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호

“한민족 위대한 고대사 주창하며 ‘사이비 역사’가 싹텄다”

[Interview] 장신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의 ‘환단고기’ 비판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입력2026-03-04 0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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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명 대통령이 공론의 장으로 불러들인 ‘환빠’

    • ‘환단고기’ 인용한 박근혜 전 대통령 광복절 경축사

    • 찬란한 상고사 복원과 식민사학 척결이라는 명분

    • 편찬자 계연수와 유일한 증언자 이유립의 수상한 관계

    • 원본 분실 후 기억으로 되살려, 전형적인 위서

    장신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1930·40년대 조선총독부의 사상전향정책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환단고기’와 관련해 ‘유교청년 이유립과 환단고기’ ‘이유립의 계연수 날조기’ 두 편의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조영철 기자

    장신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1930·40년대 조선총독부의 사상전향정책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환단고기’와 관련해 ‘유교청년 이유립과 환단고기’ ‘이유립의 계연수 날조기’ 두 편의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조영철 기자

    2025년 12월 12일 ‘환단고기(桓檀古記)’가 공론의 장으로 돌아왔다. 세종시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부처 업무보고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박지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에게 “역사 교육 관련해서 무슨 ‘환빠’ 논쟁이 있죠?”라며 돌발 질문을 던졌다. 박 이사장이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라며 웃음으로 넘기려 하자 이 대통령은 “왜 몰라요, 그걸”이라고 응수했다. 이어서 “아는 사람 없어요? 그 단군, 환단고기 주장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을 보고 비하해서 ‘환빠’라고 부르잖아요?” 

    때아닌 ‘환단고기’ 논란에 진서론자들은 환호했다. ‘사상 최초로 환단고기를 언급한 대통령, 역사 광복의 서막인가’(한문화타임즈)라는 제목의 기사가 이 상황을 대변한다. 동북아역사재단 업무보고의 파장이 커지자 김남준 대통령실 대변인은 “이 주장에 동의하거나 이에 관한 연구·검토를 지시한 것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친일 협력자들의 주장이나 위안부 강제성을 부정하는 주장, 독도 영유권 주장 등도 어느 문헌에, 누가 주장하는지 묻지 않을 없다”며 묘한 여운을 남겼다. 

    그러자 2016년 이 대통령이 성남시장 시절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소장의 무죄판결을 축하하며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린 “우리 사회 곳곳에 침투한 친일 세력들, 언젠가 반드시 뿌리를 뽑아야지요”라는 글이 소환됐다. 이 소장은 2014년 출간한 ‘우리 안의 식민사관’에서 고려대 김현구 명예교수를 임나일본부설을 추종하는 친일식민사학자로 매도해 명예훼손으로 기소됐다. 1심 유죄가 항소심에서 무죄로 바뀌자 이 시장이 직접 축하 메시지를 올린 것. 일부에서는 이 대통령의 진짜 의중은 ‘환빠’가 아니라 친일 세력 척결에 있다고 해석했다. ‘환단고기’와 친일 세력 척결은 무슨 관계가 있을까. 

    ‘더 크고 힘센’ 국수주의적 욕망이 낳은 가짜 역사

    장신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한국사)는 ‘1930~40년대 조선총독부의 사상전향정책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한국 근대 민족주의사학의 유통-박은식과 신채호를 중심으로’ 등의 논문을 발표해 온 근대사 전공자다. ‘환단고기’ 위서론을 비롯해 유사역사학 논쟁은 주로 고대사와 중세사 연구자들에 의해 ‘문헌 비판’ 중심으로 진행됐으나 근대사 전공자인 장 교수가 전면에 나선 것은 딱 두 번이다.

    2018년 학술지 ‘역사문제연구’의 기획특집 ‘유사역사학의 계보와 위서’에 발표한 ‘유교청년 이유립과 환단고기’라는 논문과, 2020년 ‘역사와현실’에 발표한 ‘이유립의 계연수 날조기’라는 논문을 통해서다. 두 논문은 ‘환단고기’ 내용을 검증한 것이 아니라 편찬자인 계연수와 전승자 또는 계승자로 알려진 이유립의 행적을 통해 ‘환단고기’ 진위 논쟁에 뛰어들었다는 점에서 눈에 띈다. ‘신동아’는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촉발한 ‘환단고기’ 논쟁과 향후 전개 방향에 대해 듣고자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장 교수를 찾았다. 



