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호

“사학(私學)이 운동가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했다”

한국사립초중고등학교법인협의회장 오정석<동래학원 이사장>

  • 송홍근│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10-12-22 11: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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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대로라면 사학 고사(枯死)할 것
    • 사립학교법 폐지하고, 사학진흥법 제정해야
    • 후진적 사전규제, 사후규제로 바꿔야
    “사학(私學)이 운동가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했다”
    사학재단(私學財團)이 들끓고 있다. 이명박 정권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거다. 지난 대선 전 한나라당은 사립학교법 개정을 약속했다. 사학계는 사립학교법을 폐지하고 사학진흥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요구해왔다. 사립학교 경영자와 사학재단은 현행 사립학교법을 악법이라고 규정한다.

    사립학교법은 노무현 정부 때 두 차례 개정됐다. 2005년 12월 열린우리당 주도로 개정한 사립학교법은 전교조, 교수노조, 민주노총 의견을 상당 부분 반영했다. 사학재단, 기독교계가 반발하자 2007년 7월 임시국회에서 재개정이 이뤄졌으나, “독소조항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고 사학계는 주장한다.

    오정석 한국사립초중고등학교법인협의회 회장을 만나 사학재단 쪽 의견을 들었다. 오 회장은 조선왕조 때인 1895년으로 역사가 거슬러 올라가는 동래학원 이사장. 이 학원은 동래여·중고, 부산예중·고, 동래초교 및 부속 유치원을 운영한다.

    ▼ 사립학교법을 폐지해야 한다고 보는 까닭이 뭔가요.

    “열린우리당이 2005년 12월9일 날치기로 개정한 법률이 현행 사립학교법의 뿌리입니다. 이 법은 사학의 생명 격인 건학 이념을 부정했습니다. 2007년 개정된 사립학교법에도 개방형이사제, 교원인사위원회 심의기구화 등 독소 조항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위헌 소지가 큰 조문 열여섯 가지를 적시해 헌법소원을 제기했습니다. 건학이념과 무관한 인사를 의무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개방형이사제는 반(反)헌법적·반(反)민주적 제도예요. 종교적 신념에 따라 설립한 사학에서 종교가 다른 인사가 임시이사로 선임돼 학교 교회를 폐쇄하고 교목이 쫓겨난 일도 있습니다.”



    ▼ 기업도 사외이사를 두고 있지 않나요.

    “개방형이사제를 기업의 사외이사제와 동일한 것으로 얘기하는 이가 있습니다만, 사외이사는 주주가 선임한다는 점에서 개방이사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학사운영, 인사관리를 비롯한 사학 운영 전반에 법적 심의권을 갖는 교원인사위원회는 법인 이사회의 고유권한을 무력화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사립학교 구성원 간 편 가르기, 헤게모니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념적으로 편향된 임시이사가 사학을 장악하는 예도 있고요. 좌파가 학교를 탈취하고 있는 셈입니다.”

    ▼ 개방이사는 소수(정이사의 4분의 1) 아닌가요.

    “이사회 실정을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개방이사로 들어온 교육운동가, 시민운동가가 분란을 일으키면 막을 방법이 없어요. ‘사고법인’으로 지목되면, 임시이사가 파견되지요. 편향된 시각을 가진 사람들은 감시·감독기관에서 파견된 것처럼 행동하면서 기존 권위를 깎아내립니다.”

    “화가 나서 땅을 치고 싶다”

    ▼ 사학재단이 빌미를 준 것 아닌가요.

    “부정·비리를 저지른 일부 사학이 빌미를 준 건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부정과 비리를 저질러온 사학은 극히 일부예요. 어떤 집단이건 부패는 생겨나게 마련입니다. 검사 판사가 비리를 저지르기도 합니다. 고유한 건학이념에 따라 학교를 잘 운영하는 명문사학 사례는 잘 드러나지 않고, 몰지각한 소수 사학의 문제점만 부각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전 재산을 투자해 학교를 설립한 분들을 전교조가 학원모리배, 비리집단으로 몰아세우고 있어요.”

