화의 수단이 무력밖에 없는 거야. 물론 퍼주기식 지원은 지양하고 우리의 지원을 북한이 악용하는 것은 막아야겠지만.”

    ▼ 사실 북한도 전면전 위험부담은 우리와 마찬가지 아닌가요?

    “자칫 체제가 끝나고 생명도 담보가 안 되지. 우리 무기체계가 워낙 정밀해 어디 있다는 것만 알면 정확히 때리니까.”

    ▼ 그렇다면 지금 치킨게임 하듯이 무력대결로 치닫는 건 바람직하지 않죠?

    “어차피 북은 우리가 도와줄 대상이에요. 북한 주민은 우리가 도와줘야 할 대상이지 갈취할 대상이 아니잖아요. 도와주는 방법론의 문제지만. 언젠가 남북통일이 된다면 우리가 주도하지 않겠소? 그렇다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어떻게든 서로 의사소통은 해야지.”

    ▼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실책이 있었다는 말씀인가요?

    “에이, 내가 여당 국회의원인데…. 어쨌든 일관성은 있잖아요?”

    ▼ 일관성도 없는 게, 말로만 강경대응이지 늘 사후약방문 격이잖아요. 실속이 없는 거죠.

    “그러니까 ‘뇌대우소’라고.(웃음)”

    ▼ 햇볕정책이 옳다는 게 아니라 현 정부의 대북정책도 그다지 효율적이진 않아 보인다는 겁니다.

    “지금의 정책을 현 시점에서 판단하고 평가하는 데는 한계가 있지요. 다소 시간이 필요할 듯싶어요.”

    ▼ 실전상황에서 북한에 맞대응하고 한발 나아가 공격까지 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게 연평도 사태의 교훈 아닐까요?

    “어쨌든 이번에 전투기 폭격은 했어야 해요. 그게 국가의 체통이고 국민의 자존심이에요.”

    ▼ 우리가 때렸어도 저쪽에서 그 이상의 보복은 못했을 거란 말이죠?

    “못했을 거라 난 확신해요. 만약 그쪽에서 지대공미사일로 우리 공군을 때렸다, 그러면 미사일기지까지 초토화하는 거지.”

    ▼ 그래도 전면전은 쉽게 벌어지지 않는다?

    “손자병법에, ‘병자(兵者) 국지대사(國之大事) 사생지지(死生之地) 존망지도(存亡之道) 불가불찰야(不可不察也)’라고 했어요. 전쟁은 아주 큰일로 죽음과 삶의 길이고 생존하고 망하는 길이므로 세심한 관찰이 필요하다는 뜻이죠. 북은 우리의 대응수단과 방식까지 예측하고 연평도 포격을 했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122㎜ 방사포 쏘고는 싹 빠져버렸잖아요.”

    “전쟁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연평도 도발 이후 노무현 정부 때 완성된 ‘국방개혁 2020’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이명박 대통령과 김관진 신임 장관은 국방개혁 2020 내용을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김장수 의원은 당시 육군참모총장으로서 윤광웅 국방부 장관이 국방개혁 2020을 추진하는 데 힘을 보탰다.

    “국방개혁 2020에는 전제조건이 있어요. 매년 최소 7%의 경제성장이 이뤄지는 걸 전제로 국방비를 증액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출범 후 경제위기라는 복병을 만났잖아요. 경제성장률이 3%로 내려왔기 때문에 이미 국방예산의 파이는 줄었어요. 따라서 군이 요구한 예산을 줄 수가 없어요.”

    ▼ 국방개혁 2020의 핵심 내용 중에는 육군의 부대와 병력을 감축하고 첨단무기를 강화하는 게 포함돼 있지요? 전면 재검토라면, 그 개념을 바꾸겠다는 건가요?

    “개념을 바꾸겠다는 건지, 2020으로는 안 되니 2030으로 기간을 연장하겠다는 건지, 아니면 현재의 국방예산에 맞춰 무기체계와 부대 숫자를 재검토하겠다는 건지….”

    ▼ 당시 육군참모총장으로서 국방개혁 2020에 사인하셨지요?

    “나는 동의했지.”

    ▼ 그때 반발이 가장 심했던 군이 육군 아닙니까? 그래서 고생 좀 하셨던 걸로 아는데….

    “육군이 반발하긴 했지만 현역보다는 예비역이 크게 반발했지요. 그래서 내가 역대 참모총장 다 초청해 설명회를 열었습니다.”

