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호

2014

6장 폭동(暴動)

  • 입력2010-12-22 17: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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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동일의 해병부대가 혁혁한 전과를 올리는 동안 노농적위대의 봉기에 이어 일부 정규군도 반란에 가담하는 등 북한군의 내분이 심각해진다. 김정일에 반기를 든 2군단사령관 김경식은 중국에 군 투입을 요청한다. 한편 이동일 부대의 포로인 북한군 중위 윤미옥과 이동일 휘하의 조한철 중위는 바위틈에서 뜨거운 정사를 나누는데… <편집자>
    2014

    일러스트 · 박용인

    2014년 7월25일 금요일 15시50분, 개전 5시간00분25초 경과.

    일대의 인민군이 산업지구 쪽에서 신천 시내로 진입하고 있다. 전시(戰時) 상황에서 시내는 병사들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그들도 곧 병사 사이에 섞였다.

    “저쪽에 인민학교가 있습니다.”

    하고 왼쪽을 가리킨 사내는 적위대 차림의 오규성이다. 이동일의 옆으로 다가선 오규성이 말을 이었다.

    “인민학교는 전시에 부대가 사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교실에 들어가 쉬면서 작전을 짭시다.”



    이동일이 오규성을 보았다. 전석규는 합류하자는 이동일의 제의를 거부하고 돌아갔지만 노농적위대원 다섯 명이 합류했다. 그중 오규성이 가장 연장자이며 지휘자다. 이동일의 시선을 받은 오규성이 이가 빠진 치열을 드러내며 웃었다.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지요.”

    “좋습니다. 그럼 오 선생이 먼저.”

    이동일이 말하자 오규성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앞장을 섰다. 오규성의 뒤를 인민군복 차림의 해병 둘이 따른다. 대열은 왼쪽으로 꺾어져 이동했다.

    “시민들이 눈에 띄지 않는데요.”

    옆으로 다가온 조한철 중위가 낮게 말했다. 하긴 그렇다. 60대의 오규성도 군복을 입었으니 시민이 눈에 띌 리가 없다. 그때 윤미옥이 대답했다.

    “모두 동원이 되었고 노인이나 아이들만 집 안에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600만 대군이라고 선전했군.”

    혼잣소리처럼 말한 조한철이 걸음을 늦추더니 뒤쪽으로 떨어졌다. 3열종대로 인민군 병사들이 행진해오고 있었지만 이쪽은 관심도 보이지 않는다. 2개 부대로 60여 명, 인솔자는 대위였는데 힐끗 이쪽을 보더니 외면했다. 지친 표정이었고 병사들의 발도 제대로 맞지 않는다.

    그 시간에 김경식은 호위대 벙커에서 한국 방송을 보는 중이었다. KBS는 지금 10여 번 계속해서 같은 장면을 방영하고 있었지만 김경식은 처음이다. 그때 화면에 60대의 노농적위대원이 나타나더니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이제는 이놈의 세상을 뒤집어야 해. 마침 우리 손에 총이 쥐어졌으니 끝장을 내겠어.”

    벙커 안은 조용해서 사내의 목소리가 시멘트벽에 부딪혀 울렸다. 그때 화면이 꺼지더니 옆에 서 있던 대좌가 말했다.

    “화면을 편집해서 위치 파악을 못하도록 했지만 황해남도 태안, 벽성군 지역인 것 같습니다.”

    모두 듣고는 있었지만 시선이 이리저리 옮겨졌다. 다시 대좌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남조선 해병놈들은 인민군으로 위장하고 있습니다. 황해남도 지역의 검문을 강화해야 될 것입니다.”

    “곧 삐라가 넘어올 거요.”

    하고 옆쪽에 앉아 있던 무력부장 성종구가 말했으므로 김경식이 머리를 들었다. 성종구는 김경식에게 지휘권을 빼앗긴 후부터 거의 나서지 않았다. 벙커 안의 모든 시선이 모여졌고 성종구가 말을 잇는다.

    “내란이 일어났다고 선동하겠지. 전연(前緣)지대의 정규군보다 노농적위대, 교도사단이 동요할 거요.”

    “정치군관이 즉결처분을 할 겁니다.”

    김경식이 자르듯 말했을 때 성종구가 입술을 비틀고 웃었다.

    “전시에는 정치군관의 장악력이 떨어지지. 내가 전쟁을 겪어봐서 알아.”

    “그때하곤 다르오.”

    그러고는 김경식이 옆쪽 장성에게 말했다.

    “4군단 지역이 뚫린 건 우장선 책임이야. 우장선이 서둘러 그놈들을 잡아야 돼. 김정일 눈치만 보면 안 된다고.”

    몇 시간 전만 해도 군 지휘관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줄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16시00분, 개전 5시간10분25초 경과.

    “이것 봐.”

    국제신문 사회부장 홍동수의 놀란 외침이 터졌다. 홍동수가 내민 스마트폰에 트위터 글이 떠 있다.

    “계엄군이 곧 민노총, 전교조, 한총련 등 이적단체 가입자에 대한 대대적인 체포 작전에 돌입할 예정임.”

    그것을 읽은 사회부 기자 김순기가 쓴웃음을 짓더니 제 휴대전화를 꺼내 흔들었다.

    “내 휴대전화에도 떴습니다. 이제 놈들이 조직적인 반란 선동을 시작하는 겁니다.”

    “휴전 상태가 되니까 조금 여유가 생겼기 때문인가?”

    “한숨 돌린 것이지요. 이번에 반전하지 않으면 기회가 없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김순기가 제 휴대전화에 뜬 트위터 기사를 보여주었다.

    “계엄군과 경찰은 종북세력을 말살할 작정. 대규모 처형장과 수용소 준비 중. 재산압류, 추방까지 다각적 검토.”

    기사를 본 홍동수가 눈을 둥그렇게 떴다

    “이것 봐라? 그럼 이걸 읽은 종북세력이 떨 것 아닌가?”

    “그럴까요?”

    쓴웃음을 지은 김순기가 만날 잔소리를 늘어놓는 홍동수를 보았다.

    “당할 바에는 한번 붙어나보자 하고 악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더구나 이놈들은 선동에는 이골이 난 놈들이란 말입니다.”

    “그건 그렇지.”

    홍동수가 선뜻 동의하고는 길게 숨을 뱉는다.

    “간단히 손을 들 놈들이 아냐.”

    “이러다가 트위터 선동으로 옛날 짝 일어나는 것 아닙니까?”

    “옛날 짝이라니?”

    “광우병 촛불 난동이요.”

    그러자 홍동수가 쓴웃음을 짓는다. 수백만이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광우병이 걸린다면서 촛불을 들고 난동을 부렸던 때가 6년 전이다. 그때도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가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지금은 트위터에다 영상전달 기능을 대폭 강화한 휴대전화가 보급되어 있는 것이다.

    “지금은 전시계엄 상태야. 그때하곤 달라.”

    홍동수가 머리를 내저으며 말을 잇는다.

    “이제는 군이 거리에 나와 있다고. 종북세력이 공개적으로 쏟아져 나올 수는 없단 말이야.”

    그러나 김순기의 표정은 시큰둥했고 홍동수도 더 말을 잇지 못했다.

    16시05분, 개전 5시간15분25초 경과.

    황해북도 사리원시 남쪽 제47교도사단 29지구대 본부 막사 안.

    지구대장 김동복 중좌가 창가로 다가가 창밖을 본다. 연병장 안에는 지구대 전 병력이 모여 있었으므로 어수선했다. 29지구대는 3개 보병중대와 1개 대전차포중대로 편성되었지만 병력은 20%가 모자랐고 대전차포도 12문 중 7문이 고장이다. 교도사단 병력은 현역에서 제대했거나 제외된 17~45세까지의 남자와 17~30세까지의 여자로 편성되었는데 제대병 대부분은 하전사(下戰士) 전역자다. 29지구대는 정규군단인 12군단에 소속되어 있었으므로 지금 옆방에서 소리 지르는 사내가 바로 군단에서 파견된 대위다.

    “닥치라우! 변명은 더 듣지 않겠어!”

    하고 대위의 외침이 들렸으므로 김동복이 창에서 몸을 돌렸다. 그러자 묵묵히 서있던 부대장 오인철 대위가 김동복 앞으로 다가섰다.

    “저놈은 시비를 걸 작정입니다. 내버려두십시오.”

    김동복은 입맛만 다셨고 오인철이 말을 잇는다.

    “오래전부터 고장 나 있는 대전차포를 무슨 수로 고쳐놓으라는 겁니까? 저놈은 전연지대 복무도 해보지 않은 놈입니다.”

    그때 방문이 열리더니 대위와 상사, 중사 계급장을 붙인 셋이 방 안으로 들어섰다. 이들이 군단에서 파견된 감독관이다. 김동복 앞에 선 대위가 똑바로 시선을 준 채 말했다.

    “북한 내부 폭동이 보도되기 시작하자 국내의 선동 메시지가 차츰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놈들은 마치 그늘을 쫓아다니는 쥐새끼들 같습니다.”

    “인터넷과 휴대전화 통신을 차단하지 않았던 게 잘한 일인 것 같군. 그렇지 않습니까?”

    하고 박성훈이 묻자 두 대장은 눈만 끔벅일 뿐 대답하지 않았다. 군은 계엄과 동시에 인터넷과 휴대전화 사용을 차단하도록 건의했던 것이다. 전시작전계획서에도 대통령의 승인을 받아 즉각 차단토록 명기되어 있다. 그러나 대통령은 급하지 않다면서 승인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자 쓴웃음을 지은 박성훈이 제 말에 제가 대답했다.

