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 A는 피해자 B의 휴대전화를 훔쳤다. A는 훔친 휴대전화로 통화를 하고 무선인터넷을 사용했다. 통화료 및 정보이용료는 모두 5만4240원이었다. 검사는 이것이 ‘정보처리장치인 휴대전화기에 권한 없이 정보를 입력해 정보처리를 하게 한 것’이라며 A를 컴퓨터 등 사용사기죄로 기소했다.
1심 재판부는 다음의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첫째, 통신회사 컴퓨터가 위 휴대전화를 상대방의 전화나 인터넷 사이트에 연결해준 것을 ‘정보처리장치에 권한 없이 정보를 입력해 정보처리를 하게 한 것’으로 볼 수 없다. 둘째, 훔친 휴대전화기를 사용해 부정 취득한 이용료 상당의 재산상 이익을 ‘정보처리를 하게 해 취득한 이익’으로 볼 수 없다. 셋째, A의 행위는 이른바 사용절도에 해당하므로 별도의 처벌규정이 없는 한 처벌할 수 없다. 2심 판단도 비슷했다. 휴대전화기의 통화나 인터넷 접속 버튼을 누르는 경우 그 기계적 또는 전자적 작동에 따라 일정한 서비스가 제공되는 것이지 ‘정보의 입력’이 아니며 정보처리를 했다고 보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대법원도 같은 논리로 검사의 상고를 기각,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 채무면탈 목적으로 채권자를 살해한 경우 강도살인죄인가.
피고인 A는 피해자 B로부터 16억6000만원 상당을 차용하고 그 담보로 B에게 자기 또는 부인 명의로 소유하던 임야 10필지의 소유권을 이전하고 또 다른 3필지에 근저당권을 설정해줬다. A와 일당은 담보로 제공된 부동산 소유권을 다시 이전하고 근저당권을 말소하면 곧바로 채무를 변제할 것처럼 B에게 말했다. 이를 믿은 B는 소유권이전 및 근저당권말소에 필요한 관련 서류를 법무사사무실 사무장에게 교부했다. 다음날 A와 일당은 사전에 공모한 대로 B를 빈집으로 유인해 술을 먹인 다음 창고로 데리고 가 망치로 구타해 죽게 만들었다. 이후 A는 법무사사무실 사무장에게 등기 이행을 촉구해 자신의 처 앞으로 근저당권 말소 등기와 소유권 이전 등기를 마쳤다. 검사는 피고인들을 강도살인죄로 기소했다.
1심 재판부는 강도살인죄를 인정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의 판단은 조금 달랐다. 비록 피고인들이 피해자를 살해하고 피해자한테 돌려받은 서류들을 이용해 소유권이전등기 및 근저당권말소등기를 마쳤더라도 이는 일시적으로 채권자 측의 추급을 면한 것이며 재산상 이익이 이전된 게 아니므로 강도살인죄를 적용하기 어렵다는 것. 2심은 단순살인죄만을 인정했다. 대법원 역시 강도죄가 성립되지 않고 재산상 이익이 이전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강도살인죄 성립을 인정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