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시장적 복지’ 추구하는 북유럽 교육 주목
- 의무교육기간 무상급식은 헌법정신에도 부합
- 학생인권조례보다 교권보호헌장 먼저 공포했다
- 경쟁교육 더 과열시키는 MB 고교 다양화 정책
- 준비 부족한 입학사정관제… 속도 조절해야
● 1949년 광주 출생<br>● 서울대 경영학과, 동 대학원 졸업(경영학박사)<br>● 한신대 경영학과 교수<br>● 민교협 공동의장, 전국교수노조 위원장, 한국산업노동학회장, 비정규노동센터 대표<br> ● 경기도교육청 제14대 교육감<br>● 2010년 7월~경기도교육청 제15대 교육감
지금이 꼭 그런 때다. 2010년 6월2일 사상 처음으로 광역단체장 선거와 교육감 선거가 함께 치러지면서 전국 16개 시도의 교육감이 주민 직선으로 선출됐다. 그중 6개 시도의 교육감은 개혁 의지가 강한 ‘진보 성향’으로 분류된다. 이들이 내건 교육개혁의 어젠다와 콘텐츠는 그간 이명박 정부가 추진해온 교육개혁의 그것과는 결이 사뭇 다르다.
더구나 지난 8월 취임한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회교육문화분과위 간사, 청와대 교육과학문화수석, 교과부 제1차관을 역임하며 줄곧 ‘이명박표 교육개혁’을 설계하고 집행해온 핵심 교육 브레인이다. 개혁 장관과 개혁 교육감들이 씨줄과 날줄을 엮으며 상승곡선을 그려간다면 더 바랄 게 없을 터. 그러나 정반대편에 깃발을 꽂아놓고 서로 등을 지고 내달리는 볼썽사나운 장면이 펼쳐질 수도 있다.
시장성에서 공공성으로
이런 시점에서 눈길을 끄는 인물이 김상곤(62) 경기도교육감이다. 2009년 4월 첫 주민 직선 경기도교육감에 당선된 뒤 지난 6·2 지방선거를 통해 연임에 성공한 김 교육감은 곽노현 서울시교육감과 함께 대표적인 진보 성향 교육감으로 꼽힌다. 서울대 총학생회장, 학생운동으로 제적 후 강제 징집, 민교협(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공동의장 등 결기가 묻어나는 이력을 지닌 데다 전국 최초로 초·중학교 무상급식을 공론화하고 학생인권조례를 공포하는 등 확신에 찬 행보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김 교육감이 선거 때 내건 캐치프레이즈는 ‘이명박 특권교육, 김상곤이 확 바꾸겠습니다’였다. 시국선언 교사와 민주노동당 가입 교사들에 대한 징계를 놓고 교육당국과 마찰을 빚은 것도 ‘색깔’ 시비를 일게 했다.
지난 12월3일 오후 경기도교육청에서 김상곤 교육감을 만났다. 그는 “‘교실 붕괴’로 표현될 만큼 공교육이 참담하게 무너져 내린 상황에서 이를 정상화해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이런 생각을 순수하게 ‘진보’라 일컫는다면 감수하겠지만, 교육적 소신을 이데올로기적 정파성 개념의 ‘진보’로 재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선을 그었다.
▼ 각론에 앞서 김 교육감께서 구상하는 한국 교육의 큰 그림이랄까,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우리 교육이 국가 발전에 크게 기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젠 그런 역할이 좀 한계에 이르지 않았나 싶어요. 우리 국민의 우수한 경쟁력과 성장잠재력을 미래지향적으로 동력화하려면 무엇보다 교육 시스템을 변화시켜 교육의 질을 혁신해야 합니다. 우리 교육이 그간 경쟁과 시장을 주요 가치로 삼고 성장했다면 이제는 교육의 원래 의미, 즉 공공성과 공익성, 협력과 참여를 기반으로 하는 공동체교육으로 전환해야죠.
