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스닥 열기가 뜨겁다. ‘내일 지구가 무너져도 오늘 코스닥 종목을 사겠다’는 투자자들이 줄을 잇는다. 황금의 땅처럼 보이는 코스닥 시장에는, 그러나 곳곳에 함정과 지뢰가 널려 있다. 하루에도 천당과 지옥을 몇차례씩 오가며 희비가 엇갈린다. 코스닥 투자, 이것만은 알고 뛰어들자. 》
그는 이렇듯 높은 수익을 올리기 전까지는 코스닥에 관심은 있었지만 직접 투자할 엄두는 내지 못했다. 코스닥은 개인투자자가 뛰어들기에는 위험하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거래소 시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투자정보가 부족한 코스닥 시장에 주식투자 초보자인 자신이 뛰어든다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일 성 싶었다.
그러다가 10월 들어 마음이 흔들렸다. 거래소 시장에서 이렇다 할 수익을 얻지 못해 낙담하고 있던 차에 주식시장 사정에 밝은 친구가 “괜찮은 종목이 하나 있다”며 코스닥 투자를 적극 권했기 때문이다. 그는 일찌감치 코스닥으로 눈을 돌려 짭짤한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어차피 주식투자란 게 어느 정도 위험을 동반하는 재테크라면 한번쯤 모험을 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친구가 추천해준 G전자 주식 3000주를 주당 4100원에 매입했다. 98년에 부도가 나 화의상태였던 G전자의 주가는 추락을 거듭하다가 L씨가 매입하기 일주일 전쯤 3500원으로 바닥을 치고 반등하기 시작해 연일 초강세를 보이고 있었고, 더 오를 것이라는 말이 나돌았다.
다행스럽게도 그 소문은 사실이었다. 11월 들어 주가는 무서운 기세로 치솟았다. 걸핏하면 상한가를 쳤고, 좀 떨어지는가 싶다가도 이내 상승세로 돌아섰다. 닷새 동안 내리 가격제한폭까지 오르기도 했다.
주가가 현기증이 날 만큼 연거푸 치솟자 L씨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팔 일이 걱정됐기 때문이다. 언제쯤 파는 게 유리할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주가가 20여일만에 100% 이상 뛰었지만, 상승세는 좀체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거래하는 증권사 직원에게 자문을 구하기도 했지만, 그 역시 판단이 서지 않는다며 알아서 하라는 식이었다. 결국 L씨는 11월말 1만200원에 전량 매도했다. 투자원금 1230만원이 한 달여만에 3060만원으로 불어난 셈이었다.
그러나 코스닥 시장에 뛰어든 사람들이 모두 L씨처럼 성공을 거두는 것은 아니다. L씨와 비슷한 시기에 코스닥 시장에 투자했던 자영업자 P씨(41)는 오히려 큰 손해를 보고 지금은 발을 뺀 상태다. P씨의 ‘패인’은 주가가 이미 많이 오른 상태에서 추격매수를 했다는 것.
극과 극의 투자시장
P씨가 코스닥 등록종목인 S일렉트론의 주식을 주당 7900원에 산 것은 11월 중순. 당시 코스닥 시장은 호랑이가 날개를 단 듯 거칠 것 없는 상승세를 타고 있었다. 코스닥지수는 매일같이 신기록 행진을 계속했고, S일렉트론 역시 11월 들어 큰 폭으로 올랐다. 그런데도 P씨는 이 회사가 반도체 장비를 취급하기 때문에 전망이 밝다는 판단에서 주식을 사들였다.
하지만 곧 1만원까지 오를 거라고 기대했던 주가는 8200원까지 상승하다가 곧바로 하락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하루 이틀 정도 빠지고 말겠거니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연거푸 하한가를 치는가 하면 다른 종목이 오르는데도 힘을 쓰지 못했다. 다각도로 원인을 분석해봤지만 뚜렷한 해답을 얻을 수 없었다. 주가가 단기간에 너무 많이 오르긴 했어도 그런 사정은 S일렉트론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었다.
급기야 주가가 2주일만에 5000원대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미리 팔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웠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주식을 살 때부터 오를 것이라는 확신이 너무 강했기 때문에 ‘설마 설마’ 하다가 매도 타이밍을 놓쳤던 것이다.