    “물론 지금까지는 말이오. 앞으로 역효과가 날 땐 즉각 차단하십시다.”

    그 시간에 55호위대 벙커 안쪽 밀실에서는 고성이 터지고 있다.

    “아니, 지금이 적시(適時)라고 했지 않습니까! 도대체 뭘 기다리시는 거요!”

    하고 김경식이 소리치자 통역을 들은 황방산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이쪽 요구사항은 분명히 전했으니까 기다려보시오.”

    “폭동이 번져 공화국 전체가 난장판이 될 때까지 말이오?”

    통역의 말이 끝나자마자 버럭 소리친 김경식이 갑자기 눈을 가늘게 떴다.

    “이것 봐요, 나는 물론이고 김정일씨한테도 지금이 최악의 상황이요. 김정일씨도 적위대, 군의 반란은 예상하지 못했을 테니까 말야.”

    한마디씩 잘라 말한 김경식이 통역을 향해 소리쳤다.

    “이렇게 되면 중국이 계획했던 조선성은 물거품이 되는 거야. 그러니까 폭동이 더 번지기 전에 중국군을 투입시키라고!”

    그러자 통역의 말을 들은 황방산이 먼저 길게 숨을 뱉고 나서 묻는다.

    “그런데 만일 반란군이 중국군을 공격한다면?”

    황방산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져 있다.

    “장군, 그런 경우를 상상해보았소?”

    통역의 말이 끝났을 때 김경식은 눈만 치켜떴다. 상상해보지도 못한 것이다.

    김정일이 손을 내밀자 소장 계급장을 붙인 장군이 휴대전화를 건네주었다. 주석궁의 지하 벙커 안이다. 주위의 시선을 받으며 김정일이 휴대전화를 귀에 붙였다. 그러고는 정색하고 말했다.

    “예, 시진핑 동지. 김정일입니다.”

    그러자 시진핑의 중국어에 이어서 통역의 말이 귀를 울렸다.

    “김경식 대장이 중국군 투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위원장 동지.”

    김정일은 어금니만 물었고 시진핑의 말이 이어졌다.

    “위원장 동지께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김경식이 반역자이며 중국군 투입을 요구할 권한이 없다는 것을 주석 동지께서는 알고 계시지요?”

    김정일이 한마디씩 차분하게 묻자 지하 상황실은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엄청난 내용을 모두 들은 것이다. 그때 시진핑이 말했고 억양까지 비슷한 통역의 말이 이어졌다.

    “물론 정통성이 위원장 동지께 있으니 이렇게 묻는 것입니다. 하지만 김경식은 중조 국경의 4개 군단 전체와 전연지대의 2개 군단, 820전차군단까지 장악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 상황을 크게 우려하고 있습니다. 위원장 동지.”

    “곧 수습이 될 겁니다. 주석 동지.”

    “하지만 내부 폭동이 심해지면 양측 지휘부는 무력해질 것이고 결국은.”

    시진핑의 목소리에 짜증기가 섞인 것처럼 느껴졌고 통역의 억양도 그랬다. 잠깐 입을 다물었던 시진핑이 말을 잇는다.

    “이제 양측의 당면 문제는 내부 폭동 수습입니다. 정규군까지 폭동에 가세하고 있는데다 남쪽에서 삐라를 대규모로 쏘아 올리는 바람에 북한땅 전역이 위험해지고 있단 말입니다.

    “알았습니다. 주석 동지, 염려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폭동이 수습되면 중국군 투입을 위원장님과 협의하도록 하지요.”

    “감사합니다. 주석 동지.”

    “천만에요. 우린 동맹국 아닙니까? 위급할 때는 서로 도와야지요.”

    시진핑의 부드러운 대답을 들으며 김정일은 휴대전화를 귀에서 떼었다. 그러고는 앞쪽 벽을 노려보며 말한다.

    “폭동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중국군은 국경을 넘어왔겠군.”

    모두 입을 다물고 있었으므로 김정일의 목소리만 방을 울린다.

    “지금은 내 정통성을 인정해주는 시늉을 하지만 말야.”

    머리를 돌린 김정일이 김정은을 보았다. 김정은은 눈도 깜박이지 않고 아버지를 바라보는 중이다. 그때 김정일이 말했다.

    “잘 들어라.”

    “예, 위원장 동지.”

    “영원한 동맹, 우방은 없다.”

    “예, 위원장 동지.”

    그 순간 김정일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지더니 한마디씩 잇사이로 말을 뱉는다.

    “모든 인간은 제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 국가는 더 말할 필요도 없는 법이야.”

    그야말로 질풍처럼 달렸다. 신천에서 재령까지 달리는 동안 검문소 두 곳을 지났는데 두 곳 모두 비어 있었다. 그것도 금방 철수한 것처럼 차단기를 내려놓은 채 검문소의 병사들이 사라진 것이다.

    재령이 3㎞ 남았다는 이정표를 지났을 때 앞을 달리던 트럭이 멈춰 섰으므로 이동일이 탄 트럭도 서둘러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들은 트럭 두 대에 분승하고 있었던 것이다. 앞차에서 내린 조한철이 먼지를 뚫고 달려왔다.

    “앞쪽에서 전투가 벌어진 것 같습니다.”

    조한철이 소리치듯 말했으므로 이동일도 트럭에서 뛰어내렸다. 그들이 다시 앞쪽으로 달려가 길 모퉁이에 섰을 때였다. 이동일은 앞쪽 산기슭에서 솟아오르는 화염을 보았다. 그리고 폭음과 함께 불기둥이 일어난다. 이어서 요란한 발사음이 이어졌다. 전투가 벌어진 것이다.

    “저 산기슭 안쪽에 12군단 직할 보급대가 있어요.”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오규성이 소리쳐 말했다. 그가 손을 들어 왼쪽을 가리켰다.

    “저쪽 불길이 올라오고 있는 곳이 막사요. 습격을 받은 겁니다.”

    오규성의 주름진 얼굴에 생기가 돌고 있다. 그도 한 시간 전에 노농적위대 병사들과 보위대의 양곡창고를 습격했던 것이다. 이동일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여기서부터 도보로 전진이다. 서둘 것 없다.”

    그때였다. 갑자기 병사 하나가 소리쳤으므로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모아졌다.

    “저것!”

    병사가 하늘을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그 순간 이동일은 숨을 삼켰다. 하늘이 온통 꽃가루로 덮여 있는 것 같다. 온갖 색깔의 꽃가루가 반짝이며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삐라다.

    17시05분, 개전 6시간15분25초 경과.

    “중대장님!”

    철원 근처의 DMZ부대인 제57사단 16연대 제1대대 2중대장 안덕수 대위는 무전기를 울리는 고함소리에 이맛살을 찌푸렸다. 상대는 3소대장 주상호 중위, 학군 출신으로 제대가 두 달 남은 말년이라고 만날 건둥거리다가 이번에 날벼락을 맞은 셈이 되겠다.

    “뭐야? 또?”

    조금 전에도 주상호는 앞쪽 적 동향이 수상하다고 소리쳐 보고했는데 아무것도 아니었다. 망원경으로 보았더니 서너 놈이 뛰어가는 것뿐이었다. 그때 주상호가 악을 썼다.

    “왼쪽을 보십시오!”

    전시라 중대장도 벙커에 나와 있었으므로 안덕수는 망원경을 눈에 붙이고는 왼쪽을 보았다. 그러고는 대번에 몸이 돌덩이처럼 굳어졌다.

    “57사단 지역에서 인민군 2군단 소속 1개 대대가 투항해 왔습니다.”

    무전기를 아직 손에 쥔 채 육참총장 조현호가 소리쳤다. 그 순간 연합사령부 벙커 안은 짧은 환성이 일어났다. 다시 조현호의 외침이 벙커 안에 울렸다.

    “2군단 7사단 소속의 경보병 대대인데 지금 일렬로 서서 DMZ 안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일이어서 연합사령부에 보고도 못하고 1개 대대 병력의 투항병을 받아들인 것이다. 전시여서 현지 연대장의 즉결사항이다.

    “그렇다면 이 지역이 뚫린 건가?”

    상황판의 투항지역을 보면서 합참의장 장세윤이 묻자 작참부장 박진상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다 비웠으니까 넘어올 수 있는 겁니다. 등에 총을 쏘도록 남겨두고 오겠습니까?”

    “이제 시작이오.”

    갑자기 연합사 참모장 해리슨이 영어로 말했지만 모두 들었다. 자리에서 일어선 해리슨이 열띤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썩은 종기에 바늘 끝으로 구멍 하나만 뚫으면 다 터지는 겁니다. 이제 고름이 폭발하듯 터질 겁니다.”

    영어에 유창한 장세윤이 쓴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지만 표현이 의학적이군.”

    그 시간에 송아현은 기다리던 이동일의 영상통신을 받는 중이다.

    “여긴 재령 근처인데 12군단 보급대가 반란군의 습격을 받았어.”

    이동일의 목소리가 울리더니 곧 화면에 불타는 막사와 부서진 창고가 생생하게 드러났다. 조금 멀리서 찍고 있는지 창고 안으로 떼 지어 들락거리는 남녀의 모습이 흔들렸다. 지금 수백 명의 병사와 함께 민간인 남녀노소가 창고에서 쌀자루를 메고 나오는 중이다. 쌀자루를 서너 개씩 한번에 머리에다 이고 나오다가 넘어지는 여자도 있고 미친 듯이 등에 지고 달려가는 남자도 있다.

