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동아 만평 ‘안마봉’은 과거 ‘신동아’와 ‘동아일보’에 실린 만평(동아로 보는 ‘카툰 100년’)에서 영감을 얻어 같은 그림체로 오늘날의 세태를 풍자한 만평입니다.

ⓒ정승혜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는 145%로 즉시 인상하더니, 스마트폰과 컴퓨터·반도체 장비, 자동차에 대해선 상호관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유예 가능성을 내비치며 ‘오락가락’한다. 삼성·LG전자 등 해외에 생산기지를 둔 국내 기업들도 트럼프의 말 한마디에 가슴을 쓸어내린다.
관세를 인상하는 정확한 근거도 잘 모르고, 행정명령에 사인한 관세율을 ‘사람들이 겁을 먹어서’ 유예한다니 세계의 대통령이 ‘엿장수’가 된 거 같다. 오죽하면 미국 법률단체(‘자유정의센터’)가 트럼프의 관세 탓에 심각한 피해를 본 기업들을 대리해 소송을 냈을까. 이 단체는 “세율 설정 권한은 대통령이 아닌 의회에 있다”며 위헌 소송을 제기했다.
세계 각국의 저명한 경제학자들이 관세율 인상은 ‘최악의 수’라고 비판하는데도, 관세정책을 설계한 재무장관 스콧 베센트와 경제자문회의 의장 스티븐 미란은 여전히 ‘관세 무기’를 신봉한다. 이들 ‘관세 책사’들은 관세를 협상 수단으로 활용해 미국으로 재산업화하도록 하고, 불공정 무역관행 시정을 유도할 수 있다고 믿는다.
‘엿장수’야 자신의 엿을 줄이든 늘이든 마음대로다. 그러나 오랜 기간 형성된 글로벌 공급망을 ‘관세 폭탄’으로 하루아침에 재배치하겠다는 발상은 자칫 미국 건국 이래 쌓아온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의 신뢰를 엿가락처럼 휘어지게 할지 모른다. 더 큰 폭탄이 터질 수 있다.
1932년

- 신동아 1932년 2월호
1929년 10월 미국 주가가 대폭락하며 발생한 경제대공황도 금본위제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었다. 1931년 영국을 비롯해 북유럽 국가들이 도미노처럼 금본위제를 폐지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은 이러한 혼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1930년 1월에 금본위제를 시행했다. 당시 하마구치 내각은 환율을 안정시키고 국제사회에서 경쟁력을 높이려면 금본위제가 유리하다며 ‘헛다리’를 짚었다. 해외 환투기꾼들은 일본의 금을 저렴하게 매수해 막대한 차익을 남겼고, 순식간에 많은 금이 해외로 유출되면서 일본은 심각한 디플레이션과 경기침체를 겪는다.
이 와중에 조선인 상인들도 매출 감소로 인한 파산이 속출했고, 일본은 결국 1931년 12월 금태환 정지를 선언하며 금본위제를 폐지하기에 이른다.
당시 ‘신동아’는 1931년 11월 창간호를 통해 ‘금본위제 몰락과 세계공황’이라는 기사를 게재하며 영국의 금본위제 폐지가 조선 경제에 미칠 영향을 분석했다. 신동아 1932년 2월호는 일본에서 금을 유출해 당시 금본위제가 시행 중이던 미국 달러를 사들이는 해외 환투기꾼을 풍자한 만평을 게재해 무능한 일본 내각을 에둘러 비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