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로서, 아내로서, 딸로서 달리기로 하나 된 도시축제

[마라톤 완주기] 단순한 마라톤대회를 뛰어넘은 나고야여성마라톤

  • 나고야=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입력2025-04-12 09:00:02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산업도시 나고야에서 열리는 여성마라톤

    • 빌딩 숲 사이 아스팔트와 시멘트 바닥 달리는 코스

    • 도시 전체에 울려 퍼진 시민들의 “간바레” “화이토”

    • 운영 방식과 ‘여성’ 러너 위한 마케팅 능력 돋보여

    • 국적 달라도 완주 향해 달리는 마음은 모두 같아

    3월 9일 오전 일본 나고야시 반데라 돔 앞에 나고야여성마라톤에 참가한 사람들이 각자 몸을 풀며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나고야=허문명 기자

    3월 9일 오전 일본 나고야시 반데라 돔 앞에 나고야여성마라톤에 참가한 사람들이 각자 몸을 풀며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나고야=허문명 기자

    일본 나고야시에서 여자들만 뛰는 마라톤대회가 열린다는 걸 안 건 지난해 9월 참가한 독일 베를린마라톤에서였다. 생애 처음으로 풀코스를 완주하고 자신감이 충천해 있던 나는 풀코스 마라톤 두 번째 도전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여자’라는 말에 꽂혔다.

    우리나라에도 서울시와 여성신문사가 주최하는 여성마라톤대회가 있고, 유방암 환우들을 돕기 위한 ‘핑크 런’이 있다. 지난해 5월 열린 서울 여성마라톤대회 때에는 10km 코스를 신청해 달리기도 했었다. 하지만 해외에서 열리는 여성마라톤대회는 어떨까. 국적이 달라도 오로지 마라톤 하나만으로 뭔가 자매애 같은 연대감이 생길 것 같았다.


    완주의 기쁨으로 채워질 나고야 반데라 돔

    대회가 가까워질수록 불안감이 피어올랐다. 겨울 내내 움츠려 있느라 연습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지구상에서 가장 먼 거리가 침대에서 현관까지라고 했던가. 잠들기 전에는 독하게 마음을 먹고 내일은 뛰어야지 했다가도 아침에 일어나면 갖은 구실을 대며 나가질 못했다. 어떤 날은 7~8㎞를 뛰는 데 성공하긴 했지만 한번 게을러진 몸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봄기운이 느껴진 어느 날, 친구와 함께 한강변을 뛰었다. 천천히 무리하지 않고 총 20㎞를 뛰고 ‘나고야여성마라톤 7시간 제한 시간 안에는 들어올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나고야시는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 도요타 본사가 있는 곳이다. 나고야시 동쪽에는 아예 도요타의 이름을 딴 ‘도요타시(市)’가 있다.

    2년 전 도요타시를 한번 들른 적이 있다. 섬유 방직기계를 만들다가 자동차 회사로 변신한 도요타가 운영하는 산업박물관과 자동차박물관에서 깊은 인상을 받은 기억이 있다. 실 만드는 방직 회사가 어떻게 혁신을 거듭해 업종 전환에 성공해 글로벌 톱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단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실을 직접 짜는 옛날 방직기계에서부터 실제로 자동차 공장을 그대로 옮겨와 자동차 조립 공정까지 보여주는 모습에서 과거와 뿌리를 잊지 않고 알리려는 사람들의 노력도 봤다.

    나고야시에는 도요타 본사를 비롯해 자동차산업을 중심으로 한 공작기계업체, 전기·전자업체 같은 부품업체 본사가 즐비하다. 미쓰비시중공업, 가와사키중공업, 후지중공업 등 항공기기 제조 거점도 모두 이곳에 있다. 주니치 국제공항에서 40여 분 특급열차를 타고 달려와 내린 나고야역에 자리한 고층빌딩 숲은 이 도시가 갖고 있는 아이덴티티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나고야역에 도착하자마자 배번표를 받기 위해 반데라 돔으로 향했다. 우리의 경우 번호표를 모두 집으로 배달해 주는 데 비해 이곳은 대회 전날 모두 받아 가야 한다. 일본다운 아날로그식 운영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하철 안에서도 거리에서도 여자들이 마라톤 조직위에서 나눠주는 파란색 에코백 안에 배번표를 받고 돌아가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외국인들이지만 내일 함께 뛸 러너들이라는 생각에 묘한 동질감이 생겼다.