그 후로도 일주일 가량을 기다렸으나 주가는 다시 뜰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주식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과열된 코스닥 시장이 조정을 받을 것이라는 얘기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그들의 말대로 자칫 시장 전체가 조정을 받는다면 회사의 실적과 무관하게 주가는 더 떨어질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결국 박씨는 투자원금의 40%를 한순간에 날리고 주식을 내다팔 수밖에 없었다.
L씨와 P씨의 투자사례는 요즘의 코스닥 시장 분위기를 그대로 전해준다. 다시 말해 단기간에 큰 돈을 번 투자자도 있지만, 반대로 적잖은 손실을 입고 주저앉은 사람들도 많다는 얘기다. 코스닥 시장을 흔히 ‘고위험 고수익의 시장’이라고 말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래서 코스닥에 투자하려면 하루에도 몇번씩 천당과 지옥을 오가야 한다.
하지만 이런 사정에도 코스닥 투자열기는 연일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내로라하는 주식전문가들이 신문과 방송에 나와 코스닥 투자의 위험성을 강조해도 도대체 먹혀들지가 않는다. 투자자들은 ‘내일 지구가 무너진다 해도 오늘 코스닥에 투자하겠다’는 듯 투지를 불태운다.
코스닥지수, 1년간 4배 상승
코스닥 시장의 열기는 우선 폭발적인 거래량에서 엿볼 수 있다. 98년 말 기준으로 코스닥의 하루 평균 거래량은 70만주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나 요즘은 하루 1억주를 넘나든다. 150배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코스닥지수도 수직상승을 거듭했다. 98년 말까지만 해도 지수 50을 사이에 두고 공방을 벌였으나, 반년 남짓 지난 99년 7월에는 200을 돌파했고, 11월 이후에는 230선을 돌파하며 신고가 행진을 벌였다. 1년 사이에 4배 이상 뛰어오른 것이다. 같은 기간 거래소 시장의 종합주가지수는 2배 정도 오른 데 그쳤다.
종목별로 따져보면 더욱 현실감이 있다. 99년 10월에서 12월 사이에 한글과 컴퓨터의 주식은 주당 3300원대에서 2만원대로 600% 가량 올랐다. 종합 인터넷 서비스업체인 디지탈임팩트는 1만4000원대에서 7만원대(액면가 5000원 기준)로 400% 이상 상승했다. 네트워크통합업체인 인터링크도 3100원대에서 1만5000원대로 역시 500% 가까이 뛰어올랐다.
이 기간에 정보통신주와 인터넷주는 적게는 3배 이상, 많게는 5배 이상 폭등하며 투자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일부 증권사가 추천종목에서 아예 코스닥 등록종목을 빼거나 아예 코스닥 시황을 공개하지 않는 것도 현재의 증시분석 시스템으로는 코스닥 시장의 변화무쌍한 추이를 도저히 설명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코스닥 시장은 증권거래소의 1, 2부 시장과는 별도로 성장성이 돋보이고 기술력이 뛰어난 기업들의 주식을 거래하는 증권시장을 말한다. 여러모로 거래소 시장과 비슷하지만 시장을 구성하는 기업들의 면모를 비롯해 매매패턴, 거래세, 신용거래 등에서 다른 점도 적지 않다. 현재 400여개 기업이 등록돼 있으며 이 가운데 3분 1 정도가 흔히 말하는 벤처기업이다.
코스닥 시장의 역사는 짧다. 코스닥 시장은 96년 상대매매 방식으로 이뤄지던 기존 거래방식을 매매경쟁 방식으로 전환하기 위해 코스닥증권(주)을 설립하면서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당시 추진팀은 미국의 성공모델 나스닥 시장을 벤치마킹해 코스닥 시장의 기본 골격을 짰고, 96년 7월1일을 기점으로 코스닥증권 매매시스템을 가동했다.
거래소 시장의 종합주가지수와 같은 개념의 코스닥 주가지수는 거래 개시일보다 이틀 늦은 7월3일에 공식 발표됐다. 기준지수 100을 토대로 종합지수와 제조업, 유통서비스업, 건설업, 금융업, 기타 업종들의 지수가 집계되기 시작했다. 이어 상장주식 이외에 코스닥 등록주식의 매매가 이뤄지는 코스닥 시장 개념을 증권거래법에 반영함으로써 코스닥 시장이 법제화(97년 4월1일)했고, 시장의 운영과 감독을 분리함으로써 시장의 공공성과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 코스닥위원회가 신설(98년 10월12일)되면서 제대로 자리를 잡았다.
