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호

“나는 삶의 마무리를 생각하는 사람, 후대를 위해 일하고 싶다”

[Special Interview] 이중근 부영그룹‧대한노인회 회장

  •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입력2025-02-25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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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지를 고민하는 어른

    • 6·25 전쟁 당시 아홉 살, 비참함 잊기 어려워

    • 인생이란 고난 연속, 피하지 말고 이겨내야

    • 치열하게 산 사람만이 인생의 만족감 느껴

    • 4년간 출산장려금 98억 원 지급, 출산율 높아져

    • 동창 이외 4촌은 10억 원씩, 6촌·8촌은 6억 원씩

    • 국내외 다양한 사회 공헌으로 1조 2000억 기부

    • 생계 위한 경영보다 국가와 후손 위해 노력

    이중근 부영그룹‧대한노인회 회장. [박해윤 기자]

    이중근 부영그룹‧대한노인회 회장. [박해윤 기자]

    요즘 재계에서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이 화제다.

    아이를 낳는 직원들에게 1억 원의 출산장려금을 지급하고 친척과 친구들에게 돈을 나눠줘 화제가 된 데 이어 대한노인회장에 연임되면서는 ‘노인 연령을 올려서 생산가능인구로 활용하자’ ‘재가(在家) 임종 제도를 도입하자’는 제안을 하고 있다.

    이 회장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기업인이 한국 사회의 가장 중차대한 이슈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저출산 고령화’ 문제에 구체적이면서도 실질적 해결책을 제시하고, 직접 행동에 나선다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돈을 쓰는 방식도 파격적이라서일 것이다.

    고마움을 갚을 때가 됐다

    그룹 홍보실을 통해 인터뷰 요청을 넣어놓고 한 달여가 지난 뒤 답이 왔다. 매서운 칼바람이 불어대던 2월 7일 금요일 오후 3시 반께였다.

    1940년생이라고 하니 올해 여든다섯이 된 이 회장의 얼굴 색은 맑았다. 무엇보다 시종일관 부드러운 미소를 잃지 않았다. 기자를 의식해서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 표정 자체가 미소로 굳어진 듯했다.

    한 시간여 인터뷰 동안 그의 부드러운 미소와 나긋나긋하고 따뜻한 말투에서는 자수성가해 기업을 일구며 온갖 간난신고를 안으로 갈무리하며 살아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단단한 힘이 느껴졌다.

    시종일관 개인의 삶이나 자신이 일군 기업에 대한 성공 이야기는 중요치 않았다. 죽음을 현실감 있게 받아들여야 하는 팔순 넘은 나이에 ‘사회와 타인을 위해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진정한 어른의 내면이 읽혀졌다.

    만나기 전에는 약간 긴장된 마음으로 질문지를 빼곡하게 만들어갔지만 막상 이 회장의 편안한 얼굴을 보니 긴장감이 사라졌다. 분위기도 부드럽게 만들 겸 “키가 크셔서 놀랐습니다” 라는 말로 대화를 시작했다. 이 회장은 이렇게 답했다.

    “원래 186cm였는데 나이가 들어 구부정해서 좀 줄었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공군 출신인데 키가 커서 군 생활 5년 반 동안 매끼 식사로 2인분을 지급받았어요. 지금 생각해도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릅니다”고 했다. 의외의 말에 기자도 슬며시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자신의 업(業)에서 큰 성취를 이룬 사람들 특유의 낙관과 긍정의 에너지가 함께 전해졌다.

    분위기가 약간 부드러워졌다는 생각이 들어 인터뷰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먼저 올해 시무식에서 그가 내놓은 메시지 생각이 났다. 이 회장은 ‘유엔 데이(10월 24일)’를 공휴일로 지정하자고 한 바 있다.

    보통 시무식에서 회장이 내놓는 메시지라는 것은 좁게는 그해 달성할 목표라든지 넓게는 비전 같은 것일 텐데 그의 메시지는 솔직히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좀 특별했다. 자신이 하고 있는 건설이라는 업과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이런 메시지는 왜 나온 걸까.