    “사학(私學)이 운동가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했다”

    동래학원 교정

    ▼ 섭섭하겠습니다.

    “화가 나서 땅을 치고 싶습니다. 이념적으로 편향된 이들이 극히 일부의 잘못을 꼬집으면서 전체 사학을 매도합니다. 예를 들어볼게요. 소방대원 한 명이 안전검사하면서 2만원을 받았다고 칩시다. 소방대원들이 얼마나 고생합니까? 한 명이 잘못했다고 소방대원 전체를 비리집단으로 몰아세워선 안 되죠. 사학법인도 이와 같습니다. 오래된 사학들은 정부가 학교 세울 돈이 부족할 때 나라를 위해 학교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이게 뭡니까? 존경받기는커녕 학교를 세운 그날부터 잠재적 범죄자 취급받습니다. 현행 사립학교법은 남자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성범죄 소지가 있다면서 전자발찌를 채우는 꼴입니다. 범죄를 저질렀다면 채워야겠죠. 잘못한 것도 없는데 태어나자마자 전자발찌를 채우면 어떤 기분이겠습니까. 억장이 무너지는 일 아닌가요.”

    ▼ 사전규제를 사후규제로 바꿔야 한다는 거군요.

    “지금의 사학법은 ‘사악법’입니다. 후진적 사전규제를 없애야 해요. 부정, 비리는 형법으로 처벌하면 됩니다. 1963년 사립학교법을 제정한 이래 41회에 걸쳐 개정이 이뤄졌습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사학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쪽, 사학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쪽을 넘나들면서 법이 바뀌었지만 넓게 보면 자율보다는 통제와 규제 쪽으로 흘렀습니다. 노무현 정권이 입안한 사립학교법은 그중 최악입니다.”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법”

    사립학교법을 폐지하고 사학진흥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게 사학계의 주장이다. 한나라당은 사학계 의견을 일부 수용한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로 했다.

    ▼ 사학진흥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뭡니까.

    “현행 사립학교법은 사학을 지원·육성하는 법이 아니라 규제하는 법입니다. 조항 몇 개를 개정하는 것만으로는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사립학교를 규제·감독 대상이 아닌 진흥·지원 대상으로 여겨야 해요. 사학의 자율적 운영과 발전은 교육을 선진화하고 나라를 발전시키는 바탕이 됩니다. 사학이 다양한 건학이념에 따라 수요자 중심으로 교육할 수 있게끔 국회와 정부가 도와줘야 합니다.”

    ▼ 규제나 감독 없이 학교법인 마음대로 사학을 운영하겠다는 얘기로도 들립니다.

    “학교법인 마음대로 하겠다는 게 아닙니다. 사립학교법을 개정해도 학교 운영을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교육청 감시·감독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학생, 학부모가 문제 있는 사학을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형법도 허투루 있는 게 아니고요. 비리를 척결하는 것과 사립학교법 전면 개혁을 요구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얘기예요. 교육당국 감독을 받지 않겠다는 게 아니라 사학의 자율성을 보장하면서 비리, 부정을 엄벌하는 사후규제를 도입하자는 겁니다. 현행 사립학교법은 자주성, 특수성을 제한함으로써 학교 발전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외부 감사제 도입, 교원노조·교육당국 감사 강화 등을 통해 사학 경영의 투명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 사학진흥법 제정 요구는 과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가 내놓은 의견을 모두 반영해 법을 제정해달라는 건 아닙니다. 학교 설립자가 존중받을 수 있는 법을 만들어달라는 거예요. 명예, 자존심을 깔아뭉개지 말고, 보람을 느끼게 해달라는 겁니다. 사학진흥법을 준비하면서 일본·중국·대만 법률을 검토했습니다. 사학계 요구가 결코 과한 게 아닙니다. 중국 정부만큼만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사회주의를 표방한 중국도 우리처럼 사립학교를 옥죄지 않습니다. 중국보다 규제가 훨씬 많아요. 위헌·독소조항이라고 꼽은 부분은 중국·일본·대만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조항입니다. 사립학교법은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법이에요.”

