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돈-안보 커넥션 드러낸 트럼프 ‘AI 행정명령’
AI는 사이버 무기…앤트로픽 ‘미토스’ 사건
주정부, 독자적 AI 규제 견제하며 연방 주도권 확보
펜타곤은 압박, 안보 기관들은 앤트로픽 AI 모델 의존
누가 AI 규칙 만들고, 그 기술의 방아쇠를 쥘 것인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뉴시스
행정명령의 배경은 첨단 AI의 급속한 군사화 및 사이버화 추세다. 주요 목표는 “중대한 사이버 역량을 보유한 첨단 AI 모델”에 대한 연방정부 차원의 검토 필요성을 강조하며, “사이버 위협으로부터 국가를 보호하는 것”이다. 최근 AI는 제로데이(Zero-Day) 취약점 탐지, 악성코드 생성, 자동화 해킹 능력까지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미국 정부는 이를 잠재적 사이버 무기로 보기 시작했다. 이번 행정명령은 AI 산업 정책이라기보다 국가안보 정책의 성격이 더욱 강하다.
흥미로운 점은 행정명령이 규제 강화보다 혁신 보호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백악관은 “연방정부가 불필요하게 부담스러운 규제를 통해 민간 부문의 혁신을 저해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당초 검토되던 ‘강제 허가제’는 실리콘밸리의 반발로 최종안에서 제외됐고, 연방정부 역할도 의무적 통제가 아닌 자발적 정보 공유에 머물렀다. 결국 행정명령은 AI 안전과 사이버 안보를 관리하는 동시에, 중국과 벌이는 AI 패권 경쟁에서 미국의 기술적 우위를 유지하려는 절충안으로 볼 수 있다. 한 장의 행정명령 뒤에는 AI 기업들의 경쟁, 실리콘밸리의 로비, 국가안보 관료 집단의 이해관계, 그리고 미국 패권의 미래를 둘러싼 거대한 권력투쟁이 숨어 있다.

2021년 설립된 AI 스타트업 앤트로픽은 올해 4월 최신 모델인 ‘클로드 미토스 프리뷰’ 공개를 유보했다. 뉴시스
‘너무 위험해서’ 팔 수 없는 무기가 된 미토스
2026년 4월, 앤트로픽은 최신 모델인 ‘클로드 미토스 프리뷰(Claude Mythos Preview)’의 공개를 유보하는 이례적 결정을 내렸다. 회사는 이 모델이 사이버보안 분야에서 ‘분수령’ 수준의 도약을 이뤘다고 평가했다. 미토스는 알려지지 않은 ‘제로데이 취약점’을 스스로 찾아내고, 이를 악용할 수 있는 공격 코드까지 생성할 수 있다. 더욱 충격적인 점은 전문 해커 수준의 기술이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단순한 지시만으로도 상당한 수준의 취약점 탐지와 공격 설계가 가능했다. 앤트로픽은 이러한 역량이 무분별하게 확산할 경우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보았다.결국 일반 공개 대신 ‘프로젝트 글라스윙(Project Glasswing)’이라는 제한적 컨소시엄 방식을 선택했다. 일부 핵심 기업과 기관에만 접근을 허용해 방어 역량을 먼저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이는 AI가 생산성 도구를 넘어 잠재적 사이버 무기로 변모하고 있음을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다. 미토스는 AI 혁명이 편리함의 혁명인 동시에 공격 능력의 혁명일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그러나 미토스 논란이 보여준 진짜 충격은 모델 자체보다 그 기술이 더는 소수 기업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보안 스타트업 ‘아일(AISLE)’은 미토스가 찾아낸 취약점들을 여러 저비용 공개 모델로 재검증했다. 그 결과 상당수 취약점이 훨씬 작은 모델에서도 탐지됐다. 아일의 창업자(스타니슬라프 포트)는 진정한 경쟁력은 거대 모델이 아니라 보안 전문성이 축적된 시스템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AI 역량의 발전 경로를 ‘울퉁불퉁한 경계(jagged frontier)’라고 표현했다. 어떤 영역에서는 거대 모델이 우세하지만, 다른 영역에서는 훨씬 작은 모델도 충분한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의미다. 이는 사이버 공격 능력이 특정 기업의 독점 자산에서 점차 범용 기술로 이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결국 미토스가 열어젖힌 판도라의 상자는 해당 회사의 손에만 들려 있지 않았다.