지시와 명령을 바탕으로 한 권위적이고 관료적인 학교문화, 교사가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주입식 교육, 기존의 것을 답습하는 데 그치는 암기 위주의 모방교육으로는 창의적인 미래형 인재를 길러낼 수 없습니다. 이런 시점에서‘비시장적 복지사회’를 추구하면서도 높은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해가는 북유럽의 교육과정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눈칫밥 없는 밥상공동체’
▼ 6·2 지방선거 때 전국적인 이슈가 된 무상급식 논란도 ‘비시장적 복지’와 맥이 닿아 있는 듯합니다. 도의회와 도교육위원회의 반대로 세 차례나 무산된 끝에 초등학생 무상급식이 실시됐는데, 잘사는 집 아이들에게까지 ‘공짜 밥’을 준다는 것에 대해 여전히 부정적인 시각이 있습니다.
“2010년 1학기부터 농어촌과 읍면지역 초등학생 무상급식을 실시했고, 2학기에는 도시지역 5·6학년도 포함됐습니다. 경기도교육청은 2014년까지 도내 초·중학생 전체 무상급식을 실시할 계획이었으나, 6·2 지방선거를 거치며 무상급식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빠르게 확산돼 예상보다 빨리 전면 무상급식이 실현될 전망입니다. 일단 2011년 전체 초등학생 무상급식을 실시하기 위해 예산을 짜고 지자체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무상급식은 의무교육기간의 모든 교육은 무상으로 한다는 우리 헌법정신에 부합하는 것입니다. 이제 대한민국의 사회·경제적 역량이 그런 부분을 보완해낼 수 있는 수준에 와 있고요. 비단 급식뿐 아니라 의무교육기간에 학부모가 부담하는 각종 학습준비물, 중학교 학교운영지원비 등도 국가가 감당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런 기초복지는 선별적 복지가 아니라 보편적 복지로 접근해야 해요. 납부금이나 교과서 같은 것은 이미 그렇게 하고 있지 않습니까. 눈칫밥 먹는 아이들이 없는 ‘밥상공동체’는 교실 못지않게 소중한 배움의 장입니다.”
▼ 재원만 넉넉하다면 무상급식에 반대할 사람은 없겠죠. 이 문제를 놓고 경기도가 난항을 거듭한 것도, 최근 오세훈 서울시장과 서울시의회가 정면충돌한 것도 근본적인 원인은 예산에 대한 시각차에 있을 텐데요. 예산 확보를 위한 비책이라도 있습니까.
“초등학교 무상급식과 중학교 저소득층 학생 급식지원에 들어간 돈이 1400억원인데, 전체 초·중학생으로 확대하려면 6600억원이 필요합니다. 5200억원을 추가로 조성해야 하는 거죠. 경기도교육청은 기초자치단체들과 5대 5로 급식예산을 분담하고 있어 저희가 추가 부담해야 할 돈은 2600억원입니다. 그 정도는 경기도 교육예산으로 충당할 수 있어요. 약 9조원의 전체 예산 중 경직성 경비를 빼고 교육감이 우선순위를 감안해 재량을 발휘할 수 있는 예산이 1조3000억원쯤 되니까 큰 무리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급식을 포함한 의무교육 비용을 정부 예산으로 총괄 처리해준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죠. 16개 시도교육감협의회도 지난 8월 정부 차원에서 무상급식을 추진해달라는 건의안을 채택했습니다. 또한 강원, 경남, 전북, 충북 등지에선 광역자치단체도 급식지원에 동참하고 있어요. 광역단체, 기초단체, 교육청 3자가 급식예산을 분담하는 거죠. 저희도 광역단체(경기도)에서 일정 부분 지원해주면 재정 부담을 크게 덜 수 있을 겁니다.”
▼ 전면 무상급식을 포퓰리즘으로 보는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소신은 확고해 보입니다. 이번에도 무상급식 지원예산을 책정하지 않았잖아요. 6·2 선거에서 민주당이 도의회를 장악했으니 앞으로는 사정이 좀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요.
