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 어획 가능량 700만t, 실제 어획량 500만t. 인도양, 태평양과 이웃하는 섬나라 인도네시아의 어업 성적표다. 200만t 가량의 고기는 바다에서 생을 마치고 썩어 없어진다는 뜻이다. 어업기술의 낙후와 어업기반시설 부족 등의 이유로 만족할 만한 어획량을 달성하지 못하는 인도네시아는 우리에게 ‘기회의 땅’이다. 인도네시아 말루쿠해, 아라푸라해 등에서 직접 본 어자원의 보고(寶庫) 인도네시아 바다에 대한 현장 보고서. 》
꼬리를 떼고 창자를 긁어낸 참치는 얼음에 쟁여진 채로 일단 거대한 냉동창고에 보관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적어도 3일 이내에는 신선한 참치를 먹고 싶어하는 세계인의 식탁을 향해 머나먼 ‘여행길’에 다시 오른다.
오후의 적막을 깬 참치선단의 귀향(歸鄕)을 지켜보다 보니 인도네시아인들 속에 한국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짧은 머리에 건장한 체격을 한 이 사람은 주로 영어로 지시를 내리고 있었지만 간간이 인도네시아 말을 섞어 가면서 신속한 작업을 독려하고 있었다. 2시간여의 작업으로 옷은 흠뻑 젖어 있었지만 지친 기색은 찾아볼 수 없다.
‘기회의 땅’ 인도네시아
참치 하역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사람은 싱가포르에 본사를 두고 있는 ‘EAD’ 그룹의 이상룡(李相龍·58)회장. ‘PT사리세가라’는 이씨가 합작계약을 한 인도네시아 현지법인으로 50∼80t급 선박 30여대를 보유하고 있다.
올해부터 인도네시아 정부의 어업방침 변경으로 외국국적 선박이 EEZ(배타적 경제수역) 내에서 조업할 수 없게 됨에 따라 인도네시아 기업과 합작계약을 체결해 어업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이씨는 “일견 규제가 강화된 것 같아 보이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국적을 변경할 경우 고액의 입어료를 내지 않아도 자유로이 어로를 할 수 있고, 그동안 접근이 불가능했던 12해리 이내에서 고기를 잡을 수도 있어 오히려 유리하다”고 말했다.
온 나라가 경제한파에 몸살을 앓고 있는 인도네시아는 어민 대부분이 영세하고 변변한 어선마저 보유하고 있지 않아 현지법인과 합작하거나 직접투자를 해 고기잡이에 나설 경우 힘들이지 않고 어획량을 늘릴 수 있다는 것이 이씨의 설명. 이씨는 “외국선박을 돌려보내고 새로운 어업허가권을 부여하는 과정에 1년 이상의 고기잡이 공백이 생겨 인도네시아 어장에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고기가 살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발리섬 베노아에서는 아이슬랜드에서 온 어장탐사 전문가 아인스타인 부이 에를랜드슨, 인도네시아 현지인인 람리 하투위 등과 함께 어장에 대한 실사까지 마친 상태. 이씨는 이 밖에도 인도네사아 자카르타에 있는 ‘PT아르고 투나 누산타라’ 사(社)와는 합병계약을 체결하고 인도네시아 내 어업허가권을 획득했다. 자바섬 동쪽 끝에 위치한 반유양이에도 베노아에 있는 것과 같은 대형 창고와 처리시설을 갖추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수산업을 농업개발계획의 일환으로 추진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수산업의 총 GDP(국내총생산) 기여도는 3% 수준(농업부문 GDP 중 10.3%)이며 고용인력은 450만명으로 인도네시아 전체 고용인력의 5% 수준.
인도네시아 국기를 달아라!
어획가능자원은 연간 700만t 정도지만 97년 어획량은 500만t. 그나마 85년의 240만t에서 연간 5.85%씩 늘어난 수치다. 기술부족과 어획장비 낙후로 어획가능량의 68% 수준밖에는 잡아 올리지 못하는 것이다.
이씨의 기술고문으로도 활약하고 있는 에를랜드슨은 “모르긴 해도 상당수의 고기들이 바닷속에서 생을 마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인도네시아 어장은 더 이상 매력이 없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알려지지 않은 신어장이 얼마든지 존재한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의 지난 10년간 수산물 수출은 1983년 8만9000t에서 ▲1992년 42만1000t ▲1994년 54만5000t ▲1997년 65만2000t으로 연평균 20% 이상 꾸준한 증가세를 보였으며 97년 수출액도 16억8000만달러에 이르렀다. 주요 수출 품목 중 새우(70%)와 참치(12%)는 수출액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 외의 해조류나 어류 수출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이처럼 수산업이 국가경제에 기여하는 비중이 클 뿐만 아니라 경제위기 상황에도 외화 획득률이 높아 인도네시아 정부는 수산업 발전을 통해 경제위기를 극복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그동안 집중 개발된 인도네시아 서부지역 어장보다는 상대적으로 개발에서 소외되었던 동부지역과 배타적 경제수역내의 개발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어민이 자본과 기술력이 부족한데다 어항(漁港) 등 기반시설도 태부족인 상황이다.
