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호

쓸개가 전하는 말

  • 입력2010-12-22 10:28: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쓸개가 전하는 말

    배에 쓸개즙 채취장치가 부착된 사육 곰.

    곰쓸개 성분으로 만들어 피로를 풀어준다는 약 ‘우루○’를 복용하는 등 많은 사람이 보신을 위해 쓸개를 먹고자 한다. 곰 쓸개는 물론 산돼지 쓸개까지 얻고자 사육하면서 즙을 짜내는 일도 흔하다. 심지어는 코브라 쓸개를 먹기 위해 동남아 일대를 돌아다니는 보신관광도 유행한다. 사람들은 왜 쓸개에 열광할까.

    현대의학의 관점에선 쓸개의 보신 작용을 찾을 수 없다. 교과서적으로 보면 쓸개의 효용은 이렇다. 담즙은 지방의 소화와 흡수를 돕고 칼슘, 철, 비타민의 재흡수를 돕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반적으로 보면 간에서 피를 정화할 때 피 속의 나쁜 노폐물을 모아 쓸개로 보낸다. 쓸개는 간에 비하면 매우 작은 장기로, 간에서 주는 노폐물을 농축, 재활용해 담즙을 만든다.

    조선왕조실록의 세종대를 보면 각 지방의 공물을 기록해놓았는데, 약재물목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쓸개였다. 소의 우황, 곰의 웅담, 돼지의 저담, 잉어 쓸개, 수달피 쓸개가 모두 올라 있다. 쓸개에 대한 기묘한 시선은 급기야 명종 때 엽기적인 사건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조선왕조실록 명종 21년 2월29일의 기록을 보자.

    “시중에 주색을 즐기다가 음창(陰瘡)에 걸린 사서(士庶)가 많았다. 한 의관이 ‘사람의 쓸개를 가져 치료하면 그 병이 즉시 낫는다’고 하자 사서들이 많은 재물로 사람을 사서 죽이고 그 쓸개를 취하였다. 동활인서, 보제원, 홍제원, 종루 등처에 걸인이 많이 모였는데 4~5년 안에 모두 사라졌다. 걸인들을 살해해 없어지자 다시 평민에게 손을 뻗쳐 여염 사이에 아이를 잃은 자가 많았다.”

    음창은 사타구니에 생기는 부스럼의 종류로 일종의 성병 후유증인데, 이것을 사람 쓸개로 치료하고자 한 것이다. 세조 6년 신숙주가 왕에게 올린 보고서에도 사람 쓸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중국인 2명이 우리 군으로 도망을 왔기에 그 이유를 들어보니, 그들이 살던 마을에 적들이 침범해 화살에 맞은 자가 많아 (조선에선 사람 쓸개로 병을 낫게 한다는 소문이 있어) 쓸개를 취해서 해독을 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그런데 쓸개에 대한 한의학의 관점은 현대의학과 차이가 많다. 보신의 측면에서 보면 ‘봄 같은 생기’를 불어넣는다고 본다. 다음은 ‘본경소증’의 기록이다.

    “담은 양중의 소양으로 양기의 맨 앞이다. 이는 마치 봄에 처음 나오는 기와 같아서 변화를 가장 먼저 퍼뜨리며 용솟음쳐 나오는 기운을 말한다.”

    봄은 영어로 스프링(spring), 즉 샘이다. 한의학에선 샘처럼 압축된 힘으로 솟아오르는 기운을 간직한 장기가 쓸개라고 본다. 담을 복용하면 이처럼 솟아오르는 힘, 스태미너가 생긴다고 본다. 이것이 쓸개의 약효다.

    쓸개즙은 본디 검은 색깔이지만, 약간 희석하면 푸른색이 되고 많이 희석하면 노란색이 된다. 황달은 소장으로 빠져나와야 할 담즙이 나오지 못하고 역류해 전신의 혈액으로 퍼지면서 희석된 담즙의 색깔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이들이 놀랐을 때 푸른 똥을 싸는 것은 담이 놀라 차가워지면서 반쯤 희석된 상태로 파악한다.

    음식을 입에서 씹고 위에서 반죽하고 나면 자연 그대로의 색을 띤다. 밥은 흰색, 홍당무는 붉은색, 김은 검은색이다. 그러나 대변은 누런 황금색이다. 반죽된 음식이 위장을 통과할 때 쓸개즙이 골고루 침투해 완전히 삭혀지면서 누런색이 된 것이다.

    쓸개즙의 삭히는 힘은 타박상이나 상처를 입었을 때 생기는 어혈 제거에도 사용된다. 교통사고로 다쳤을 때 웅담을 쓰는 것은 바로 이런 기전이다. 옛날에 대변으로 어혈을 치료하던 것도 담즙 색소가 스테르코빌린으로 변한 힘을 빌린 것이고, 뇨(尿) 요법도 소변에 포함된 담즙 색소가 유로빌린 성분으로 변한 힘을 빌려 혈전을 녹이기 위한 것이다. 우황을 고를 때도 이 삭히는 힘을 시험한다. 우황은 소의 쓸개가 농축돼 담석에 이른 것이므로 삭히는 힘이 아주 강하다. 수박에 그어서 수박 무늬 위에 줄이 생겨야 진짜 우황이라고 판단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담은 마음의 상태와 연결되기도 한다. ‘담이 크다’는 말은 겁이 없고 용감하다는 뜻이다. 달리기를 잘하는 말에게는 쓸개가 없다. 그래서일까. 말은 바람소리에도 놀라고 자신이 뀐 방귀에도 놀란다. 말먹이를 주러 갔다가 뒷발에 차이는 경우도 흔하다. 말은 겁이 많아서 작은 소리에도 갑작스레 날뛰며 그러다가 기수를 떨어뜨리기도 한다.

    반면 웅담으로 유명한 곰은 침착함과 용감함의 대명사이다. 겁이 없다. 한의학에서도 ‘담에 열이 생기면 잠들지 못하고 차가워지면 밥맛이 없고 작아지면 잘 놀란다’라고 규정한다. 잘 놀라고 잠 못 들면서 불안하면 ‘온담탕’이라는 처방을 한다. 여기서 ‘온’은 ‘노자온지(勞者溫之)’라는 말에서 왔는데 ‘피로는 따뜻하게 데워야 치료할 수 있다’는 의미다.

    쓸개가 전하는 말
    李相坤

    1965년 경북 경주 출생

    現 갑산한의원 원장. 대한한의사협회 외관과학회 이사, 한의학 박사

    前 대구한의대 안이비인후피부과 교수

    저서 : ‘콧속에 건강이 보인다’ ‘코 박사의 코 이야기’


    담의 본질은 아주 정치적이다. 어떤 일에 영향을 받아 여러 가지 감정이 떠오르면 담은 가장 균형 잡힌 결정을 내린다. 이것을 ‘중정지관 결단출언(中正之官 決斷出焉)’이라는 말로 정의하는데, ‘중정’은 구품중정이라는 말로 조조의 아들 조비가 만든 관직등용 방식을 말한다. 각 지역의 인재를 아홉 곳으로 나눠 고루 등용함으로써 차별 없는 균형적인 인사정책을 운영하는 방법이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