    외국인들도 쉽게 찾을 수 있게 상세하게 안내 표시가 돼 있어서 배번표를 받는 데 성공했다. 표를 받고도 다시 본인 확인을 받는 절차가 있어서 이 역시 일본의 디테일 혹은 답답함(?)이 아닐까 생각하며 이튿날 행사가 열릴 돔 안을 둘러보기로 했다.

    마라톤은 보통 실외에서 출발해 다시 실외로 돌아오는 동선이 대부분이다. 나고야여성마라톤의 경우 출발지는 돔 바깥 운동장이지만 도착지는 돔 안이다. 피니시 라인에 들어서면 마치 올림픽 마라톤대회에 참가한 선수 같은 기분이 들 것 같았다. 대한민국 선동렬 선수가 투수로도 활약했던 주니치 드래곤즈의 야구 경기가 열렸던 돔 안에 들어와 내일 완주를 마치고 들어설 모습을 떠올리니 약간 설렜다.

    마라톤 코스인 도로변에는 시민들이 나와 참가자들을 응원했다. 치어리더 복장을 한 학생들이 목청 높여 응원하는 모습. 나고야=허문명 기자

    마라톤 코스인 도로변에는 시민들이 나와 참가자들을 응원했다. 치어리더 복장을 한 학생들이 목청 높여 응원하는 모습. 나고야=허문명 기자

    42.195km 내내 “간바레, 간바레”

    며칠 비가 오락가락하고 추워서 걱정이라고 나고야에 사는 일본인 친구가 말해 주었는데 다행히 3월 9일 하늘은 더없이 맑고 쾌청했다. 오전 8시. 출발선인 돔 앞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여성이었다. ‘어디서 이렇게 많은 여자들이 모인 거지?’ 얼추 보아도 1만 명은 훌쩍 넘어 보였다. 대부분 일본 사람들로 보였고, 서양인은 의외로 많지 않았다.

    마침내 출발 시각인 오전 9시. 갑자기 스타트 신호가 울리면서 대열이 한꺼번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첫 10km는 수월했다. 이대로라면 지난 베를린마라톤 풀코스 기록인 5시간 52분을 깰 수도 있겠다는 자신감이 올라왔다. 그러나 웬걸. 12km를 넘어서면서 몸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더 속도를 내고 싶었지만 몸은 마음과 다르게 천천히 움직였다.

    맞바람까지 불기 시작했다. 마라톤을 하면서 바람의 힘이 이렇게 센 줄 처음 알았다. 걸을 때는 몰랐던 바람의 세기가 달릴 때는 작은 바람의 향방에 따라 몸이 즉각적으로 알아챈다.

    15km를 넘어설 때는 속까지 울렁거렸다. 10km를 지날 때 먹은 에너지 젤이 소화되지 않아 위에서 출렁거리는 듯했고, 배가 고파 아침에 먹었던 떡까지 소화가 안 돼 위 속에서 섞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빌딩 숲 사이를 왕복하는 코스다. 자연은 보이지 않고 오로지 빌딩 숲 사이 아스팔트와 시멘트 바닥을 달리는 코스여서 약간 지루한 감이 있었다. 30km 지점에서 급기야 걷기 시작했다. 다리가 너무 무거워졌기 때문이다.

    함께 대회에 참가한 친구들 가운데 한 명은 평소에도 풀코스 마라톤을 10여 차례 완주한 기록을 갖고 있었는데 갑작스러운 고관절 통증으로 절뚝이며 뛰고 있었다. 몸이 힘들어지자 머리는 복잡해졌다. 도대체 우리는 왜 뛰고 있는 거지?

    32㎞ 지점으로 기억된다. 갑자기 내 앞으로 백발의 일본인 할머니가 스쳐 지나갔다. 머리숱이 성긴 뒤통수만 보아도 70대는 족히 넘었을 것 같았다. 그런데 할머니는 왼쪽으로 몸이 잔뜩 기울어진 상태에서 뛰는 걸 멈추지 않고 있었다.

    러닝을 시작하면서 자세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한쪽 몸이 기우뚱한 데도 두 팔을 열심히 흔들며 뛰고 있는 할머니를 보자 정신이 번쩍 났다. 어디서 저런 힘이 나오는 걸까. 나도 다시 힘을 내자는 생각에 뛰기 시작했다. 그러다 결국 35㎞ 지점부터 걷다 뛰다를 반복했다.

    전신에 피로감이 몰려오면서 힘들다는 생각이 차오를 즈음 풍경과 사람이 보였다. 우선 여성들만 참여한 대회여서 그런지 주로에서 만난 러너들의 복장이 패셔너블했다. 반바지 위로 색색깔로 다양한 치마를 걸쳐 입고 뛰는 러너도 있었고, 닌텐도 게임에 등장하는 슈퍼마리오 캐릭터 옷을 입고 뛰는 러너도 있었다.

