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9년 ‘타임’은 제프 베조스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과학과 모험은 어린 제프의 상상력을 무한 증폭시켰다. 어머니 재키는 ‘스스로 만드는’ 전자키트를 사다주며 아들을 격려했다.
우주를 꿈꾸던 아이
조숙한 제프의 또 다른 영웅은 외할아버지 프레스톤 기스였다. 제프는 열여섯 살 때까지 매년 여름을 미국 텍사스에 있는 외할아버지의 농장에서 보냈다. 프레스톤 기스는 미국 핵에너지위원회를 이끈 고위공직자였다. 과학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프레스톤은 외손자 제프를 발명의 세계로 이끌었다.
고등학교 때는 공상과학 소설을 탐독했다. 우주인이 등장하는 ‘스타트랙’ 시리즈도 즐겨 봤다. 제프는 마이애미 팔메토 고교를 1등으로 졸업했다. 졸업생 대표로 축사를 한 그는 당시 지역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우주에 호텔과 놀이공원을 짓고 싶다”고 말했다.
제프는 어린 시절 꿈을 그대로 실천에 옮기고 있다. 자회사인 ‘블루 오리진’을 통해 우주선을 개발하고 있으니 말이다. 미국 워싱턴 켄트주에 자리 잡고 있는 ‘블루 오리진’은 현재 미국항공우주국(NASA)으로부터 3000만달러가 넘는 지원을 받고 있다. 이 회사가 만든 초기 우주선 고다드(Goddard)는 2006년 간단한 발사 테스트도 거쳤다.
제프는 유일하게 프린스턴대에만 응시했다. “거기 아인슈타인이 있다”는 이유였다. 그는 아인슈타인이나 스티븐 호킹을 따라 이론물리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대학에서 생애 최초의 좌절을 경험한다. 뛰어난 물리학과 학생들 틈에서 자신은 잘해야 중간 수준의 물리학자가 되리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후 전자공학과 컴퓨터공학으로 전공을 바꿨다.
1986년 제프는 프린스턴대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벨 연구소, 인텔 등 최고 유망 기업들이 그에게 입사를 제안했다. 하지만 그가 택한 곳은 벤처기업 피텔(Fitel). 제프가 첫 직장을 선택한 기준은 ‘안정’이 아니라 ‘미래의 가능성’이었다.
미국 맨해튼에 위치한 피텔은 글로벌 주식 거래 네트워크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기술담당 이사를 맡은 제프는 23세의 나이로 제트기를 타고 세계를 누볐다. 영국, 일본, 호주 등지의 계정을 관리하기 위해서였다.
1988년 제프는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 뱅커스 트러스트로 자리를 옮겼다. IT(정보기술) 프로그램을 관리하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 26세에 그는 역대 최연소 부사장에 올랐다. 하지만 일상적인 업무에 곧 싫증을 느꼈다.
그런 제프를 사로잡은 이가 월스트리트의 헤지펀드 회사 D.E.쇼앤컴퍼니를 이끌던 데이비드 쇼였다. 제프는 1990년 D.E.쇼앤컴퍼니의 부사장으로 입사한다. 스탠퍼드대 컴퓨터공학 박사인 데이비드는 제프에게 지적 감화를 주었다. 훗날 제프는 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데이비드 쇼는 아주 똑똑한 사람이다. 그는 좌뇌와 우뇌가 완벽하게 개발된, 내가 아는 몇 안 되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