코스닥 투자는 앞에서 설명한대로 고수익과 고위험의 가능성을 동반한다. 주가가 하루에도 상하로 10%씩 요동치는 것은 그리 놀랄 만한 일도 아닐 정도다. 심지어 상한가를 치던 종목이 불과 1∼2시간 뒤에 하한가로 주저앉기도 한다(물론 하한가에서 상한가로 수직상승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되면 하루에 20%가 넘는 변동폭이 생겨 투자자들은 ‘크게 먹거나 크게 잃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1차적인 원인으로는 코스닥 종목의 발행 주식수가 매우 적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대다수의 코스닥 등록업체들은 발행 주식수가 수백만주를 넘지 못한다. 자본금이 100억원에 못 미치는 업체들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증자를 통해 주식수를 늘리는 업체가 속출하고 있지만, 워낙 작은 몸집으로 출발한 탓에 ‘체중 불리기’에는 한계가 있다.
발행하는 주식수가 적다보니 거래량도 적다. 요즘은 하루 거래량이 1억주를 넘나들어 겉으로 보기에는 별문제가 없는 것 같지만, 그 내용을 파고들면 상황이 달라진다. 일부 상위 종목을 뺀 나머지 종목들의 거래량은 극히 적다. 1만주 이상 거래되는 종목이 전체 종목의 절반 정도밖에 안된다. 심지어 5000주가 안되는 종목도 30%나 된다.
일반적으로 주식을 살 때 하루 거래량이 최소한 5000주 이상은 돼야 안전하다고들 한다. 이 정도 규모는 돼야 사고 팔기가 편하고 외부의 요인에 충격을 덜 받기 때문이다. 거래량이 적으면 팔고 싶을 때 제대로 팔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주식을 팔려고 내놓아도 거래가 뜸하면 사겠다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급히 현금이 필요해 주식을 내놨는데 파리를 날리고 있으면 얼마나 속이 타겠는가.
최근 코스닥 시장에 작전세력이 개입돼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는 것도 이처럼 거래량이 적은 코스닥 종목의 특성과 관련이 깊다. 작전세력이 ‘장난’을 치기가 쉽기 때문이다. 주식수가 적어 주가를 올리고 내리는 데 드는 돈이 적은데다, 기술적으로도 ‘찍은 종목’을 컨트롤하기가 그다지 어렵지 않다.
공매도·공매수 악용
예를 들어 아침 일찍 특정 종목에 대해 상한가 주문을 잔뜩 내놓으면 주가는 자동적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다. 그러기를 두세 차례 반복하면 주가는 어느새 50% 이상 급등한다. 이렇게 되면 일반 투자자들은 멋 모르고 따라 들어가게 마련이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손님’이 들었다 싶은 시점에 주식을 팔고 빠져나가면 적잖은 차익을 챙길 수 있다. 막차를 타고 들어간 개인투자자들만 낭패를 보게 되는 것이다.
심지어 공매도 제도(신용거래제도를 이용, 소정의 위탁보증금을 적립하는 것만으로 실물이 없더라도 주식을 팔 수 있는 제도)를 교묘하게 악용하는 경우도 있다. 장이 열리자 마자 공매도 물량을 하한가에 잔뜩 쌓아놓고 가격을 끌어내려 개인투자자들이 영문도 모르고 투매에 나서면 하한가 근처에서 싼 값에 산 다음 며칠 뒤 이번에는 상한가에 공매수 물량을 내놓아 비싼 가격에 되판다.
유·무상증자나 액면분할을 공식 발표하기 전에도 작전세력들이 들끓을 가능성이 높다. 여건상 작전을 하기에 안성맞춤이기 때문인데, 실제로 이 때를 전후해 코스닥 시장에서 작전을 펴는 듯한 징후들이 여기저기에서 발견된다.
거래소 시장에서 증자나 액면분할의 ‘약효’는 그리 길지 않다. 공시를 전후해 약간 오른 후 배정기준일을 앞두고 다시 며칠간 뜨는 게 고작이다. 그래봐야 상승률이 20∼30%를 넘지 않는다. 하지만 코스닥 시장에서는 공시를 일주일 이상 앞둔 시점부터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인다. 기본적으로 2∼3일 동안은 상한가를 치는 등 공시일까지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잠깐 쉬었다가 배정기준일 전에 다시 한번 큰 폭의 상승세를 이어간다. 종목에 따라 약간씩 다르지만 유·무상증자가 50∼100%의 주가상승률을 초래하기도 한다.