인도네시아 관리들의 고민은 여기에 있다. 자국 해역에 외국국적 선박이 마구잡이로 들어와 고기를 잡아가는 것을 보다 못해 새로운 규정을 만들어 외국배를 몰아내기는 했지만 자국의 자본으로는 변변한 어로가 불가능한 것.
이 밖에 새우양식의 경우 자바섬에만 집중돼 있고 그나마 환경오염으로 인해 질병이 만연해 있는 것도 문제점. 게다가 경제위기로 달러당 9000루피아까지 하락한 탓에 수입어구(漁具)나 어분(魚粉)은 물론이고 어선 부속품 가격도 천정부지로 치솟아 영세한 어민들을 더욱 곤궁에 빠져들게 하고 있다.
고육책으로 내세운 것이 7월1일 발효된 새로운 어업규정. 인도네시아 정부는 90년대 초반까지도 자국의 배타적 경제수역(EEZ)내에 외국어선이 들어와 고기를 잡는 행위를 특별한 제한없이 허용했다.
그러나 입어 어선이 크게 늘어남에 따라 무분별한 어로와 불법조업 사례가 급증하자 96년 12월 ‘EEZ내 외국어선 용선규정’을 제정했으며 급기야 2000년에 들어와서는 외국어선의 조업을 전면 금지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인도네시아에 들어와 있는 외국 어선수는 급격히 줄어, 99년 3월 현재 22척만이 인도네시아에서 조업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실제로는 외국인 소유 어선 500여척이 인도네시아 국적으로 전환해 조업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어쨌거나 현재 EEZ내 외국어선의 입어는 어업면허(IUP)를 보유한 인도네시아 어선사에 배를 빌려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외국선박이 단독으로 고기를 잡는 것은 금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이 있다 해도 인도네시아는 인도양과 태평양을 모두 앞 바다로 삼고 있으니만큼 무궁무진한 수산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이와 같은 지리적인 이점은 시장으로서도 무한대에 가까운 잠재력을 남겨두고 있는 것. 인도네시아 정부도 2004년까지 5개년 계획을 세우고 ▲수산물 수출증대로 외화획득 ▲어분 생산증대로 수입대체 ▲수산물 공급확대로 국민식량 문제 해결 등의 정책방향을 수립했다.
우리나라가 그동안 인도네시아 어장에 진출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87년 7월 동원산업 트롤어선 3척이 입어 허가를 받아 처음으로 인도네시아 해역에서 조업을 시작한 이래 94년 73척까지 그 수가 증가했다. 하지만 우리어선이 주로 진출했던 인도네시아 아라푸라 해역의 어족자원 감소로 어황이 나빠지고 해군 및 수산당국에 의한 단속이 강화되면서 97년말에는 46척으로 급감한 적도 있었다.
이후 98년 들어서는 북태평양, 대서양 등 원양어선의 조업가능 지역이 줄어들면서 인도네시아로 진출하는 우리 어선수가 다시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지만, 최근에는 대만 중국의 불법 트롤어선이 대량 진출하고 있어 우리어선은 타 해역 등으로 밀려가고 있는 상황이다.
그동안 우리나라 어선이 진출해 고기를 잡던 곳은 주로 아라푸라 해역으로 인도네시아와 호주의 경계지역인 남위 5∼10도, 동경 135∼140도 구역으로 평균 수심이 60∼70m의 광활한 대륙붕이 형성된 지역. 진출어선의 기지로는 말루쿠주 수도인 암본항과 술라웨시주 북단의 비퉁항을 사용해 왔다.
하지만 아라푸라 해역은 그동안 많은 어선들의 타깃이 됐던 지역으로 최근 어획량은 예년의 70% 수준(월 평균 3000t 내외)으로 떨어져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 어선이 아라푸라 해역에서 주로 잡아올렸던 어종은 ▲조기(6월∼이듬해 2월) ▲한치(9∼12월) ▲갈치(3월∼6월) ▲돔 ▲가오리 ▲복어 ▲문어 등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해양수산부에서는 인도네시아 어장을 신어장으로 분류하는 것에 반대하는 쪽이다. 이미 10년이 넘게 어로를 해온 곳이 무슨 신어장이냐는 것.