    2월 5일 시무식에서 ‘유엔 데이’를 공휴일로 하자고 하셨습니다. 유엔 데이는 유엔(UN)이 만들어져 발족한 1945년 10월 24일을 기념일로 제정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이걸 공휴일로 지정하자고 하시니 지금 세대에겐 좀 생소하게 들렸습니다.

    “6·25 전쟁은 유엔이 창설된 이후 무려 60개국이 참전한 전쟁입니다. 전 세계 16개국 젊은이들이 우리 땅에 직접 와서 싸워주었고 6개국은 의료 지원, 38개국은 물자를 지원했습니다. 전무후무합니다. 낯선 땅에서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목숨 걸고 싸운 세계인들 덕분에 대한민국이 존재하게 됐습니다. 이제는 그 고마움을 갚을 때가 됐지요.”

    자료를 찾아보니 유엔 데이는 원래 1950년부터 1975년까지 공휴일이었다. 그러다 북한이 유엔 산하 여러 기구에 가입하면서 이에 대한 항의 표시로 우리 정부는 1976년부터 공휴일을 폐지했다.

    이중근 회장이 기부한 용산 전쟁기념관 유엔참전비에서 기념 촬영하는 호주 참전 용사들. [부영그룹]

    이중근 회장이 기부한 용산 전쟁기념관 유엔참전비에서 기념 촬영하는 호주 참전 용사들. [부영그룹]

    ‌이 회장의 지난 행보를 보면 이번 제안은 뜬금없이 나온 건 아니다. 10년 전인 2015년에는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평화의광장에 6·25전쟁 참전국 참전비 건립 비용을 지원했다. 2022년 6월에는 대한민국육군협회와 함께 주한미군과 가족들을 위한 걷기 행사인 ‘리버티 워크(Liberty Walk) 서울’ 행사도 하고, 6·25전쟁 참전 용사들을 위한 후원금 10만 달러를 6·25재단에 전달하기도 했다.

    앞서 그가 언급한 ‘매끼 2인분씩’을 주었던 공군에 대한 고마움을 갚는다는 심정으로 지금까지 100억 원을 공군 하늘사랑장학재단에 기부하기도 했다고 한다.

    여기에 직접 6·25전쟁사를 쓴 것은 잘 알려진 사실. 이 회장이 펴낸 책 중 하나인 ‘6·25전쟁 1129일’은 전쟁 발발부터 정전협정까지 1129일간 일어난 일을 날짜별로 상세하게 나열한 것이다. 이를 이 회장의 아호를 딴 역사 서술 방식이라고 해서 ‘우정체(宇庭体)’라는 이름까지 붙였다고 한다. 책은 국내외 기관과 해외 참전국에 1000만 부 넘게 무상 기증됐다.

    그는 기자와 대화하면서 6·25가 일어난 전후 배경은 물론이고 날짜별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이야기해 주었다. 이 이야기만 듣느라 15분이 훌쩍 가버렸다.

    왜 그렇게 6·25에 그렇게 몰두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지금 젊은 사람들은 ‘전쟁’이라는 게 얼마나 처참한 일인지 잘 모릅니다. 사진이나 영화만 봤지 실제로 본 일이 없을 것이요. 내 고향이 전라남도 순천인데 1948년 10월 19일 여순사건이 났을 때 사방에 사람들이 죽어 넘어져 있는 걸 본 사람이에요. 만으로 아홉 살이던 때죠.

    길거리에 널브러진 시체들도 다 이웃 동네 사람들이고 시체들을 매달아 놓기도 했어요. 밤에는 산에서 공산당이 막 내려오니 피한다고 밤에 소를 몰고 경찰지서 인근에 가서 자고 아침에 소 몰고 다시 들어오고.”

    소를요?

    “유일한 재산이었으니까요. 소는 제 발로 걸으니까 끌고 갈 수 있었지만 돼지는 못 가져갔지요. 그때 그 비참함이란 게…. 그런 전쟁이 다시는 없어야 하고 또 그런 전쟁을 겪고도 이런 나라를 만든 우리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하고 또 도와준 사람들도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그런 걸 후대에 알리고 싶은 겁니다.”

    대한민국 역사, 특히 현대사를 보면 좀 특별한 에너지를 갖고 있는 나라 같긴 합니다.

