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할 수 없는 것엔 침묵하라” 비트겐슈타인의 교훈
리스크를 숫자로 설명하려는 시도, 오만 낳을 수도
각종 지표, 가공된 리스크의 단면에 불과
‘이란 신정주의’ ‘트럼프 정치’…숫자로 설명 어려워
계산하면서도 계산되지 않는 부분 있음을 잊지 않아야

시장은 끊임없이 숫자로 세상을 설명하려 한다. 하지만 가장 큰 충격은 언제나 설명되지 않은 곳에서 나타난다. Gettyimage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이 ‘논리 철학 논고’ 마지막에 남긴 이 문장은 언뜻 “신중하게 말하라”는 뜻으로 읽힌다. 그러나 그의 전기 철학이 겨냥한 문제의식은 조금 달랐다. 비트겐슈타인은 세계와 언어의 경계를 긋는 일에 천착했다. 그는 세계를 ‘사실의 총체’로 봤고, 언어는 사실을 그림처럼 묘사할 때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무엇이 일어났는가” 같은 사실의 영역은 언어로 충분히 표현할 수 있지만, 윤리·가치·형이상학 같은 영역은 그렇지 않다고 봤다. 이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영역을 억지로 말하려 할 때 오히려 왜곡과 혼란이 생긴다는 통찰로 이어졌다.
“말할 수 없는 것엔 침묵하라” 비트겐슈타인의 교훈
비트겐슈타인의 시각에서 금융시장을 바라보면 어떨까. 투자자와 분석가는 언제나 현재와 미래의 리스크를 설명하려 한다. 그리고 설명은 대개 ‘계량’의 형식을 취한다. 위험을 숫자로 표현하려는 것이다. 자산 가격이 얼마나 크게 흔들리는지를 통계적으로 나타낸 값인 ‘변동성’이 대표적 예다. 가격의 오르내림이 클수록 변동성은 높아지고, 시장은 이를 위험의 한 형태로 받아들인다.주식시장 곳곳에서는 이런 방식의 계량이 활용된다. 가령 베타는 개별 자산이 시장 전체의 움직임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시장이 1% 움직일 때 특정 종목이 얼마나 더 크게, 혹은 덜 움직이는지를 통해 해당 자산의 위험을 설명하려 한다. VaR(Value at Risk)도 같은 맥락에서 사용되는 지표다. VaR은 ‘일정 기간’과 ‘신뢰수준’을 전제로 정상 상황에서 어느 정도까지 손실이 날 수 있는지를 추정하는 방식이다. 예컨대 “하루 기준 99% 신뢰수준의 VaR이 10억 원”이라는 말은 “1%의 확률로 하루에 10억 원을 넘는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뜻이다. 즉 대부분의 경우 하루 손실이 10억 원을 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다.
옵션시장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리스크를 계량해 본다. 대표적 예가 민감도를 총칭하는 ‘그릭스(greeks)’다. 그릭스는 델타, 감마, 베가, 세타 등 여러 지표로 나뉘며 각각은 서로 다른 형태의 위험을 측정한다. 델타는 기초자산 가격이 변할 때 옵션 가격이 얼마나 움직이는지를 보여주고, 감마는 델타가 얼마나 빠르게 변하는지를 나타낸다. 베가는 변동성이 바뀔 때 옵션 가격이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를 뜻하며, 세타는 시간의 흐름이 옵션 가치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한다. 그릭스는 옵션이 어떤 위험에 얼마나 노출돼 있는지를 여러 숫자로 보여주는 장치다.
스트레스 테스트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이는 특정 위기 상황을 가정한 뒤 금리 급등이나 주가 급락, 환율 급변 같은 충격이 발생할 때 포트폴리오에 어떤 손실이 생길지를 계산하는 방식이다. 채권시장에서는 듀레이션이 비슷한 역할을 한다. 채권 가격이 금리 변화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로, 금리 리스크를 계량 가능한 값으로 표현하려는 시도다.
앞서 살펴본 지표들은 서로 성격이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 막연하고 불확실한 리스크를 숫자로 나타내려고 고민한 결과 라는 점이다. 금융계에서 “리스크를 다룬다”는 말은 결국 그것을 측정·비교·설명할 수 있는 형태로 바꾸는 일을 의미한다. 리스크 측정이란 ‘불확실성을 계량 가능한 언어로 번역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여기서 비트겐슈타인의 문장이 다시 떠오른다. 시장 참여자들은 변동성·VaR·베타 같은 지표를 통해 리스크를 가늠하고, 그것을 마치 답안처럼 받아들인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해당 지표들이 말해 주는 것은 리스크의 전부가 아니다. 특정한 조건 아래에서 숫자로 표현될 수 있도록 가공된, 리스크의 한 단면에 가깝다.
리스크를 숫자로 설명하려는 시도, 오만 낳을 수도
이처럼 금융은 침묵해야 할 문제 앞에서 침묵하려 하지 않는다. 설명이 어려운 불확실성을 어떻게든 설명 가능한 형태, 즉 숫자로 바꾸려 한다. 숫자의 힘은 강력하다. 숫자가 붙는 순간 불확실성은 관리 가능한 대상처럼 보인다. 자연스럽게 투자 리스크 역시 손안에 들어온 것처럼 느껴진다.많은 시장 참여자가 위험을 ‘안다’고 느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포트폴리오의 변동성은 몇 %이고, 종목의 베타는 얼마이며, 이 구조에서 발생할 수 있는 손실은 과거 데이터상 어느 정도다” “현재 가격은 이익 대비 몇 배이니 역사적으로도 아직 저렴한 수준이다” 식으로 숫자를 나열하며 자신감을 보이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이는 ‘리스크를 통제할 수 있다’고 여기는 오만일 수 있다.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위키피디아 커먼스
연장선상에서 리스크 관리 역시 위험을 없애는 일이라기보다 그것을 측정하고 기록할 수 있는 형태로 바꾸는 과정에 가깝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시장은 종종 착각에 빠진다. 숫자로 표현된 것이 곧 현실이며, 그것이 전부라고 믿기 시작하는 것이다.
최근 한국 증시의 움직임은 이를 또렷하게 보여준다. 2월 28일, 미국과 이란 간 중동전쟁이 시작되기 전까지 시장을 설명하는 언어는 비교적 단순했다. 기업 이익은 개선되고 있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대형주에 대한 기대도 살아 있었다. 코스피의 주가수익비율(PER) 역시 역사적 평균과 비교하면 과도하게 비싸지 않다는 분석이 이어졌다. 실제로 올해 한국 증시는 인공지능(AI) 열풍과 정책 기대가 맞물리며 상승 서사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분위기는 순식간에 바뀌었다. 3월 초 미국과 이란 간의 중동전쟁이 벌어지며 유가가 급등한 것이다. 스테그플레이션 가능성까지 거론되면서 급기야 “유가가 배럴당 20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언급됐다.

