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호

책무구조도 최초 도입 신한은행, 내부통제 의구심 제기

[금융 인사이드] 내부통제 무풍지대였던 신한은행이…

  • 손희정 이투데이 기자 sonhj1220@etoday.co.kr

    입력2025-04-15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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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부통제 모범생’ 신한은행, 올해 금융사고 소식 잇따라

    • 직원 17억 원 횡령 사고, 3년 지나서야 찾아내

    • 금융권 최초로 책무구조도 도입했으나 허점 우려

    • 금감원, 4월 28일 정기검사 돌입…정밀 점검 무게

    서울 중구 신한은행 본점. 뉴스1

    서울 중구 신한은행 본점. 뉴스1

     ‘내부통제 모범생’으로 불리던 신한은행에 올해 금융사고 소식이 잇따르면서 ‘금융사고 무풍지대’라는 명성이 무색해졌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업계에서는 상반기 예정된 금융감독원(금감원) 정기검사에서 통제 시스템 전반에 대한 정밀 점검이 이뤄질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내부통제 우수 사례로 평가받던 신한금융그룹은 지난해 하반기 사고 대응 역량을 둘러싸고 시험대에 올랐다. 신한투자증권에서 1300억 원대의 금융 손실 사고가 터진 데 이어 신한은행에서도 13억4000만 원 규모의 업무상 배임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2년 6개월간 횡령 후 퇴사한 직원 못 잡아

    주요 은행 가운데 사고 건수가 적은 편이던 신한은행 역시 올해 금융사고 소식이 반복되면서 내부통제 시스템이 적신호가 켜졌다. 신한은행은 2월 7일 19억9800만 원에 달하는 금융사고를 공시했다. 외부인에 의한 사기 혐의로 세종 지역에서 발생한 대규모 전세 사기 사건과 연관된 것으로 알려졌다. 피의자가 세입자 명의를 도용해 지역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가로챈 것으로 전해진다. 

    이외에도 신한은행은 2021년 12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한 직원이 총 17억720만 원 상당을 횡령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3월 7일 공시했다. 상시 감시 모니터링을 통해 발견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최초 사고 발생 시점으로부터 2년여 시간이 흐른 뒤에야 찾아내 내부통제의 한계를 드러낸 사례로 지적된다. 

    신한은행에 따르면 서울 압구정지점에 근무하던 유모 씨는 수출기업을 대상으로 무신용장 거래를 담당했다. 그는 문서를 조작해 가상의 거래를 만든 뒤 거래에 필요한 어음 매입을 요청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챙겼다. 이 같은 행위는 2년 6개월에 걸쳐 반복됐지만 지점과 본점 모두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 씨는 올해 초 회사에 퇴사를 통보하고 잠적한 상태다. 신한은행이 해당 직원을 고발하면서 경찰이 추적에 나섰다.



    2년 이상 지속된 횡령 사고를 뒤늦게 탐지한 점이 사안의 심각성을 키웠다. 내부 감시체계 점검의 필요성을 부각하는 대목이다. 사고 발생 이전부터 사전 경고나 자동 탐지 체계가 작동하지 않았다는 의미기 때문이다. 

    이후로도 신한은행 지점에 대한 압수수색 소식이 알려지면서 내부통제 능력에 대한 의문을 더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3부(부장검사 이승학)는 3월 25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신한은행 지점에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했다. 검찰은 해당 지점에서 근무했던 차장급 직원 A씨를 구속하고, 사문서를 위조해 사업가 B씨의 대출을 도운 의혹(부당대출)을 수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이 관련 정황을 포착했고, 검찰이 이를 넘겨받아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상혁 행장은 2023년 2월 취임 이래 업계에서 성과를 인정받아왔다. 그는 조직 안정성과 경영 성과 측면에서 두루 높게 평가받았다. 신한은행은 최근 2년간 수익성과 자산건전성 등 주요 지표에서 고른 실적을 거뒀고, 지난해 말 6년 만에 리딩뱅크 지위를 탈환하기도 했다. 신한은행과 업계 1위 자리를 경쟁하던 KB국민은행은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사태 등으로 고배를 마셨다.

