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 작가는 신동아가 12월호를 발간한 직후인 11월22일 인터넷매체 ‘프레시안’에 ‘신동아 의혹 제기에 답한다’는 제목이 붙은 글을 보냈다. 프레시안은 “나의 문학 인생을 뿌리째 흔들려 하는가”라는 문장을 제목으로 뽑았다.
신동아가 황작가의 문학 인생을 뿌리째 흔들 까닭이 없다. 황 작가 문학을 존중한다. ‘삼포 가는 길’(신동아 1973년 9월호를 통해 발표)을 비롯한 황 작가의 주옥같은 단편이 신동아 지면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표절 시비
황 작가가 서술한 북한방문기 ‘사람이 살고 있었네’도 1989년 신동아에 연재됐다. 동아일보 칼럼 ‘횡설수설’은 이 연재와 관련해 “예리한 통찰력과 판단력으로 그려낼 북한 실상이 어떻게 비춰질지 기대를 부풀게 한다”고 썼다.(동아일보 1989년 5월25일자 참조)
황 작가는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에서 “악의적인 접근” “오해와 불신을 조장하는 기사”라고 묘사했으나 신동아는 일부 저작과 관련한 표절시비, 도덕성, 서술 경위를 따졌을 뿐이다.
‘강남몽’과 관련해 신동아는 저작권 침해 피해자다. 조성식 기자와 신동아는 황 작가로부터 송구하다거나 사과한다는 얘기를 아직도 듣지 못했다.
남자 對 남자
프레시안에 실린 황 작가 글을 읽고 두 사람이 격앙했다. 황 작가 이름으로 초판이 출간된 ‘어둠의 자식들’ 저자인 이철용 전 의원과 소준섭 국회도서관 해외자료조사관(국제관계학 박사).
이철용 전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프레시안에 실은 글은 삼류저질 소설이다. 일일이 사실관계에 대해 얘기하고 싶지 않다. 황석영과 직접 만나 당신이 거짓말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사정이 있는지 물은 뒤 뭐가 틀렸는지 세상에 밝히려 했다. 그런데 전화기가 꺼져 있다. 일단은 남자 대 남자로 만나려고 한다. 그 후에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던 이유를 내가 납득할 수 있다면 넘어갈 것이고, 아니면 낱낱이 밝힐 것이다. ‘어둠의 자식들’은 내 삶이다. 누가 대신 써줄 수 있는 게 아니다.”
황 작가는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라던가 ‘어둠의 자식들’ 외에도 나는 수많은 선언문, 현장 대본, 노랫말을 썼으며 당시의 현실 속에서 사회의 요구가 있을 때마다 불이익과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내 이름과 몸을 팔았을지언정 그것을 사유화한 적이 없고, 그렇다고 해서 후회해본 적도 없다.”
인천 구월동 골방
신동아는 1982년 발행된 ‘광주백서’를 들고 소준섭 박사를 찾았다. 그는 ‘연평도 도발 이후 중국’을 주제로 글을 쓰고 있었다. 한 언론이 기고를 부탁했다고 한다. 전민련 부대변인을 지낸 그는 중국 푸단(復旦)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보관하고 있는 ‘광주백서’를 그에게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