    ‘환단고기’는 환인, 환웅, 단군 시대부터 고려 말까지를 다룬 책으로 1979년 이유립이 세상에 공개하면서 알려졌다. 이유립에 따르면 1911년 그의 스승 계연수가 환인과 환웅의 역사를 기록한 ‘삼성기’, 단군 조선의 역사를 기록한 ‘단군세기’, 고구려의 전신 북부여의 역사를 기록한 ‘북부여기’, 상고시대부터 고려까지 담은 ‘태백일사’ 4종의 사서를 묶어 ‘환단고기’라는 제목으로 30부를 간행했다. 이 책은 한문 필사 영인본이었다. 

    장 교수의 인터뷰를 종합하면, 주류 역사학계는 ‘환단고기’가 1979년 공개되기 전까지 십수 년에 걸쳐 위조된 내용이며 가짜 저자들을 앞세워 세상을 속이려 한 명백한 위서(僞書)라고 본다. 사료로서 연구할 가치가 없다고 판명됐기에 이후 진위 논쟁도 불필요하다고 봤다. ‘환단고기’는 ‘더 크고 힘센’ 고대국가를 상상하는 국수주의적 욕망이 낳은 가짜 역사이며, 추종자들은 ‘민족주의에 경도된’ 아마추어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이 책이 전하는 찬란한 우리 역사는 서서히 대중 속으로 스며들었다. 아사달에 도읍해 조선을 세운 1세 단군 왕검으로부터 47세 단군 고열가까지 2096년간 이어진 단군의 계보는 단군이 더는 신화가 아니라는 증거처럼 보였다. 2002년 이전까지만 해도 ‘치우’라는 이름을 아는 이가 거의 없었지만 월드컵 축구대회 이후 ‘붉은 악마’의 상징이 한족 황제와 맞섰던 동이족이며 배달국 제14대 치우 천왕이라고 믿는 이들이 늘어났다. 한민족의 시원을 찾아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 답사 붐이 인 것도 환단고기 열풍과 무관하지 않았다. 상고사 학습 열기는 상고사 되찾기 운동으로 이어졌다. 

    이유립 빼고 아무도 본 적 없는 ‘환단고기’ 원본

    ‘환단고기’에 실린 4종은 각각의 저자가 있고 저술 시기도 다르다. 상·하 편으로 된 ‘삼성기’의 저자는 안함로와 원동중(신라), ‘단군세기’는 이함(고려), ‘북부여기’는 범장(고려), ‘태백일사’는 이맥(조선)이다. 책마다 저자, 전달자, 감수자가 각각이고 발견된 장소도 다르다. 계연수는 ‘환단고기’를 편찬하면서 해학 이기(구한말 실학자)의 감수를 거쳤고, 홍범도와 오동진 두 벗이 돈을 내어 인쇄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범례 마지막에 ‘신시개천 5808년, 즉 광무 15년 신해 5월 광개절에 계연수가 묘향산 단굴암에서 쓰다’라고 기록했다.   

    계연수는 1920년 세상을 떠나기 전 이유립에게 이 책 한 부를 주며 60갑자(60년)가 지난 다음 경신년(1980)에 세상에 공개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1970년대 초 원본(1911년 간행본)을 분실한 이유립은 그동안 공부하면서 외운 내용을 되살려 ‘환단고기’를 다시 썼다고 한다. 1979년 광오이해사라는 출판사에서 간행된 100부가 바로 이유립이 기억으로 쓴 ‘환단고기’였다. 

    문제는 이유립을 빼고는 아무도 계연수가 편찬한 ‘환단고기’ 원본을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장 교수는 이 부분에 주목했다. 1911년 ‘환단고기’를 편찬하고, 단학회 2대 대종사로서 만주에서 독립운동에 참여했다가 1920년 일본 밀정에 의해 살해당했다는 계연수의 생애조차 이유립의 증언으로만 알려진 것이다. 계연수와 이유립의 행적을 추적하는 연구를 해온 장 교수의 결론은 “이유립이 계연수를 ‘환단고기의 편찬자’로 날조했다”는 것이다. 서지 정보(문서의 제목, 저자, 발행처, 발행 연도, 전래 사실 등을 기술한 것)가 조작됐다는 것은 위서를 판가름하는 데 중요한 단서다. 장 교수는 최근 다시 이유립과 계연수의 생애를 추적하고 있다. 1907년생 평북 삭주군 출신 이유립은 왜 1948년 월남한 뒤 ‘환단고기’를 만들었을까. 왜 1920년에 사망한 계연수라는 인물을 ‘환단고기’ 편찬자로 내세웠을까. 장 교수의 논문 ‘이유립의 계연수 날조기’에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 보자.