그러나 이상룡 회장은 정부와 견해를 달리한다. 우리나라 어선이 인도네시아 내에서 10년이 넘게 조업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라푸라해 일부지역에서 참치를 잡은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 이씨 주장의 요지. 인도네시아에는 잠재력을 가진 어장이 얼마든지 있으며 새로운 어장을 발견하면 그것이 신어장이 아니고 무엇이냐는 것이 이씨의 논리다.
국내의 정치·경제·사회적인 불안정을 타개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새로운 어업허가규정을 세웠고 그 과정에서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외국선박을 일괄철수 시키는 바람에 어업공백이 생겼다는 것은 인도네시아 어장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
하지만 외국자본의 도움 없이는 인도네시아 경제를 활성화할 수 없다는 것을 실감한 인도네시아 정부는 1년 남짓 만에 새로운 규정을 내세워 다시금 외국 자본을 유치하려고 하고 있다.
이씨는 철수했던 외국자본이 아직까지 인도네시아 진출을 서두르지 않고 있는 현 시점이 무주공산(無主空山)이 돼버린 인도네시아 시장을 선점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일본 자본이나 중국 화교 자본에 상대적으로 큰 반감을 가진 현지에 비교적 인상이 나쁘지 않은 한국 자본이 진출해 새로운 어장을 선점할 경우 속된 말로 ‘대박’이 터질 수도 있다는 것. 이씨는 “지나치게 소극적인 우리나라 관리들이 우물쭈물하는 사이 광활한 시장을 눈앞에서 놓쳐버리지 않을까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물론 지난해 체결된 한일어업협정과, 진통을 겪으며 진행중인 한중어업협정으로 어민들로부터 인심을 잃은 해양수산부가 신어장 개척 노력을 게을리 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3월 해양수산부 어업교섭단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 3개국을 방문, 동남아 여러 나라와 어업협력 방안을 협상하고 신어장 개척을 모색했다.
해양수산부 대표단은 노에르 소에트리노스 중소기업산업개발 차관을 만난 자리에서 우리나라의 근해어선이 인도네시아 수역에 진출해 조업을 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정부대표단은 2000년부터 외국 어선의 입어를 금지하겠다는 인도네시아 정부에 특별법 제정 또는 예외적으로 한국어선의 입어를 허용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
“얼마든지 잡아라”
특히 정부측은 ▲한국 수산업 전문가의 파견을 통한 인도네시아 수산업 발전 ▲인도네시아 선원들의 한국 어선 취업보장 ▲한국 어선의 인도네시아 EEZ내 입어허용 ▲한국어선의 인도네시아 어장 탐사허용 등을 골자로 하는 ‘어업분야 양자간 협력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하자고 제의했지만 냉담한 반응을 얻었을 뿐이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인도네시아 시장이 잠재력이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국내정치 불안 등의 이유로 중앙정부 차원에서 양해각서 등을 체결해도 지방에서는 휴짓조각으로 변해버리는 일이 허다하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강원도가 도차원에서 인도네시아 어장을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7월10일부터 15일 동안 강원도내 동해안 근해 채낚기 어선 선주 등 8명을 대동해 인도네시아 어장 현지 시찰에 나섰다. 이번 현지 방문은 지난 5월 해외 신어장 개척을 위해 김진선 강원도지사가 인도네시아 현지를 방문, 알위시합 외무장관과 상호 협력 및 지원을 약속하고 양국 협력사 사이에 어업협력 계약서 체결을 성사시킨 데 따른 조치.
강원도는 선주들이 현장 확인을 통해 진출을 결정할 경우, 2001년 3월에 근해채낚기, 근해통발, 근해연승 등 어선 10∼20척을 인도네시아 어장에 진출시키고 조업성과를 분석한 뒤 진출 어선수를 확대할 계획이다.
현지 확인단은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배에 승선, 꽃게 한치 복어 가오리 등이 풍부한 것으로 알려진 자바 중부해역과 수익성 높은 참치어장인 말루쿠 해역 등 2개 해역을 주·야간 답사했다.
6월8일 기자는 이상룡 회장과 에를랜드슨을 비롯한 인도네시아 사람들과 발리섬 해변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치고 해변을 거닐던 기자의 발에 뭔가 채는 것이 있었다. 어스름한 달빛에 비춰보니 배가 불룩한 복어였다. 인도네시아인들은 복어를 먹지 않기 때문에 그물에 걸려도 모두 버린다는 것이 현지인들의 설명이었다.
순간 인도네시아 해양 수산청 고위관리의 말이 퍼뜩 떠올랐다.
“우리 바다 어디에서 어떤 고기가 얼마나 잡히는지 나도 잘 모릅니다. 인도네시아 법인과 합작을 하는 등 적법한 절차를 밟기만 하면 됩니다. 얼마든지 고기를 잡으십시오.”
무한대로 열린 ‘기회의 어장’ 인도네시아가 우리 품에 안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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