    ▼ 뭐라고 설명하셨는데요?

    “현대전의 패러다임이 6·25 때의 패러다임과 같습니까, 라고 물었지. 6·25 때의 전투 패러다임은 대량소모전, 진지전, 고지쟁탈전이었어요. 그런데 현대전의 패러다임은 모든 것을 보고, 보이는 모든 것을 타격한다는 겁니다. 타격할 대상을 잘 선정하면 됩니다. 그러기 위해선 고도의 무기체계를 갖추고 화력을 보강하고 기동성을 보강하고 지휘체계를 강화해야 합니다. 과거에 15㎞ 지점까지 담당했다면 지금은 25㎞까지 담당할 수 있는 거죠. 이 기회에 무기체계와 장비를 현대화하지 않으면 육군은 계속 핫바지가 된다고 말했죠. 예비사단 몇 개 줄이면 관측수단, 기동수단, 화력수단을 보강할 수 있다고. 언제까지 우리가 병력 위주의 군으로 남을 거냐. 병사를 줄이는 대신 현재 20%인 간부 비중을, 부사관 포함해 40%로 올리겠다고 말했죠. 또 현실적으로 2020년이 되면 병력 50만 이상을 유지할 수도 없습니다. 병역가용자원이 줄기 때문이에요. 출산율이 워낙 낮다보니. 그나마 병력을 유지하는 방법은 간부 증가밖에 없죠.”

    ▼ 노무현 정부 때는 청와대와 군이 이념 문제로 부딪쳤는데, 이명박 정부에서는 청와대가 군을 경제논리로만 재단하려 한다고 갈등이 있죠?

    “군은 소비집단이지 생산집단은 아니에요. 군 간부를 증원하면 고용창출효과가 없는 건 아니지만. 복무기간이 늘어나면 실업을 해소하는 데도 도움이 되죠.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군은 소비집단이에요. 올해도 전체 정부 예산 300조 중 31조가 국방비로 책정됐어요. 그 돈을 사회복지와 교육, 인프라(infrastructure) 건설에 쓰면 국민생활에 얼마나 도움이 되겠어요? 좀 아깝기는 하죠. 하지만 이런 안보사건이 터지면….”

    “그만두겠다니까 그냥 하라고”

    ▼ 군과 청와대가 갈등을 겪는 데는, 이 정권 실력자들 중에 유난히 군 미필자가 많다는 점도 심리적 영향을 끼치고 있죠? 대통령을 비롯해 상당수 고위공직자가 군대를 안 갔다 왔어요. 그런 사람들이 안보정책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민은 불안해하고 불신하죠.

    “쭉 보니까 그렇데요.”

    ▼ 실제로 영향을 끼치는 것 아닌가요? 군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가 없으니. 육군 병으로라도 복무했다면….

    “정책을 개발하는 데는 병 출신으로는 한계가 있죠. 다만 국민 정서가 그렇다는 거죠.”

    ▼ 김 의원께서 보기엔 우려스럽지 않나요?

    “대통령의 용인술에 대해 내가 뭐라고 하겠습니까.(웃음)”

    ▼ 노무현 정부 때 군은 어땠습니까. 이념적으로는 안 맞는 정권이었는데….

    “나하고는 잘 통했어요. 대통령께서 배석자 없는 단독보고를 많이 들어주셨어요. 그래서 군의 애로사항을 많이 얘기할 수 있었고 대통령께서 참모들에게 긍정적으로 검토하라고 지시하곤 했죠.”

    ▼ NLL 문제로 자주 부딪쳤죠? 통일부나 NSC, 청와대 참모들과.

    “대통령께서 NLL에 대한 헌법적·법률적 검토를 언급하실 때 내가 그것은 우리가 무조건 지켜야 할 해상경계선이라고 하니까 아무 말씀 안 하시더라고. 나중에 그 문제 때문에 (장관) 그만두겠다고 하자 그냥 계속 하라고 하시데.”

    ▼ 이념은 다르지만 군에 대한 신뢰는 있었다는 얘긴가요?

    “병사들에 대해선 굉장히 애정을 갖고 계셨어요. 병 출신이라 그런지.”

    ▼ 군대를 갔다 왔으니 조금 다르겠지요.

    “병사들의 생활환경, 주거환경, 문화환경에 큰 관심을 가지셨어요.”

