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 90조 원 예산 기후 정책에 쓰려다 역풍
대안 없는 기후 정책 일변도로 국민 지지 잃어
‘나치의 후예’라 불리는 극우 정당 지지↑
佛, 재정적자 줄이려 복지 감축 예산 발표
내각 불신임으로 총리 쫓아내, 4번째 총리 앉혔지만…
![2025년 1월 12일(현지 시간) 독일 본에 걸려 있는 올라프 숄츠 사회민주당 총리 후보의 선거 포스터. [AP뉴시스]](https://dimg.donga.com/a/700/0/90/5/ugc/CDB/SHINDONGA/Article/67/8f/05/80/678f05801391d2738276.jpg)
2025년 1월 12일(현지 시간) 독일 본에 걸려 있는 올라프 숄츠 사회민주당 총리 후보의 선거 포스터. [AP뉴시스]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도 처지는 비슷하다. 지난해 12월 4일 의회가 내각 불신임안을 통과시켜 미셸 바르니에 전 총리가 이끌던 내각을 무너뜨렸다. 이후 마크롱 대통령은 약 열흘 만인 13일 프랑수아 바이루 총리를 임명하며 새 내각을 꾸리며 국면전환을 꾀했다. 하지만 여전히 마크롱 대통령에 대한 사퇴 압박이 이어지고 있다.
유럽연합(EU)에서 경제 규모가 ‘톱2’인 두 국가가 모두 정치 혼란을 겪으며 유럽 전체가 불안하다. 1월 2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취임하며 안보와 외교 지형이 뒤흔들릴 수 있는 터라 더욱 그렇다. 유로뉴스는 “트럼프의 공약 중 유럽산 제품에 10%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내용은 EU의 수출기업에 경제적 비용을 초래하고, 미국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탈퇴 가능성은 유럽의 비용을 늘릴 수 있다”며 “(독일과 프랑스의) 정치적 공백 탓에 부진한 유럽 경제를 살리려는 여러 노력이 방해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독일과 프랑스 위기의 근저엔 닮은 점이 많다. 모두 재정적자 증가, 성장률 둔화 등 경제난이 위기의 씨앗이 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경제난의 원인을 집권 세력의 무능에서 찾는 극우 정당이 지지율을 높이며 유럽 내 갈등과 분열도 더 심해지고 있다.
독일 연정 흔든 ‘예산 사고’
![로베르트 하베크 독일 경제 및 기후 장관(왼쪽)이 2024년 11월 7일(현지 시간) 독일 베를린의 연방의회 회의에서 올라프 숄츠 총리와 이야기하고 있다. [AP 뉴시스]](https://dimg.donga.com/a/700/0/90/5/ugc/CDB/SHINDONGA/Article/67/8f/06/0b/678f060b0225d2738276.jpg)
로베르트 하베크 독일 경제 및 기후 장관(왼쪽)이 2024년 11월 7일(현지 시간) 독일 베를린의 연방의회 회의에서 올라프 숄츠 총리와 이야기하고 있다. [AP 뉴시스]
색이 다른 정당이 내각을 꾸리다 보니 정책을 두고 불협화음이 잦았다. 대부분 경제 문제 해법에 대한 의견 차이에서 비롯했다. 특히 심각해지는 재정적자 문제와 이를 관리하는 예산 문제가 컸다. 연정에 충격을 준 대표적 위기는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23년 12월 15일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독일 정부의 예산 집행이 위헌이라고 판단, 집행을 취소시켰다.
해당 예산은 2021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기 때 생겼다. 원래 독일 헌법에는 정부 부채 규모 제한선이 있다. 정부는 새로운 부채를 국내총생산(GDP)의 0.35%까지만 조달할 수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같은 특별한 위기 상황에선 이 규제를 지키지 않아도 되는 단서 조항이 있다. 연정은 이 예외 규정 덕에 예산을 넉넉히 확보했다.
이 예산 중 코로나19 대응에 투입되지 않고 남은 600억 유로(약 90조6600억 원)가 화근(禍根)이 됐다. 정부는 팬데믹 상황이 잠잠해지자 예산을 기후변화기금(KTF)으로 전용하기로 했다. 연정이 정책 우선순위를 둔 기후변화 정책에 예산을 투입한 것이다.
