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호

투명한 치료 결과 지표가 재정 효율성 높인다

중병 앓는 건강보험을 위한 처방전

  • 김민영| 맥킨지 서울사무소 파트너 서제희| 맥킨지 서울사무소 컨설턴트

    입력2010-12-22 15: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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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강보험 재정이 만성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재정 파탄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논의는 국가보험과 공급자 간의 수가협상에 머물고 있는 상황.
    • 하지만 건강보험의 재정 건전성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출구조를 효율화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신동아’가 각 전문기관의 연구결과물을 검토해 선정한 이달의 보고서는 맥킨지 서울사무소가 발간한 ‘중병 앓고 있는 건강보험 처방전은 따로 있다’다.
    투명한 치료 결과 지표가 재정 효율성 높인다

    뇌하수체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 광경. 한국은 건강보험 지출에서 비중이 큰 암 질환 생존율이 높은 반면, 그 외 대부분 질환의 생존율과 치료 효과는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0년 건강보험공단의 회계장부에는 약 1조3000억원의 적자가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건강보험의 재정 건전성 문제는 분명히 풀어야 할 숙제다. 하지만 이전과 다름없는 단기적인 대응이 이뤄져서는 안 된다.

    얼마 전 보건사회연구원이 펴낸 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6년간 우리나라 노인 인구의 총 의료비가 연평균 18.8% 증가했다. 이는 같은 기간 64세 이하 의료비 증가율인 8.9%의 2배를 상회하는 수치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는 나라다. 국민 건강의 근간을 책임지는 건강보험의 유지를 위해서라도 문제의 본질에 대한 논의가 새롭게 필요한 시점이다.

    지난 10년간 보수적으로 유지돼온 건강보험의 수가정책 덕분에,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다른 가입국가보다 낮은 비용으로 국민보건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가격 통제를 기본으로 하는 비용 억제는 이제 한계에 달했다. 보험 외 비용의 상대적 증가와 함께 병원, 제약, 의료기기 등 관련 산업의 투자 인센티브를 저해하는 역효과도 동반하고 있어 향후 주된 정책방향으로 삼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현실적인 접근이 중요하다. 단기적으로는 국민 건강증진에 핵심적인 부문에서 비용 대비 효과의 객관성을 확보하고, 이를 근거로 장기적인 재원확충의 기반을 마련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국민이 건강보험 재원 확충에 동의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믿음이 전제돼야 한다. 첫째는 재원이 국민건강 증진을 위해 꼭 필요한 곳에 적절히 배분·투입되고 있다는 것, 둘째는 이렇게 투입된 재원이 국민건강 증진에 효과적으로 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근경색 단기생존율 최하위

    현재 재원은 적절히 배분되고 있는가.

    흔히 질환이 국민건강과 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는 지표 중 하나로는 ‘장애보정손실연수’(DALY·Disability Adjusted Life Year)를 꼽는다. 당연히 손실연수가 큰 질환에는 건강보험 재정에서 상대적으로 비용을 집중 투입할 필요가 있고, 반대로 작은 질환에는 되도록 비용을 적게 써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 우리나라의 질환별 DALY와 건강보험공단 지출을 비교하면 재원의 배분이 최적화돼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표1 참조)

    투명한 치료 결과 지표가 재정 효율성 높인다
    예를 들어, 당뇨병 및 허혈성 심질환은 DALY가 높아 대규모 비용이 지출되고 있으나, 천식은 대부분 암의 2~3배 이상의 손실연수에도 불구하고 이에 상응하는 지출이 이뤄지고 있지 않다. 이 기준으로 건강보험의 재원지출을 결정한다면, 천식, 위궤양·식도염 및 류머티즘 관절염 등에 상응하는 수준으로 지출을 늘려야 할 필요가 있다.

    투명한 치료 결과 지표가 재정 효율성 높인다
    현재 재원은 국민건강증진에 효과적으로 기여하고 있는가.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투입된 재원으로 국민의 건강이 얼마나 향상됐는지 확인할 수 있는 치료결과(Treatment Outcome) 데이터가 절실하다. 그러나 국내에는 투입된 의료재원의 비용대비 효과를 가늠할 수 있는 자료가 충분치 않다. 암 질환을 제외한다면, 약 2년에 한 번씩 질병관리본부에서 조사해 발표하는 국민질병통계가 있으나 일부 만성질환에 대해서만 통계가 존재할 뿐이다. 또 여러 임상학회의 발표 자료는 학술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졌고, 특수 환자군에 제한되는 경우가 많아 정책적 활용에는 한계가 있다.

    결국 우리 국민은 국민건강보험 체계를 통해 30조원을 상회하는 수준의 비용을 부담하면서도 그 효과가 어떠한지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알지 못하고 있다. 연 30조원 규모라면 국내 재계 2~3위권 회사 수준인데, 이들 회사의 투자 성과를 철저히 따지고 책임을 묻는 것과는 확연히 비교되는 상황이다.