“(김 지사가) 기본적으로 ‘교육에 관한 것은 교육청이 책임지고 알아서 해야 된다’는 생각을 갖고 계신 것 같아요. 그래서 도가 (교육을 위해) 재정분담을 한다든가 하는 데 대해선 좀 소극적이신 듯하고요. 우리 아이들의 기초복지는 물론, 농어촌 주민들의 안정적 부가가치 생산에도 기여하는 친환경 무상급식을 ‘부자급식’ ‘북한식 사회주의 논리’로 표현하는 걸 보면 보편적 복지에 대한 국민적 기대를 잘 모르시는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 무상급식 지원에 힘을 쏟느라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교원 증원, 방과후 학교 지원 등의 시급한 투자를 줄이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있습니다.
“그런 걱정에도 귀를 기울이며 우선순위를 잘 조정해서 예산을 짜고 있습니다. 더욱이 우리 교육청 본예산이 2010년 8조2000억원에서 2011년엔 8조9000억원대로 늘었기 때문에 교육복지 예산을 확충하기 위해 기존 교육사업 예산을 줄여야 하는 부담은 거의 없어요.
저희는 전국 교육청 중 처음으로 ‘주민참여 예산제’와 ‘제로베이스 예산제’를 도입해 보다 효율적으로 예산을 짜고 있습니다. 전자는 예산 편성 때 교사를 포함한 교육가족과 지역주민의 의견을 적극 수렴하는 제도이고, 후자는 기존의 예산과 사업에 얽매이지 않고 백지상태에서 예산을 짜는 제도입니다. 덕분에 2009년에는 중복성, 전시성 예산과 불요불급한 사업을 정리해 1300억원을 절감했습니다. 그 일부로 무상급식 예산을 책정한 겁니다.”
학생인권은 교육문화 척도
▼ 2009년 취임 직후부터 추진해온 학생인권조례가 지난 10월5일 전국 최초로 공포됐습니다. 김 교육감께서 제기한 학생인권 문제는 특히 체벌의 교육적 정당성에 대한 갑론을박으로 무상급식만큼이나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켰는데요.
“입시 중심의 교육 현실을 핑계 삼아 관행적으로 행해온 강압적인 학교교육 방식, 군사적·가부장적 잔재로 가득한 학교문화 전반의 변화 없이는 우리 학생들을 건강한 시민, 상상력이 풍부한 인재로 키울 수 없습니다. 우리 사회와 학교는 학생들을 미성숙한 대상으로만 인식했고,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과정의 정당성을 무시해도 좋다는 전근대적 사고에 암묵적으로 동의해왔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학교와 배움에서 마음이 떠나는 아이가 계속 늘고 있어요.
학생인권 문제는 단순히 체벌금지나 두발 자유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교육의 문화와 체질을 가늠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척도입니다. 사실 헌법과 유엔 아동권리협약 등 학생인권과 관련된 기존의 법률과 협약만 제대로 지켜도 학생인권조례와 같은 또 다른 제도적 장치는 필요 없을 겁니다. 헌법과 법률에서 말하는 인권의 주체인 ‘국민’의 범주에서 학생들은 늘 예외적인 존재로 취급받아온 것 아닐까요?”
▼ 학생인권조례의 일부 내용을 둘러싸고 거센 논란이 일자 “사회적 토론을 거친 후 세부 내용을 조절하겠다”고 하셨는데, 충분한 의견수렴과 준비작업을 거쳤습니까.
“학생인권조례추진자문위가 여론수렴을 위해 초안을 발표한 것이 2009년 12월입니다. 이후 언론과 교육가족들이 여러 가지 문제를 지적하면서 집중적인 공론화 과정을 거쳤습니다. 특히 문제가 된 내용은 집회·결사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인데, 자문위에서는 그 두 가지를 뺀 수정안도 원안과 함께 제출했어요. 그 후 저희 자체적으로 다시 의견수렴을 하면서 조율했고 이를 바탕으로 조례안을 만들었습니다. 가령 집회·결사의 자유는 ‘표현의 자유’와 ‘학생자치활동의 보장’ 등으로 제한했고, 사상의 자유는 ‘양심의 자유’라는 일반적 개념으로 정리했습니다. 다른 조문들도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전체적으로 순치시켰고요.
