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물가→금리’ 연쇄 고리에 주목하라
금, 장기 인플레이션 국면에 재평가받는 ‘조건부 자산’
전쟁 국면에는 흔들리지 않는 자산 배분이 답
‘전쟁 수혜주’ 환상 경계하고 수익 구조 확인하라
해답은 ‘준비된 자산 배분’과 ‘현금흐름’ 확보

전쟁 국면에서는 원유 공급 차질 가능성을 가격에 반영하기 때문에 주식보다 유가와 물가가 먼저 자산 흐름을 바꾼다. 뉴시스
주식 대신 단기 자금으로 이동
2월 28일 시작된 미국과 이란의 충돌도 갈등이 장기화하면서 한국 투자자들의 자금 이동도 활발해졌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3월 26일 기준 투자자예탁금은 111조5790억 원으로 집계됐다. 3월 4일 132조682억 원에서 3주 만에 20조 원 넘게 줄었다. 3월 5일부터 16거래일 동안 하루 평균 1조2800억 원가량이 빠져나간 셈이다. 코스피와 코스닥 일평균 거래대금은 3월 3~10일 57조5478억 원에서 3월 11~27일엔 38조7466억 원으로 감소했다. 반면 머니마켓펀드(Money Market Fund·MMF) 잔고는 244조3567억 원으로 늘었다. 주식시장 주변에 있던 돈이 단기금융상품으로 옮겨가면서 주식 매수 자금은 줄고, 대기성 자금이 늘어난 것이다.
미-이란 전쟁 여파로 코스피와 코스닥 일평균 거래대금이 3월 3~10일 57조5478억 원에서 3월 11~27일 38조7466억 원으로 급감했다. Gettyimage
시장은 사건 자체보다 충격이 번지는 순서를 먼저 계산한다. 시장 참가자들이 먼저 보는 것은 대체로 에너지 가격에서 시작해 물가와 금리로 이어지는 흐름이다. 전쟁 자체보다 원유 가격 상승이 물가를 자극하고, 그 물가가 다시 금리 인상 또는 인하를 유도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흐름은 자산시장 전반에 직접적 영향을 끼친다. 전쟁기 자산 이동을 설명할 때 원유가 첫 변수로 거론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준일 자산관리 컨설턴트는 전쟁 국면에서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변수로 원유를 꼽는다. 그는 “제일 걱정되는 건 원유가 촉발한 인플레이션”이라며 “물가가 오르면 이자와 금리가 잇따라 오르고 그다음에 다시 위기가 온다”고 말했다. 원유 가격이 오르면 공급망 전반의 비용이 상승하고 물가도 상승한다. 여기에 물가 안정을 위해 금리가 높은 수준에서 유지되면, 기업과 가계의 부담이 커지며 주식과 채권 시장 모두 압박을 받는다.
전쟁보다 더 중요한 변수는 유가와 물가
전쟁 국면에서 투자자들의 질문은 대체로 비슷한 방향으로 수렴한다. “지금 무엇을 사야 하는가”라는 질문이다. 그러나 이준일 컨설턴트는 질문의 순서부터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무엇을 살지보다 전쟁이 물가와 금리에 어떤 압력을 주는지를 먼저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중산층과 은퇴 준비자들이 가장 먼저 할 일로 인플레이션에 덜 흔들리는 자산과 직접 영향을 받는 자산을 가르는 작업을 꼽았다. 그러면서 “인플레이션을 헤지(hedge·위험회피)하거나 영향을 덜 받는 자산을 선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예를 들어 보유 자산 가운데 주식 비중이 높다면 경기둔화와 실적 악화 가능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소비가 줄고 기업의 이익이 감소하면 주가도 버티기 어려워진다. 예금과 달러, 금, 채권을 함께 보유하고 있다면 각 자산이 물가상승과 금리 변화 앞에서 어떻게 움직일지도 따져봐야 한다. 하나의 포트폴리오 안에 담겨 있다는 사실만으로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미-이란 전쟁 발발 이후 시장에서 먼저 반응한 것은 금 시세보다 유가와 물가였다. 한국거래소(KRX) 금시장에 따르면 국내 금 시세는 3월 19일 g당 23만1420원으로 마감하며 5거래일 연속 하락했다. 이는 전쟁 발발 전 가격을 밑도는 액수다. 금 선물 상장지수증권(ETN)도 약세를 보였고, 원유 관련 지수는 급등했다. 투자자들은 전쟁 소식 자체보다 ‘국제유가 상승이 물가를 끌어올리고 금리인하를 늦출 수 있다’는 점에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금은 전쟁이 일어나면 곧장 오르는 안전자산이 아니라 물가와 금리 변동에 같이 흔들릴 수 있는 자산이라는 점도 시장에 충격을 안겼다. 금·은 투자 전문가인 조규원 스태커스 대표는 “금을 안전자산이라고만 부르는 습관이 오히려 투자 판단을 흐린다”고 꼬집었다. 그의 설명은 이렇다.
“많은 투자자가 실수하는 부분이 금을 안전자산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경제위기 때 가격이 오르는 자산과 원금이 잘 보전되는 자산, 화폐가치 하락을 막아주는 자산은 각각 다르다. 이 구분을 해놓지 않으면 금을 사놓고도 왜 흔들리는지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금은 예금처럼 원금보장형 자산이 아니며 경제위기가 온다고 곧바로 오르는 자산도 아니다. 하락기에는 낙폭이 클 수 있고, 상승기에는 급격히 오를 수도 있다.”
