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안보 위한 가장 강력한 카드는 원자력발전

[Special Report | ‘퍼펙트 스톰’ 닥친 한국경제 大진단] 미증유의 에너지·공급망 ‘트윈 쇼크’, 韓 생존 엑시트 전략

  • 조홍종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hongchong@gmail.com

    입력2026-04-17 0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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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너지 자원 93% 수입하는 韓…가장 아픈 나라

    • 공급선의 전방위적 다변화로 중동 편중 탈피

    • 석유화학산업, 변화에 유연한 구조로 바꿔야

    • 자원 개발과 해외 지분 비중도 일본처럼 늘려야

    • 재생에너지, 에너지 안보 대안 되지 않아

    단일 에너지원, 단일 수송로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곧 국가 에너지 안보의 구멍이다. 사진은 호르무즈해협에서 항해 중인 대형 컨테이너선과 선박. AP 뉴시스

    단일 에너지원, 단일 수송로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곧 국가 에너지 안보의 구멍이다. 사진은 호르무즈해협에서 항해 중인 대형 컨테이너선과 선박. AP 뉴시스

    미국과 이란의 전쟁으로 역사상 처음으로 호르무즈해협이 막히면서 유전과 가스전이 불타고 전 세계 에너지 공급이 끊겼다. 정전(停戰)과 개전(開戰)이 반복되는 불안한 상황에서 글로벌 경제적 파국으로 치닫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2월 28일 미국·이스라엘의 대(對)이란 합동 공습 이후, 이란 혁명수비대(IRGC)가 호르무즈해협 통과를 전면 금지했다. 3월 18일엔 이스라엘이 세계 최대 천연가스 매장지인 이란 사우스파르스 가스전을 공습했다. 이란 전체 가스 생산량의 12%가 마비 상황에 놓이게 됐고, 단지 내 최대 정유시설은 위성사진상 완전히 파괴됐다. 

    이란의 보복은 즉각적이었다. 카타르 라스라판 산업도시에 미사일이 명중했고,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UAE)·이스라엘 하이파 정유시설까지 타격을 받았다. 이라크 루마일라 유전은 저장 공간 부족으로 조업을 중단했다. 사우디는 사파니야 유전 등 해상 시설 피격으로 원유 생산을 일일 1000만 배럴에서 800만 배럴로 20% 줄였다. 카타르에너지는 장기 가스 계약에 대해 불가항력을 선언했다. 걸프 지역 전체 원유 수출량이 일일 2500만 배럴에서 약 1000만 배럴로 급감했다. 전 세계 원유 해상 수송량의 20%가 멈춘 것이다. 

    1970년대 오일쇼크보다 더 큰 에너지 위기가 닥쳐오고 있다. 즉각적으로 두바이유는 배럴당 170달러까지 치솟았고, 브렌트유는 배럴당 126달러를 기록하기도 했다. 천연가스 동북아 현물가격 지수인 JKM은 2배 넘게 올랐다. 유가와 가스 가격이 치솟으면 결국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경제성장이 멈추게 된다. 미증유의 이번 사태는 대한민국 에너지 안보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계기가 돼야 한다. 엄중한 사태 판단과 미래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 에너지 자원 93% 해외에 의존

    이번 사태에서 가장 아픈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에너지 자원의 93%를 해외에서 수입한다. 원유의 70%, 액화천연가스(LNG)의 20%가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한다. 해협이 막히자 하루 170만 배럴의 한국행 원유 운송선이 좌초된 상황이 됐다. 교과서에 있던 에너지 대외 의존도 93%라는 숫자가 현실이 된 것이다. 



    충격은 두 갈래로 왔다. 비용 상승에 의한 인플레이션과 공급망 단절에 따른 산업 생산 차질이 동시에 덮치는 ‘트윈 쇼크’다. 휘발유 가격이 L당 2000원에 육박하자 정부는 30년 만에 유류 가격 상한제를 도입했다. 역대 최대인 2246만 배럴의 전략비축유를 방출했지만, 배럴당 126달러 앞에서는 진통제 수준이다. 