학교현장에서 인권존중 문화가 조성되게끔 하는 작업도 조례 추진과 병행했습니다. 2010년 3월 도교육청 관내 2100여 개 학교에 학생생활규정을 학생인권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수정하라는 권고 공문을 보냈고, 장학활동도 그런 취지를 살려 실시해왔습니다. 6월에는 25개 교육지원청에 학생생활인권센터를 설치해 24시간 상담체계를 갖췄습니다.”
▼ 말이 좋아 ‘최소한의 교육적 체벌’이지 교사에겐 중독성을, 학생에겐 내성(耐性)을 키우며 도를 더해가는 게 체벌입니다. 근절되는 게 바람직하지만, 수십 년 동안 지속돼온 관행이다 보니 학교현장에선 갑작스러운 금지조치에 따른 혼란도 큰 듯합니다. 더구나 학생인권조례는 제재조항이 없어 강제력도 없는데요.
“인권조례는 지난 10월 공포했지만 2011년 2월까지는 적응 및 조정기간으로 설정했습니다. 12월말까지 시행규칙과 체계적인 해설서를 만들어 학교에 전달할 계획입니다. 체벌금지를 법제화한 나라가 80여 개국인데, 이미 선진국에선 체벌 같은 강압적 지도방식의 대안을 매뉴얼화해 적용하고 있어요. 이런 것도 참고할 겁니다. 다소간의 우려가 없진 않으나 학교들도 큰 흐름에는 동조하면서 노력하고 있어 2011년 3월부터는 인권조례가 잘 정착하리라 기대합니다. 물론 준수하지 않는다고 징계할 근거는 없지만, 이를 반영한 학교평가 항목을 신설해 잘 하는 학교에 인센티브를 주는 식의 장학지도를 할 수는 있습니다.”
교권보호헌장도 공포
▼ 학생의 인권과 교사의 인권을 대립되는 개념으로만 볼 수는 없겠지만, 간간이 터져 나오는 학생의 교사 폭행 사례에서 보듯 추락하는 교권(敎權)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습니다.
“교권과 학생인권은 상호보완적인 것이므로 교권을 존중하지 않고서 교육현실을 변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우리 교육청이 학생인권조례에 앞서 지난 4월에 교권보호헌장을 공포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교권 보호의 당위성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것이라 언론매체 등에서 교권헌장을 크게 다루지 않은 탓에 학생인권조례보다 덜 알려졌죠. 교권헌장은 교육활동과 관련해 존엄과 행복을 추구할 교사의 권리, 교권침해 방지를 위해 노력해야 할 교육행정당국의 책임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교권보호를 위한 사전예방조치, 교권이 침해당했을 때 교사 개인과 학교 차원의 대응방법 등 구체적인 지침을 마련해왔습니다.”
▼ ‘혁신학교’도 민선 1기 교육감 취임 직후부터 추진해온 핵심 사업인데, 1년 반여 만에 43개교로 늘었더군요(혁신학교는 학급당 25명 이하, 학년당 6학급 이하의 소규모 학교를 지정해 학교운영과 교육과정의 자율권을 주며 연 1억~1억5000만원을 4년간 지원하는 제도다).
“혁신학교는 전원형, 도시형, 미래형의 3가지 유형으로 나뉩니다. 경기도엔 학생수 100명 이하 학교가 적지 않은데, 60명 미만이면 폐교를 검토하게 됩니다. 이런 학교도 80~90개나 돼요. 그런데 농어촌이나 접적지역, 구시가지 공동화로 학생수가 급감한 지역의 경우 학교가 있는 곳과 없는 곳은 공동체의 분위기나 문화적 여건이 확연하게 다릅니다.
