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과 ‘맞장뜨는’ 트럼프…“‘붕괴 위기’ 자아가 선택한 최후 방어기제”

[정신분석학으로 본 트럼프 언어] ‘세계가 자신에게 빚지고 있다’는 무의식적 욕망의 누출

  • 강도형 강도형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전 서울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입력2026-04-16 1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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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빌어먹을 해협” “미친 X들아…알라에 찬양을”

    • 협상용 아닌 깊고 어두운 심리적 층위

    • 해결되지 않은 오이디푸스 콤프렉스 재현

    • “이란 문명 소멸”…통제되지 않는 ‘원초적 분노’

    • “문명 수호”…살육에 ‘종교 외피’ 입히는 심리

    • “최후통첩”…‘과대자기’가 부여한 쾌락이라는 전차

    • 교황 비판…자신은 ‘신의 뜻’ 대행하는 존재

    • 주한미군 4만5000명? 정신적 결핍을 동맹국에 투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월 6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란을 하룻밤 사이에 제거할 수 있다”며 “그 하룻밤이 내일 밤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다.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월 6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란을 하룻밤 사이에 제거할 수 있다”며 “그 하룻밤이 내일 밤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다. 뉴시스

    국제정치의 무대는 대개 냉혹한 국익 계산과 정교한 외교적 수사로 채워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라는 인물이 등장한 이후, 세계는 ‘합리적 행위자’라는 고전적 모델이 붕괴하는 광경을 목격하고 있다. 이란을 향해 “한 문명이 소멸할 것”이라 선언하고, 호르무즈해협의 긴박한 대치 상황 속에서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내뱉는 그의 모습은 국가수반의 외교적 행위로 보기 어렵다. 그것은 차라리 통제되지 않는 ‘원초적 분노’의 표출에 가깝다.

    우리는 흔히 그의 돌출 발언을 단순한 협상 전술이나 특유의 ‘브랜딩’으로 치부하곤 한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훨씬 더 깊고 어두운 심리적 층위가 존재한다. 이란에 대한 폭압적 태도부터 동맹국을 향한 피해망상적 비난, 전쟁을 신성한 사명으로 포장하는 종교적 수사까지 그의 모든 행보는 자신의 비대한 자아를 보호하고 내면의 결핍을 필사적으로 감추려는 심리적 방어기제의 산물이다. 

    트럼프에게 세계는 더는 공존의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전능감을 확인받기 위한 거대한 거울이자, ‘자기애적 상처’를 입힌 적들을 응징해야 할 투기장이다. 이제 정신분석학적 렌즈를 통해 트럼프의 대외정책을 재해석해 보고자 한다. 그가 왜 이토록 파괴적인 언어를 동원하는지, 그리고 ‘48시간’이라는 최후통첩이 왜 번번이 유예되는지 알아야 요동치는 세계 정세 속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이성적 대응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원초적 아버지 위치 점유하려는 무의식적 시도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을 대하는 태도는 매우 폭압적이란 비판을 받는다. “한 문명이 소멸될 것” “빌어먹을 해협 열어라, 미친 X들아…알라에 찬양을”이라는 그의 발언은 어떤 심리에서 비롯됐을까. 

    트럼프에게 ‘미국 우선주의’는 곧 ‘자기 자신’의 확장이다. 그가 구축한 ‘강력한 승리자’라는 자아상에 대해 이란의 저항이나 도발은 단순한 국가 간 갈등이 아니라, 그의 전능감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이 바로 ‘자기애적 격노’다. 그는 이란이라는 국가를 자신의 거대한 자아에 상처를 입힌 ‘혐오의 대상’으로 프레이밍하고, 이를 파괴함으로써 자아의 통합성을 유지하려 한 것이다. 핵 협상의 교착, 호르무즈해협에서의 군사적 긴장, 중동이라는 지정학적 미로 속에서 미국의 의지가 관철되지 않는 현실은 나르시시즘적 주체에게 참을 수 없는 모욕이 된다. 



    트럼프는 법 위의 존재이자 규칙을 만들고 깨는 예외적 주체로 자신을 끊임없이 위치시킨다. 이렇게 상징적 질서의 규범을 의도적으로 위반하는 것은 아버지의 법을 넘어서는, 원초적 아버지의 위치를 점유하려는 무의식적 시도라 볼 수 있다. 문명의 소멸을 말하고, 욕설로 명령하는 트럼프의 언어는 이 원초적 아버지의 음성을 흉내 내며, 듣는 이들에게 법 너머의 전능한 힘이 존재한다는 환상을 준다. 언어가 폭력적일수록, 현실에서의 무력감은 그만큼 깊은 것이다. 조용히 말해도 세계가 긴장하는 자리에서 굳이 ‘문명의 소멸’이라는 종말론적 언어를 동원하고, 욕설과 신성모독적 조롱을 결합한 것은 해결되지 않은 트럼프의 오이디푸스 콤프렉스(Oedipus complex) 재현이라고 볼 수 있다. 