미토스 사건을 이해하려면 모델 자체보다 그것이 등장한 속도에 주목해야 한다. ‘애틀랜틱카운슬’에 따르면 최근 8개월 동안 공개된 프런티어 AI 모델은 18개다. 평균 2주에 한 번씩 새로운 최첨단 모델이 등장한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미 글로벌 안보 환경이 AI에 의해 재편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뒤늦게 AI 행정명령을 추진한 것도 바로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변덕? 정치적 게임의 결과
흥미롭게도 기업들은 연방정부보다 먼저 ‘레드팀(Red Team)’ 평가와 안전성 검증 체계를 구축하고 있었다. 그러나 안전 담론 뒤에는 시장지배력을 둘러싼 치열한 경쟁도 숨어 있다. 위험을 강조하는 기업은 규제 논의를 주도할 수 있고, 경쟁사는 이를 견제하며 시장점유율 확대를 노린다. 결국 AI 산업에서는 기술혁신, 안전성, 규제, 상업적 이익이 동시에 충돌하고 있다. 미토스는 그러한 충돌이 본격적으로 수면으로 드러난 최초의 사례다. 이는 AI가 기술의 문제가 아닌 권력과 안보의 문제로 진화되고 있음을 보여준 역사적 전환점이다.그에 앞서 지난 5월, 트럼프 행정부의 AI 행정명령은 서명식 직전에 예상치 못한 정치적 소동을 벌였다. 백악관은 이미 주요 빅테크 경영진을 초청해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지만, 데이비드 색스(David Sacks·백악관의 ‘AI 차르’)를 비롯한 실리콘밸리 인사들의 막판 반발이 상황을 뒤집었다. 업계의 우려는 분명했다. 연방정부의 사전 검토가 AI 산업의 혁신 속도를 늦추고, 중국과의 기술 경쟁에서 족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트럼프는 행사를 취소하고 초안을 재검토하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논란의 본질은 다른 곳에 있다. AI 규제를 둘러싸고 실리콘밸리의 기술 엘리트와 백악관, 그리고 정치권이 정면으로 충돌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트럼프의 핵심 지지층 내부에서도 균열이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스티브 배넌과 보수 종교계 인사들은 첨단 AI가 국가안보와 사회질서를 위협할 수 있다며 강력한 규제를 요구했다. 반면 기술 기업과 투자자들은 혁신을 가로막는 규제는 곧 미국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고 주장했다. 결국 AI 규제 논쟁은 권력과 이익, 그리고 미국의 미래 산업 전략을 둘러싼 정치투쟁의 성격을 띠게 됐다.
최종적으로 트럼프는 6월 2일 훨씬 완화된 형태의 행정명령에 조용히 서명했다. 행정명령은 “과도한 규제가 혁신을 질식시켜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안전보다 혁신에 더 큰 무게를 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그는 재집권 직후 바이든 행정부의 AI 안전 규제 상당수를 폐기하거나 축소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첨단 AI 모델에 대한 정보 공유와 국가안보 차원의 검토 체계를 유지하려 했다. 동시에 트럼프는 주정부의 독자적 AI 규제를 견제하는 행정명령까지 추진하며 연방 차원의 주도권 확보에도 나섰다.
거대 권력과 자본 전장이 된 AI 시장
결과적으로 2026년 AI 행정명령은 기술 규제 정책이라기보다 혁신, 국가안보, 산업 경쟁력, 그리고 연방 권한이 충돌하는 거대한 권력 게임의 산물이다. 표면적으로는 자발적 협력체계였지만, 그 이면에는 누가 AI 시대의 규칙을 만들 것인지를 둘러싼 치열한 정치적 줄다리기가 숨어 있다.일견 AI 행정명령은 ‘자발적 검토’ 체계에 불과하다. 그러나 돈의 흐름을 따라가면 전혀 다른 그림이 드러난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장차 ‘모델 허가제’로 발전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흥미로운 점은 규제를 반대하던 실리콘밸리 인사들조차 최종안에는 대체로 만족했다는 사실이다. 검토 대상이 최첨단 프런티어 AI 모델로 제한될수록 이를 감당할 자본과 인력을 가진 거대 기업의 입지는 더욱 강화되기 때문이다. 또한 연방정부는 첨단 모델을 가장 먼저 검증할 ‘신뢰 파트너’ 체계를 구축하려 한다. 결과적으로 대형 은행과 거대 기술 기업, 그리고 연방정부 기관이 먼저 접근권을 확보하는 구조가 형성될 가능성이 커졌다.