    “그렇죠 특별한 게 있죠.”

    어떤 면이 그렇다고 보십니까.

    “이스라엘하고 쌍벽을 이룰 민족적 능력이 있는데 이스라엘은 싸우면서 존재하는 나라고, 우리는 지키면서 존재하는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정말 머리도 좋고 참으로 대단한 능력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동아시아에서도 강대국에 둘러싸여 처신도 잘해 왔고요.”

    인생이란 흐르는 과정, 순명(順命)해야

    그의 언어는 짧고 쉬웠지만 군더더기가 없었고 어디서 쉽게 들을 수 있는 내용이 아니어서 사색의 깊이가 느껴졌다.

    지난 역사에 자부심으로 충만한 그에게 요즘 상황은 어떻게 보일까.

    갑자기 현직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는 바람에 정치적으로 혼란이 닥쳐서 국민들이 많이 울적하다고 그럴까요, 대한민국이 잘나간다고 좋아하다가 너무 잘난 체한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드는 요즘인데요.

    “원래가 나라(國)도 그렇지만 인생이란 게 고난 속에서 살아가는 겁니다. 고난이란 건 피할 수 있다고 피해지는 게 아닙니다. 그러니 이겨낼 수밖에 없습니다. 등산을 할 때도 8부, 9부 능선에 가면 깔딱고개가 반드시 나오잖아요. 어느 산이든지 그 고개를 넘지 않으면 정상에 올라가지 못합니다. 우리가 지금 겪는 이런 정도의 일은 지나가고 이겨야 할 과정이지 이겨내지 못할 일이 아닙니다. 필연적으로 건너 지나가야 하는 길이니까요.”

    기업인의 표정이 아니라 손주를 앞에 둔 할아버지 표정이 보였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그가 말을 이었다.

    “인생이란 건 흐르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나쁠 때는 좋을 때를 향해서 가고 있고, 좋을 때는 나쁠 때를 향해서 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되지요. 어려워야 다시 또 좋아질 수 있잖아요. 모든 게 다 상대적인 겁니다. 우주라는 게 뭔지는 잘 모르지만 지구가 둥글다고 하면서 수평선이라는 말을 쓰죠. 사실은 수곡선을 보고 수평선이라고 부르는 거 아닙니까.”

    선문답 같은 말이었지만 ‘모든 것은 상대적이고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뜻으로 들렸다. 기자가 잠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생각을 들여다보기라도 하듯 그는 “마음먹기 나름이 아니라 물리적인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역시 자수성가해 큰 성공을 하신 분이라 그런지 기본적으로 낙관주의이신 것 같습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걸 골라잡지 않았고 부여된 대로 운명에 대해서 최선을 다했지요. 아모르 파티란 말이 그 말 아닌가요. 순명(順命)해야지요. 연습으로 인생을 살 수는 없잖아요.”

    연습이라는 게 무슨 뜻인가요.

    “목표 의식 없이 살아가는 거죠. 치열하게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게 진짜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치열하게 산 사람만이 고난을 극복하고 인생의 보람을 느끼지요. 이건 좋으니까 하고 이렇게 골라서 살 수 없는 게 인생이 아니다 그 말입니다.”

    어쩌면 너무 당연한 말 같기도 해서 문득 그에게도 힘든 시절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삶을 돌아보시면 좀 후회되는 게 있나요.

    “글쎄요. 지금 나라고 하면은 그래도 좀 만족을 표해야 하지 않을까요? 과거의 모든 것은 현재를 위한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길에서 넘어졌다거나 다시 일어났다거나 이런 모든 것이 다 합한 게 지금까지의 인생이지요.”

    사업과 관련한 이야기를 여쭤볼까요. 사업이란 게 워낙 부침이 심해서 기업인들은 좀 DNA가 다르다고 할까, 타고나는 게 있어야 될 것 같아요.

    “그걸 미리 대비하고 대응해서 달성됐다고 보기는 어렵죠. 지렁이를 몇 마리 한 번에 다 땅에 풀어놓아도 빨리 가는 놈이 있고 늦는 놈이 있고 그런 차이가 있을 텐데…. 그래서 제가 순명이라는 얘기를 한 겁니다.”