    다음으로 인상적이었던 것은 대로변에 일렬로 늘어선 응원 행렬이었다. 나고야 도심 전체가 이날만큼은 축제인 듯 아침부터 대로변에 모여든 응원단은 “간바레(힘내세요!)” “화이토(파이팅)”를 큰 소리로 외치며 응원을 보내주었다. 달리는 내내 간바레와 화이토를 들은 터라 조금 과장하자 아직도 환청이 들리는 듯하다. 치어리더 복장을 하고 갖가지 묘기를 펼치는 소녀 응원단도 재미있었고 턱시도 차림의 남자 응원단, 엄마 아빠 손을 잡고 나선 꼬마들, 휠체어를 타고 나온 어르신들까지 죄다 거리에 나와 러너들에게 인사하며 박수를 쳤다. 30km를 넘어설 때는 사탕, 초콜릿, 과자를 직접 들고 나와 나눠주기도 했다.

    그다음으로 인상적이었던 것은 세심한 배려였다. 무엇보다 화장실이 많았다. 심지어 다음 화장실은 몇 ㎞ 뒤에 있다는 표지까지 있어서 뛰면서 화장실을 언제 가야 할지 하는 계산이 가능하도록 했다. 급수대 앞에도 ‘이번 급수대는 총 몇 개 중에 몇 번째’라는 표시가 있어서 뛰면서 자기 페이스에 맞게 선택하도록 배려했다. 나는 35㎞ 지점에서 화장실을 다녀왔는데 너무 깨끗한 것이 또 인상적이었다.

    거리의 자원봉사자들이 매우 많았다는 점도 놀라웠다. 나중에 주최 측으로부터 들었는데 행사 운영에 투입된 자원봉사자만 6000여 명에 달한다고 했다. 봉사자들은 저마다 비닐봉투를 들고 러너들이 버리는 쓰레기를 줍거나 받아줬다. 그러다 보니 주로가 매우 청결했다. 역시 여성들이 뛰는 대회라서 그런가. 거리에 휴지 한 장 찾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깨끗했다.

    마침내 38㎞ 지점. 시계를 보니 5시간 30분이 훌쩍 넘어서고 있었다. 지난번 풀코스 완주 때보다 기록이 나아지기는커녕 뒤처진 것이다. 속이 상했지만 그것도 잠시, 마음속에서 기록에 신경쓰기보다 달리는 것 자체를 즐기자는 생각이 올라왔다. 천천히 가면 어떤가. 제한 시간 7시간 안에만 들어오면 되는 것 아닌가. 이국의 풍경과 사람들에게 더 집중하자는 생각이 드니 마음이 편해졌다.

    드디어 돔이 보였다. 돔 안은 이미 완주를 마친 마라토너들과 가족들, 친구들이 엉켜 거대한 축제장으로 변해 있었다. 빨간색 카펫이 깔린 피니시 라인에 들어서며 시계를 보니 6시간 24분 42초. 이 오랜 시간을 뛰어 완주를 해냈다는 생각에 뿌듯해졌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가슴속에서 벅찬 성취감이 밀려왔다.

    완주에 성공한 필자. 나고야=허문명 기자

    완주에 성공한 필자. 나고야=허문명 기자

    동일본대지진 1주기, 사회 공헌 내걸고 시작

    나고야여성마라톤의 특징으로는 깔끔한 경기 운영 방식도 돋보였지만 ‘여성’ 러너들을 위한 마케팅 능력을 꼽을 수 있다. 이 대회는 완주 메달이 없고 티파니 목걸이를 주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것 때문에 뛴다는 주자도 많다. 그런데 올해는 바카라 크리스털 술잔으로 바뀌었다.

    피니시 라인에 들어서면 바로 턱시도 정장을 멋지게 차려입은 젊은 남자들이 줄을 서서 빨간색 박스에 담긴 완주 컵을 나눠주었다. 대회 전날엔 돔 안에서 패션쇼가 열리기도 했다.