    “타탕! 탕! 탕!”

    그쳤던 총소리가 휴대전화에서 울렸으므로 송아현이 긴장했다. 그때 이동일이 화면을 그쪽으로 비치면서 말했다.

    “보급대 병사가 살아 있었던 모양이야.”

    화면에 창고 벽에 기대앉은 병사를 향해 앞에서 사격하는 인민군이 보였다. 반란군이다.

    “삐라가 사방에서 떨어져 있어. 이젠 이쪽도 통제 불능 상태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이동일이 말했을 때 그때서야 송아현이 입을 열었다.

    “오빠, 위성으로 보여줬는데 지금 북한 여러 곳에서 폭동이 일어나고 있어. 사리원은 반란군이 점령한 상태고 조금 전에는 남포에서 해군이 반란을 일으켰어.”

    “아, 그래?”

    이동일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그러고는 창고를 비추던 화면이 바뀌더니 이동일의 얼굴이 나타났다. 인민군복 차림이어서 낯선 얼굴이 떠있다.

    “이제 좀 쉬어야겠다. 계속 강행군을 했더니 말야.”

    “오빠, 몸조심해.”

    송아현이 서두르듯 말했을 때 이동일이 얼굴을 펴고 웃더니 짧게 소리쳤다.

    “대한민국 만세!”

    그러고는 화면이 꺼졌으므로 송아현이 몸을 돌려 뒤쪽을 보았다.

    “대한민국 만세!”

    정색한 하기호가 따라 외치더니 쓰고 있던 이어폰을 벗으며 말했다.

    “이 장면도 위성으로 찍은 것으로 편집해! 이동일씨 위치가 알려지면 안돼.”

    17시15분, 개전 6시간25분25초 경과.

    “괜찮아요?”

    다가온 조한철이 묻자 윤미옥은 벗어놓았던 인민군모를 다시 썼다. 이곳은 재령 남서쪽으로 12사단 보급대가 발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야산의 8부 능선이다. 지금까지 쉬지 않고 달려온 터라 이동일은 이곳에서 휴식을 지시했다. 그래서 저녁 준비를 하는 대원 몇 명만 제외하고 모두 잠이 들었다. 잠처럼 효력이 강한 휴식이 없다. 옆쪽 바위에 기대앉은 조한철이 들고 온 레이션을 윤미옥 앞에 놓고 말했다.

    “이건 밥이니까 물만 부으면 돼요. 붓고 1분만 지나면 먹습니다. 그리고 이건 쇠고기, 이건 김치….”

    “됐어요.”

    하고 윤미옥이 말을 자르자 조한철이 쓴웃음을 지었다. 주위는 조용하다. 아래쪽에서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렸는데 취사당번들이다.

    “중위, 경계심을 버려요. 난 당신과 친해지려고 이러는 거요.”

    조한철이 말하자 윤미옥이 퍼뜩 시선을 주었다.

    “왜 친해지려는 거죠?”

    “꼭 이유를 알아야겠소?”

    정색한 조한철이 윤미옥을 똑바로 보았다. 조한철의 시선을 받은 채 윤미옥이 대답했다.

    “그래요, 알아야겠어요.”

    “남자 대 여자로 당신과 친해지고 싶은 거요. 윤미옥씨.”

    “그래서요?”

    “그래서라니?”

    “내 몸을 갖고 싶은 거죠?”

    그 순간 조한철은 눈을 크게 떴다가 곧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더니 머리를 한쪽으로 기울이면서 말했다.

    “그렇군, 친해지면 그렇게도 되겠지.”

    발을 뗀 조한철이 등을 보인 채 말을 잇는다.

    “하지만 상대방한테서 직접 말을 듣고 보니까 그럴 마음이 달아났어. 난 아무래도 너무 순진한가봐.”

    그 시간에 12군단장 이기준 대장은 황해북도 신계의 군단사령부에서 국방위원장 김정일의 전화를 받고 있었다. 부동자세로 선 이기준의 귀에 김정일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군단 직할 사단을 투입해서 반란군을 진압하도록. 동무의 임무는 반란진압이야.”

    “예, 지도자 동지.”

    이기준이 힘차게 대답했지만 벽을 향한 눈동자는 흐리다. 상황실 벙커의 주위에 둘러선 참모장 이하 참모들의 표정도 어둡다. 12군단 휘하의 2개 교도사단, 그리고 군단 지역 내의 9개 노농적위대에서 반란이 일어난 것이다. 반란은 폭동으로 이어져서 6개 도시의 보위부가 전멸했고 양곡보관소 9개가 강탈당했다. 사상자는 계산하지도 않았다. 그때 김정일의 목소리가 다시 울린다.

    “2군단 소속 1개 대대가 남쪽으로 투항했다. 김경식이 제55호위대 벙커에서 반란군을 지휘하는 동안에 제 몸통까지 떨어져 나가고 있어. 정규 군단이 흔들리면 공화국이 위험하다. 동무도 군단 단속을 잘하도록.”

    “예, 지도자 동지.”

    그때 통신이 끊겼으므로 이기준은 어깨를 늘어뜨리면서 길게 숨을 뱉는다.

    “군단장 동지. 12개 지역으로 군단 병력을 파견해야 될 것 같습니다.”

    김정일과의 대화는 상황실의 스피커를 통해 모두 들은 터라 참모장 우영술 중장이 말했다.

    “반란을 일으킨 부대가 세력을 끌어 모으고 있어서 급합니다.”

    그때 이기준이 우영술을 보았다.

    “대기시켜.”

    이기준의 눈빛이 강해졌다.

    “내부에서도 동요가 있을지 모르니까 내부 단속이 먼저다. 대기 상태에서 철저히 교육하도록.”

    그러자 군단정치국장 최경운 중장이 바로 나섰다.

    “군단장 동무, 지도자 동지의 지시를 어기실 것이오? 대기시키라니? 지도자 동지께선 반란군을 진압하라고 하셨지 않습니까?”

    “내부 단속도 잘하라고 하셨소.”

    뱉듯이 말한 이기준이 몸을 돌렸다.

    17시25분, 개전 6시간35분25초 경과.

    대통령 박성훈이 연합사령부 벙커에서 국방장관 임기태, 연합사 부사령관 이성호, 합참의장 장세윤, 그리고 비서실장 한창호까지 넷을 모아놓고 상황보고를 받는 중이다. 이곳은 안쪽 벙커여서 상황실과 떨어져 있지만 넓고 조용하다. 벙커 밖 복도에는 각 군의 참모장과 기무사, 국정원 간부까지 모여 호출에 대비하고 있다. 합참의장 겸 계엄사령관 장세윤이 먼저 말했다.

    “북한의 내란이 격화되고 전방 정규군까지 대거 투항해오자 남한 내부에서 종북세력의 선동이 급속히 줄어들었습니다.”

    굳었던 장세윤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지고 있다.

    “지금은 쥐새끼들이 몇 마리 남지 않았습니다.”

    “투항병 관리는 잘됩니까?”

    박성훈이 묻자 대답은 국방장관 임기태가 했다.

    “예, 강원도와 경기도 5개 지역에 분산 수용할 예정입니다.”

    서류를 내려다본 임기태가 말을 잇는다.

    “17시15분 현재까지 4개 지역에서 투항해온 인민군 숫자는 4752명이 되었습니다.”

    마치 도미노가 넘어지는 것 같다. 17시05분에 전방 철원 근처에서 인민군 1개 대대 병력이 대대장까지 투항해오더니 곧 그 옆쪽 부대 3개가 잇달아 넘어온 것이다. 무리를 지어 넘어오는 바람에 아군은 남침해오는 줄 알고 하마터면 발포할 뻔했다는 것이다. 지금은 전방 각 부대에서 인원 파악 중이어서 아직 투항자를 숙소로 이동시키지도 못했다. 그때 연합사 부사령관 이성호가 보고했다.

    “17시 현재까지 북한의 29개 지역에서 노농적위대, 교도사단 병사들의 폭동이 일어났습니다. 지역은 황해남도와 황해북도, 강원도로 확산되는 중이고 평안남도에도 3곳에서 폭동이 발생했습니다. 이것은 지금도 대량으로 쏘아 올리는 삐라와 휴대전화 영상통신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박성훈이 심호흡을 했지만 입을 열지는 않았다. 다시 이성호가 말을 잇는다.

    “감청단 보고에 의하면 김정일이 중국군 투입을 요청했지만 시진핑이 거부했습니다. 그 이유는 폭동 상태에서 반란군이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시진핑은 내란 수습이 먼저라고 했습니다.”

    “…….”

    “그리고 이번에는 김정일이 제12군단장 이기준 대장에게 반란군을 진압하라고 지시했는데 12군단은 아직 움직이지 않습니다. 병력이 연병장에 대기했다가 오히려 모두 막사로 들어가는 것을 위성으로 확인했습니다.”

    그러자 다시 심호흡을 한 박성훈이 모두를 둘러보았다.

    “너무 빨리 진행되고 있어서 우리는 그저 끌려가는 느낌이 드는군요.”

    그러자 모두 눈만 끔벅일 뿐 대답하지 않았다. 잠깐 동안의 정적이 지난 후에 박성훈이 생각난 듯 물었다.