    더 심각한 것은 산업 쪽이다. 산업의 쌀인 나프타가 부족해 ‘경제안보 품목’으로 지정됐다. 헬륨 공급의 65%를 차지하던 카타르 시설이 미사일에 맞아 반도체 공정에 차질이 생겼다. 나프타 부족은 합성섬유, 반도체, 자동차산업으로 연쇄적으로 번진다.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는 하향 조정됐고, 원화 가치는 떨어지고, 주가도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중동 지역에 걸려 있는 수십조 원 규모의 건설·플랜트 투자도 리스크에 노출됐다. 대한민국은 GDP의 30%가 제조업에 달려 있는 수출 주도형 국가다. 에너지가 끊기면 공장이 멈추고, 공장이 멈추면 경제가 쓰러진다. 단순한 유가 상승이 아니라 산업 기반 자체의 위기다. 또한 국민의 생계가 위험해진다. 원유와 천연가스가 끊기면 에너지 관련 문제만 생기는 것이 아니다. 천연가스 가격 상승은 암모니아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비료 생산 단가가 폭등하게 되면서 식량 가격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이러한 연쇄반응을 통해 식음료 가격이 인상되고 서비스 요금 상승으로까지 번지게 되면 인건비로 올라붙어 결국 인플레이션이 심화한다. 이번 사태의 파급효과가 어디까지 진행될지 가늠하기 어려운 상태다. 경제성장률이 급격히 하락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대한민국의 산업과 일상이 위험에 빠지고 있다. 

    호르무즈해협은 언제든 막힐 수 있다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해야 한다. 호르무즈해협이 열리면 이 위기가 끝나는가? 아니다. 한번 막히면 또 막힌다.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다음에도 똑같이 당한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대한민국은 이제 다시금 에너지 안보 정책을 면밀히 다듬어야 한다. 

    첫째는 공급선의 전방위적 다변화다.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중동 편중에서 탈피하는 것이다. 셰일 혁명으로 세계 최대 원유 생산국이 된 미국은 수출 여력이 충분하다. 한국은 이미 미국산 에너지 구매에 1000억 달러 규모의 통상 합의를 체결했고, 정유사들도 미국산 경질유를 확보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사우디·오만·알제리와 대체 수송 경로도 협의 중이고, 한국 국적 선박 5척을 홍해 항로에 투입하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다. 

    핵심은 단순하다. 태평양 루트를 열어 중동 ‘초크 포인트(choke point·물류 요충지)’ 의존도를 구조적으로 낮추는 것이다. 더 넓게는 미국·캐나다·호주·러시아로 도입선을 분산하고, 장기 계약으로 물량을 확보해야 한다. 국내 정유 설비가 중동산 중질유에 최적화돼 있어 설비 개조가 필요하지만, 그것은 들여야 할 비용이지 안 할 이유가 아니다. 석유제품과 석유화학산업의 체질을 변화에 대응 가능한 구조로 바꿔야 한다. 

    그나마 이러한 설비를 잘 갖춘 산업이 있어서 석유제품 공급이 가능하고, 정부 대책에 따라줄 수 있는 기업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십분 활용해야 한다. 한국가스공사는 다행히도 2024년 기한이 만료된 카타르 물량을 미국산으로 변경하면서 이번 중동 사태에 적절히 다변화를 취해 왔다. 이러한 다변화 노력이 국민에게 편익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현재 미국 천연가스 현물지수인 HH(Henry Hub)는 안정적이어서 미국 물량 다변화의 결과가 빛을 발하고 있다. 

    해외 자원 개발이 ‘적폐’로 몰렸던 트라우마

    둘째는 해외 자원 개발과 지분 투자다. 공급선을 바꾸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자원의 상류 부문으로 직접 들어가야 한다. 해외 유전·가스전에 직접 투자하고 지분 물량을 확보하면, 웃돈을 주고도 자원을 살 수 없는 시기에 대응 능력이 달라진다. 미국 LNG 수출 터미널과 파이프라인에 대한 지분 참여는 에너지 안보와 LNG 운반선 수주를 동시에 잡는 전략이다. 

    상사(商社) 기능을 육성해 글로벌 네트워크를 재빠르게 활용하는 역량도 갖춰야 한다. 안정적 공급은 에너지만의 문제가 아니라 원자재·소재·부품까지 포괄하는 공급망 관리의 문제다. 한국가스공사는 ‘캐나다 LNG 프로젝트’를 통해 지분을 확보해 놓은 덕에 캐나다 쪽에서 천연가스를 가격 불문 확보할 수 있다. 현재 그 물량이 한국을 향해 들어오고 있는 점은 매우 다행스럽다. 이러한 자원 개발과 해외 지분에 대한 비중을 장기적 관점에서 늘려야 한다. 우리가 소유한 자원으로 에너지 안보를 갖추고 공급망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문제는 해외 자원 개발이 ‘적폐’로 몰렸던 트라우마다. 문재인 정부 들어 해외 자원 개발 관련 수사·감시가 강화됐고, 이후 공기업과 민간 모두 투자를 기피하면서 생태계 자체가 무너졌다. 자원 개발은 수십 년을 내다보는 장기 투자다. 국가경제의 혈맥을 지키는 보험료다. ‘성공이냐 실패냐’라는 이분법으로 자원 개발을 정쟁의 도구로 삼는 악순환을 끊지 못하면 위기 때마다 속수무책이 반복된다. 