    3월 3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군사 공격으로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연기 기둥이 솟아오르고 있다. 뉴시스

    3월 3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군사 공격으로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연기 기둥이 솟아오르고 있다. 뉴시스

    쾌락과 고통의 저울, 절대 반지 찾는 반복강박

    트럼프는 이란을 향한 최후통첩 시한을 당초 48시간에서 5일로 연장했다가 다시 연장하는 등 발언 수위에 비해 협상에서는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였다. 모든 협상에서 이기고, 모든 상대를 굴복시키며, 결단의 순간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지도자로 자신을 브랜딩해 온 트럼프에게 48시간이라는 최후통첩은 이 과대자기(grandiose self)의 정제되지 않은 발현이었다. 최후통첩이라는 형식 자체가 이미 권력의 절대성을 전제하며, 이러한 광경은 지금의 트럼프를 있게 한 상징적 발언인 “넌 해고야(You’re fired!)”를 생방송 쇼에서 외치던 과거 그의 모습과 너무도 닮아 있다. 트럼프는 아직 과대자기가 부여한 쾌락이라는 전차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있다. 

    최후통첩의 시한이 다가올수록 쾌락은 고통으로 변해 간다. 두 가지 선택만이 남기 때문이다. 하나는 실제로 군사행동에 돌입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시한을 어기고 후퇴하는 것이다. 전자는 통제 불가능한 결과를 초래할 위험을 안고 있고, 후자는 과대자기의 붕괴를 의미한다. 최후통첩을 5일로 연장하는 결정은 겉으로 보기엔 외교적 유연성으로 포장되지만, 무의식적 차원에서는 쾌락 후에 견뎌야 할 고통의 저울질을 회피하려는 의식적인 몸부림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5일로 연장한 뒤 다시 그 기한마저 연장하는 패턴은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말한 ‘반복강박’의 구조를 쏙 빼닮아 있다. 반복강박이란 해결되지 않은 심리적 갈등이 동일한 행동 패턴의 반복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전능한 자기를 유지하려면 단호하게 행동해야 하지만, 실제로 단호하게 행동하면 전능한 자기가 파괴될 수 있다는 역설이 존재한다. 즉 우유부단해 보이는 모습의 이면에는 전쟁의 상대가 이란이 아니라 일생 동안 절대 반지를 찾아 헤매고 있는 ‘트럼프 자신’이라는 것을 드러낸다. 

    자신감의 가면에 감춘 무모함이라는 불안

    그렇다면 트럼프가 올해 들어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체포, 이란 공습 등 전 세계 경제를 위협하는 도발을 기습적으로 감행한 것은 자신감의 발로일까, 아니면 뒤를 생각하지 않는 무모함의 증거일까. 정신분석적 관점에서 들여다본다면, 이는 세계 최강대국의 수장이라는 자신감의 발로라기보다는 오히려 붕괴 위기에 직면한 자아가 선택한 최후의 방어기제인 ‘조증적 방어(manic defense)’와 ‘전능 환상(omnipotence)’의 산물일 가능성이 크다. 진정한 의미의 자신감은 타자의 반응이나 외부의 도전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자신의 한계와 세계의 복잡성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성숙한 자아에서 피어난다. 지금 우리가 지켜보는 트럼프의 모습은 텅 비어버린 자신의 현실 감각의 자리를 폭력적 과장으로 가려보려는 위험한 도피극에 가까워 보인다. 

    결국 자신감이냐 무모함이냐는 물음은 겉으로는 양자택일을 요구하지만, 정신분석적 깊이에서 보면 이 둘은 동일한 무의식적 구조의 서로 다른 표면이다. 과대자기의 전능감이 의식에서는 자신감으로 체험되고, 현실에서는 무모함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자신의 무의식과 술래잡기를 하며 세계경제를 인질로 잡는 트럼프의 연쇄적 도발 앞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긴급한 과제는 무엇일까. 한 개인의 무의식적 갈등이 어떻게 집단의 욕망과 결합해 인류 전체를 재편하며 공생하는 힘을 획득하는지를 이해하는 일일 것이다. 