    “참, 그 46용사는?”

    그러자 장세윤이 대답했다.

    “지금 재령 남쪽에서 휴식 중입니다.”

    17시35분, 개전 6시간45분25초 경과.

    8부 능선 맨 왼쪽 바위틈에 기대 앉아 있던 조한철이 몸을 뒤척여 두 다리를 길게 뻗고 누웠다. 8시간 만에 처음으로 갖는 휴식이다. 저녁까지 배부르게 먹은 후여서 나른한 식곤증이 몰려왔다. 그때 옆쪽에서 인기척이 들렸으므로 조한철이 눈을 떴다. 윤미옥이 다가오고 있다. 저물어가는 햇살을 등으로 받은 윤미옥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는다. 몸을 일으킨 조한철이 앞에 선 윤미옥을 올려다보았다.

    “무슨 일이요?”

    “저쪽으로 가요.”

    윤미옥이 위쪽의 바위를 가리켰다. 가파르게 깎인 바위가 10m쯤 위에 박혀 있었는데 그쪽은 사각(死角)지역이다. 조한철의 시선을 받은 윤미옥이 그쪽으로 발을 떼며 재촉했다.

    “어서요.”

    몸을 일으킨 조한철이 윤미옥의 뒤를 따라 가파른 암산을 오른다. 30m쯤 오른쪽에 경계병이 둘 있었고 소대본부는 30m쯤 아래쪽에, 그리고 소대의 초소는 3개로 나뉘어 그 우측에 펼쳐져 있다. 윤미옥은 미리 자리를 봐둔 것 같다. 바위 옆쪽에 빈틈이 있었는데 삼각형으로 한 사람이 들어가 눕기에 넉넉했다. 그리고 그 안으로 들어가면 아무 곳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경계병이 조한철이 있었던 자리로 옮겨와야 보인다. 윤미옥이 먼저 바위틈 앞에 서더니 조한철을 보았다.

    “나, 가져요.”

    그러고는 군복 바지 혁대를 풀기 시작했으므로 조한철이 심호흡을 했다. 윤미옥이 앞에 선 순간부터 이렇게 될 줄 짐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봐요, 윤 중위.”

    그 순간 윤미옥이 바지와 팬티까지 한꺼번에 밑으로 내렸으므로 바로 눈앞에 검은 숲이 드러났다. 윤미옥이 바지에서 다리 한쪽만 군화째로 빼 내더니 이제는 군복 상의를 벗어 바위틈 안에다 깔았다. 허리를 굽힌 윤미옥의 흰 엉덩이와 하체를 바라보던 조한철이 저도 모르게 입안에 고인 침을 삼켰다. 어느덧 두 눈도 번들거리고 있다. 그때 바위틈 안으로 들어간 윤미옥이 누우면서 말했다.

    “어서요.”

    조한철은 더 이상 입을 열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어떻게 바지를 벗고 윤미옥의 몸 위에 엎드렸는지 모른다. 그때 윤미옥이 조한철의 남성을 손으로 쥐면서 말했다.

    “천천히 해줘요.”

    그러고는 남성을 샘 끝에 붙였다. 그 순간 조한철은 윤미옥의 말을 무시하고 맹렬하게 진입했다.

    “아.”

    짧고 굵은 신음이 윤미옥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조한철은 윤미옥의 샘이 이미 젖어 있는 것을 깨닫고는 더 서둘렀다. 거칠게 움직일 때마다 윤미옥의 탄성은 더 커졌다. 두 손으로 조한철의 엉덩이를 움켜쥔 윤미옥이 헐떡이며 말했다.

    “이번은 그냥 쏴요. 중위.”

    그 말을 들은 순간 조한철은 발사했다.

    “아앗.”

    허리를 치켜 올린 윤미옥이 조한철의 남성을 빈틈없이 받으면서 절규했다. 그러고는 사지를 밀착시킨 채 온몸을 떨기 시작했다. 샘 표면의 핏줄이 거칠게 뛰는 박동까지 전해지고 있다. 짧은 것 같기도 했고 긴 시간이 지난 것도 같았지만 만족한 섹스였다. 윤미옥도 만족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윽고 조한철이 몸을 떼었을 때 윤미옥이 헐떡이며 말했다.

    “이제 받을 수 있어요.”

    바위틈 밖으로 먼저 나온 조한철이 바지를 입으면서 물었다.

    “뭘 말요?”

    “당신 호의를.”

    바지를 입으면서 윤미옥이 말을 잇는다.

    “내가 줄 것이 있어서 기뻐요.”

    그러더니 문득 조한철을 보며 물었다.

    “좋았어요?”

    17시45분, 개전 6시간55분25초 경과.

    황해북도 신계의 12군단 군단 사령부, 군단 정치국장 최경운 중장이 정치참모인 대좌 두 명을 좌우에 거느리고 군단장실로 들어섰다. 노크도 안 하고 들어선 터라 책상에 앉아 있던 군단장 이기준과 참모장 우영술이 머리를 들고 그들을 보았다.

    “군단장 동무, 지도자 동지의 명령이요.”

    앞에 버티고 선 최경운의 목소리가 방을 울렸다.

    “지금 즉시 전 부대를 출동시켜 반란군을 진압하라는 명령이오!”

    그때 참모장 우영술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고는 문 쪽으로 다가갔으므로 그쪽을 보던 최경운이 다시 이기준에게 말했다.

    “군단장 동무, 경고합니다. 이것이 마지막 기회요!”

    그때였다. 요란한 총성이 울리면서 최경운이 앞으로 엎어졌다. 놀란 두 대좌가 몸을 돌렸을 때 다시 두발의 총성이 울렸다.

    “탕! 탕!”

    바로 2m도 되지 않는 거리였으니 빗나갈 리가 없다. 머리를 관통당한 두 대좌가 쓰러졌을 때 우영술이 권총을 내리면서 말했다.

    “군단장 동지, 이제 우리가 키를 쥐게 된 겁니다. 김정일과 김경식 사이에서 말입니다.”

    제55호위대 벙커는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다. 김정일이 주석궁 벙커 다음의 전시 최고사령부 벙커로 건설했기 때문이다. 지하 100m 깊이에 300명이 1년간 은신할 수 있도록 규모가 컸고 자체 방어 시설도 막강했다. 또한 주변에 김형기와 김경식을 추종하는 3개 기계화사단, 5개 교도사단, 포병단과 특수부대까지 배치해놓아서 제55벙커를 제압하려면 대규모 전쟁이 불가피했다. 그래서 개전 초기부터 김정일은 이곳을 회유, 또는 내부 전복을 기획했을 뿐 무력 점령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55를 매몰시키는 수밖에 없습니다.”

    평양방위사령관 전백준 차수가 김정일에게 말했다. 주석궁 지하 벙커 안은 조용해졌고 모두의 시선이 김정일에게 모아졌다. 벽시계가 17시47분을 가리키고 있다. 전백준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그래야 중국과의 협상도 용이해질 것입니다.”

    그러자 김정일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시선을 마주친 장군들은 모두 눈만 끔벅이거나 머리를 숙였지만 한 명만이 그대로 있다. 중장 계급장을 붙인 50대 후반쯤의 사내다.

    “고철상 중장, 가겠는가?”

    김정일이 낮게 묻자 중장은 부동자세로 섰다. 그러고는 잇사이로 대답한다.

    “예, 가겠습니다.”

    “가서 어떻게 하는지 알고 있나?”

    “예, 압니다. 지도자 동지.”

    “그대는 공화국 인민들이 영웅으로 숭배할 것이네.”

    “지도자 동지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그러더니 중장은 한쪽 손을 번쩍 치켜들고 외쳤다.

    “지도자 동지 만세! 공화국 만세!”

    17시55분, 개전 7시간05분25초 경과.

    상황실 벙커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두 층을 더 내려가면 지도자 개인 공간이 있다. 상황실에서 나온 김정일과 김정은 부자가 가족용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한다. 둘 다 상황실에서 점심을 건성으로 때운 터라 닭백숙에 갈비 전골을 맛있게 먹는다. 백숙 국물을 삼킨 김정일이 머리를 들고 김정은을 보았다.

    “이 난리통에 가장 여유 있는 자가 있고 가장 불안한 자가 있다. 그게 누구겠느냐?”

    그러자 씹던 고기를 삼킨 김정은이 눈을 끔벅이다가 대답했다.

    “여유 있는 자는 남조선군 아닙니까?”

    김정일이 잠자코 백숙 국물을 떠먹었으므로 김정은이 말을 잇는다.

    “그리고 불안한 자는 김경식 일당 아닙니까? 반란이 수포로 돌아가고 있으니까요.”

    그러고는 김정은이 시선을 주었으므로 김정일이 희미하게 웃었다.

    “여유 있는 자는 중국 정부다.”

    젓가락으로 산삼 뿌리를 집어 입에 넣으면서 김정일은 말을 이었다.

    “가장 불안한 자는 남조선의 우리 동지들이 되겠지. 지금도 잡혀가겠지만 잘못되면 가장 낮은 처벌이 추방쯤 될 테니까.”

    김정일이 젓가락을 내려놓고 쓴웃음을 지었다.

    “내 주변의 이른바 기득권층도 불안하겠지만 남조선 동지들보다는 적응력이 뛰어나. 나만 없어지면 금방 변신할 테니까.”

    “…….”

    “하지만 그렇게는 안 될 거다.”

