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호

[직격비판] “자위권 적용하면 교전 규칙 상관없다? 말도 안되는 난센스!”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 대응에서 드러난 10대 문제점

  • 김시습│안보전문가

    입력2010-12-22 09: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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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년은 국가안보 측면에서 이래저래 뒷맛이 씁쓸한 한 해로 기억될 것이다.
    • 3월26일 천안함 침몰과 11월23일 연평도 포격이라는 충격적 사건을 남겼기 때문이다.
    • 사건 이후 다양한 대책과 개선 방안, 책임 추궁이 논의되고 있지만, 이를 곰곰이 들여다보면 정부가 과연 제대로 된 교훈을 얻은 것인지 의심스럽기 짝이 없다. 글의 성격과 필자의 여건상 필명을 사용했음을 밝혀둔다.
    [직격비판] “자위권 적용하면 교전 규칙 상관없다? 말도 안되는 난센스!”
    연평도 피폭 이후 정부는 앞으로 북한이 또 한 번의 도발을 감행할 경우 단호히 대처하겠다는 의지를 거듭 표명한 바 있다. 김관진 신임 국방부 장관은 북한의 추가도발에 대해서는 “굴복할 때까지 응징하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고강도 국방개혁을 통해 군의 전투력을 높이는 한편 연평도를 요새화하겠다는 구상도 발표됐다.

    다 좋다. 그러나 문제는 이렇듯 당연한 조치에도 쉽게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 이후 발표된 내용들은 날짜를 바꿔보면 8개월 전의 것과 놀랄 만큼 유사하다. ‘단호히’‘국방개혁을 통해’‘국가 위기관리체제를 재편하고’ 등등의 단어는 천안함 침몰 직후에도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었다. 그럼 정부는 그동안 무엇을 했단 말인가. 우리는 과연 두 차례의 뼈아픈 사건에서 올바른 인식과 제대로 된 접근을 이끌어내고 있는 것일까.

    이 글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정부의 노력을 폄훼하거나 특정인을 비난하고자 함이 아니다. 이제부터라도 외양간을 제대로 고치자는 것이다. 정책 입안자들은 억울하다고 항변할지 모르지만,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피폭 이후 언론을 통해 발표된 정부의 조치들은 모두 대증적(對症的)인 시각에 경도돼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뼈아픈 자성과 자기혁신이 없다면 국가안보는 언제든 또 다른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의 인식 속에 정설인 양 각인된 몇 가지 신화를 되짚어 보는 것은 적지않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한국 사회에 팽배한 미망(迷妄)에서 깨어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천안함 이후와 마찬가지로 연평도의 교훈도 잊어버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1 군의 관료화가 도발 허용했다?



    연평도 피폭 당시 군의 대응이 미숙했던 것은 체질이 나약해진 탓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장기간 이어져온 관료화로 지휘관들의 과단성이 희박해졌다는 주장도 있다. 군이 정부나 정치권의 눈치를 살피면서 본연의 구실을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적당한 희생양을 찾는다는 측면에서는 속 시원한 얘기일지 모르지만, 반드시 적절한 분석은 아니다.

    군 지휘관들이 정치에 민감하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예를 들어 2008년 이후 다시 불거진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논쟁에서 3명의 전·현직 장관을 비롯한 군 수뇌부 가운데 과거의 소신을 유지한 이는 소수에 불과하다. 후일 다시 여건이 바뀌면 이들의 최종 입장이 어떻게 정리될지가 궁금할 따름이다.

    그러나 반드시 물어봐야 할 게 있다. 누가 군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민주화 이후 이른바 ‘문민통제’의 구호 속에서 우리는 군을 진정한 정치적 중립을 유지하는 존재 대신 정치적 결정에 굴종하는 존재로 만들어왔다. 군의 정치적 중립은 이들이 전문직업인으로서 갖춘 자질과 식견에 자부심을 갖는 데서 비롯된다. 국민의 지지로 당선된 민간 지도자의 명령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국가방위에 대해서는 소신을 당당히 펴는 군인이야말로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군인이다. 1960~80년대 군부통치의 전형으로 불렸던 남아메리카의 군 지도자들이 항상 뻣뻣한 자세로 일관했다고 알고 있다면 이는 착각이다. 그들은 민간정부의 권위와 정통성이 확실할 때에는 입안의 혀처럼 굴다가 계기가 만들어지면 돌변하곤 했다. 정치의 눈치를 살피는 군인은 결코 정치적 중립성을 지닐 수 없는 것이다.