    “빈틈없는 내부통제가 지속 가능 성장 핵심 요소”

    내부통제 능력은 신한은행의 최대 강점으로 꼽혔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금융권 최초로 ‘책무구조도’를 도입했다. 책무구조도는 금융업계의 내부통제를 강화하기 위한 제도로, 금융사 임원 등의 책임 범위를 정해 놓고 내부통제 및 위험관리에 대한 역할이 미진할 때 제재하는 방식이다.  

    내부통제 성과 역시 뛰어났다. 지난해 3분기 기준 신한은행은 4건의 금융사고만 발생해 5대 은행 가운데 가장 적었다. 특히 KB국민·하나·우리·NH농협은행이 대규모 금융사고 이후 수장을 교체하면서 관련 성과가 다시금 부각 됐다. 금융권은 내부통제 부문에서 거둔 성과를 정 행장 연임의 주요 요인으로 꼽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신한은행이 타 은행 대비 내부통제가 강하다는 평가를 받아온 만큼 이번 사고가 주는 상징성과 파급력은 단순 사고 이상의 의미가 있다”라고 말했다.

    정 행장은 역시 올해 리스크 관리와 내부통제 강화를 강조했다. 그는 1월 2일 신년사에서 “최근 금융권에서 각종 사고가 빈번히 발생하며 내부통제의 중요성은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다”며 “빈틈없는 내부통제가 지속 가능 성장을 위한 핵심 요소인 만큼 올해를 내부통제 체계의 완성도를 높이는 한 해로 삼고자 한다”고 밝혔다. 지난해에 이어 내부통제를 주요 과제로 삼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금융사고가 연이어 발생하면서 앞선 평가도 무색해지고 있다. 특히 2년 6개월간 이어진 직원의 횡령을 잡지 못하면서 그간의 내부통제 능력에 대해서도 의구심이 제기됐다. 해당 사고를 사전에 탐지하지 못한 만큼 통제 시스템이 명목상에 그친 것 아니냐는 우려다.

    물론 금융사고는 신한은행만의 문제가 아니다. 금감원이 2월 4일 발표한 ‘2024년 금융지주·은행 주요 검사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국민·NH농협은행에서 482건의 부당 대출이 발생했고, 전체 금액 역시 3875억 원에 달했다.

    직원의 횡령 문제 역시 타 은행에서도 발생했다. IBK기업은행은 최근 882억 원 규모의 부당 대출이 적발됐다. 총 58건에 이르는 이 사건은 전현직 임직원과 그 배우자, 친인척, 입행 동기와 사적 모임, 거래처 등이 조직적으로 공모하며 벌어졌다. 사적 친분 관계를 활용해 심사를 무력화한 혐의 역시 발견됐다. 이 과정에서 관련자들이 금품과 골프 접대 등을 받은 정황도 드러났다. 금감원은 2월 말 기준 부당 대출 잔액은 535억 원에 달하며, 이 가운데 17.8%인 95억 원이 부실화됐다. 향후 부실이 증가할 가능성 역시 상당하다.

    대규모 금융사고는 제도와 현실 사이의 간극을 보여준다. 내부통제 장치를 마련해도 금융사고는 터지기 마련이다. 지난해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우리·하나은행)이 준법감시인 지원 인력을 116명 늘렸지만 금융사고는 여전했다. 준법감시인은 내부통제 기준을 수립하고, 은행권에서 이를 준수하는지 점검하는 등 금융사고 예방을 위한 업무를 총괄한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융사고는 제도 자체가 없어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관련 제도에 피해 갈 수 있는 허점이 있어 반복되는 측면이 있다”라고 진단했다. 그는 “책무구조도 같은 통제 장치가 도입돼도 내부에서 정보를 은폐하거나 위계 등으로 감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사고를 완전히 막기 어렵다”라고 지적했다.