    의자에 등을 붙인 김정일이 이제는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조금 전에 55호위대로 보낸 고철상 중장의 충성심을 믿느냐?”

    “예, 지도자 동지.”

    “공화국과 나를 위해 목숨을 바칠 거다.”

    심호흡을 한 김정일이 말을 잇는다.

    “고철상의 처자식, 그리고 어머니까지 지금 이 벙커에 와 있으니까 말이다.”

    정색한 김정일이 똑바로 김정은을 보았다.

    “이것이 현실이고 내가 살아온 방식이기도 하다. 그런 내가 이 상황에 그대로 끌려만 갈 것 같으냐?”

    김정은도 아버지의 웃는 모습을 보고는 숨을 삼켰다. 오늘 처음 웃는 얼굴을 본 것 같다.

    18시10분, 개전 7시간20분25초 경과.

    산으로 둘러싸인 위치여서 7월이었지만 주위에는 그늘이 덮였다. 시계를 본 이동일이 휴대전화 버튼을 누르자 곧 화면이 켜졌다. 그러자 송아현의 얼굴이 드러난다.

    “아현아, 내 위치는 파악하고 있겠지?”

    이동일이 불쑥 물었지만 송아현은 머리를 끄덕였다.

    “알아. 그리고 전갈이 있어.”

    그러더니 화면이 바뀌면서 해병사령관 정용우의 얼굴이 드러났다. 저도 모르게 긴장한 이동일을 향해 정용우가 말한다.

    “별도 지시가 있을 때까지 그곳에 잠복하고 있도록. 이제 네 역할은 그만하면 됐다.”

    “예, 사령관님.”

    이동일이 대답했지만 이미 정용우는 말을 다시 시작한 후다. 녹화된 필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너와 46용사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오늘밤은 그곳에서 쉬도록.”

    그러고는 화면이 꺼지더니 다시 송아현의 얼굴이 드러났다.

    “들었지?”

    해놓고 송아현이 눈웃음을 쳤다.

    “잘 쉬어, 오빠.”

    이동일은 길게 숨을 뱉는다. 오늘밤 제대로 쉴 한국인이 있을 것인가?

    (7장에 계속)

    이원호

    2014
    1947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전주고, 전북대를 졸업했다. (주)백양에서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 무역 일을 했고, (주)경세무역을 설립해 직접 경영했다. 1992년 ‘황제의 꿈’과 ‘밤의 대통령’이 100만부 이상 팔리며 최고의 대중문학 작가로 떠올랐다. 간결하고 힘 있는 문체, 스케일이 큰 구성, 속도감 넘치는 전개는 그의 소설에서만 볼 수 있는 매력이다. 기업, 협객, 정치, 역사, 연애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지금까지 50여 편의 소설을 냈으며 1000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주요 작품으로 ‘할증인간’ ‘바람의 칼’ ‘강한 여자’ ‘보스’ ‘무법자’ ‘프로페셔널’ ‘황제의 꿈’ ‘밤의 대통령’ ‘강안남자’ 등이 있다.


    “대전차포중대장을 체포하겠소. 보고서에는 3대가 작동 불능이라고 해놓고 실제로는 7대요. 부속을 빼내 팔아먹은 것이 분명합니다.”

    “내가 부속을 교체해서 5대라도 완벽하게 만든 거요. 중대장은 죄가 없소.”

    29지구대뿐만이 아니다. 사리원 동남쪽의 제41지구대는 예비 수송대대였는데 트럭의 80%가 사용불능이다. 폐차인 것이다. 그것이 장부상으로만 운용되고 있었는데 상부도 다 알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41지구대에 파견된 감독관은 현장을 그대로 인정하고 대기 중이라고 했다. 그때 대위가 말했다.

    “난 원칙대로 하겠소. 전시에 장비 유출은 총살이오! 난 그런 권한을 갖고 파견된 것이란 말이오!”

    같은 시간, 휴대전화를 켠 이동일이 조한철 앞으로 내밀었다.

    “봐라.”

    조한철이 휴대전화 화면에 뜬 그림을 본다. 바로 30분쯤 전에 산업지구 옆쪽 보위부의 양곡 창고에서 찍은 장면이다. 지금 교사 안쪽에서 쉬는 오규성이 눈을 부릅뜨고 말하고 있다.

    “…마침 우리 손에 총이 쥐어졌으니 끝장을 내겠어!”

    그때 옆쪽에 앉아 있던 윤미옥도 머리를 기울여 휴대전화 화면을 보았다. 화면이 꺼졌을 때 조한철이 놀란 표정으로 이동일을 보았다.

    “이 장면이 전국으로 방영되는군요?”

    “그래, 한국은 물론이고 북한으로.”

    “그럼 휴대전화를 쥐고 있는 북한 사람들도 이걸 보았겠습니다.”

    “계속해서 보내고 있으니까.”

    그러자 윤미옥이 말했다.

    “우리를 확인했으니 쫓고 있겠군요.”

    이동일과 조한철의 시선이 마주쳤다. 이곳은 신천 시내의 제3인민학교 안, 텅 빈 학교는 일자형 단층 건물에 교실이 다섯 개뿐이고 운동장은 660㎡(200평)밖에 되지 않는다. 학교 정문의 문짝 하나만 남아 있는데다 유리창 대부분이 깨지거나 없어진 걸 보면 폐교된 학교 같다. 하지만 51인의 연합군이 피신해 있기에는 적당했다. 시설과 부지가 좁아서 인민군 부대가 사용하기에 부적당했기 때문이다.

    이윽고 이동일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냥 잡히지는 않을 테니까.”

    시선을 뗀 윤미옥이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을 나왔다. 그러고는 뒤쪽 화장실로 다가가다가 문득 걸음을 멈추더니 뒤를 돌아보았다.

    “화장실까지 따라올 거야?”

    눈을 치켜뜬 윤미옥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선명하게 울렸다. 그러자 하사 계급장을 붙인 인민군 병사가 쓴웃음을 짓는다.

    “누가 똥냄새 맡는 걸 좋아하겠어? 하지만 명령인 걸 어떻게?”

    하사는 해병 병장 강성구다. 처음부터 이동일의 지시로 윤미옥의 경호역을 맡게 되었지만 말이 경호역이지 실제는 감시역이다. 그것을 윤미옥도 아는 것이다. 윤미옥이 메고 있던 AK-47을 치켜올려 보이면서 묻는다.

    “내가 총을 메고 있어도 그래? 아직도 믿지 못하냐고?”

    “난 명령대로 움직일 뿐이야.”

    강성구의 이맛살도 찌푸려졌다.

    “글고 나한테 중위 행세 마. 넌 내 상관이 아니니까.”

    그때 복도를 나온 조한철이 강성구의 마지막 말을 들었다. 그러고는 강성구의 옆으로 다가와 섰다.

    “왜 그래?”

    “예, 저 여자가 뒤를 따라온다고 잔소리를 해서요.”

    “인마. 그 정도면 됐다.”

    입맛을 다신 조한철이 손바닥으로 강성구의 등을 툭 쳤다.

    “내가 중대장께 보고할 테니까 넌 들어가 있어.”

    “예, 소대장님.”

    몸을 돌린 강성구가 교실 안으로 들어갔을 때 조한철이 윤미옥 앞으로 다가섰다.

    “이해해야 됩니다. 저자식이 일부러 그런 게 아니니까요.”

    그러나 윤미옥은 잠자코 몸을 돌렸다.

    16시10분, 개전 5시간20분25초 경과.

    주석궁의 지하벙커 안에서 회의가 열리고 있다. 개전 후 처음으로 김정일 측근들이 모인 정식 회의다. 김정일 좌측에는 김정은이 앉아 있었는데 여전히 입을 꾹 다물고 있다. 개전 직전까지 활발하게 대외 활동을 하면서 지시를 내놓던 김정은이다. 김정일의 지시를 받은 것이다. 김정일이 입을 열었다.

    “놈들은 계획적이었어. 이 시점에서는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해.”

    잠깐 말을 그친 김정일이 천천히 테이블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평온한 표정이었지만 시선을 받은 모두는 노소를 불문하고 몸을 굳힌다. 김정일의 말이 이어졌다.

    “전시에 55호위대 벙커를 지휘부로 사용하는 것까지 놈들은 계산에 넣고 공화국을 양분시켰어.”

    그러고는 김정일이 쓴웃음을 짓는다. 조금 전에 그들 모두는 한국에서 방영된 노농적위대의 반란을 화면으로 본 것이다. 김정일이 벽에 펼쳐진 빈 화면을 턱으로 가리켰다.

    “그런데 놈들과 내가 똑같이 간과한 것이 있지. 바로 인민들의 반란이야.”

    김정일이 빈 화면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인민들이 총을 쥐게 되었단 말야. 이제는 저것들이 가장 위험해.”

    같은 시간, 47교도사단 29지구대장 김동복의 옆으로 부대장 오인철 대위가 다가와 섰다.

    “지구대장님, 이걸 보시겠습니까?”

    했지만 오인철은 아무것도 내놓지 않는다. 두 팔을 늘어뜨린 채 얼굴만 굳히고 있다. 주위는 조용하다. 감독관은 대전차포중대장과 소대장 둘을 체포해 막사 끝 쪽 창고에 감금했다. 그러고는 지금 취조 중이다. 창밖의 연병장 분위기는 눈에 띄게 가라앉아 있다. 부대원 모두가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보십시오.”