비판론자들은 이런 방식이 혁신을 보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시장 진입장벽’을 높일 수 있다고 경고한다. 안전을 명분으로 삼은 제도가 기존 선도기업의 ‘해자(moat)’를 더욱 깊게 만드는 역설이 나타날 수 있다는 의미다. 결국 이 행정명령은 규제와 자유시장 사이의 논쟁인 동시에 누가 AI 산업의 미래 이익을 먼저 차지할 것인지를 둘러싼 경쟁의 산물이기도 하다.

미국 국방부는 팔란티어의 ‘메이븐 스마트 시스템(MSS)’을 중심으로 AI를 군사작전의 핵심 도구로 끌어들이고 있다. 사진은 미 국방부 청사인 펜타곤 전경. 뉴시스
그러나 한편에서는 규제를 완화해 기업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 다른 한편에서는 국가안보를 위해 정부가 더 강하게 통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충돌한다. 결국 2026년 AI 행정명령은 혁신, 국가안보, 투자 이익, 군사전략이 서로 얽혀 충돌한 결과물이다. AI가 더는 기술 산업만의 차원을 넘어, 거대한 권력과 자본의 전장이 됐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누가 AI의 방아쇠를 쥐는가
AI를 둘러싼 마지막 전선은 전쟁터 그 자체다. 2026년 이란을 상대로 벌인 ‘장대한 분노 작전(OEF)’에서 미군은 팔란티어의 MSS와 첨단 AI 도구를 활용해, 표적 탐지와 우선순위 선정을 획기적으로 가속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군 지휘관들은 과거 수 시간 또는 수일이 걸리던 작업이 몇 초 안에 가능해졌다고 평가했다. 이는 전쟁의 킬체인이 인간의 속도에서 알고리즘의 속도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그러나 그 이면에는 기묘한 모순이 숨어 있었다. 펜타곤은 앤트로픽을 ‘공급망 위험(supply chain risk)’ 딱지를 붙여 압박하면서도, 국가안보 기관들은 여전히 앤트로픽의 첨단 AI 모델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위험하다고 비난하면서 다른 편으로는 그 기술을 빌려 전쟁을 수행하는 형국이다. 결국 OEF는 AI가 단순한 지원 도구를 넘어, 군사적 우위와 국가안보를 좌우하는 전략자산으로 자리매김했음을 보여주었다.
동시에 AI를 둘러싼 권력 다툼은 전쟁터 밖에서도 격화하고 있다. 워싱턴 내부에서는 혁신을 위해 규제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세력, AI를 국가 전략자산으로 통제해야 한다는 세력, 그리고 위험관리가 우선이라는 세력이 충돌한다. 여기에 연방정부와 주정부 간의 권한 다툼까지 더해졌다. 트럼프 행정부는 전국적으로 통일된 AI 정책을 추진하며 주정부의 독자적 규제를 제한하려 했지만, 여러 주는 소비자 보호와 공공안전을 이유로 강하게 반발한다. 실리콘밸리, 펜타곤, 백악관, 그리고 50개 주가 각기 다른 이해관계를 내세우며 AI 시대의 규칙을 둘러싸고 경쟁하는 셈이다.
이는 AI가 더는 기술 기업만의 문제를 넘어 국가권력, 법률 규제, 안보 전략, 산업정책이 한데 얽힌 거대한 정치적 쟁점이 됐음을 의미한다. 결국 진정한 관건은 누가 AI 시대의 규칙을 만들고, 누가 그 기술의 방아쇠를 틀어쥘 것인지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