    김영삼 정부 이후 군 내부의 파벌이 해체되기 시작했다지만, 외형적인 파벌이 해체된 뒤에는 또 다른 ‘클럽 정치’가 난무해온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몇몇 인사가 정권 실세와의 친밀한 관계 덕분에 승진을 거듭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끊긴 적이 없다.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 지휘관들을 모두 사실상 강제 전역시키는 분위기에서는 결코 강한 지휘관이 탄생할 수 없다. 강국으로 불리는 국가들의 민·군관계사를 들여다보면, 개성 강한 지휘관들을 징계하고 좌천시키면서도 현역에서 은퇴시키지는 않았던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괴짜 장군이자 전쟁영웅인 조지 패튼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이러한 운영의 묘를 찾기란 기대난망에 가깝다.

    연평도 피폭에 대해 군은 분명 책임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군만의 책임이 아니다. 정부야말로 진정으로 반성해야 할 당사자다. 천안함 사건 이후 정치인들과 언론은 이구동성으로 확실한 국가안보태세 확립과 위기관리체제 재정비를 요구했다. 과연 그들은 올해의 국정감사에서 이를 제대로 확인했나. 언론을 통해 탄생한 수많은 국감 스타 가운데 북한의 도발 위험성을 제대로 지적한 이가 과연 있는가.

    2 제도를 바꾸면 안보가 강화된다?

    [직격비판] “자위권 적용하면 교전 규칙 상관없다? 말도 안되는 난센스!”

    연평도 사건이 발생한 11월23일 저녁 합동참모본부 지휘통제실을 찾아 현황보고를 받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

    천안함 사건에 대한 합동조사단의 발표 이후 정부는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를 발족시켰고 청와대의 국가위기상황센터를 국가위기관리센터로 개칭하는 등 일련의 제도적 개혁을 추진했다. 국방개혁에 대한 포괄적 재검토 작업 역시 적극 추진했다. 그러나 제도와 계획만으로 안보가 보장될 수 없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라는, 이미 존재하는 제도마저 중요한 위기국면에서 제대로 활용 못하는 부실한 운영능력은 외관만 리모델링한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돌아봐야 할 점은 그간 안보문제나 위기관리를 귀찮은 사고처리 정도로 생각하지는 않았는지 여부다. 정치적 입맛과 상관없이 최적의 인물을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열린 사고와 유연성을 지니고 있느냐는 것이다. 아무리 제도와 계획을 만든다 한들 본연의 취지를 모르면 소용이 없다. 북한의 도발이 있을 때마다 국방개혁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계획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방증이다. 국방개혁의 요체는 군의 체질을 중장기 차원에서 미래지향적으로 바꿔나가는 것이다. 눈앞의 시급한 소요를 해결하기 위해 국방개혁 계획 자체를 재검토한다는 발상으로는 당장의 안보도 미래의 ‘선진정예강군’도 기대하기 어렵다.

    3 외교·경제만 잘되면 만사형통?

    언제부턴가 정부는 ‘선진’이라는 구호를 내세우며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제고하고 경제발전을 이루는 것만이 외교안보의 지상과제인 것처럼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이 말에 반박하고 싶은 이들은 천안함 사건이 정리단계에 들어선 7월 이후 정부 차원의 홍보·공보작업에서 1순위가 무엇이었는지 돌아보길 바란다. 그러나 국제사회에서의 경제적 지위가 국가안보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1991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에서 이미 확인된 바 있다.

    제도나 계획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국가안보를 의전이나 경제성장을 위한 하부요소로 취급하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안보 그 자체가 독립적인 의미를 지니는 국가의 책무라는 인식의 전환이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데 1차적인 존재의의가 있다. 이것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는 어떤 미래비전도 사상누각일 뿐이다.

    4 한국의 국제사회 레버리지?