    “사학(私學)이 운동가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했다”

    2005년 12월29일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사립학교법 개정 무효화를 촉구하는 촛불집회에 참석해 규탄 연설을 들으면서 생각에 잠겨 있다.

    ▼ 교육당국 간섭은 피하려고 하면서 재정 지원은 늘려달라고 요구하는 건 모순 아닌가요.

    “국·공립학교와 사학은 설립주체만 다를 뿐 공교육을 담당한다는 점에선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국가가 사학을 지원하는 건 학교법인을 도와주는 게 아니라 사학에 재학 중인 학생을 지원하는 겁니다. 모든 국민에게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제공하기 위한 지원, 다시 말해 국민교육권에 대한 지원입니다. 국가지원금은 국민이 낸 세금입니다. 학생이 국·공·사립학교 중 어느 곳을 다니든 동일하게 지원받는 게 공정합니다. 중학교 의무교육, 고교 평준화 시책하에선 국가가 중등사학의 재정부족을 책임져야 합니다. 교교평준화 이전에 사립학교는 공립학교보다 등록금을 더 받았습니다. 정부가 결손액을 마땅히 책임져야 합니다. 국가 지원이 있어야 사학이 발전할 수 있어요. 사학 발전 없이는 교육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중학교의 21%, 고등학교의 42%, 2년제 대학의 93%, 대학의 85%가 사립입니다. 사학법 개정을 둘러싼 논란이나 사학에 대한 비판, 불신은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이대로라면 사학 고사(枯死)할 것”

    ▼ 일각에선 사립학교가 사회에 환원된 공적재산이라고 주장합니다.

    “좌파가 그렇게 주장합니다. 잘못된 인식이죠. 학교법인은 민법이 규정한 재단입니다. 공교육을 담당하는 특별한 지위로 인해 사립학교법 등에 따라 권리, 의무를 가진 것일 뿐 본질적으로는 설립자의 건학이념을 실현하려는 목적으로 투여한 사유재산의 집합이죠. 공적재산이란 주장엔 아무런 근거가 없습니다. 사립학교법은 이 같은 잘못된 인식을 바탕으로 설립자의 경영권을 빼앗고 있습니다.”

    ▼ 국가 지원으로 학교를 유지하는 거 아닌가요.

    “법인전입금이 적은데다 수업료와 재정결함보조금으로 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니 학생, 교직원과 경영권을 공유해야 한다는 주장도 사리에 어긋납니다. 정부 보조금으로 학교를 운영하므로 통제, 규제를 받아야 한다는 게 일반적 인식입니다만, 재정결함보조금은 보전금(補塡金)일뿐 국고보조금이 아닙니다. 1974년 고교평준화를 시행하면서 사립학교 수업료를 공립학교 수준으로 동결하면서 부족분을 지원한 겁니다. 사학이 아닌 학생, 학부모가 수혜자인 것이죠.”

    ▼ 일부 사학을 제외하면 법인전입금이 턱없이 낮습니다.

    “그것도 오해예요. 돈을 내놓지 못하면서 어떻게 권리를 요구하느냐는 건데, 학교법인이 보유한 수익용 재산은 임야나 전답 같은 저수익 자산이 대부분입니다. 학교에 충분한 재정적 지원을 못하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광복 이후 교육 수요가 팽창할 때 정부가 수익용 기본재산 확보 기준을 낮게 규정했습니다. 학교법인 처지에서 보면 법령이 정한 설립기준에 맞춰 인가를 받고 학교를 세웠는데, 이제 와서 돈을 충분히 내놓지 못한다고 문제 삼는 것입니다. 학교 세울 돈이 부족할 때 국가가 사학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공적을 인정해주고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합니다. 역사, 전통을 자랑하는 오래된 학교일수록 가난합니다. 기업이나 공장을 가진 법인은 사정이 다르지만요.”