    ‘지속 가능’이 기업 존재 이유

    결국 운인가요.

    “사실 인생이란 게 자기가 결정해서 갔다기보다는 원천적으로는 부모님께 감사해야 하고…. 하여간 나는 다 운명이고 그런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기업 경영을 세발자전거에 비유한 적이 있으십니다.

    “두발자전거는 빠르긴 한데 넘어지기가 쉽잖아요. 세발자전거는 가다가 쉬기도 좋고. 기업은 넘어지지 말아야 해요. 지속 가능해야 존재 이유가 되죠. 그런 의미였습니다.”

    주변 친구나 친척들에게 억대 현찰을 나눠주시고 직원들에게도 파격적인 출산 지원을 해주셔서 화제가 많이 됐어요. 돈을 많이 버신 분들은 어느 정도 재산이 쌓이면 어떻게 써야 하느냐는 고민을 많이 하시던데 현찰을 이렇게 나눠주신 분은 못 뵈었습니다.

    “물건을 사고팔 때 중요한 게 가격 아닙니까. 큰 물건을 사면 나중에 더 비싸게 팔 수도 있잖아요. 아궁이 불을 지펴보면 알죠. 나무를 많이 집어넣으면 불이 확 활활 타는 것과 마찬가지죠.

    기부도 그런 개념으로 보고 있습니다. 주는 사람 입장과 받는 사람 입장에서 어느 정도 적정 수준을 계산한다는 게 쉽지는 않은데 한 1억 원 정도는 돼야 받는 사람이 만족감을 느끼겠더라고요.”

    아깝지 않으십니까.

    “무덤까지 가져갈 수 있다면 좋겠는데 못 가져가니까. 색시한테만 자식들한테만 주고 가면 분란을 일으키는 집안도 많이 봤어요.”



    올해 시무식에서 자녀 1인당 1억 원의 출산장려금을 받은 직원들. [부영그룹]

    올해 시무식에서 자녀 1인당 1억 원의 출산장려금을 받은 직원들. [부영그룹]

    ‌자녀 1인당 1억 원을 주는 출산 지원은 해외 언론에도 많이 소개됐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다른 나라에서도 그런 거는 안 해봤는가 봐요.”

    올해 2월 시무식에서 부영그룹은 총 28억 원의 출산장려금을 지급했다. 2021년부터 2023년까지 출산한 직원에게 지난해 총 70억 원을 지급한 것까지 합치면 98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실제로 출산율이 높아졌다는 게 자체 평가다. 2021년부터 2023년까지 연 평균 23명이 태어났는데 지난해에는 28명으로 늘었다는 것. 이번 시무식에서는 지난해에 이어 연달아 둘째를 낳은 직원도 있고 5년 터울, 7년 터울로 둘째를 낳은 직원도 있다고 한다.

    고향 사람들과 친척들에 금융 치료

    초·중·고교 동창들, 군대 동기, 전우, 순천 고향 이웃들에게도 1억 원씩 나눠줘 큰 화제가 됐는데요. 사람들이 그런 큰돈을 받으면 회장님 보는 눈이 달라지겠네요.

    “그런데 못 받았다고 서운해하는 사람들이 나와요. 고등학교 동기들은 처음엔 60명인가 나눠줬는데 나중에는 소식도 없던 사람들이 새로 나와 ‘나도 달라’는 거예요. 해외로 이민 가 살고 있다거나 중간에 전학을 갔다고 하면서 말이지요. 그렇게 해서 160명이 됐어요.”

    어떻게 하셨나요.

    “처음에는 돈을 다시 걷어서 재분배를 하자는 동창들 의견이 있었는데 그냥 다 1억 원씩 나눠줬어요.”

    그동안 밝히시지 않으셨는데 거액을 친인척들에게도 나눠주셨다는 이야기가 있던데요.

    “줬지요.”

    얼마나 되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저와 아내를 기준으로 친4촌, 고종4촌, 외종4촌, 이종4촌 이내는 10억 씩, 6촌·8촌은 6억 원씩. 아버지, 어머니 기준 친4촌, 고종·외종·이종 4촌은 6억 원씩 줬습니다.”