    우리 국민 모두가 현재의 치료결과에 만족한다면 추가적 논의는 불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나와 있는 몇 안 되는 통계만 살펴봐도 아직은 그렇지 않다. 2009년 OECD 발표 자료를 보면, 한국은 주요 질환의 건강증진 순위에서 OECD 가입국 중 평균 이하의 성적을 내고 있다.(표2 참조) 전체적으로는 한국의 암 질환 생존율이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평균 이상 수준인 반면, 그외 대부분 질환의 생존율 및 치료 효과는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심근경색 단기생존율은 우리나라 성인의 평균적인 심장 건강 상태가 서양인에 비해 좋다고 알려져 있음에도 OECD 가입국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지난 몇 년간 국가 등록사업을 실시해 생존율 관련 자료를 상세히 찾아볼 수 있는 암 질환이 타 질환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수한 치료결과를 보인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치료결과에 대한 투명성이 확보될수록, 의료진과 병원은 이를 성과지표로 인식하고 생존율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이다.

    비용보다 치료결과에 집중하는 것이 국민건강 증진은 물론 의료재원 지출의 최적화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 선진국들의 사례를 살펴보면 더욱 확실히 알 수 있다.

    [사례1] 생존율·사망률을 철저히 모니터링한 독일의 헬리오스(Helios)

    헬리오스는 독일의 민간 병원 체인으로 총 60여 개의 병원에 1만3000여 병상을 운영하고 있다. 이 병원에서는 24개 주요 질환에 대한 생존율·사망률 등 치료결과 자료를 자발적으로 측정, 발표하고 관리했다. 또 670여 개의 의료 질 관련 지표를 정기적으로 측정하기도 했다.

    그 결과 3년(2003~05년)이라는 짧은 시간 내에 심부전 사망률이 29%, 대동맥류 사망률이 28%, 위장관 출혈 사망률이 22%, 폐렴 사망률이 21% 감소하는 등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사례2] 치료결과를 모니터링하고 90일간 보증하는 가이싱어(Geisinger)

    미국 가이싱어 병원은 치료 효과를 측정해 치료 수준이 미진한 경우에는 추가적인 비용을 보험사 또는 환자로부터 받지 않고 사후 관리해주는 제도를 도입했다. 관상동맥우회로술 등 몇 개의 규격화된 수술에 대해 먼저 이 제도를 도입한 결과 재입원율은 44%, 수술후유증은 21% 감소했다. 특히 수술 후 치료비용은 50%가량 감소했는데, 이는 환자 1인당 약 6000~7000달러에 해당한다.

    투명한 치료 결과 지표가 재정 효율성 높인다
    [사례3] 약품 효과에 따라 차등적으로 보험급여를 주는 영국

    영국 국가의료보험(NHS)은 벨케이드(Velcade)라고 하는 혁신적 다발성 골수종(Multiple myeloma) 신약을 등재하는 과정에서, 이 약제가 모든 환자에게 동등하게 효과를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착안해 제도를 신설했다. 기대효과를 보인 환자에 대해서는 국가보험이 비용을 전액 부담하고, 그렇지 않은 환자에 대해서는 제약회사가 차후에 약품비용을 일부 환불하는 것이 이 제도의 골자다. 이로 인해 영국은 약제의 치료효과에 따라 재정지출을 최적화하면서 절감된 비용만큼 더 많은 환자에게 최신 약제의 혜택을 제공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었다.

    치료결과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이유

    투명한 치료 결과 지표가 재정 효율성 높인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에서 한 노인 환자가 재활 치료를 받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는 한국은 국민 건강의 근간을 책임지는 건강보험에 대해 새로운 논의가 필요하다.

    국가 차원이 아니라 의료기관별 치료 결과를 살펴보면, 획일적 수가체계가 적용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치료결과에 대한 논의가 왜 더욱 절실한지 알 수 있다. 현재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통해 주요 질환 중 의료기관별 통계가 공식적으로 수집되고 있는 것은 심근경색 단기 사망률 하나뿐이지만, 여기에서도 큰 차이가 나타난다.

    서울시내에 있는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비교했을 때 심근경색 후 30일 내 사망률이 가장 낮은 곳은 5.1%인 데 반해, 가장 높은 곳은 무려 28.1%로 수치가 5배 이상 차이가 나는 것을 알 수 있다.(표3 참조) 물론 의료기관마다 내원 환자의 특성이 다를 수는 있으나, 같은 서울시내 의료기관들인 만큼 이것만으로 치료결과의 차이를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국가보험에서 국민건강을 위한 재원이 효과적으로 쓰이고 있다고 말하려면, 최소한 주요 질환에 대한 치료결과의 지표가 확립돼야 한다. 그 결과에 따라 적절한 비용이 지출되고 있음을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재정효율성 문제를 떠나 양질의 의료를 보장하고, 의료기관의 진료 목표와 국가보험이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정책 목표 간에 최소한의 교집합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하다.

    국가보험체계의 재정 확보 문제는 선진국의 공통적인 고민이다. 이러한 고민을 시작한다는 것은 우리나라도 이제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서고 있다는 방증이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위상에 걸맞은 의료의 질을 보장하려면 의료비 증가는 불가피하다.

    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가 국가보험과 공급자 간의 수가협상이나 보험제도의 제한적 수정에 머무는 한 모범답안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국민에게 현재 재원이 적절한 곳에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국민건강과 의료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 어떠한 부분에 추가적 재원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서 국가의 중요한 역할은 치료결과 지표와 그 데이터를 투명하게 확보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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