    천안함 사건에서 확인된 또 하나의 문제는, 현 정부의 정책결정자들이 국제사회에서의 의전이나 외교적 수사를 우리의 능력과 동일시한다는 사실이다. 평소에 맺어둔 관계나 말에 근거해 우리가 외치기만 하면 주요국들이 지지해줄 것이라고 믿고 이를 언론을 통해 여과 없이 표출하곤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당장 천안함 외교에서 중국의 행태는 이러한 신화가 얼마나 취약한지 단번에 드러냈다. 주변국들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에 동의해줄 것이라는 정부의 자신은 헛된 것이었다.

    가장 큰 지지세력이라고 믿은 미국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국가 간 관계는 끊임없는 거래와 이에 입각한 변환을 요구한다. 2008년 이후 한미가 전례 없이 지속적인 우호관계를 유지해왔다지만, 그 위에 미래를 위한 새로운 거래관계를 정립하기 위한 노력은 보이지 않았다. 국가의 역량을 사안별로 카드화하는 노력 없이 주변국에 대한 레버리지를 늘려간다는 발상은 대책 없는 낙관론에 불과하다.

    5 북한은 조만간 붕괴한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 이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부는 과연 북한에 대해 군사적 균형을 이루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는가. 혹은 조만간 국방예산 같은 ‘소모성 투자’가 필요 없는 상황이 올 거라고 기대하고 있는 건 아닐까. 2008년 이후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북한 급변사태 전망을 보면, 또한 북한 체제의 갑작스러운 불안정이 한국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그 가능성을 충분히 고려하는 것은 분명 긴요한 일이다. 그러나 어떤 사태에 대비하는 것과 그에 집착해 정책을 추진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후자의 경우 그런 상황이 현실이 되지 않을 때 중대한 실패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 당시 외교안보분야 요직에 있었던 한 정치인이 2010년대 중반경에는 남북 간에 화해·협력과 한반도 평화체제가 정착될 것인 만큼 국방비를 줄여 양극화를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공교롭게도 당시는 국방개혁 논의가 막 출발하던 시기였다. 어쩌면 당시의 정책결정자들은 어차피 나중에 대폭 삭감할 수 있는 만큼 단기적으로는 엄청난 국방예산 증가율을 용인해줘도 될 것이라고 판단했는지 모르겠다. 정반대 방향이긴 하지만 현재도 비슷한 미망이 꿈틀댄다. 당장은 북한이 도발을 이어가지만 그 생명력은 이제 2~3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우려되더라도 잠시만 참으면 된다고 말이다.

    6 국민의 안보의식 해이가 문제다?

    [직격비판] “자위권 적용하면 교전 규칙 상관없다? 말도 안되는 난센스!”

    지난 11월3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무거운 분위기가 깔린 듯 국무위원들이 굳은 표정으로 회의에 임하고 있다.

    많은 이가 북한의 도발 이면에 민주화 이후 해이해진 국민의 안보의식이 작용했다고 말한다. 관련 여론조사 결과도 거들고 나선다. 이런 발상은 말 그대로 희극에 가깝다. 국민의 안보의식이 해이하다는 걸 과연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평범한 시민이 안보에 무관심한 것은 정말 문제일까. 오히려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닌가. 정부의 능력을 신뢰하고 국력에 자신감을 갖는다면 왜 일부의 믿음처럼 내일 모레 망할 북한에 신경을 써야 하겠는가.

    미국의 경우를 보자. 9·11 테러 이후 미국 국민이 테러 재발 우려에 전전긍긍해 일상생활을 포기했나. 안보 강박관념에 휩싸여 애국주의만을 부르짖었나. 진정으로 강한 나라는 국민이 평온하게 일상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나라다. 비상한 사명의식을 갖고 안보문제를 고민하며 밤잠을 설치는 것은 정책을 결정하는 이들의 몫이다. 그런 국가가 제대로 된 국가다. 스스로 각성돼 있지 못하면서 위기가 오면 국민의 안보의식을 탓하는 그런 의식구조야말로 위기에 가장 취약한 태도다.