    죽음충동(thanatos) 자극하는 에코체임버

    미국의 전쟁사를 관통하는 하나의 일관된 패턴이 있다면, 그것은 폭력을 신성한 언어로 감싸는 행위, 즉 살육에 종교적 외피를 입히는 심리적 의례다. 트럼프의 경우 이 패턴은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그는 이란 공습을 정당화하는 과정에서 ‘선택받은 자(chosen one)’라는 수사를 이어가며 전쟁을 ‘문명의 수호’라는 종교적 사명으로 포장한다. 동시에 평화를 호소하는 교황 레오 14세를 “범죄 대응에 미약하고, 외교정책에는 최악이다(WEAK on Crime, terrible for Foreign Policy)”라고 공개적으로 직격했다. 이는 단순한 정치적 공격이 아니라, 자신이 신의 뜻을 대행하는 존재임을 암시하면서 전통적 종교 권위를 ‘약함’으로 규정하고 무력화하려는 이중적 전략이다. “이 살인만은 신이 허락했다”는 선언은 병사와 시민 모두에게 죄책감 없는 방아쇠 당김과 지지를 가능하게 만든다.

    전쟁은 죽음충동(thanatos)이 집단적으로 분출하는 사건이지만, 인간은 자신 안의 이 어두운 힘을 직시하지 못한다. 직시하는 순간 문명이라는 환상 전체가 붕괴하기 때문이다. 종교적 언어는 죽음충동을 생명 충동의 언어로 미화하는 역할을 한다. 파괴는 건설이 되고, 죽음은 구원이 되며, 전쟁은 평화를 위한 성전이 된다.

    트럼프식 소셜미디어 활용법인 ‘1인 미디어 직접 소통’과 ‘이미지 정치’는 이러한 연출을 위한 강력한 무기로 작용해 죽음충동을 은폐하고 미화한다. 이로써 그는 자신의 파괴적 행위를 ‘신성한 사명’으로 승화시키는 데 중요한 ‘에코체임버(echo chamber·집단의 메아리)’를 극대화한다.

    트럼프는 EU나 한국, 일본 등 동맹국을 향해서도 “도와주지 않는다”며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이뿐만 아니라 주한미군 규모를 실제(2만8500명)보다 부풀려 4만5000명이라고 두 차례나 언급한 바 있다. 이는 단순한 외교적 실수나 정보 오류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 유명한 프로이트의 말실수(Freudian slip) 이론에도 나와 있듯, 숫자의 왜곡이나 말실수는 무의식적 욕망의 누출이다. 실제보다 부풀려진 숫자는 두 가지 무의식적 기능을 동시에 수행한다.

    그것은 첫째, 미국의 희생과 부담을 과장함으로써 피해자 코스프레를 강화한다. 둘째, 더 큰 숫자는 더 큰 협상 지렛대가 된다. 그 에너지의 원천은 세계가 자신에게 빚지고 있다는 근원적 확신이다. 트럼프 자신의 정신적 결핍의 원인을 동맹국에 투사하고 있는 것이다. 

    동맹 비난과 숫자 왜곡, 무의식적 욕망의 누출

    동맹을 비난하는 트럼프의 무의식적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것은 향후 전개될 실제 협상 과정에서 동맹국들이 취해야 할 대응 방식을 설정하는 데 결정적 통찰을 제공한다. 전후 복구 과정이나 방위비 분담금 재협상의 테이블이 마련됐을 때, 동맹국들은 트럼프가 제시하는 터무니없이 과장된 숫자나 일방적 비난의 언어에 표면적으로 매몰돼선 안 된다. 그 발언들은 사실관계를 바로잡기 위한 이성적 논쟁의 대상이 아니라, 상대방을 뒤흔들고 감정적 방어 태세를 유도해 스스로 협상력을 깎아내리게 만드는 고도로 발달한 심리적 덫이기 때문이다. 

    전후 복구라는 거대한 외교 무대에서, 과잉 비난과 왜곡된 숫자는 상대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맹목적 굴복을 종용하는 정교한 심리적 미끼가 될 것이다. 국제정치를 움직이는 거대한 힘의 기저에는 합리적 손익계산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트럼프 자신의 결핍을 채우려는 원초적 욕망과 불안이 생생하게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강도형
    ● 서울대 의대 졸업, 동 대학원 정신과학 석·박사
    ● 前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및 서울대 의대 정신과학교실 교수
    ●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대한통증연구학회, 한국정신신체의학회 정회원
    ● 現 강도형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 저서: ‘감정시계:몸의 리듬이 감정을 만든다’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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