    하면서 오인철이 주머니에서 꺼낸 것은 휴대전화다. 녹화장치를 해놓아서 버튼을 누르자 곧 노농적위대 복장의 노인이 화면에 나타났다.

    “반란입니다.”

    오인철이 잇사이로 말했지만 김동복은 숨을 죽이고 화면을 응시했다. 이윽고 노인적위대원이 소리쳤다.

    “… 끝장을 내겠어!”

    그 시간에 서울 소공동 국제빌딩 안 방송실에 앉아 있던 송아현은 휴대전화의 진동을 듣고 시선을 들었다. 문자메시지가 오고 있다.

    “계엄군, 도처에서 한총련, 민노총, 전교조 회원들을 학살하기 시작함. 현재 72명 사살 확인. 동지들이여! 일어나라! 이대로 당할 수만은 없지 않은가!”

    그러더니 또 이어졌다.

    “국제인권위원회에 동영상을 보냄. 국제위원회 즉각 유엔에 제소. 파견단 파견 결정. 유엔 안보리 소집 예정.”

    “이런, 젠장.”

    뒤쪽에서 투덜거린 것은 국제신문 편집국장 백한섭이다. 백한섭의 휴대전화에도 문자메시지가 뜬 것이다.

    “이거 왜 안 닫고 있는 겨? 우리한테 뭐가 득이라고?”

    “승전 뉴스가 빨리 전파된 이점도 있었지만 몇 시간 휴전 상태가 되니까 이놈들이 슬슬 옛날 가락을 내놓는데.”

    국제방송의 하기호 국장이 말을 받는다.

    “이젠 역효과가 날 것 같다. 계엄군 지휘부가 그쯤은 알 텐데.”

    16시15분, 개전 5시간25분25초 경과.

    이동일이 둘러선 장교와 하사관을 훑어보며 말했다.

    “지금 우리의 행동을 전세계가 주시하고 있는 거다.”

    그러고는 이동일이 손가락 하나를 세워 교실 천장을 가리켰다. 하늘을 가리킨 셈이다.

    “너희들은 잊히지 않는다는 말이다. 헛된 죽음이 아니라는 말도 된다.”

    “그거, 사치인데요.”

    불쑥 말을 뱉은 황찬우 중위가 시선을 받더니 쓴웃음을 지었다.

    “그냥 죽어간 다른 전우들한테 미안하고 말입니다.”

    “닥치고 내말 들어.”

    나무랐지만 이동일의 얼굴에도 쓴웃음이 번졌다. 이동일이 말을 잇는다.

    “철수 지시를 받으면 모두 다시 이곳에 모인다. 이곳이 노출될 경우 제2의 집결 장소는 북쪽 발산의 수령탑. 찾기 쉽다니 대원들에게 주지시키도록.”

    머리를 든 이동일의 시선이 윤미옥을, 그리고 오규성을 비롯한 네 명의 노농적위대원의 얼굴을 차례로 스치고 지나갔다. 그들도 이번 작전에 합류한 것이다.

    그 시간에 오산 연합사령부 벙커 안 대형 스크린에는 신천 제3인민학교의 전경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교사 주위에 경비를 서고 있는 인민군복 차림의 병사들도 그림자까지 보인다.

    “서너 명이 밖으로 들락거리던데 지금은 회의 중인가.”

    그쪽에 시선을 준 육참총장 조현호가 혼잣소리처럼 말했지만 정용우가 대답했다.

    “하지만 여기까지 북상을 해왔다는 것만 해도 훈장감입니다.”

    “다섯 명이 합세해서 51명이 되었으니 51용사라고 제목을 바꾸는 게 어떨까?”

    하고 조현호가 물었지만 정용우가 이번에는 대답하지 않는다. 대신 합참의장 장세윤이 입을 열었다.

    “시내로 들어온 것은 적극적으로 부딪치겠다는 의도야. 저놈들이 우리의 희망이라고.”

    모두의 시선이 다시 화면으로 모여졌다. 그때 안쪽에 앉아 있던 연합사령관 우드워드가 누군가에게 소리쳐 말했다.

    “이봐, 이제 다시 휴전이라고! 우리가 이긴 전쟁으로 이 시점에서 끝내야 돼!”

    그러나 대답은 없다.

    16시20분, 개전 5시간30분25초 경과.

    신천시 보위부는 교통량이 많은 사거리 옆에 세워졌다. 거기에다 보위부의 4층 건물은 신천시 중심부에 자리 잡았고, 주위가 탁 트여서 4층 방에서는 사리원으로 뻗은 도로까지 보인다.

    “오월리라고?”

    눈을 치켜뜬 보위대장 한대진 대좌가 소리치듯 묻는다. 오월리는 산업지구 옆쪽으로 신천 보위부 직할 지역이다.

    “예, 방금 연락이 왔습니다.”

    정보참모 조기윤 소좌가 어깨를 늘어뜨린 채 말을 잇는다.

    “제14보급소는 소장 이하 7명이 전원 사살되었고 보관되었던 양곡이 모조리 강탈당했습니다.”

    “모조리?”

    한대진의 목에서 쇳소리가 터졌다. 14보급소에는 125t―20㎏ 쌀자루가 6000자루가 넘게 쌓여 있을 것이었다. 한대진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도대체 몇 놈이나 된단 말이야?”

    “습격했던 놈들은 먼저 도망갔고 그 소문을 들은 인근 인민들이 몰려와서….”

    “….”

    “쌀자루를 들고 도망가던 몇 명은 체포했지만 나머지는….”

    “오월리라니.”

    혼잣소리처럼 말한 한대진이 앞에 놓인 전화기를 집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20분쯤 전부터 노농적위대가 반란을 일으켰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에 해주의 황해남도 보위사령부에서 난데없이 반란 지역을 찾으라는 지시가 내려온 것이 바로 10분쯤 전이다. 소문이 사실이었구나 하고 놀라는 중에 반란이 일어난 장소가 바로 관할 지역이라니 심장이 떨릴 만했다.

    “이, 이거, 어떻게 보고를 해야 하나?”

    이를 악물었다 푼 한대진이 혼잣소리처럼 말한 순간이었다.

    “꽝! 꽝!”

    “타타탓! 탓탓탓탓탓탓탓!”

    “꽈 꽝! 꽈 꽝!”

    폭음과 총성이 한꺼번에 일어났다. 그것도 사방에서, 건물이 흔들거리더니 유리창을 부수며 총탄이 날아들었다. 놀란 한대진이 테이블 밑으로 머리부터 집어넣었고 정보참모 조기윤은 문밖으로 도망치다가 발이 꼬여 엎어졌다.

    “꽈꽝!”

    던진 수류탄이 2층 유리창을 깨고 들어가 안에서 폭발했다.

    “타탓탓탓탓탓!”

    옆에서 오규성의 AK-47소총이 요란한 발사음을 울리고 있다.

    “타타타타탓!”

    이동일이 3층 창에서 어른거리는 물체를 향해 연사를 한 후에 소리쳤다.

    “진입하지는 마라!”

    안에까지 들어가 사살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아직도 사방에서 요란한 총성과 폭음이 울렸고 잠깐 사격을 멈춘 사이에도 4층 보위부 건물 안에서 서너 번의 폭발음이 일어났다. 유리창 밖으로 검은 연기와 함께 불덩이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 그때 옆쪽에서 이 하사가 달려왔다. 이동일이 직접 지휘하는 4소대 선임하사다.

    “중대장님! 앞쪽 적은 다 사살했습니다!”

    이용섭의 이마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다. 헐떡이며 달려온 이용섭이 정원석 뒤에 엎드리면서 소리쳤다.

    “성공입니다!”

    그때 다시 폭음이 울리더니 4층 건물의 한쪽이 무너져 내렸다. 안의 기물과 종이가 바람에 흩날리며 떨어졌고 뼈대만 남은 4층 잔해가 앙상했다.

    “철수!”

    이동일이 버럭 소리치자 이용섭이 복창했다. 아직도 총성이 격렬하게 울리고 있었지만 이용섭의 목소리는 더 컸다.

    “괜찮아요?”

    달려온 조한철이 물었으므로 윤미옥은 상체를 세우고 어깨에 묻은 흙먼지를 털었다. 달리다가 무너진 시멘트 더미에 걸려 넘어졌던 것이다. 그때 조한철이 팔을 뻗어 윤미옥의 겨드랑이를 안아 일으켰다.

    “놔요!”

    놀란 윤미옥이 몸을 비틀었지만 오히려 가슴이 조한철에 닿았고 이미 일으켜진 후였다. 조한철이 팔을 풀고는 헐떡이며 말했다.

    “괜찮다면 빨리 뛰어요!”

    그러고는 달리기 시작했으므로 윤미옥도 뒤를 따라 뛰었다. 화장실에 다녀온 후부터 강성구는 따라오지 않았다. 조한철이 이동일에게 말해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앞장서 달리던 조한철이 머리만 돌려 뒤를 보았으므로 윤미옥은 외면했다. 뒤쪽의 총성은 점점 잦아들고 있다.

    “와앗!”

    보위부 건물을 습격한 무리가 사방으로 흩어지는 동안 상황실 안에서는 계속해서 환호성이 일어났다. 둘이 껴안고 서로 등을 두드리는 장군들도 있고 연합사 참모장 해리슨은 들고 있던 커피잔을 건배하는 것처럼 치켜들고 있다.

    “잘한다!”