    7 MB정부의 대북정책이 도발 불렀다?

    천안함 사건, 연평도 피폭과 관련해 실소를 자아내는 또 하나의 신화는 이명박 정부의 완고한 대북정책과 대화의 단절이 북한의 도발을 불러왔다는 주장이다. 이는 두 가지 측면에서 논리적 오류를 갖고 있다. 첫째, 현 정부의 대북정책은 비타협적이라기보다는 확실한 방향성이나 일관성이 없었다고 보는 게 맞다. ‘원칙 있는 포용정책’이라는 기조로 북한에 성의 있는 변화가 보이지 않는 한 상황에 일희일비하지 않겠다는 게 정부의 대외적인 설명이었지만, 과연 실제로 그랬던가. 그 이면에서는 끊임없이 정상회담 추진설이 흘러나왔고, 천안함 사건의 대응으로 발표된 5·24 조치의 대북지원 단절은 불과 3개월 만에 아무런 정책변경 없이 대북 수해지원 논의 제기로 형해화됐다. 이러고도 과연 완고한 대북정책이었을까.

    둘째, 이러한 주장은 사실 안보를 구걸하자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난 정부 기간에는 햇볕정책과 평화번영정책 덕에 북한의 주요 도발이 없었다고 주장하는 이들에게는 2002년 2차 연평해전이나 2006년의 대포동 미사일 발사, 핵실험은 무엇이었는지 묻고 싶다. 설령 크고 작은 도발이 줄어들었다 한들 막대한 대북지원을 통해 얻어낸 평화가 과연 성에 차는 것이었는지도 묻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 측의 의제는 전혀 반영된 바 없었고 검증 역시 불가능했음을 감안하면 이러한 주장은 상황을 호도하는 것일 뿐이다.

    8 정보 확산에는 직보(直報)가 특효다?

    이제부터는 세부 각론으로 눈을 돌려보자. 2008년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 이후 각종 위기대응 평가작업에서 언제나 정보의 직보, 즉 최고책임자에 대한 직접보고 강화가 이를 위한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거론돼왔다. 직보체제가 확립될수록 효율적인 시스템이라는 주장이다. 이 역시 그간 벌어진 위기의 교훈을 잘못 해석한 착각일 뿐이다. 정보는 수직 확산과 수평 확산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수직 확산이 지휘계선상의 상급자에 대한 보고라면 수평 확산은 상급자의 지시를 받아 대응조치를 수행할 주체들 간에 이뤄지는 공유다. 수직 확산만 강조되면 정보를 보고받는 시간은 빨라지겠지만 전반적인 대응시간은 오히려 지연되기 일쑤다.

    위기가 발생해 대통령이 장관들을 소집했다고 하자. 대통령과 청와대 핵심참모들을 제외하면 장관들은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이 경우 국가안전보장회의가 소집돼도 대응방향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기 힘들다. 장관들이 회의에 참석하기 전에 정보를 보유하고 있어야만 청와대로 향하는 차 안에서라도 나름의 구상을 준비할 수 있는 것이다. 장관을 보좌해 실질적인 세부정책을 결정해야 하는 참모들도 마찬가지다.

    금강산 관광객 피살이나 천안함 사건은 모두 정보의 수직 확산보다는 수평 확산에 문제가 생겨 발생한 것이다. 수평 확산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정보 전파의 각 단계에서 누군가가 해당정보를 관련 주요 정책결정자들이 모두 공유하고 있는지 확인, 관리해야 한다. 그러한 절차가 빠진 직보는 정보의 ‘배달’이지 전파가 아니다.

    9 교전규칙과 자위권으로 추가도발 막는다?

    [직격비판] “자위권 적용하면 교전 규칙 상관없다? 말도 안되는 난센스!”

    지난 12월6일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기자간담회를 마치고 나와 집무실로 향하다 경비병의 경례를 받고 거수경례로 답하고 있다. 김 장관은 북한군의 도발에 대해 교전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자위권으로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연평도 피폭 이후 교전규칙을 수정하고 자위권 개념을 적용하면 유사시 단호한 대응이 가능하다는 주장이 쏟아져 나온다. 한마디로 난센스다. 우선 자위권 자체가 교전규칙의 범위 내에서 이뤄지는 것으로, 양자는 서로 다른 존재가 아니다. 또한 어떤 식으로 교전규칙을 수정하고 자위권 개념을 적용한다 해도 ‘전쟁으로의 비화 방지’나 ‘비례성(proportionality)의 원칙’을 깨기란 힘들다. 그 자위권이 상대방의 추가공격이 없는 상태에서 앞으로의 공격위험만을 강조해 가동되는 ‘예방적 자위권(anticipatory self-defense)’이라면 더욱 그렇다.