에너지 가격이 인플레이션을 자극하는 구조
조 대표는 “최근 몇 년간 금값의 움직임으로 볼 때 금은 자극적 뉴스에 반응하기보다 장기 인플레이션 환경에서 재평가되는 자산”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는 안보가 더 중요해진 시대로 가고 있다”며 “화폐가치가 떨어질 때 역사적으로 가장 잘 버틴 자산인 금이 다시 주목받는다”고 말했다.그렇다면 개인투자자는 금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 조 대표는 그 답을 ‘비중 관리’에서 찾았다. 그는 “실물자산을 포트폴리오에 꼭 담아야 한다”며 전체 자산의 10~20% 정도를 금과 원자재, 물가 연동 자산 같은 인플레이션 방어 자산에 나눠 담는 방식을 제시했다. 주식과 예금, 현금성 자산, 채권을 가진 상태에서 물가상승에 대응할 수 있는 비중의 실물자산을 따로 두라는 얘기다. 조 대표는 초보 투자자가 가장 접근하기 쉬운 인플레이션 방어 수단이 금이라고 봤다. 다만 “단기 가격 변동에 흔들리면 방어 기능이 약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미-이란 전쟁으로 시장의 변동성이 커진 3월 중순, 안전자산으로 인식되던 금 가격이 5일 연속 하락해 시장에 충격을 던졌다. Gettyimage
무엇을 살까보다 무엇이 흔들리는지 봐야
전쟁 국면에서 주식투자자들의 고민은 더 복잡하다. 지금 팔아야 하는지, 버텨야 하는지, 바닥이 오면 매수해야 하는지, 에너지나 방산주 등 전쟁 국면에서 강세를 보이는 종목을 사야 하는지 판단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 주식 히든 챔피언’ 저자이자 투자 연구가인 이석근 씨는 이 지점에서 뉴스 소비 방식부터 바꿔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는 “가격에 대한 사후 해석 기사들은 거의 관심을 두지 않는다”며 “왜 오늘 올랐고 왜 오늘 내렸는지에 대한 사후 분석을 투자 인사이트로 생각하면 위험하다”고 말했다. 그가 더 중요하게 보는 것은 전쟁이 확대되는지, 해협이 실제로 봉쇄되는지, 정부가 어떤 제재를 내놓는지, 기업의 공급망이 어디에 걸려 있는지 등 국면의 전개 방향과 사실 확인이다.이 씨는 “전쟁 수혜주라는 표현도 조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원유, 방산, 식량 관련 기업은 업종으로 묶이지만 수익 구조는 같지 않다. 에너지 기업만 보더라도 생산 기업과 정유 기업은 원가 구조가 다르고 방산 역시 완성 무기 업체와 부품 공급업체의 실적 흐름이 다르다.
식량과 원자재 역시 생산과 비료, 물류 단계가 각각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 그런데도 업종 이름만 보고 접근하면 실제로 마진이 발생하는 구간을 놓칠 수 있다.
그가 일반 투자자에게 제시하는 해법은 자산 배분이다. 전쟁이 터진 뒤 급하게 비중을 바꾸는 전략은 이미 전쟁의 영향이 주가에 반영된 상태에서 상투를 잡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 씨는 “처음부터 배분을 잘해 놓으면 약간의 비율 조정만 해도 큰 손실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한국의 중산층과 은퇴 준비자들은 전쟁 국면에서 무엇부터 점검해야 할까. 이천 희망재무설계 대표는 “전쟁 뉴스가 나올 때마다 금과 달러, 원유 같은 자산을 따라 움직이기보다 기존 포트폴리오가 이런 충격을 버틸 구조인지를 먼저 점검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대표는 “재무설계에서는 단기 이슈가 큰 의미가 없다”며 “리스크에 대비해 자산을 미리 배분해 놓는다면 이런 전쟁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전쟁은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변수다. 어젯밤까지 불안이 최고조였다가도 하루 만에 휴전 소식이 나올 수 있다. 그때마다 자산을 급히 옮기면 오히려 손실이 커질 수 있다. 이 대표는 “단기 이슈에 휘둘려 자산을 조정하기 시작하면 오히려 판단이 흔들릴 수 있다”며 “미리 세운 자산 배분 비율에 따라 자금을 관리하는 것이 자산을 지키는 데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금은 항상 안전한 자산이 아닌 조건부 자산
이 관점에서 보면 지금 중산층과 은퇴 준비자들이 먼저 눈여겨볼 것은 대기자금과 유동성이다. 당장 써야 할 돈과 그렇지 않은 돈을 나눠놓지 않으면 시장이 흔들릴 때 생활자금까지 투자 판단에 끌려들어 간다. 전쟁기에는 수익률보다 현재의 현금 흐름으로 안정된 생활을 지속할 수 있을지부터 확인해야 한다.그다음은 물가와 금리에 대한 노출도를 점검해야 한다. 국제유가 상승이 인플레이션 압력을 키우고 금리인하 시기를 늦어지게 만들면 장기채와 고평가 성장주, 변동금리 대출 비중이 높은 가계는 부담이 커진다. 이때 예금과 현금성 자산, 배당 현금흐름이 있는 자산, 환노출(투자 자산의 가격 변화와 함께 환율 변화도 수익률에 반영되는 것)을 일부 포함한 해외 자산은 경제적 압박을 방어하는 장치가 될 수 있다.
이천 대표는 “달러를 꼭 현찰로 사둘 필요는 없다”며 “미국 시장에 투자하는 것도 달러 투자가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미국 주식이나 달러 자산에 투자하는 해외 상장지수펀드(ETF), 초단기 채권형 상품을 활용하면 환율 변동에 따른 차익과 금리인상에 따른 이자 수익을 함께 노릴 수 있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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