헌재가 여기에 제동을 걸었다. 특별한 위기 대응을 위한 예산을 KTF에 집행하는 게 불합리하다고 본 셈이다. 예산에 ‘구멍’이 생기자 내각은 448억 유로(약 67조6900억 원) 규모의 올해 추가경정 예산안을 의결하며 수습에 나섰다. 그래도 예산은 170억 유로(약 25조6900억 원) 부족했다.
위헌 결정은 단순한 예산 구멍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독일 경제활동도 전반적으로 위축됐다. 독일 함부르크 세계경제연구소(HWWI)는 같은 달 2023년 겨울 경제전망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독일의 2023년 경제성장률을 –0.3%로, 2024년에는 0.5%에 그칠 것으로 봤다. 주요 원인으로는 팬데믹 이후 4년간 이어진 경기침체에 소비심리 위축, 높은 에너지 가격과 함께 ‘예산 부족 문제로 인한 경기회복 지연’을 꼽았다.
지난해에도 경제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연정 내 자민당 출신의 크리스티안 린드너 당시 재무장관은 재정적자를 우려해 건전 재정과 기업 감세를 주장했다. 숄츠 총리는 초기에는 그와 타협을 시도했지만 한계에 달했다.
그는 결국 지난해 11월 6일 기자회견을 열고 “린드너 재무장관의 해임을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에게 요청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자신에 대한 신임 투표를 치르겠다고 밝혔다. 결국 의회에서 진행된 신임 투표에서 불신임을 받은 숄츠 총리는 2월 23일 조기 총선을 맞이하게 된다.
예산 위기 속에서 정책 실패도 반복됐다. 중국산 전기자동차의 저가 공세 대응 정책이 대표적 실책으로 꼽힌다. 독일 정부는 2023년 12월 예산을 아끼려 전기차 보조금을 없애기로 돌연 결정해 버렸다. 중국산 전기자동차의 저가 공세를 막겠다는 취지였다.
“독일 정부, 명확한 노선 없어”
![프랑스 파리의 한 빵집에서 빵이 가격표와 함께 진열돼 있다. 프랑스 물가상승은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심해졌다. [조은아]](https://dimg.donga.com/a/700/0/90/5/ugc/CDB/SHINDONGA/Article/67/8f/06/3c/678f063c0e19d2738276.jpg)
프랑스 파리의 한 빵집에서 빵이 가격표와 함께 진열돼 있다. 프랑스 물가상승은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심해졌다. [조은아]
에너지 정책도 꼬여버렸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가 유럽을 향한 자국산 가스 공급을 끊어 에너지 위기가 불거졌다. 프랑스 등 다른 국가들은 러시아산 가스를 대체하기 위해 원자력발전을 활용했다. 하지만 기후변화 정책 의지가 강한 독일은 탈원전 기조를 수정하지 않았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산 천연가스 공급이 중단된 뒤 숄츠 정부는 재빨리 액화천연가스(LNG)를 수입해 가정들이 (충분한 난방으로) 따뜻해졌지만 가스 가격은 전년 대비 40% 상승했다”며 “그럼에도 정부는 국가의 마지막 원자로에 대한 폐쇄 계획을 진행했다”고 짚었다.
정부가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자 경제 혼란은 커졌다. 독일 뮌헨의 경제연구소 Ifo가 실시한 조사에서 기업가들은 독일의 경제 상황을 비관적으로 보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조사를 맡은 슈테판 자우어 Ifo 연구원은 “정치인들은 명확한 노선이 없었기 때문에 불확실성이 컸다”며 “이 결과 (독일 경제의) 경쟁력이 저하되고 있다”고 풀이했다.
집권 내각의 무능을 기회 삼아 극우 정당이 부상하며 혼란은 더 커졌다. 독일 극우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그 중심에 있다. ‘나치의 후예’라는 비판을 듣는 AfD는 이민자에 대한 강력한 단속을 주장한다. 독일의 유럽연합(EU) 탈퇴, 유로화(貨) 폐기 및 옛 마르크화 부활 등 과격한 공약을 내세운 바 있다.