    42.195㎞에 도전한다는 건 체력과 기력이 충실해야 가능하지만, 달리는 이유는 다양했다. 서브4(4시간 이내 완주)를 목표로 하는 사람도 있고, 건강이 목적인 사람, 축제와 같은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긴 여정을 달려 결승점을 통과하는 순간, 러너들의 얼굴은 다양했다. 환하게 미소 짓는 사람도 있었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큰 도전을 이겨낸 성취감이 돔 안에 퍼졌다. 다들 분명 인생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대회 이튿날 기자는 이번 대회의 주최자이기도 한 나고야의 대표 신문인 주니치(中日) 신문에서 일하는 기노시타 기자의 안내로 미야자키 히로아키 대회 사무국 레이스 디렉터를 만났다. 기노시타 기자는 서울에서 특파원 생활을 하며 인연을 맺었다. 돔 안에 마련된 사무국은 전날 행사를 마무리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미야자키 씨와 마주 앉았다.

    나고야가 여성마라톤으로 자리매김한 계기가 있다면.

    “이 대회는 현재 기네스북에도 올라가 있는 최대 여성마라톤대회다. 본래 프로선수들만 참여하는 국제여자마라톤대회로 시작했는데 2012년에 세계적 러닝 붐을 타고 시민에게도 문호를 개방하는 형태로 옷을 갈아입었다. 일본에서 2007년에 도쿄마라톤이 시작되면서 시민 마라톤이 활성화한 흐름도 있다.
    제1회 대회가 2012년 3월 11일로 동일본 대지진 발생 1주년과 겹쳐 사회 공헌을 대회 이념으로 내걸었다. 참가자들은 여성 지원 2개 단체 중 기부처를 선택할 수 있다. 첫 대회인 2012년 이후 2020년 대회까지는 지진 피해 복구 지원도 선택할 수 있으며, 노토(能登)반도 지진 발생 약 2개월 후인 지난 대회에는 출발점에 모금함을 설치하기도 했다.”

    이번 대회 총 참가자 수를 물으니 1만5723명이었다고 한다. 이 가운데 외국인은 1838명으로 중국(463명), 대만(428명), 홍콩(248명), 한국(101명), 싱가포르(100명), 태국(51명), 필리핀(52명) 등 아시아 사람이 많았고 서양에서는 미국(124명), 오스트리아(53명), 캐나다(22명), 영국(16명) 등이다. 참가국 수는 39개국.

    한국은 요즘 마라톤 붐인데.

    “일본은 많이 잠잠해졌다. 지금도 달리는 사람은 많지만, 코로나 때문에 좀 잠잠해졌다.”

    완주 메달이 티파티 목걸이에서 바카라 컵으로 바뀌어 실망한 사람들도 있었다.

    “2012년부터 계속 티파니와 함께해 왔지만, 계약이 변경돼 바카라와 새로 계약을 맺었다. 올해는 컵이었지만 내년에는 다른 액세서리 같은 것을 생각하고 있다.”

    미야자키 히로아키 나고야여성마라톤대회 사무국 레이스 디렉터. 나고야=허문명 기자

    미야자키 히로아키 나고야여성마라톤대회 사무국 레이스 디렉터. 나고야=허문명 기자

    나는 왜 뛰는가, 각자의 사연을 품고

    이번 대회를 주관한 곳은 일본육상경기연맹과 주니치 신문사로 주니치 신문은 나고야에서 제일 많은 부수를 자랑한다. 신문은 행사가 끝난 뒤 마라톤 기사와 함께 다양한 일반 주자들의 사연을 함께 실었는데, 이들의 후기를 읽다 보니 마라톤 완주에 도전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사연은 달라도 힘과 에너지, 성취감을 얻고자 하는 것은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작스러운 희귀병 발병으로 임신할 수 없게 되자 아이를 입양했다는 도요타 마키노 씨(43·도요타시 거주) 말이다.

    “큰딸과는 2019년 1월, 생후 3일 만에 처음 만났습니다. 지금 여섯 살이 된 딸은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부터 즐거운 일을 찾는 활동적인 아이’로 성장했습니다. 저에게는 ‘더 건강하게, 더 오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누구와도 대체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저는 22세 때 악성 림프종 4기 판정을 받았습니다. 4개월 반에 걸친 항암제 치료로 2차 암 등 후기 합병증 위험이 있어 아이를 갖기 어려운 몸이 됐습니다. 그러다 33세에 결혼하면서 불임 치료에도 도전했지만 실패해 아이를 포기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다 암 투병 경험이 있는 친구가 아이를 입양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결혼 3년차 때였습니다. 저는 그런 삶이 있다는 것에 감동과 충격을 받았고, 남편과 상의해 입양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지금의 제 딸과 인연이 됐습니다.