    “‘환단고기’를 조작하고 ‘계연수’를 날조하다”

    계연수는 단군교 경전인 ‘천부경’의 발견자로 알려졌다. 1916년 계연수가 평안북도 영변군 백산(묘향산)에서 약초를 캐다가 석벽에 새겨진 글자를 발견했는데 이것이 신라의 최치원이 쓴 ‘천부경’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1965년대  이유립이 발행한 태백교 기관지 ‘커발한’에는 계연수가 이태집과 함께 ‘천부경’을 발견했다는 내용이 추가됐다. 이태집은 이유립의 부친 이관집의 아우다. 이후 계연수는 해학 이기를 계승한 단학회 지도자이자 독립운동가로 묘사됐다. 독립운동가인 홍범도와 오동진이 ‘환단고기’ 간행을 지원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1960년대는 전국 각지에서 신종교가 탄생하던 시기였다. 대종교 천안 지부의 간부였던 이유립은 1960년대 초 대종교를 나와 태백교를 개창하면서 새로운 교리와 역사를 만들 필요를 느꼈을 것이다. 장 교수는 “이를 위해 이유립이 자신의 선조인 고성 이씨(이암, 이맥, 이기)를 씨줄로 삼고, 고향인 삭주 인근 출신들과 대종교 관련 독립운동가들을 날줄로 삼아 단학회 역사를 조작했다”고 말한다. 이어 기존 대종교 문헌과 차별되는 단군사서로서 ‘환단고기’를 만들고, 그 전승자로 ‘천부경’ 발견자인 계연수를 이용했다. 이유립은 철저한 유학자이자 복벽주의자인 부친 이관립이 태백교가 지향하는 바와 맞지 않자 대신 계연수를 선택했고, 부친의 1920년대 이전 활동 내용을 가져다 계연수의 생애를 재구성했다. 이것이 장신 교수가 2020년 논문에서 밝힌, 이유립이 ‘환단고기’를 조작하고 ‘계연수’를 날조한 경위다. 십수 년간 공들여 ‘환단고기’를 조작한 이유립이야말로 원조 ‘환빠’였던 것.   

    그러나 1979년 이유립이 기억으로 다시 썼다는 ‘환단고기’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중 한 부가 일본인 가지마 노보루에게 전해져 1982년 일본어 번역본이 먼저 나온 뒤 상황이 바뀌었다. 4년 뒤 1986년 임승국의 한글 번역본 ‘한단고기’(임승국은 桓을 ‘한’으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가 출간되면서 비로소 일반인에게도 ‘환단고기’의 존재가 알려졌다. 이 책이 일으킨 파문은 컸다. 

    우리 역사를 5000년 가까이 끌어올렸을 뿐 아니라 과거 우리 민족의 활동 무대가 한반도의 좁은 땅덩어리가 아니라 시베리아 벌판에서 양쯔강에 이르는 광대한 대륙이었음을 증언하는 문헌의 등장에 많은 이들이 충격을 받았고, 이 책은 상고사 열풍의 기폭제가 됐다. 임승국의 ‘한단고기’는 1986년 교보문고 집계 베스트셀러 17위에 오를 만큼 큰 인기를 끌며 2011년까지 65쇄를 찍었다. 

    조선사편수회의 한국사 말살과 단군신화설 

    ‘환단고기’의 내용이 진실이라면 이토록 위대한 우리 민족의 역사는 왜 그동안 가려져 있었을까. 진서론자들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조선사편수회를 통해 한국사를 왜곡 말살했고, 광복 후에는 조선사편수회 출신들이 한국 역사학계를 장악해 일제의 식민사관을 답습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이런 주장은 새롭지 않다. 

    일부 재야 사학자들이 1975년 ‘우리국사찾기협의회’를 결성하고 국사 교과서 개정 운동을 벌였다. 이 협의회의 설립 취지문을 보면 단군조선은 실재의 상고시대이고, 단군조선 이래 반만년의 역사강역은 한반도뿐만 아니라 연해주, 흑룡강, 바이칼호, 중원대륙을 아우르는 대강역이었음을 밝히겠다고 했다. 국사 교과서는 반도 국축(跼縮)사관을 탈피해 대륙사관에 입각해 개정돼야 하며, 특히 단군신화설과 한반도 내 한사군설의 개정이 시급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오늘날 재야 사학계가 주장하는 식민사학 극복의 핵심 내용이 이미 이 시기에 정립됐음을 알 수 있다. 