전원형 혁신학교는 이처럼 쇠락한 농어촌 마을공동체를 활성화하고, 도시형 전원학교는 을씨년스럽게 변한 도시공동체에 생기를 불어넣습니다. 한 예로 양평에 있는 조현초등학교는 폐교 위기까지 갔다가 혁신학교로 새 출발한 뒤 학생수가 계속 늘어 요즘은 교실 증축을 고민하고 있다네요. 자녀를 이 학교에 보내려고 서울에서 이사 오는 학부모도 많아 땅값이 오른다는 불만이 터져 나올 정도예요. 또한 미래형 혁신학교는 새로 설립되는 학교를 적극 지원해 미래지향적 시스템으로 모형화하는 것인데, 역시 도민들의 기대와 관심이 큽니다.
몇몇 학교에서 보여준 단기적 성과에 자만해선 안 되겠지만, 우리 교육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동력은 혁신학교에서 나온다고 믿습니다. 혁신학교가 성공하려면 누구보다도 교사가 많이 변해야 하는데, 교사의 자발적 변화를 유도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교장의 리더십입니다. 요즘 많은 선생님이 피로와 무력감에 빠져 현상유지에 급급한 실정인데, 교장선생님이 민주적, 수평적 리더십을 발휘해 의욕을 고취해야 합니다.”
‘특권교육’과 ‘자율·경쟁’
▼ ‘이명박 특권교육 반대’를 기치로 내걸고 당선되셨는데, ‘이명박 특권교육’이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특권교육이란 말 그대로 교육적 협력, 교육적 기회균등의 원칙을 살리지 못하고 특정한 사람이나 집단에게만 유리하게 작용해 교육의 공공성을 훼손한다는 의미입니다. ‘자율과 경쟁’을 기반으로 하는 현 정부의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 이에 따른 특목고 문제와 자율형사립고 확대 정책, 일제식 전수평가 및 평가결과 발표, 특정 학교 집중지원 등이 그런 사례들이죠.
고교 다양화 정책의 핵심은 자율형사립고를 100개 더 늘리겠다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특목고, 자사고, 비평준화지역 성적 우수고에 입학하기 위한 경쟁교육이 더욱 과열될 수밖에 없어요. 이런 학교의 입학준비과정에서 들어가는 사교육비와 입학 이후의 학비 부담을 감당할 수 있는 가정은 일부 상위계층뿐입니다.”
▼ 좀 편향된 시각 아닌가요? ‘자율과 경쟁’은 매너리즘에 빠진 우리 교육계에 활력을 불어넣는 수단이 될 수도 있을 텐데요.
“자율과 경쟁 자체가 문제라는 게 아닙니다. 공정하지 못한 경쟁과 학교 간, 지역 간 줄 세우기 교육을 강화하는 정책이 공교육 기회균등이라는 보편성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뜻입니다. 부모의 소득수준이 자녀의 교육수준을 결정하는 교육 양극화, 그리고 교육 양극화가 사회 양극화를 가속화한다는 것은 편향된 교육관이 아니라 우리 사회 대부분의 양식 있는 사람들이 함께 걱정하는 문제입니다.”
2010년 10월5일 학생인권조례 공포 현장.
“고양·화성에서 진행돼온 국제고의 경우 그 설립 절차를 존중하겠다는 것입니다. ‘재검토’란 설립 자체를 문제 삼겠다는 게 아니라 설립과정, 학생선발 방법, 교육과정, 등록금, 지자체 지원 등 편성과 운영 방식이 목적에 맞는지를 공교육 정상화 측면에서 종합적으로 살펴보겠다는 뜻이에요. 교육예산이 일반고의 몇 배 이상 지원되는 특혜가 주어진다거나, 이들 학교의 입학전형이 초·중학생들의 입시 준비 부담을 가중시키는 등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교과부도 특목고 입시전형을 사교육비 증가의 주된 원인으로 파악하고 전형방법을 수정하고 있잖아요. 학교를 특성화하는 건 좋지만 제도적으로 차별화하는 것, 특히 성적 위주로 차별화하는 것에는 단연코 반대합니다.”
전국단위 일제고사 부작용 커
▼ 학업성취도평가 등 전국단위의 일제고사에 반대하시는 것도 그것이 ‘줄 세우기 교육’을 심화시킨다는 시각 때문이겠군요.