이 정당이 2013년 총선거 때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지지율은 4.7%에 머물렀다. 의회 입성이 힘든 수준이었다. 그랬던 정당이 2월 총선을 앞둔 지지율 조사에선 최근 1년 새 최고치(22%)를 기록했다. 제1야당인 기독민주당-기독사회당 연합(30%)에 이어 2위다. 독일 주요 정당들은 AfD와 연정을 구성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으나, 지지율이 높게 유지되면 의회에서 AfD의 영향력은 커질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의 최측근으로 떠오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까지 정치 혼란에 가세했다. 그가 ‘AfD 띄워주기’에 힘쓰자 독일 정치권에 잡음이 더 커졌다. 머스크 CEO는 지난해 12월 말 현지 신문 ‘벨트암존타크’ 기고문에서 AfD를 “이 나라의 마지막 희망의 불꽃”이라고 칭했다.
부상하는 AfD에 비해 숄츠 총리가 소속된 사민당은 지지율이 저조하다. 현실적으로 숄츠 총리가 재집권에 실패할 것이란 시각이 우세하다. 독일 언론들은 프리드리히 메르츠(70) 기민당 대표를 유력한 차기 총리로 보고 있다. 그는 원자력발전 확대, 실업급여 축소 등 숄츠 총리와 반대 노선을 주장한다. 집권하면 ‘정책 뒤집기’로 인해 또 다른 혼란이 예상된다.
프랑스, 한 해 동안 총리만 4명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오른쪽)이 2022년 6월 21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의 엘리제궁에서 당시 중도 정당인 무브먼트 데모크레이트(MoDem) 지도자 프랑수아 바이루를 만나고 있다. [AP뉴시스]](https://dimg.donga.com/a/700/0/90/5/ugc/CDB/SHINDONGA/Article/67/8f/06/56/678f06562006d2738276.jpg)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오른쪽)이 2022년 6월 21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의 엘리제궁에서 당시 중도 정당인 무브먼트 데모크레이트(MoDem) 지도자 프랑수아 바이루를 만나고 있다. [AP뉴시스]
행정부가 붕괴한 결정적 계기는 독일에서처럼 ‘예산안’이었다. 재정적자 문제가 심각해지자 정부가 적자 감축을 위해 예산을 팍팍하게 짠 것. 당시 바르니에 총리는 전년도 1540억 유로(약 232조2400억 원)에 이른 재정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공공지출 감축을 골자로 한 2025년 예산안을 내놨다. 2025년 400억 유로(약 60조3200억 원)의 정부지출을 줄이고, 200억 유로(약 30조1600억 원)의 증세도 단행한다는 내용이었다.
좌파 연합인 신민중전선(NFP)과 극우 정당 국민연합(RN) 등은 복지 혜택 축소 등을 우려해 강하게 반발했다. 예산안 통과가 어렵다고 판단한 바르니에 전 총리는 예산안의 핵심인 사회보장재정 법안을 정부가 하원 표결 없이 처리할 수 있는 ‘헌법 제49조 3항’을 발동해 통과시켜 버렸다. 이에 좌파와 극우 진영이 극렬히 반대하며 불신임안을 발의했고, 이 안이 통과되며 총리가 물러나게 됐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13일 중도우파 성향의 프랑수아 바이루(74) 전 법무장관을 신임 총리로 앉히고 새 내각을 꾸렸다. 그는 엘리자베트 보른, 가브리엘 아탈, 바르니에 전 총리에 이은 4번째 총리. 새로운 내각이 들어섰지만 혼란은 잦아들질 않고 있다. 야권에선 바이루 총리가 전임 바르니에 전 총리와 크게 다를 게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프랑스의 정치적 혼란엔 극우 정당 RN의 열풍도 한몫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RN은 지난해 7월 총선 2차 투표에서 전체 의석 577석 중 143석을 얻었다. 좌파 연합 NFP(182석), 마크롱 대통령의 집권당 르네상스가 이끄는 중도 범여권 ‘앙상블’(168석)에 이어 3위에 올랐다. 이에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RN 의석수가 기존 88석에서 143석으로 급증했다”며 “‘변방의 왕따’였던 RN이 대중에게 존중받는 주요 정당으로 부상했다”고 풀이했다.
정치적 혼란이 이어지자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지난해 12월 14일 프랑스의 국가 신용등급을 ‘Aa2’에서 ‘Aa3’으로 한 단계 낮췄다. 무디스는 이번 등급 조정에 대해 “정치적 분열로 프랑스의 공공 재정이 약화할 것이고, 당분간 적자가 줄어들 계기도 보이지 않는다”며 “재정적자를 줄일 수 있는 조치의 범위와 규모를 제약할 것이라는 견해를 반영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