    연평도 도발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쌓은 신뢰의 근본적인 훼손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라고 진단했다. 김 의원의 견해는 달랐다. 아니, 다른 차원의 설명을 했다.

    “북이 군사도발을 할 때 우리는 항상 세 가지를 염두에 둬야 합니다. 첫째, 체제유지. 후계자 문제도 체제유지와 관련된 거니까. 둘째가 경제적 지원입니다. 대규모로 지원해줄 수 있는 건 미국도 국제사회도 아니고 한국밖에 없지요. 셋째는 대미(對美)압박수단입니다. 대화에 응하라는 거죠. 핵 지위국의 위치를 인정하라고. 나는 이번엔 그중 체제유지에 중점을 둡니다.”

    “NLL은 대통령도 맘대로 못하는 선”

    그는 이명박 정부 출범 후 남북 간 비밀리에 논의했던 정상회담 의제가 불발로 끝난 것을 안타까워했다.

    “그게 이뤄지면 좋겠어요. 양측이 만나 허심탄회하게…. 서울이든 평양이든 만나서 얘기를 해야죠. 너희들 고깃국에 쌀밥 먹을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그 와중에 천안함 사건이 터져버려서….”

    ▼ 참 희한한 집단이에요.

    “흔히 한국의 남남갈등을 보수와 진보로 보는데 내 생각은 달라요. 보수든 진보든 북한의 실체를 아는 집단과 모르는 집단 간의 갈등이지. 진보라고 친북이라고 반대할 것도 아니고, 보수라고 수구꼴통이라고 욕해선 안 된다는 거지. 북한의 실체를 알고 보수성향을 띠느냐 진보성향을 띠느냐로 구분해야지.”

    노무현 정부 말기 남북정상회담을 전후해 청와대 내부에서 김장수 국방부 장관 경질론이 불거져 나왔다. NLL에 대한 김 장관의 ‘소신’이 화근이었다. 청와대 참모들과 NSC, 통일부는 북한이 줄기차게 물고 늘어지는 NLL이 남북평화 진전에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해 NLL 재설정 문제를 협의하려 했다. 반면 김 장관은 ‘협의 불가’를 고수했다. 이번 연평도 도발만 해도 북한이 겉으로 내세운 명분은 한국군이 자기네 영해에서 포 훈련을 했기 때문에 ‘경고’했다는 것이다.

    ▼ 사실 NLL은 국제법적으로는 해상경계선으로 볼 수 없죠. 우리가 실효적 지배를 했기에 경계선으로 굳어진 거라는 게 일반적 해석이죠. 의원님 견해는 어떤가요?

    “나도 실효적 지배를 인정해요. 1953년 클라크 유엔사령관이 NLL을 선포할 때는 우리 해군이 그 선 이상은 넘어가지 말라는 뜻이었어요. 그런데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북한도 NLL을 경계선으로 인정했어요.”

    “교전규칙 얽매인 건  형식주의와 기회주의에 빠진 탓”
    ▼ 어쨌든 일방적으로 그은 선이었지요?

    “일방적인 선이지요. 하지만 북한도 1970년대엔 자기네 백과사전인가 어디에 NLL을 해상경계선으로 표시했다니까. 지금은 아니지만. 그간 남북 간 해상 충돌에서 NLL이 늘 기준선이었어요. 지금도 걔들 통신하는 걸 들어보면 NLL을 넘었느니 안 넘었느니 하는 얘기가 많이 나와요.”

    2007년 11월 남북국방장관회담에서 양측이 NLL 못지않게 격론을 벌였던 의제가 공동어로수역이었다. 북측은 NLL 아래로 그은 사각형을 공동어로수역으로 하자고 제안했다. 반면 김 장관은 NLL을 중심선으로 등거리등면적 원칙에 따라 공동어로수역을 만드는 것은 검토할 수 있다고 맞받았다.

    “그건 절대 양보 못한다고 했지. 그랬더니 노무현 대통령이 NLL에 대해 전향적으로 말씀했는데 왜 국방장관이 이러느냐고 따지더군요. 그래서 내가, 이건 우리 국민의 동의 없이는 재협상이 불가능하다, 대통령이라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선이 아니라고 했지요.”

    “자주는 독립국가에 필요한 것”

    ▼ 노무현 정부에서 국방부 장관을 지냈는데 지금 한나라당 정권인 이명박 정부에서 국회 국방위원을 하고 계십니다. 괴리를 느끼진 않습니까? 소신이 바뀌진 않았습니까?