    이사회 역시 관리 및 감독 책임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않다. KB금융지주와 신한지주, 하나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 등 4대 금융지주가 공개한 ‘2024년 지배구조 및 보수체계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4대 은행 사외이사들의 이사회 안건 찬성률은 100%였다. 4대 은행 사외이사가 지난해 결의한 안건은 382건인데, 모두 가결된 것이다. 조직 감시 등의 역할이 부여된 사외이사들이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특히 최근 주요 은행에서 금융사고가 반복되면서 관련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사회에 적극적 역할을 주문했다. 성수용 한국금융연구원 교수는 “장기 근무 직원에 대한 인사관리와 자금 집행체계를 강화하고, 이사회에 내부통제 및 위험관리 정책 수립·이행 등에 대한 감독 권한을 부여하는 등 이사회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언제까지 ‘거수기 이사회’라는 오명을 용인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금융사고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김상봉 교수는 “감독 권한을 가진 상위자가 사실상 통제 기능을 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며 “제도적 예방책도 중요하지만, 사고에 대해 강력한 형사처벌이 병행돼야 재발 방지 효과가 생긴다”라고 말했다. 이상복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국 법원이 금융사범에 대해 지나치게 가벼운 형량을 선고하는 경향이 있다”며 “양형 기준을 현실화하고 몰수·추징을 철저히 집행해야 실질적 경고 효과가 생긴다”라고 지적했다. 

    숙명과도 같은 금융사고, 책임 피할 수 없어

    금감원은 내부통제의 실효성 강화를 주문하고 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2월 19일 국내은행 은행장들과의 간담회에서 “조직문화를 과감히 쇄신하고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를 구현할 수 있도록 경영진이 앞장서 달라”고 주문한 바 있다. 당시 금감원은 책무구조도 도입 등 제도개선에도 불구하고 금융사고가 반복되고 있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금감원은 이후 우리금융지주의 경영실태평가 등급을 2등급에서 3등급으로 하향 조정하며 내부통제와 리스크 관리 미흡을 이유로 들기도 했다.

    금감원은 최근 금융사고에 대해 경영진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검사 및 제재의 초점 역시 경영관리 전반으로 확대하는 추세다. 금융사고를 개인의 일탈이 아닌 조직 운영 전반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관련 흐름 가운데 신한은행의 내부통제 전반을 겨냥한 정밀 점검이 예고되면서 조직 안팎의 긴장감도 고조되고 있다.

    신한은행은 올해 금감원의 주요 감시 대상이 될 전망이다. 금감원은 3월 신한금융지주와 신한은행 감사부에 정기검사에 필요한 사전 요청 자료 목록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정기검사는 경영 실태, 리스크 관리, 소비자 보호 등 전반적 운영 실태를 점검하는 절차다. 금감원은 4월 14일부터 사전 검사를 시작했고, 28일부터 정기검사에 돌입할 예정이다. 

    통상적인 검사 절차지만 최근 금융사고가 잇따른 만큼 내부통제 체계 전반에 대한 정밀 점검이 이뤄질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내부통제 시스템이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가 핵심 점검 항목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은행 경영진에게 금융사고는 숙명과도 같지만, 그렇더라도 관리 책임을 피할 수 없다. 특히 내부통제를 핵심 경영 메시지로 내세운 경우라면 기준이 더욱 엄격하게 적용될 수밖에 없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신한은행이 그간 내부통제 모범생으로 꼽혀 왔지만, 이제는 내부통제의 실질적 성과가 요구되는 시점”이라며 “이번 사고를 단순한 관리 실패로 볼 것인지, 시스템 개선의 계기로 삼을 것인지가 향후 조직 운영의 방향을 가를 수 있다”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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