    입양 후 딸이 자신의 출생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때를 대비해 저는 딸에게 ‘인생은 자기 마음대로 사는 거야’라고 말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 수단 중 하나가 달리기였습니다. 암이 발견되기 전에는 저도 운동을 좋아해서 철인 3종 경기에 도전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었습니다. 그러다 갑작스러운 암 발병으로 항암 치료를 받으며 계속 40도 열이 나는 고통에 마음이 무너질 것 같았지만, 암을 이겨내고 복귀한 자전거 선수의 자서전을 보며 버텨냈습니다. 저는 걷기조차 힘들었던 퇴원 직후부터 달리기를 시작했습니다. 이듬해에는 대회에 출전해 풀코스 마라톤에 도전했습니다.

    딸이 엄마가 뛰는 것을 본 건 이번 대회가 처음입니다. 완주 직후 딸은 제게 달려와 ‘멋지다’고 안아줬습니다. 이번에 달리면서 새로운 목표가 생겼습니다. 언젠가 딸과 함께 달리는 겁니다. 대회에 출전할 수 있는 나이는 19세 이상이니 ‘딸이 클 때까지 건강하게 계속 뛰어야겠다’고 각오를 새롭게 다졌습니다.”

    미즈노 에미(51·나고야시 미나미구 거주) 씨는 현재 암 투병 중인 어머니를 위해 달렸다고 한 경우다.

    “헬스장에서 알게 된 친구의 권유로 2015년 나고야여성마라톤에 처음 출전했습니다. 이후 코로나로 일반 러너의 출전이 없었던 해를 제외하고는 거의 빠짐없이 참가하고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엄마가 항상 거리에서 응원해 주었는데 올해에는 응원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지난해 6월 암이 발견돼 집에서 재활 치료를 받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달리는 내내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살아 계서서 감사해요.’

    엄마는 항상 마라톤대회 전날 제 이름이 적힌 손수 만든 부채를 들고 응원해 주셨습니다. 어머니가 기다리는 곳에 가까워지면 자연스레 속도가 빨라졌습니다. 그런 엄마에게 암세포가 발견돼 항암 치료를 받았습니다. 이번에 거리에서 뛸 때 엄마 모습이 보이지 않았지만 위치 추적이 가능한 온라인 서비스를 통해 TV로 시청하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놓였습니다. 완주를 마치고 제일 고마운 사람은 엄마였습니다.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는 튼튼한 몸으로 낳아주고 이렇게 길러주셨으니까요.”



    완주를 마치고 들어서면 맨처음 만나는 턱시도
맨들. 이들은 나고야여성마라톤 대회를 완주한 사람들에게 바카라 크리스털 술잔을 선물로 지급했다. 나고야=허문명 기자

    완주를 마치고 들어서면 맨처음 만나는 턱시도 맨들. 이들은 나고야여성마라톤 대회를 완주한 사람들에게 바카라 크리스털 술잔을 선물로 지급했다. 나고야=허문명 기자

    다시 살아갈 힘 얻는 기회

    한편 오카모토 아야코(43·나고야시 미즈호구 거주) 씨는 지난해 1월 이시카와현 등 6개 현을 덮친 노토반도 강진으로 사망한 친구를 추모하며 달렸다고 한다. 당시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는 500명이 넘었다.

    “저의 단짝 친구 히가시는 대학 소프트볼부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주변과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점심을 먹던 제게 조용히 말을 걸어온 친구였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친구가 가나자와로 거처를 옮겨 멀어졌지만 매년 좋은 공연이 있으면 함께 보러 갔고, 신사 순례도 함께 다녔습니다.

    그러다 지난해 설날 지진으로 그만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는 너무 슬퍼서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매일 울며 살았습니다. 가족과 친구들도 그런 저를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현실을 받아들이자고 마음을 먹으니 친구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해 5월부터 매달 1~2회씩 피해 지역 봉사활동에 참여했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에게서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러닝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친구가 살아 있던 지난해 10월 가나자와마라톤대회에 참가해 풀코스를 완주했는데 친구가 길가에서 응원해 주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함께 식사하며 완주를 축하해 주었습니다. 이번에 달리면서 그 기억이 떠올라 눈물을 흘리며 뛰었습니다.

    처음 10㎞는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었는데, 20㎞를 달리면서 몸이 조금 익숙해졌습니다. 힘들었던 후반부는 길가의 응원에 힘을 얻었습니다. 친구가 없으면 못살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데 완주하고 나니 ‘아직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국적이 다른 러너들의 사연을 읽으면서 딸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여성 마라토너들의 마음이 전해져 뭉클해졌다. 흔히 마라톤은 자기와의 싸움이라고들 한다. 힘든 시간을 견뎌내는 힘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나 역시 다시 살아갈 힘을 얻고 돌아왔다.



    • 많이 본 기사
    • 최신기사

    매거진동아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