    “전(前) 정권의 국방정책 중에는 철학이 있는 게 많습니다. 그것을 현 정부에서 폄훼할 때는 내가 방어를 했어요. 전 정부에서 장관을 하면서 군의 관점에서 주장했던 최선의 방안이 막힐 때는 차선의 방안을 채택했어요. 참여정부에서 국방부 장관을 했는데 어떻게 한나라당 국회의원을 하느냐….”

    ▼ 아니, 뭐 할 수도 있지요. 제 얘기는 괴리감이 없냐는 거죠?

    “나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내가 정치인도 아니었고. 어떤 당적을 가진 사람도 아니었고. 내 성향에 따라 정책을 채택했던 거죠. (그런 점에서) 정책적인 갈등은 다소 있어요.”

    내가 대표적인 사례 하나를 요구하자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문제를 꼽았다. 노무현 정부 때 전작권 전환을 결정한 국방부 장관은 윤광웅씨이고, 전작권 전환 날짜를 2012년 4월17일로 결정한 장관은 후임인 김 의원이다. 그는 보수진영을 의식해선지 이 문제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나는 보수 쪽에도 분명히 얘기한다고. 언젠가는 전작권을 가져와야 한다고. 한국군이 창설된 지 60년이 지났는데 비록 미군의 지원을 받을지언정 우리 스스로 독자적인 작전계획을 수립하고 준비해서 유사시 우리가 주도해 싸워야 하지 않겠나. 워싱턴 정가에서는 한국이 안보 분야에서 무임승차하고 있다는 게 정설 아니에요? 나만 또 열변 토하네.”

    미군 동의 없이는 한국군 맘대로 북한군을 공격할 수 없다는 게 연평도 사태가 국민에게 일깨워준 불편한 진실이다. 심지어 훈련도 맘대로 못한다. 분명 우리 군인데도 우리 맘대로 운용할 수 없다니, 참으로 괴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반도 상황의 특수성이나 한미연합작전의 중요성을 감안해도 말이다.

    ▼ 어쨌든 이번에 전작권을 갖지 못한 데 따른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났지요. 연합사 승인 없이는 사실상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더군요.

    “평시작전통제권을 갖고 있어도 소용없는 거예요. 그러면 평시에도 미군이 (작전권을) 갖기를 바라느냐? 그러면 아무것도 못하는 거지.”

    ▼ 이번에 미군에 대한 우리 군의 의존적 태도가 극명히 드러났습니다.

    “우리가 전작권을 갖더라도 상당기간 미국 지원을 받아야 하는 ‘Bridging Capability(보완전력)’라는 게 있어요. 이를테면 핵우산 제공 같은 거죠. 우리가 비핵화 정책을 고수하는 한 영원히 기댈 수밖에 없어요. 그러나 전작권은 가져오는 게 맞죠.”

    ▼ 사실 전작권 전환은 노태우 정부에서 이미 그런 취지로 추진했던 것 아닙니까.

    “노태우 대통령 때 평시작전통제권은 1994년에, 전시작전통제권은 2000년에 가져온다는 방침을 세웠죠.”

    ▼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걸 추진했다고 해서 특별히 욕을 먹을 이유는 없네요.

    “‘자주’는 독립국가로서 필요한 것 아니에요?”

    ▼ 당시 대통령과 국방장관이 그 점에 대해선 의견일치를 봤군요.

    “예. ‘자주’는 필요한데, 언제 어느 정도로 하느냐는 각론은 다를 수 있죠.”

    독수리 타법의 피아노 연주

    ▼ 장관 재직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라면?

    “대통령과의 갈등은, 솔직히 몇 가지가 있었지만 큰 문제는 아니었어요. 그런데 성향이 다른 장관들이나 위원들과 (안보 관련) 회의할 때는 참 힘듭디다. 혈혈단신인 느낌이 들고. 그래도 대통령께서 많이 배려해주셨어요. (제2)롯데월드 건축 문제도 대통령께서 뭐라 언급하시기에 제가 그랬죠. (건축을 허가해주면) 도미노현상이 일어난다고. 수많은 비행단, 비행기지가 있는데 그 도미노 현상을 어떻게 막을 거냐고. 이 문제에 대해선 저한테 힘을 주셔야 한다고. 그건 절대 안 됩니다, 라고 반대했죠.”

    제2롯데월드 건축은 이명박 정부 출범 후 허가가 났다. 김 의원의 후임인 이상희 국방부 장관은 군 내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에 동의했다.