    분명히 말하지만, 북한이 어떤 지역에서 어떤 지상무기를 동원해 국지도발을 감행하더라도 이에 대해 전면적인 항공폭격을 가할 수 있는 포괄적인 면장(免狀)은 필자가 아는 한 존재하지 않는다. 북한의 추가도발에 대해 자위권 개념을 적용하겠다는 한국 측 입장에 미국 측도 동의했다는 설명이 나오자, 워싱턴 인사들이 이에 대해 조심스럽게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모든 교전규칙과 집단적 자위권은 상황에 따라 다른 변수가 존재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더욱이 교전규칙과 자위권 적용은 모두 위기대응(crisis response)에 중점을 둔 조치다. 남한과 북한은 상이한 체제를 갖고 있다. 우리는 헌법 규정상으로나 국제적 도덕률상으로나 선제공격을 할 수 없지만 북한은 이야기가 다르다. 더욱이 무기의 파괴력이 비할 수 없이 강해진 현대전의 특성을 감안하면, 위기대응 단계에서 어떤 단호한 대응을 취하든 우리 측 역시 상당한 피해를 당할 수밖에 없는 게 남북한 군사구조의 현실이다.

    이를 감안하면 중요한 것은 위기대응보다는 예방(prevention)이며, 이는 각 부처의 정보를 통합·조정해가며 문제의식을 갖고 북한 정보를 끊임없이 분석하는 시스템을 정립하는 작업에서 시작한다. 2009년 11월 대청해전 이후 정부가 북한의 잠수함 공격을 상정한 정보분석과 대응훈련을 했다면, 천안함 사건 이후에는 해안포 공격이 있을 수 있다는 가정하에 준비했다면, 도발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설령 도발이 있었다 해도 말이 아닌 실제의 ‘단호한 대응’이 가능했을 것이다.

    10 북한의 도발만이 문제다?

    마지막으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북한의 도발만을 국가안보의 위협으로 보는 발상이다. 그 과정에서 다른 경계해야 할 많은 요소를 놓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군사적 전면대결’을 선언한 2009년 1월 이래 군인들은 끊임없는 긴장 상태에서 대비를 지속해왔다. 군 수뇌부는 이들에게 철통같은 대비태세를 강조하면서도 적절한 휴식은 전혀 보장하지 않았다. 사람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긴장의 끈을 유지하는 동안에는 피로도가 더욱 증가한다. 이러한 상태의 지속이야말로 사건·사고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원인이다.

    천안함 침몰 이전에 발생한 F-5기 및 500-MD 헬기 추락, 천안함 수색 과정에서 벌어진 LYNX 헬기 손실, 이후 남해에서의 고속정 침몰사건은 알게 모르게 그간 누적된 피로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 군내의 대형사고 방지를 위해서도, 혹은 북한이 한반도의 긴장을 마음대로 조정하며 또 다른 도발 기회를 노리는 것을 봉쇄하기 위해서도 무책임한 긴장상태 강조는 버려야 마땅한 태도다. 긴장할 부대는 긴장하되 쉴 부대는 쉬는 운영의 묘가 필요한 것이다.

    강한 자는 말이 없다

    두 차례의 뼈아픈 사건을 겪으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본말이 전도된 접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헛된 구호와 수사의 남발보다는 한국 사회 내에 깊이 뿌리박힌 미망과 신화에서 깨어나가는 성찰이 필요하다. 강한 자는 결코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자신의 부족함에 절치부심하며 조용히 미래를 준비하는 이와 끊임없는 다짐을 양산하면서도 여전히 많은 허점을 노출하는 이 가운데 누가 더 무서운 상대겠는가. 한 해 두 번의 교훈이면 이젠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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