    일본은 자주 개발률이 50%에 육박한다. 해외 자원에 대한 자기 소유권이 막대하다는 뜻이다. 이는 이번 미-이란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공급 위기처럼 어려울 때 효자 노릇을 하게 된다. 일본의 상사는 여전히 전 세계를 누비며 자원 안보를 챙기고, 어려울 때 자국민을 위해 신속히 자원을 확보하고 있다. 우리도 이렇게 상사를 키우고 확대해야 한다. 민관이 힘을 합쳐 자본을 키우고 해외 자산을 쥐고 있어야 한다.

    셋째는 기저 전원인 원자력발전의 확대다. 에너지 안보의 가장 강력한 카드는 국내에서 장기적으로 전력을 안정적으로 생산해 줄 원자력발전이다. 원전은 국내 전력 생산의 31%를 담당하는 최대 무탄소 에너지원이다. 2038년까지 대형 원전 2기와 소형모듈원자로(SMR) 700MW가 추가되고, 새울 3호기가 올해 말 가동에 들어간다. 

    정부는 가동률을 80%까지 끌어올리고 정비 중이던 원전 재가동도 앞당겼다. 올바른 방향이다. 탈원전을 선언하고 몇 년 뒤에 벌어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결과는 에너지 인플레이션이었고, 한국은 그 가격 인상을 완전히 때려 맞았다. 하지만 현재는 원전의 계속 운전과 신규 원전 건설로 이번 사태에 대비할 수 있는 수준이다. 석탄 발전도 가동률을 올림으로써 천연가스 가격 상승을 예방할 수 있다. 

    단 핵연료 자립이 전제돼야 한다. 농축 우라늄 수입의 45%가 러시아에서 온다. 한미원자력협력협정(일명 ‘123협정’)은 고농축 우라늄 생산과 재처리에 건별로 미국 승인을 요구한다. 일본은 포괄적 사전 동의를 받았는데 우리는 아직이다. 일본이 보유한 농축시설을 우리도 가져야 한다. 이 협정의 재협상 없이 원전 확대를 말하는 것은 반쪽짜리다. 

    국내에서 생산 가능한 재생에너지의 가치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재생에너지가 에너지 안보의 대안인 것처럼 포장하는 것은 위험하다. 비 오고 구름 끼면 발전할 수 없는 태양광과 바람이 언제 불지 모르는 풍력이 24시간 돌아가야 하는 반도체 공장과 제철소의 에너지 목숨을 맡을 수 있는가. 독일이 답을 보여줬다. 탈원전과 재생에너지 일변도로 밀어붙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3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이라는 대가를 치렀다. 메르츠 독일 총리가 경제·기후행동부를 “실패한 조직”이라 선언하고 해체한 것은 뒤늦은 반성이다. 유럽 11개국과 송전망이 연결된 독일도 이 꼴인데, 어디에도 전력망을 연결할 수 없는 독립 계통인 한국이 독일을 따라가면 절대로 안 된다.

    에너지 안보는 정권 뛰어넘는 장기 전략

    이번 사태의 교훈은 명백하다. 단일 에너지원, 단일 수송로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 곧 국가안보의 구멍이라는 점이다. 다양한 공급망 확보와 상사 기능 회복을 통한 해외 자원 확보가 가장 급선무다. 그리고 원전, LNG, 재생에너지, 광물자원 등 모든 카드를 동원한 균형 잡힌 에너지 믹스가 필요하다. 

    헬륨·나프타·요소 등 소수 국가에 집중된 전략물자 공급망도 분산해야 한다. 에너지 안보는 낭만이 아니다. 구호도 아니다. 냉정한 현실이고, 정권을 뛰어넘는 장기 전략이어야 한다. 공급선 다변화, 해외 자원 지분 확보, 원전 확대, 공급망 복원력 강화 등 새로운 에너지 안보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다음 위기에도 똑같이 무너진다. 

    에너지는 이 나라 산업의 혈액이다. 혈관이 막히면 본체가 쓰러진다. 호르무즈해협은 어느 날 또 막힐 수 있다. 그때도 오늘처럼 허둥댈 것인가, 아니면 구조를 바꿔놓을 것인가. 미래세대에 안정적인 경제 환경을 물려주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에너지 안보와 공급망 확보에 국력을 쏟아부어야 한다. 단기적으로 미봉책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장기적이며 체계적으로 지속 가능한 에너지 안보를 통한 경제 안보를 확립해야 한다. 

    조홍종
    ● 1973년 출생
    ●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서울대 경제학 석사
    ● 미국 펜실베니아대 경제학 박사
    ● 現 제16차 장기 천연가스 수급계획 실무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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