미국과 이란 간 중동전쟁 여파로 3월 4일 코스피는 전일 대비 12.06% 떨어진 상태로 장을 마감했다. 이는 역대 최대 하락률이다. 뉴스1
우리는 오랫동안 숫자로 한국 시장을 봐왔다. 기업 이익은 늘고 정책 환경은 비교적 우호적이며, 밸류에이션도 감내 가능한 수준이라고 말해 왔다. 이러한 설명이 틀렸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말할 수 있는 시장’을 설명한 것이었다. 시장은 언제든 그 바깥, 다시 말해 ‘말할 수 없는 시장’으로 넘어갈 수 있다.
실제로 미국이 이란을 공격하면서 상황은 급격히 불확실해졌다. 시장은 뒤따라가며 이유를 찾고 분석을 내놓지만, 전쟁의 최종 목표가 무엇인지, 경제적 파급효과는 얼마나 고려하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이 남는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논란만 해도 그렇다. 선박들은 정작 이란의 위협보다, 선박 보험의 중단 가능성에 위축되며 스스로 멈춰 섰다. 게다가 신정주의라는 이란의 정치적 특성과 예측이 어려운 트럼프의 정치 스타일 역시 숫자로 설명하기 어렵다.
계산하면서도 계산되지 않는 부분 있음을 잊지 않아야
“우리는 시장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만 말하면서, 마치 시장 전체를 이해한 것처럼 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비트겐슈타인의 말을 금융의 언어로 옮기면 이런 질문이 나온다. 이는 단순히 “입을 다물라”라는 뜻이 아니다. 오만하지 말라는 경고에 가깝다. 말할 수 있는 것에 대해 말하는 일은 분명 필요하다. 시장은 숫자 없이 작동할 수 없고, 투자 역시 계량 없이 지속되기 어렵다. 문제는 그 숫자가 닿는 범위를 넘어서는 현실이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는 순간이다. 계량은 필요하지만, 계량되지 않는 것 또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이 지점에서 훌륭한 투자자에 대한 정의도 조금 달라진다. 리스크를 더 많이 계산하는 사람이기보다, 리스크는 온전히 계산될 수 없다는 사실을 견디는 사람에 가깝다. 변동성과 베타, VaR 같은 지표를 이해하되 그것이 시장의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놓치지 않는 사람이다. 즉 ‘설명이 닿지 않는 영역’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함께 의식하는 사람이야말로 훌륭한 투자자다. 투자 구루들이 리스크를 단순히 변동성이나 민감도 같은 지표로 정의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들에게 진짜 위험이란 되돌릴 수 없는 타격, 곧 ‘영구적 자본손실’이다.
“리스크는 말로 표현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단순한 철학적 물음이 아니다. 적어도 금융시장에서는 그렇다. 우리가 리스크라고 하는 것은 과연 위험 자체인가, 아니면 위험 가운데 숫자로 표현된 일부에 불과한가. 우리가 “시장을 이해한다”고 말할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정말 시장을 이해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설명 가능한 부분만 정리하고 있는 것인가.
비트겐슈타인의 문장을 금융시장의 관점에서 보면, 단순히 말을 아끼라는 교훈이라기보다 하나의 경고에 가깝다. 시장은 끊임없이 숫자로 세상을 설명하려 한다. 하지만 가장 큰 충격은 언제나 설명되지 않은 곳에서 나타난다. 그렇다고 이를 비관할 필요는 없다. 불확실성이 걷히고 새로운 흐름이 시작되는 순간 역시 설명되지 않은 지점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결국 투자란 계산할 수 있는 것을 계산하면서도, 계산되지 않는 부분이 있음을 잊지 않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말이다.

● 1967년생
● 前 LS증권 리테일사업부 대표
● 저서: ‘한국형 탑다운 투자 전략’ ‘주식의 시대, 투자의 자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