“11월30일 발표된 학업성취도평가 결과를 보고 경악했습니다. 지역별로, 과목별로 전국 학교들의 성적 순위를 표로 만들어놓은 것을 보니 비통한 심정이었습니다. 경기도 초등학교 1등부터 1146등까지, 중학교 1등부터 562등까지 등수를 매겨 공개하는 게 진정한 교육일까요. 가령 경기북부 일부 지역의 성적은 이번에도 좋지 않게 나왔는데, 이건 학교교육만의 문제로 볼 것이 아닙니다. 지역 특수성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야 되거든요.
이렇게 일률적으로 줄을 세우면 하위 등수에 든 학교의 학부모, 학생들은 얼마만한 충격과 열패감, 위화감에 빠지겠습니까. 국가가 주도하는 이런 식의 획일적인 평가방식과 평가내용이 아이들에게 창의성, 다양성, 의사소통 능력, 자기주도적 학습능력을 길러줄 수 있을까요? 일제식 평가가 실시된 이후 교육현장에서는 학교 간, 지역 간 경쟁의식이 촉발되면서 정상적인 교육과정에 파행이 오고, 아침과 방과후 시간에 문제풀이식 보충학습을 실시하는 등 소모적 과잉경쟁의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 그렇지만 학생들의 학력 현주소를 정확하게 파악해 잘 가르치기 위한 데이터로 활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런 ‘자료’를 얻는 게 목적이라면 지금과 같은 전수평가가 아닌 표집평가로도 충분합니다. 사실 학업성취도평가를 하는 정부의 취지는 기초학력미달 현황파악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기초학력에 미달하는 학생이 얼마나 되고, 이들을 끌어올리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일 것인가 하는 자료를 만드는 게 기본 목적이거든요. 그래서 경기도는 이미 10여 년 전에 일제고사를 표집평가 방식으로 바꿨는데, 이명박 정부 들어 다시 전수평가로 회귀한 겁니다.
표집평가 방식을 좀 더 정교하게 손질하고, 주입식·암기식 수업과 선다형 평가 방식을 교사들이 주도해 전환하면 학생 개개인의 소질과 소양, 잠재력을 제대로 파악하고 부족한 부분에 대한 보완책도 마련할 수 있습니다. 학급당 학생수가 아직 30명이 넘어 좀 벅찬 감이 있으나 교사와 교사보조역량을 늘려가면서 해나가야죠. 준비 부족으로 당분간 전수평가가 불가피하다면 학생과 학부모에게 (응시) 선택권을 주는 것이 당연하고요.”
▼ 정부가 공교육 정상화와 사교육비 절감을 위해 내놓은 대표적 방안이 대학입학사정관제입니다. 이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하십니까.
“입시경쟁을 완화하기 위한 노력으로 평가합니다. 그러나 어떤 방식과 속도로 도입할지는 신중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기반이 제대로 조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의 주도로 너무 조급하게 추진하는 느낌입니다. 대학들은 아직 준비가 덜 돼 있으면서도 정부가 주는 여러 가지 혜택을 누리고자 앞 다퉈 도입하고 ….
예컨대 입학사정관 가운데 정규직이 많지 않아요. 교육경험이나 입학사정 경험이 모자라 오류를 낳을 소지가 있습니다. 사정 과정에서 고교 간 격차가 고려될 수도 있죠. 또 학생은 입학사정관들에게 어필할 만한 ‘스펙’ 쌓기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데, 이것은 사교육시장의 아이템이 되기 쉬워요. 제도의 취지를 살릴 수 있도록 체계화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교육청 재량권 인정해야
▼ 교과부와 불편한 관계가 계속되고 있는 듯합니다. 2009년 시국선언 교사들의 징계를 유보해 교과부에 고발(직무유기)당했고, 최근에는 경기교육장학재단이 장학금을 지급한 것을 불법 기부행위로 본 교과부가 수사를 의뢰했는데요.