    “사학(私學)이 운동가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했다”

    오정석 이사장이 동래학원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그는 사학 정책에 획기적 변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20~30년 후엔 사학이 고사(枯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인이 학교를 운영해보고 싶다고 하기에 하지 마시라고 했습니다. 그분이 결국 고등학교를 인수했는데, 이사장님 말씀 들을 걸 그랬다고 후회합디다. 또 다른 친구가 150억원으로 학교를 세우면 1년에 이사장 보수로 얼마를 받느냐,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노후를 보내고 싶다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보수를 받는 게 아니라 1년에 3억원가량 내야 한다고 답했더니 사정이 그러면 누가 학교를 세우겠느냐고 되물으면서 놀라더군요. 사학법인 이사장은 직장 의료보험도 가입할 수 없어요. 월급을 받는 것도 아니고요. 운영엔 간섭하지 말고, 돈만 내놓으라는 겁니다. 이사장들이 집에서 회사 다 정리하고 이게 뭐냐, 우린 뭐 먹고살라고 하느냐, 결혼한 남편으로 자격이 있느냐는 소리를 듣습니다. 25년째 사학이 늘어나질 않고 있어요. 이런 환경에서 누가 학교를 세우겠습니까. 학교를 세우자마자 손도 못 대게 하는 게 옳은 일입니까. 학교를 세운 그 순간부터 잠재적 범죄자, 규제 대상으로 취급받습니다. 명예를 주지는 못할지언정 이건 아니죠. 건학이념에 따라 학생을 육영하면서 긍지, 보람을 느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참을 만큼 참았다”

    ▼ 학교재단이 내다버린 수준으로 방치한 사학도 적지 않겠군요.

    “학교별로 차이가 있지만 사립대학은 국·공립대학보다 높은 수준의 수업료를 받는 덕분에 시설 투자가 가능합니다. 사정이 아주 나쁘진 않은 거죠. 하지만 사립 중·고등학교는 정부가 수업료를 통제하면서 재정적 여력이 없습니다. 대기업이 운영하거나, 재정이 탄탄한 일부 학원을 제외하면 학교법인은 수익금의 80%를 학교로 전출해야 하는데다 법정부담금도 내야 해서 미래를 위해 적립금을 마련하거나 투자에 나설 여력이 없습니다. 막대한 재정을 투입해야 하는 교사 신축·개축·보수가 제때 이뤄지지 못해 교육환경도 공립학교보다 열악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까지는 만족할 만한 수준은 못 되더라도 시·도별로 교육청 예산을 통해 사립학교 교사 개·보수비용을 지원해왔지만, 앞으로는 그마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무상급식처럼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는 정책을 시행하면 사립학교 시설에 대한 지원은 후순위로 밀릴 겁니다.”

    그는 인터뷰 중 수시로 “명예를 되찾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보람, 긍지라는 낱말을 자주 썼다.

    “사립학교는 서구식 교육 도입 및 발전에 선도적 구실을 했습니다. 기독교 학교를 중심으로 국민 계몽을 이끌었고, 일제강점기엔 독립운동의 산실이었습니다. 6·25전쟁 이후 국토가 폐허가 되자 독지가들이 교육입국의 정신으로 사재를 털어 학교를 세웠습니다. 교육 기회를 확대하고 산업 인력을 양성하는 데 사학이 공헌한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 같은 길을 걸어온 사학이 편향된 이념을 가진 운동가들의 먹잇감이 돼버렸습니다. 이건 아니에요.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는 “참을 만큼 참았다”고 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에서 일하는 어떤 분은 삭발 같은 것으로는 뜻을 전달하지 못한다, 분신하겠다고 하더군요. 노무현 정부 때는 서울역광장에서 시위도 하고, 고함도 질렀습니다. 정권이 바뀐 뒤 참고 기다렸습니다. 당선되면 사립학교법을 개정하겠다는 약속을 믿었어요. 순진했던 거죠. 착잡한 심정입니다. 기다리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머리 깎는 식의 방법으로 불만을 표출해선 안 되겠다는 생각입니다. 더욱 강력한 방식으로 정권에 항의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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