문제는 공시 직전에 주가가 큰 폭으로 오른다는 사실이다. 공시 이후에는 어차피 내용 자체가 공개된만큼 유·무상증자 등을 받으려는 투자자들이 생길 수 있고 주가 역시 얼마든지 오를 수 있다. 그런데 공시일 이전에 주가가 큰 폭으로 오르는 것은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당해 회사의 대주주나 임직원들이 정보를 미리 빼내 주식을 샀기 때문에 주가가 올라갈 수도 있겠지만, 상승폭을 납득하기 어렵다. 외부세력이 끼여들었다고 볼 수밖에 없을 만큼 상승폭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이런 의혹이 드는 기업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십중팔구는 유·무상증자 직전에 주가가 큰 폭으로 빠진다. 일정한 차익을 챙긴 투자자들(작전세력으로 추정되는)이 이 시점에 주식을 대거 팔아치우기 때문으로 보인다.
적정주가는 얼마인가
수학에는 해답을 구하는 공식이 있다. 공식에 따라 문제를 정확하게 풀면 답이 나오게 마련이다. 그러나 적정주가를 산출하는 데는 이런 공식이 따로 없다. 증권사나 주식전문가들마다 특정 기업의 적정주가를 놓고 서로 다른 얘기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 국내에서 가장 많이 이용되는 적정주가 계산법은 주당 순이익(EPS)에 기업의 평균 주가수익비율(PER·현재의 주가를 주당 순이익으로 나눈 것)을 곱하는 방식. 상당수 주식전문가들이 삼성전자의 적정주가를 40만원대로 보는 것도 삼성전자의 2000년 주당순이익을 2만2700원으로 예상하고 여기에 우리 증시의 평균 주가수익비율인 20배를 곱한 결과다.
그런데 코스닥 등록기업들의 적정주가를 뽑아내는 데는 이처럼 객관적인 합의가 없다. 거래소 시장에서 곧잘 활용하는 위와 같은 계산법 역시 코스닥 시장에서는 무용지물이다. 현재의 주가수준이 너무 높아 이 방법을 쓸 경우 터무니없는 가격이 산출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코스닥 주가에 거품이 너무 많이 포함돼 있어 적정주가를 계산하는 것조차 의미가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반면 일각에서는 주가란 어차피 기업의 미래 수익가치를 반영하는 것인만큼 지금의 주가수준은 결코 고평가된 것이 아니라고 반박한다. 지금의 잣대로 코스닥 등록기업의 주가를 평가하는 것은 무리기 때문에 시장에 맡겨야 하지 않겠느냐는 얘기다. 그들은 여기에 한술 더 떠 코스닥의 주가수준은 나스닥의 절반 수준밖에 안 된다는 점을 들어 코스닥 주가는 앞으로 더욱 상승할 것으로 전망한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주장에는 모두 허점이 있다. 먼저 거품론자들의 주장은 이미 상당 부분 빗나갔다. 그들은 99년 4월 이후 코스닥 지수가 100을 넘어서자 곧바로 거품론을 들고 나왔다. 150을 거쳐 200을 넘을 때도 같은 주장을 되풀이하며 투자자들에게 보유 주식을 빨리 팔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이후 코스닥 시장은 끄떡없이 고속성장을 거듭했다. 한때 조정을 받는가 싶더니 다시 속도를 내고 있다. 외형적인 부분만 놓고 볼 때 그들의 주장은 전혀 들어맞지 않았다. 당시 거품론자들의 말을 믿고 코스닥 주식을 팔아치운 투자자들은 지금쯤 땅을 치며 그들을 원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지금의 주가수준이 적정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얘기도 수긍하기 어렵다. 우선 코스닥 등록 기업들의 주가는 일정 부분 누군가가 관리한 흔적이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주가가 높게 매겨진 자취가 여기저기서 관측되기 때문이다.