    정용우는 눈을 부릅뜨고 잇사이로 그렇게 말했을 뿐이지만 심장이 터질 것처럼 박동하고 있었다. 위성사진은 선명했다. 신천 보위부의 4층 건물은 이제 화염에 싸여 있었는데 사방으로 흩어진 습격대는 어느새 군중 사이에 묻혔다. 보위대원이 보위대에서 빠져나온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모두 인민군복 차림인데 누가 구분하겠는가?

    “저걸 녹화해서 보내!”

    합참의장 장세윤의 목소리가 상황실을 울렸다. 그 말을 들었는지 옆에 선 연합사령관 우드워드 대장도 영어로 소리쳤다.

    “인민군 반란이라고 해!”

    정용우가 머리를 들었지만 입을 열지는 않았다. 제 부하들의 공은 지휘부가 인정해주기만 하면 된다. 꼭 46용사의 전공이라고 선전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16시30분, 개전 5시간40분25초 경과.

    휴대전화가 울렸으므로 송아현은 소스라치게 놀라 머리를 들었다. 이동일이다. 그 순간 방송실 안은 바쁘게 움직였다. 그러나 일사불란하다. 송아현이 리시버를 켜고는 휴대전화를 앞쪽 받침대 위에 놓았다. 휴대전화에 연결된 장치들은 영상통신을 바로 방송 화면으로 연결하도록 조치된 것이다. 그때 휴대전화가 켜지면서 이동일의 얼굴이 드러났다.

    “나야.”

    이동일이 조금 굳어진 얼굴로 말한다.

    “응. 별일 없지?”

    하고 송아현이 조금 서두르듯 묻자 이동일의 얼굴에 희미하게 웃음이 번졌다.

    “있어. 우리가 시내 보위부 건물을 폭파했다.”

    “보위부 건물을?”

    “그래. 내가 찍은 사진을 보여주지.”

    그 순간 화면이 잠깐 정지된 것 같더니 불에 타오르는 4층 건물이 생생하게 비쳤다. 땅바닥에 쓰러진 인민군 시체, 그리고 불타는 건물에서 아직도 잔해가 쏟아지고 있다.

    “이곳이 어딘지는 말 못해.”

    이동일이 말하자 송아현은 머리부터 끄덕였다.

    “알아. 알아.”

    “우리 부대가 적위대원 다섯과 합동으로 공격. 적 40여 명을 사살했고 우리는 경상 넷뿐이야.”

    “몸조심해야 돼.”

    “다시 연락할게. 아현아.”

    “사랑해!”

    하고 송아현이 소리쳤지만 통신이 끊겼으므로 전달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대특종이다!”

    뒤에서 벌떡 일어선 방송국장 하기호가 소리쳤지만 송아현은 길게 숨을 뱉는다. 하기호가 서둘러 다가오면서 PD에게 말했다.

    “사령부를 연결해!”

    연합사령부 소속 통신부의 검열을 받아야만 하는 것이다.

    그때부터 5분이 지난 16시35분(개전 5시간45분25초 경과), 전국의 모든 TV, 인터넷, 휴대전화의 화면에 일제히 뉴스 특보가 떴다. 연합사령부의 자료를 받은 계엄사령부의 전시(戰時)보도다. 화면에 화염에 싸인 신천 보위부 4층 건물이 드러났다. 옆에서 찍은 장면은 이동일이 전송해준 것이지만 위쪽에서 찍은 사진이 더 생생했다. 이것은 미국위성 US-32가 찍은 장면이다. 그때 아나운서의 열띤 목소리가 울렸다.

    “황해남도 신천 보위부가 인민군 내부의 반란으로 폭파되어 보위대원 전원이 전멸했습니다.”

    땅바닥에 즐비하게 깔린 보위대원 시체가 화면에 비쳤고 건물에 사격을 가하는 인민군의 모습도 보인다. 그 순간 공격자가 클로즈업 되면서 나이 든 사내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노농적위대원이다.

    “습격자에 노농적위대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민군과 노농적위대가 다 같이 봉기한 것입니다.”

    흥분한 아나운서가 목소리를 높였을 때 마침 나이 든 노농적위대원이 주먹을 불끈 쥐고 함성을 지르는 중이었다. 그것을 본 일산 대호식당의 김대호가 두 손을 치켜들고 소리쳤다.

    “만세!”

    식당 안에는 박미옥과 설렁탕을 시킨 손님 둘이 있었지만 김대호는 개의치 않았다.

    “이제사 일어났구먼! 이제사 일어났어!”

    상기된 얼굴로 소리친 김대호가 주먹으로 빈 식탁을 쳤다.

    “나한티도 총을 쥐어주면 저그로 달려갈틴디 말여!”

    김대호는 저 장면이 이동일이 보내온 장면과 위성사진을 배합해 더 강렬하게 극적으로 연출되었다는 것을 알 리가 없다.

    같은 시각, 제47교도사단 29지구대장 김동복이 부대장 오인철과 함께 휴대전화 특집 화면을 본다. 방금 김대호가 본 장면이 북한 사리원에도 전송된 것이다. 방송이 끝났을 때 김동복이 오인철을 보았다. 얼굴이 돌처럼 굳어 있다.

    “중대장들을 불러.”

    힐끗 시선을 준 오인철이 잠자코 방을 나가더니 1분도 안 되어서 중대장 셋과 함께 돌아왔다. 모두 굳은 표정이다. 중대장 셋이 앞에 나란히 서자 김동복이 말했다.

    “동무들도 들었겠지만 북조선 이곳저곳에서 반란이 일어나고 있다. 이 기회에 이 거지 같은 세상을 엎어버리자는 게야.”

    눈을 치켜뜬 김동복이 중대장들을 둘러보았다. 모두 40대 중·후반의 대위 전역자로 사회생활에 시달릴 대로 시달렸다가 소집되었다. 단 한 명도 가족과 함께 행복한 생활을 누려본 적이 없는 것이다. 그때 1중대장이 잇사이로 말했다.

    “빌어먹을, 우리가 먼저 일어납시다.”

    그러자 3중대장이 눈을 치켜떴다.

    “노농적위대도 일어났는데 우리가 가만히 있다니요? 싸우다 죽읍시다.”

    “우리가 일어나면 다 따라올 거요!”

    하고 외친 것은 2중대장이다.

    16시40분, 개전 5시간50분25초 경과.

    “삐라가 떨어지고 있습니다.”

    다가선 대좌가 보고했지만 김경식은 못 들은 척했다. 그러자 김경식 옆에 서 있던 심철 상장이 대신 물었다.

    “어디 지역이야?”

    “황해북도 토산·신계 지역으로 떨어지는 중이고 청단·해주·신원 지역에는 이미 다 떨어졌다고 합니다.”

    “이제 삐라는 급하지 않아.”

    심철이 뱉듯이 말했을 때 안쪽 원탁에 앉아 있던 성종구가 입맛을 다셨다.

    “지금 삐라는 기름 역할을 할 거야.”

    “그기 무신 말입니까?”

    심철이 거친 목소리로 묻자 성종구가 늘어진 눈시울을 치켜 올렸다. 그러고는 어깨를 늘어뜨리며 말한다.

    “폭동.”

    낮은 목소리여서 심철과 주변의 몇 명밖에는 못 들었다. 그때 다시 대좌 하나가 서둘러 이쪽으로 다가왔다.

    “대장 동지, 사리원에서.”

    그러고는 대좌가 말을 멈췄으므로 이번에는 김경식이 다그치듯 묻는다.

    “뭐야?”

    “교도사단 지구대가 반란을 일으켜 사리원 시당과 보위부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목소리가 컸기 때문에 제55호위대 상황실 벙커 안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뭐라고? 교도사단 지구대?”

    그래도 나이든 성종구가 먼저 나섰다. 성종구의 시선을 받은 대좌가 말을 이었다.

    “예, 현재 12군단의 62사단 일부 병력도 그들과 합류했다고 합니다.”

    “뭐라고? 12군단?”

    12군단은 전연지대 북쪽 예비군단이지만 정규군이다. 교도사단과 정규군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야단났다.”

    성종구가 떨리는 목소리로 혼잣소리를 했지만 모두 숨을 죽이고 있어서 다 들렸다.

    그 시간에 이동일은 제3인민학교를 나와 신천 북쪽으로 이동 중이었다. 보위부 건물과는 1㎞ 이상 떨어져 있었지만 머리를 돌리면 아직도 불길을 뿜고 있는 4층 건물이 보였다. 주위는 오가는 병사들로 분주했다. 그러나 보위부를 향해 달려가는 부대는 보이지 않았다. 거리에 병사는 많았지만 지휘계통이 일원화된 것 같지가 않다. 그야말로 우왕좌왕하고 있을 뿐이다. 후미에서 뒤쪽을 감시하던 조한철이 뛰어 다가왔을 때는 길을 꺾어 보위부 건물이 보이지 않을 때였다.

    “중대장님, 미행자는 없습니다.”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닦은 조한철이 옆을 걸으며 말을 잇는다.

    “놈들은 우릴 반란군으로 알았겠군요.”

    그때 앞쪽을 걷던 윤미옥이 머리를 돌려 이동일을 보았다.

    “검문소가 있어요.”

    시선을 돌린 이동일이 거리 끝 쪽에 설치된 검문소를 보았다. 거리는 200m, 양쪽 차선에 각각 차단봉이 설치되었고 오가는 차량과 통행인을 검문하고 있다. 이동일의 시선을 받은 윤미옥이 말했다.