“징계유보 건은 지난 7월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습니다. 시국선언 교사들과는 별개로, 민노당에 가입해 활동한 교사들의 경우 그것이 사실이라면 법을 어긴 것이므로 징계를 받는 게 당연합니다. 다만 민노당에 단순 가입해서 후원금 수준의 당비를 내고 이미 탈당한 경우라면 경징계가 적절하다는 게 제 생각인데, 결정은 재판 후 징계위원회에서 하게 되므로 제 의사와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어제(12월2일) 기소된 장학금 건은 검찰의 공소권 남용이라고 봅니다. 전임 교육감이 2009년 4월에 결재를 한 사안을 집행했을 뿐이고, 이전에도 지급한 전례가 있습니다. 교육감의 통상적인 집무행위에 속하는 것인데….”
▼ 교과부가 12월2일 발표한 학교자율화 정책도 썩 달갑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민감한 내용이 많더군요. ‘학칙 제정권을 학교장에게 주고 교육감의 인가권을 없앤다’ ‘학업성취도평가 향상도 등을 중심으로 교육청 예산을 차등 지급한다’ ‘특정 사업의 편중투자를 막기 위해 교육자치체의 재정운용 결과에 따라 교부금을 차등 배분한다’….
“교과부와 교육감의 권한을 일선학교에 위임해 자율성을 확대하겠다는 취지는 좋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을 교과부가 결정하고 지침을 내리는 식으로 하는 건 적절하지 않아요. 먼저 교과부의 권한을 교육자치체에 위임하고 이양하는 것이 선결과제라고 봅니다. 선진국의 경우 초중등교육에 관한 사안은 대부분 교육자치체로 넘겨주고 있습니다.
학칙 제정권만 해도 그래요. 경기도는 이미 2009년에 학교장의 학칙 제정 권한을 최대한 존중한다는 뜻에서 학교가 교육청의 인가를 받는 게 아니라 그저 보고만 하도록 조치했어요. 관내 학교에 어느 정도의 권한을 줄 것인가에 있어서는 교육자치체의 재량을 인정하는 게 기본이죠. 그걸 교육부가 일률적으로 준다만다 하는 것은 권위주의적 발상입니다.
또한 학업성취도평가 결과에 따른 예산 차등 지급은 과도한 경쟁을 더욱 부추길 수 있고, 지방 교육재정 건전성 강화 방안이란 것도 교과부가 무상급식 등 교육감의 핵심 공약을 추진하기 위한 예산 편성에 통제권을 행사하겠다는 뜻으로 읽힐 수 있습니다.”
▼ 경영학을 전공하고 대학(한신대)에서 30년 가까이 경영학을 가르친 교수 출신으로 초·중등학교 교육현장 경험은 없는데, 어떤 계기로 교육감 출마를 결심했습니까. 이런 경력 때문에 ‘교육현실을 잘 모르면서 이상론만 편다’는 비판도 많았을 법합니다.
“대학 강단에 선 게 1983년인데, 4년 후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도화선으로 사회 각 부문에서 개혁과 민주화의 바람이 불었습니다. 교육부문도 마찬가지였어요. 대학 개혁과 초중등 개혁은 같이 가야 한다는 데 뜻을 모으고 초·중등 개혁 및 민주화 작업에도 함께 참여해 토론도 하고 현장 파악도 했습니다. 그런 시간이 20년 이상 지속되며 우리 교육을 고민하는 과정이 있었죠.
그러던 중 교육활동가와 교수들이 교육감 출마를 강권했습니다. 저는 조직과 인력을 전공해 기업, 공기업, 공공기관 등에 컨설팅을 많이 해줬는데, 그런 경영학적 전문성이 ‘교육경영’에 활용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조직관리자로서 현장경험이 없다는 것은 핸디캡이자 동시에 장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관료사회의 권위주의와 거리를 두고 경기도교육청 식구들과 수평적인 관계에서 과제를 풀어가고 있는 것도 그런 면모죠. 부족한 현장경험을 보완하기 위해선 학교현장을 부지런히 돌아다닙니다. 지금껏 120여 개 학교를 다니면서 교장, 교감은 물론 평교사, 학부모와도 많은 대화를 나눴어요. 그렇게 제 역할을 하나하나 찾아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