코스닥에 등록하는 기업들이 처음 거래를 시작하는 주가만 봐도 그렇다. 요즘 웬만한 코스닥 기업들은 주식을 보통 주당 3만∼5만원선에 내놓는다. 심지어 일부 기업은 첫 거래가를 10만원 이상으로 매겨 등록하기도 한다. 거래소 시장에서도 주당 10만원이 넘는 주식이 얼마 되지 않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일부 기업들은 적정한 주가를 산정하는 과정에 증권사측에 적정주가를 높게 매기라고 압력을 행사하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나스닥과 코스닥을 직접 비교하는 것도 아직은 무리라는 지적이다. 나스닥의 경우 역사가 코스닥보다 훨씬 긴데다 등록절차가 까다로워 말 그대로 우량기업들이 수두룩하지만, 코스닥은 아직 이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 더욱이 코스닥 등록 기업 가운데는 제대로 검증되지 않았거나 실적이 뚜렷하지 않은 기업도 많아 곳곳에 함정이 도사리고 있는 형국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99년 12월 이후 코스닥 시장에서 ‘묻지마 투자’가 거의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업종을 불문하고 주가가 무차별 상승하던 현상을 이제는 찾아보기 힘들다.
정보통신, 반도체 관련업체는 큰 폭의 상승세를 이어가는 반면 일부 전망이 불투명한 종목은 하락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새롬기술, 한글과 컴퓨터 등으로 대표되는 인터넷 관련기업과 한국정보통신, 휴맥스 등 정보통신 관련업체들의 주가가 크게 뛰는 반면 건설과 금융 관련종목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여기에도 투자자들의 고민이 있다. 현실적으로 투자할 업체의 ‘내용’을 파악하기가 무척 어렵다는 점이다. 특히 코스닥 등록기업의 특성상 벤처기업이 많다 보니 생소한 업체가 너무 많다. 무슨 일을 하는 회사이며 경영인은 누구인지, 기술력이나 자금력은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요즘 새로 등록하는 업체들이 워낙 많아 어디가 어디인지 구별하기조차 어렵다. 12월 한 달 동안에만 무려 30여개 기업이 코스닥 등록을 위한 청약을 마치고 대기중이다.
코스닥에 투자할 때 대상 기업에서 옥석을 가리는 지혜가 절실하게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투자환경이 급속하게 변하는 만큼 여기에 맞는 투자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얘기다. 인터넷이나 정보통신 관련업체라고 해서 다 옥은 아니다. 기업의 내용을 제대로 파악한 다음에 투자에 나서는 마음가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때는 회사 이름에 ‘텔’ ‘테크’ ‘콤’ 같은 글자만 붙으면 무조건 주가가 올랐고, 지금도 그런 경향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는 기업들의 차별화가 선명해질 것이다.
물론 인터넷과 정보통신 분야의 전망이 밝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하지만 업종 자체의 전망이 좋다고 해당 업종 모든 기업의 주가가 오르지는 않는다. 그 가운데서도 경쟁력이 뛰어나고 성장성이 돋보이는 업체만 주가가 오를 것이 확실하다.
따라서 투자에 앞서 자신의 투자원칙을 세우고 이를 철저하게 실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업의 실적을 꼼꼼하게 챙겨보는 것은 기본이다. 코스닥도 이젠 실적이다. 외형보다는 기업의 내용을 보고 투자해야 한다.
이 가운데서도 영업이익과 순익 증가율 등은 중요한 척도가 된다. 공장이 원활하게 돌아가는데다 생산성도 크게 나아졌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단 순이익은 규모보다 질을 따져봐야 한다. 예컨대 순익증가율이 500%라면 엄청난 실적을 올린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별 것 아닌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전년도 순이익이 2억원이었다가 올해 들어 10억원으로 늘었으면 이게 바로 ‘순이익 500% 증가’다. 하지만 이는 내용상으로 큰 의미가 없다. 특히 한 해 매출액이 수백억원이 넘는 기업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순이익의 증가는 그 기업이 장사를 잘했다기보다 저금리와 환율안정에 따른 금융비용 절감에서 비롯된 경우도 많다. 이익 규모와 자본금을 연결시켜 보는 일도 필요하다. 아무리 이익을 많이 낸 회사도 자본금이 많으면 그만큼 주당 순이익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하한선 정하고 투자해야
또한 이익 중에서 정상적인 영업이익 보다 부동산이나 유가증권 매각 등으로 인한 특별이익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회사는 요주의 대상이다. 아울러 수익 규모는 최근 몇 년간의 실적을 함께 체크해봐야 한다. 지난해엔 수익이 좋았더라도 매년 수익의 등락이 심한 기업은 적절한 투자대상으로 보기 어렵다.