    국사찾기협의회를 주도한 것은 대한민국 초대 문교부 장관을 지낸 안호상이었고, ‘환단고기’ 전승자인 이유립과 번역자인 임승국도 부회장으로 참여했다. 협의회는 전두환 정권하에서 1981년 ‘국사교과서 내용 시정 요구에 관한 청원’을 제출하고 국회에서 공청회를 열 정도로 영향력을 키웠다. 학계에서는 이를 1차 고대사 파동이라고 한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2013년 박근혜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고려말 대학자 이암 선생의 말씀을 인용하며 “나라는 인간에 있어 몸과 같고, 역사는 혼과 같다”고 한 대목이 논란이 됐다. 이암은 ‘환단고기’에 실린 ‘단군세기’ 저자로 알려져 있다. 박 전 대통령이 인용한 부분은 ‘단군세기’의 서문에 “나라는 형(形)과 같고 역사는 혼(魂)과 같으니 형을 잃고 혼이 보전될 수 있겠는가”라는 구절이었다. 학계에서는 대통령이 축사에서 위서를 인용한 것도 문제인데 출처도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이 말은 1915년 박은식의 ‘한국통사’에 나오는 “대개 나라는 형(形)이고 역사는 신(神)이다. 지금 한국의 형은 허물어졌으나 신만이 홀로 존재할 수 없는 것인가”를 본뜬 것이라고 했다. 

    사이비 역사학과 식민사학 프레임

    2014년 일제의 식민사관을 답습한다며 동북아역사재단을 비판해 온 이들이 모여 ‘식민사학 해체 범국민운동본부’를 만들었다. 이 모임을 주축으로 2016년 100여 개 단체가 동참해 ‘미래로 가는 바른 역사 협의회’가 결성됐다. 이 모임의 이론적 기반은 ‘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 ‘우리 안의 식민사관’ 등을 쓴 이덕일 한가람문화연구소장이 담당했다. 

    학계에서는 2010년대 중반 박근혜 정부가 역사 교과서 국정 전환을 강행한 것과, 식민주의 역사학의 청산을 요구하는 세력이 독도 누락(실제로는 확대하면 보임)을 이유로 동북아역사재단의 역사지도 편찬 사업을 중단시킨 것을 제2의 고대사 파동으로 본다. 

    두 차례 파동을 겪으며 주류 역사학계도 반격에 나섰다. 이문영 작가의 ‘만들어진 한국사’(2010)를 시작으로 ‘젊은역사학자모임’이 펴낸 ‘한국고대사와 사이비역사학’(2017), ‘욕망 너머의 한국 고대사’(2018) 등의 저술 작업이 그 결과다. 지난 연말 이 대통령이 ‘환단고기’를 언급하자 역사·고고학계 48개 학회는 지체 없이 공동성명서를 냈다. 일부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역사학계와 고고학계는 대선 기간 이래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하는 ‘사이비 역사’의 위험성에 대해 여러 차례 의견을 표명했다. ‘사이비 역사’의 뿌리는 일본 제국주의의 대아시아주의(대동아공영권)와 맞닿아 있다. 해방 이후 친일파 인사들이 일제의 대아시아주의를 모방해 ‘한민족의 위대한 고대사’를 주창하며 ‘사이비 역사’가 싹텄다. 이들은 이승만 독재를 정당화하는 데 앞장섰고, 박정희 정권의 유신독재와 전두환 정권의 군사독재를 옹호하는 국수주의적 이념을 제공했다.”

    장신 교수는 “자국의 역사에 대해 긍지를 갖고, 그것을 자랑하며, 그 얼을 되새기고자 하는 것이, 또 이를 통해 민족정기를 부추기고자 하는 것은 하등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임승국의 ‘환단고기’ 해제 중)라는 주장은 시대착오적”이라고 말한다. 

     “상고사 열풍 뒤에는 1970년대 ‘단군 찾기’, 1980년대 ‘국사 찾기’, 1990년대 노동운동, 다물운동이 있습니다. 광대했던 우리 고대사가 축소된 것을 비판하면서 현실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하는 것이죠. 역사적으로 우리 땅이니까 당연히 찾아야 한다는 것은 1930년대 일본의 대동아공영권 논리와 같습니다. 식민사학 철폐를 주장하면서 식민사학의 논리를 답습하는 셈이죠. 한국의 50~60대가 왜 여전히 이러한 세계관에 집착하는지는 역사학이 아니라 사회학적 연구가 필요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장 교수는 역사학자에게 ‘환단고기’는 좋은 교보재라고 했다. 

    “사학개론 같은 역사 수업에서 제일 중요한 게 사료란 무엇인가, 사료를 어떻게 다룰까와 같은 사료 비판입니다. 그동안 외국 사례 중심으로 다뤘는데 ‘환단고기’라는 좋은 사료 비판 자료를 만난 것이죠. 과거 ‘환단고기’ 관련 논문을 보면 이러이러해서 위서라고만 했지, 왜 위서를 만드는지 그 의도나 배경을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이유립의 의도를 알려면 그가 살아온 시대와 행적을 추적해야 합니다. 그것은 근현대사 연구자의 몫이죠. ‘환단고기’ 같은 위서에 호응하는 시대 배경 연구도 필요합니다. 정작 요즘 사학과 학생들은 ‘환단고기’의 내용에 대해선 아무런 관심도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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