    “평시에는 차단봉이 열려 있었는데 전시라 그런가 봐요.”

    16시45분, 개전 5시간55분25초 경과.

    “으음, 돌파하려는 거야.”

    잠시 멈춰 섰던 대열이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정용우가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며 말했다. 위성에서 찍은 신천시 북방의 도로가 바로 위에서 보는 것처럼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그때 대열이 두 갈래로 나눠졌다. 하나는 오른쪽 인도로 붙어 내려갔고 또 다른 한 열은 도로를 가로질러 왼쪽 반대차선의 인도를 따라 내려가는 것이다. 상황실 안의 모든 시선이 화면에 빨려든 것처럼 고정되었다. 두 개로 갈라진 대열은 위쪽 검문소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렇지.”

    정적을 깨뜨린 것은 육참총장 조현호다. 눈을 치켜뜬 조현호가 화면을 응시한 채 말을 잇는다.

    “양쪽 검문소를 동시에 치려는 거다.”

    모두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은 생각이 같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는 상하 차선의 차량과 병사들, 검문소에는 양쪽 차단기 주위에 10여 명씩 배치되어 있었지만 깔린 인민군만 수백 명이다. 저들이 다 적이 되었을 경우에는 이쪽이 전멸이다.

    “무모한 작전이야.”

    그때 합참의장 장세윤의 목소리가 상황실을 울렸다. 한국말을 이해했는지 옆에 앉은 우드워드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자 해병사령관 정용우가 거칠게 머리를 내저으며 말한다.

    “저 방법밖에 없습니다. 돌아갈 길도 없지 않습니까? 정공법을 쓰는 겁니다.”

    그때 벽 쪽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이것 보십시오!”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모아졌다. 소리친 중령이 귀에서 이어폰을 떼더니 눈을 부릅떴다.

    “반란. 아니, 폭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러고는 중령이 앞에 놓인 자판기를 한손으로 두들기더니 다시 상황실을 둘러보며 소리쳤다.

    “방금 704부대에서 보내온 감청 내용입니다.”

    704부대란 곧 국군감청부대다. 중령이 버튼을 누르자 곧 스피커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울렸다.

    “사리원 시가지 남쪽이 반란군에게 장악당했습니다. 현재 12군단 휘하의 3개 교도사단 지구대, 61사단 제82연대가 반란군에 가담했습니다. 반란군 주력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제47교도사단 휘하 29지구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버튼을 눌러 녹음장치를 끈 중령이 이제는 똑바로 합참의장 장세윤을 보았다.

    “사리원 보위부 제3지구대에서 평양 보위사령부로 보고하는 내용입니다.”

    그 말을 통역으로 들은 우드워드가 바로 지시했다. 두 눈이 치켜떠 있다.

    “확인해!”

    바로 그 시간에 이동일은 20m쯤 앞으로 다가온 검문소를 노려보았다. 이동일은 상행선 검문소 앞으로 다가가는 중이다. 반대편에는 조한철 중위가 이끄는 20여 명이 같은 간격을 두고 다가간다. 양쪽 인도에는 오가는 병사, 민간인이 많다. 검문소에서는 차량은 일단 세워서 검문하지만 도보로 지나는 병사와 민간인은 대충 훑어만 보다가 의심 가는 사람만 검문한다. 지금도 병사 둘이 검문을 당하고 있다. 이동일은 심호흡을 했다. 부상자까지 낀 51명이 양쪽 검문소를 다 빠져나갈 수는 없는 것이다.

    조한철 일행은 상행선으로 거슬러가는 상황이었으므로 시선을 끌고 있다. 이미 이쪽 검문소 병사 두어 명이 그쪽을 바라보며 못마땅한 표정을 짓는다. 이제 길을 건너 이쪽으로 와야 될 것이다. 검문소와의 거리가 5m로 가까워졌을 때 이동일은 어깨에 멘 AK-47을 내려 손에 쥐었다. 뒤를 따르는 부하들이 모두 이동일을 주시하고 있을 터였다.

    불꽃이 일어났다. 양쪽 길에서 수십 가닥의 불꽃이 집중적으로 일어난 것이다. 위성사진이어서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달려가는 동작, 넘어지는 장면까지 생생하다. 실제로 살육하는 장면이다. 영화보다는 왠지 실감이 덜 나고 어색한 것 같지만 가슴이 막히고 머리끝이 쭈뼛거리는 느낌이 들었으므로 해병사령관 정용우는 심호흡을 했다.

    “저 봐! 다 도망가네!”

    하고 육참총장 조현호가 소리쳤으므로 정용우는 머리를 들었다. 도로 양쪽의 인민군 병사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치고 있다. 물론 검문소 병사들은 아군들의 총격을 받고 일부는 저항 사격을 했지만 저항은 적다. 도망치는 무리는 양쪽 도로를 통과하는 병사들과 민간인이다. 그때 작참부장 박진상이 소리쳤다.

    “저것이 북한 군부의 진면목이요!”

    그러나 모두 숨을 죽인 채 화면을 본다. 이동일 부대는 이제 양쪽 검문소를 거의 장악했다. 총구에서 발사되는 섬광이 서너 개로 줄어들었다.

    “검문소를 격파했어!”

    마침내 정용우가 소리쳤을 때 조현호가 따라 외쳤다.

    “저 봐, 모두 흩어졌어!”

    그때 아래쪽에서는 이동일이 숨을 헐떡이는 조한철에게 묻는다.

    “그쪽은?”

    “예! 한 명 부상입니다.”

    그러나 이동일이 이끄는 부하 중 서동식 병장이 배에 관통상을 입었다. 중상이다. 보위부 직할 검문소에 주둔했던 20여 명의 병사는 전멸했지만 조금도 기쁘지 않다. 머리를 든 이동일이 옆에 세워진 차량들을 보았다. 총격전이 일어나자 운전병과 탑승자가 모두 달아나 상행선 차량 서너 대가 빈 차로 놓여 있다. 이동일이 지시했다.

    “차를 타고 빠져나간다!”

    그때 조한철이 앞장서 뛰었으므로 3소대가 뒤를 따랐다. 맨 앞의 트럭으로 달려간 조한철이 소리쳤다.

    “정 병장! 네가 운전해!”

    “예!”

    하고 대답한 것은 인민군 중사 계급장을 붙인 병사다. 정 병장과 함께 운전석에 오르던 조한철이 눈을 둥그렇게 떴다. 윤미옥이 따라 올라왔기 때문이다. 힐끗 시선을 준 조한철이 가운데에 앉았고 윤미옥이 창가에 자리 잡았다.

    “먼저 출발해!”

    조한철이 지시하자 정 병장이 트럭의 시동을 걸었다. 털털거리던 엔진이 곧 힘찬 소음을 내더니 차체가 떨렸다.

    “다 탔나?”

    윤미옥의 몸을 뒤로 젖히고 밖으로 상체를 내민 조한철이 소리쳐 묻자 트럭 적재함에 탄 선임하사가 기운차게 대답했다.

    “다 탔습니다!”

    16시55분, 개전 6시간05분25초 경과.

    오산 연합사령부 지하 벙커에 옮겨와 있는 대통령 박성훈이 연합사 부사령관 이성호의 보고를 받는다.

    “북한민주회복운동본부에서 쏘아 올린 삐라가 현재까지 3000개. 한 시간 내로 5000개가 추가될 것입니다.”

    이성호는 삐라를 쏘아 올린다는 표현을 썼는데 맞다. 이번 삐라는 고무 재질이 강한 풍선을 사용한데다 부피가 커서 풍선 한 개에 150㎏을 싣고 고공 10㎞까지 올라간다. 따라서 제트기류를 타고 함경북도까지 닿을 수 있는 것이다. 계엄사령부는 비공식으로 ‘북민본’을 지원, 풍선과 삐라 제작을 도운 것이다. 이성호가 말을 잇는다.

    “현재 삐라는 평안남도, 강원도와 함경남도까지 떨어진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앞으로 한 시간이면 북한 전역이 삐라로 덮일 것입니다.”

    이번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도 북한 당국이 입안에 박힌 가시로 생각했던 것이 바로 ‘북민본’이 쏘아올린 삐라다. 탈북자 모임, 북한인권투쟁위원회, 실향민 단체, 자유민주주의연합 등 각 단체가 통합해 만든 ‘북한민주회복운동본부’는 지금까지 소총탄을 쏘아 올렸어도 북한 정권에 타격을 주었는데 이번에는 미사일을 쏘아 올린 셈이었다. 그때 옆에 서 있던 합참의장 장세윤이 거들었다.

    “현재까지 북한의 신천, 사리원, 그리고 황해북도 곡산 근처의 13개 부대에서 폭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폭동은 급격히 증가할 것입니다.”

    “신천에서 첫 폭동이 일어났지요?”

    하고 박성훈이 묻자 장세윤과 이성호가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대답은 장세윤이 했다.

    “신천 시내 폭동은 해병대위 이동일의 46용사가 보위부를 습격한 것입니다. 그것을 인민군의 습격으로 위장했습니다.”

    “그렇군.”

    박성훈이 머리를 끄덕였다.

    “46용사가 했군. 그런데 그들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방금 신천 밖으로 빠져나간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들이 기폭제 역할을 하고 있군요.”

    “예, 삐라와 46용사의 작전이 배합되면 시너지 효과가 날 것 같습니다.”

    박성훈과 장세윤의 대화를 듣던 이성호가 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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