    기업인들이 재단 같은 것을 만들어 기부한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회장님처럼 현찰을 주는 건 전 세계 유일하실 것 같은데요.

    “나도 그런 뉴스는 들은 일이 없는 것 같아요.(웃음) 잘했다고 생각해요.”

    앞에도 이야기했지만 돈을 많이 버시면 어떻게 써야 하나 고민하게 되는지요.

    “나이가 드니 죽음이란 게 현실적으로 다가오지요. 생각해 보니까 땅 사서 배 아파하는 사촌을 낫게 하는 방법은 ‘금융 치료’ 요법이 효과가 크다더군요.(웃음)”

    (함께 웃으며) ‘금융 치료’라는 단어는 처음 들어요.

    “한동네에서도 저 집이 부자라고 하는데 나한테 뭘 준 거 있느냐 생각하면 나도 배가 아플 것 같아요. 우리 부친이 5형제인가 됐는데 할아버지한테 똑같이 논을 10마지기씩 받았는데 살다 보니까 우리 아버지가 조금 덜 활동적이었던지 우리 집 논을 작은 아버지가 자꾸 사갔어요.

    아버지가 돈이 없으니까 판 거지요. 그러니 우리 논은 자꾸 줄고 작은 아버지 논은 늘고. 우리는 점점 배가 고파지고. 당하는 입장에서는 얼마나 속이 쓰려요. 그래서 저런 사람들이 있겠구나. 어떻게 할까, ‘금융 치료’가 답이다 이런 거죠.”

    그 사촌에게도 이번에 현금을 주셨나요.

    “줬죠.”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는 갑자기 돈이 생기면 막 함부로 쓰는 거 아닌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걸 일일이 가서 간섭해 줄 수는 없고, 아까 지렁이를 예로 들었지만 앞에 가는 놈, 뒤에 가는 놈이 있잖아요. 받은 돈을 더 모아서 부자가 되는 사람이 있고 술 사 먹어서 몸이 나빠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건 그 사람의 운명이지요.”

    어떻든, 고마워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아요.

    “많죠. 어떤 친척은 묘지를 구입해서 공동묘지에 있던 조상 묘를 다 정리했다고 알려오기도 하고, 농가 부채로 힘들었는데 삶의 희망이 돼줘서 고맙다고 하기도 하고. 그런 소리를 들으면 참 기분이 좋지요. 돈이 생기니 형제간에 우애도 좋아졌다는 소리도 들려옵니다.”

    화제를 바꿔볼까요. 대한노인회장을 연임하시면서 노인 연령 기준을 65세에서 75세로 올리자거나 요양원이 아닌 집에서 임종을 도울 수 있는 재가(在家) 임종 제도를 도입하자거나, 노노(老老) 케어도 시스템화하자는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은퇴와 고령화 문제에 대해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좋은 해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노인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건지요.

    “제가 행정학 박사인데 이걸 딴 계기가 관(官)에 주택허가 공문을 넣고 10개월을 기다렸는데 소식이 없어서 편지를 쓴 적이 있습니다. ‘진달래가 지고 국화가 다시 피어도 소식이 없습니다. 언제 허가를 주실 건지’ 라고요.

    문득 공무원들의 생태가 뭔지 궁금했어요. 행정 업무가 하도 답답해서 제가 직접 행정학을 공부해 보겠다는 결심이 섰고, 석·박사 과정을 했습니다. 그러다 법을 좀 더 공부해 보고 싶은 생각에 헌법까지 공부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얼마 전에 헌법학으로 박사를 땄습니다.”

    2024년 2월 23일 고려대 학위수여식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는 이중근 회장(왼쪽은 김동원 고려대총장). [부영그룹]

    2024년 2월 23일 고려대 학위수여식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는 이중근 회장(왼쪽은 김동원 고려대총장). [부영그룹]

    헌법 공부하다 저출산 고령화에 꽂혀

    그가 잠시 호흡을 고른 뒤 말을 이었다.

    “헌법을 공부하다 보니 우리 헌법에는 너무도 당연한 말들이 구체적 해법도 없이 제시된 조항들이 있어요. 19조에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는 조항이 있는데 너무 당연한 말이잖아요.