    ▼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이라면?

    “보람이랄 게 뭐 있겠소? 내 직분에 충실했던 거지. ‘꼿꼿장수’니 뭐니 하는 것도 언론에서 붙인 거고.(웃음) ‘장수스럽다’라는 용어도 있는데 네티즌들이 만들어낸 거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기간이었어요. 그런데 나로선 최선이었지만 국민이 볼 때는 불만스러운 것도 있었겠지요. 국회의원 돼서 할 말 다하니까 편하긴 해요. 그나마 굉장히 절제된 용어를 쓰는 겁니다, 지금.”

    2007년 11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국방장관회담은 일종의 기싸움이었다. 치열했던 장관급 회담을 끝낸 후 남북한 실무자들의 협상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그가 숙소에서 기다리면서 피아노를 쳤던 일화는 유명하다. 곡목은 김수희의 ‘애모’.

    피아노를 잘 치느냐고 묻자 그가 손사래를 친다. “오보야, 오보”라며.

    “‘애모’를 친 건 맞는데 독수리 타법이라고. 손가락 두 개로. 그걸 두고 연합뉴스인가 어디서 내가 피아노 쳤다고. 나 그렇게 잘 치지 못해요. 당시 우리 측 실무팀장이 지금 연합사부사령관을 맡고 있는 정승조 대장이었어요. 오전에 끝날 줄 알았는데 오후 5시까지도 안 끝나는 거예요. 방에 감청장비가 있었어요. 기다리는 동안에 소리 높여 노래를 불렀지. 러시아제 피아노가 보이기에 찬송가도 치고 ‘애모’도 쳤지.”

    그는 “내가 음악은 좋아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베토벤을 좋아해 베토벤 곡은 거의 다 섭렵했다고 한다.

    ▼ 인상이나 체격을 보면 무도를 잘하실 것 같은데….

    “태권도는 걸음마. 검은띠는 땄고….”

    ▼ 그건 얘기할 것 없고요. 군대 간 대한민국 남자라면 다 따는 거니까.

    “명예 9단을 갖고 있어요.(웃음)”

    그는 180㎝에 70㎏이다. 다른 운동 잘하는 것 없느냐고 물으니 육사생도 시절 축구 대표선수를 지냈다고 했다.

    그가 여느 국방장관 출신들과 달리 ‘자주’를 언급한 것은 돋보이는 대목이다. 박정희, 노태우, 노무현…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자주국방에 대한 신념이다. 이데올로기야 다르지만 한국군의 자주와 부국강병을 추구한 점에선 일치한다. 세 대통령은 모두 한국의 독자적인 작전권 확보를 추진했다. 특히 북한에 단단히 뒤통수를 맞은 진보주의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중국과 일본을 잠재적 적으로 규정하고 국방비를 대폭 늘려 육군의 과학화와 기동성 강화, 해·공군 첨단무기 구입 등 한국군의 현대화를 적극 추진한 것은 아이러니하다.

    일방적으로 얻어맞은 연평도 사태는 내 몸속에 잠재된 공격 본능을 일깨웠다. 많은 국민이 북한과는 정상적인 국가관계가 불가능하며 여차하면 한판 붙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됐다. 장교 출신인 나는 동원령이 떨어져 소집당하는 상상을 자주 하게 됐다. 그런데 정말 전쟁이 불가피하다면, 기왕에 국민의 희생을 무릅쓰고 전쟁을 한다면 제대로 싸워 뒤탈이 없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교전규칙 얽매인 건  형식주의와 기회주의에 빠진 탓”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은 보수층의 강력한 반발로 그 시기가 2012년에서 2015년으로 연기됐다. 그전에 전쟁이 벌어지면 설사 평양을 점령하더라도 문제가 생긴다. 점령의 주체가 누구인가. 한국군인가, 미군인가. 패권국가인 미국과 중국이 짬짜미를 해 광복 직후처럼 북한 땅을 신탁통치하자거나 심지어 절반으로 나누자고 하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작전권이 없고 독자적인 전투수행능력이 떨어지는 한국군에 과연 이를 막을 명분과 힘이 있는가. 목소리 높여 ‘전쟁불사’를 외치는 이들이 어떤 복안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한국군의 현실을 알려준 고장 난 대포병레이더와 더불어 김 의원의 ‘자주론’이 오랫동안 내 머릿속에 여운을 남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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