실적 중심으로 투자하면 주식을 산 뒤에 설사 주가가 떨어지더라도 나중에 얼마든지 회복될 수 있다. 주가란 근본적으로 기업의 가치를 반영하니만큼 언젠가는 예전 가격을 되찾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실적이 변변치 않은 기업의 주가는 한 번 떨어지면 상당 기간 침체기를 겪을 가능성이 높다.
코스닥에 투자할 때는 상한선은 몰라도 하한선은 반드시 정해놓는 것이 안전하다. 가령 10%, 또는 20%를 하한선으로 잡은 다음 주가가 이 정도 수준까지 밀리면 더 미련 갖지 말고 팔아야 한다는 얘기다. 코스닥 시장에서는 주가가 한 번 떨어지면 예상보다 훨씬 큰 폭으로 추가 하락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런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얼핏 보면 이런 방법은 비합리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주가란 떨어지다가도 오르기 마련인데 왜 손해 보고 파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일견 맞는 말이다. 하지만 주식 투자를 장기 레이스로 본다면 맞지 않는 말이다. 피해를 최소화한 다음 전망 좋은 종목으로 재빨리 바꿔 타는 게 효율적이라는 것이 그동안 수많은 주식투자 전문가들이 도출해낸 결론이다.
다만 상한선을 정하는 문제는 좀더 신중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거래소 시장에 투자할 때는 상한선을 정해놓는 것이 필요하지만 코스닥 시장에서는 지금까지의 예를 보면 잘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바람을 타면 며칠씩 상한가를 치는 등 상승폭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보유하고 있는 주식의 주가가 상승할 때 매도 타이밍은 언제로 잡아야 할까. 일단 거래량이 줄면서 주가의 대세상승이 꺾이는 순간을 파는 시점으로 잡으면 무난하다. 잘 나가다가 주가가 한번 주춤하면 매도물량이 쏟아질 가능성이 있는데다 거래량이 준다는 것은 매수 희망자가 줄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개인이 역량 발휘하는 시장
현재 시점에 코스닥 시장이 아주 매력적인 것만은 분명하다. 정부가 코스닥 시장을 키우려고 마음을 다져먹은 이상 코스닥의 앞길은 탄탄대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증시 격언에 ‘정부에 맞서지 말라’는 말이 있다. 정부가 펴는 정책만 잘 좇아가도 투자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얘기다.
더욱이 코스닥 시장은 개인투자자들이 자신들의 기량을 마음껏 펼 수 있는 공간이다. 적어도 기관투자가나 외국인들의 입김에 휘둘릴 가능성은 적다는 의미다. 따지고 보면 거래소 시장에서 개인들이 설 자리는 그리 넓지 않다. 자금력이 떨어지는데다 정보력 면에서도 현저한 차이를 보이는 까닭이다. 그러니 이들에 비해 수익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99년 한 해 거래소 시장에 투자한 개인투자자들 가운데 겨우 30% 정도만 수익다운 수익을 챙겼고 나머지는 현상유지를 하거나 손해를 봤다는 게 각종 통계를 통해 밝혀졌다. 개인들이 기관 및 외국인들과의 투자게임에서 밀렸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에 관한 한 개인투자자들은 앞으로도 어쩔 도리가 없다.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기관이나 외국인을 능가할 수는 없고, 투자정보를 얻으려고 발버둥 쳐봤자 그들의 방대한 정보 수집력을 당할 수는 없다. 그래서 늘 그들의 뒤를 쫓아가며 투자를 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하지만 코스닥 시장은 다르다. 아직 기관과 외국인들의 투자비중이 10%를 넘지 않는다. 99년 이후 기관들이 코스닥 펀드를 만들어 투자에 나섰고 외국인들도 코스닥 투자를 늘리고 있지만,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낮다. 이들은 코스닥 시장이 아직 불안정하다고 판단, 적극적으로 뛰어들기를 꺼리고 있다. 이는 투자비중의 90%를 차지하는 개인투자자들이 시장에 끼치는 영향력이 아주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아직 불안정한 코스닥 시장을 건전한 투자의 장으로 만드는 것은 개인투자자들 몫이다. 정부나 증권업협회, 또는 증권회사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단번에 큰 이익을 내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원칙에 충실한 투자를 할 때 안정된 수익과 거래질서 확립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