    또 33조, 34조, 35조를 읽어 보면 노인과 청소년 복지 향상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요. 구체적으로 실행 가능한 소리가 있어야 하는데 없어요. 헌법에 써놨다고 효과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근본적으로 노인이 노인으로서 가치가 있어야 할 건데 어떤 것이 실행 가능할까 궁리하다 보니 일단 숫자적으로 줄어야 보호 대상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계적으로 ‘당신은 지금부터 노인’이라고 연령으로 규정한 나라는 없어요. 1981년 만들어진 노인복지법에서 정한 게 아직도 그대로죠.

    이대로라면 2050년에 노인이 2000만 명이 됩니다. 지금 60대, 70대가 얼마나 건강합니까. 노인 연령을 점차적으로 올리면 1년에 한 60만 정도는 노인 진입이 줄 거예요.

    이런 사람들을 생산인구로 쓸 수 있습니다. 결재 라인 같은 중요한 역할에서는 빼도 경륜이나 경험이 많으니까 각종 위원회, 전문 조직, 지원 조직에서는 충분히 일할 수 있잖아요.

    이대로 놔두면 노인들에 깔려서 국가 산업이 마비될 우려가 있단 말입니다. 잘못하다가는 조그마한 눈덩어리가 굴러서 감당할 수 없게 큰 눈덩어리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죠. 분명히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우리 손자 세대쯤 돼서는 정말 큰 눈덩이가 됩니다.”

    집에서 임종을 맞게 하는 ‘재가 임종’ 시스템도 참신하게 들립니다.

    “저출산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고민이라면 노인은 지금 숨 쉬고 살아 있는 존재들이잖아요. 돌아가실 분들 입장에서는 집에서 편안하게 익숙한 환경에서 돌아가시는 게 제일 좋거든요.

    그게 소원인데 자식들이 하도 괄시하니까 속으로는 화가 나면서도 ‘괜찮다 괜찮다 갈란다’ 하고 갔다가 전부 냉동고로 들어와서 화장터에서 태웁니다. 마지막까지 얼마나 삶의 질을 유지하면서 조용하고 편안하게 돌아가시게 해야 하나 이건 누구나 맞닥뜨리는 문제죠.

    요양원에 모시면 시설과 서비스 인력을 다 제공하는데, 제가 계산을 해보니 나랏돈을 요양원에 주나 가정에 주나 비용은 비슷한 걸로 나옵니다.

    노노케어도 구체적 대안을 마련할 때입니다. 옛날 시골 마을에 가면 마을회관이 있었습니다. 공동 취식이 가능하고 취침은 각자 집에서 하더라도 말이지요. 조선조에도 오가작통법이란 게 있었잖아요. 의미는 달랐지만 활용 가능한 제도일 것입니다. 그런 걸 시스템에 도입할 수도 있다고 봐요. 외국에서 좀 싼 인력도 들여오고 말이죠.”

    그는 저출산 문제를 보는 시각도 남달랐다.

    “헌법은 나라가 국민의 안전 보장과 질서 유지를 맡는다고 하는데 국군과 경찰이 하는 것 아닙니까. 이런 직군(職群)은 수입을 할 수가 없어요. 모두 자국민이 맡아야 합니다. 지금 추세로 가면 남녀 다 징집 의무를 부여해도 모자라요, 지금 빨리 애 낳지 않으면 큰일 나겠다 해서 출산 지원도 하게 됐어요. 근데 우리 헌법에는 국가에서 다 해준다고 써 있죠. 원론적인 게 아니라 어떻게 할 것인지가 중요하죠.”

    기업인이 기업 경영에 더 신경을 쓰셔야하는 것 아닌가요.

    “저는 이제 제 생계를 위해서는 기업하지는 않습니다. 국가와 후손을 위해서 그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삶의 목적이라고 할까요.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아들 우리 손자 세대를 위해서 일해야지요. 대한노인회장도 무보수 비상근입니다. 책임은 다 지게 돼 있어요. 내가 시간하고 돈도 조금 보태가면서 후손들에게 좋을 수 있다면 좋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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