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호

“전면 재선거”만 외친다고 보수가 되살아나진 않는다

[Special Report┃與野 권력구도, 격랑 속으로] 국민의힘은 ‘책임정치’를 복원할 수 있을까

  • 김화랑 회사원·이학박사

    입력2026-06-22 07: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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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힘, 지방선거 성적표 받고도 ‘책임정치’ 않아

    • 張, ‘전면 재선거’ 구호를 사퇴론 잠재울 수단으로

    • 위기의 보수, ‘진보 흉내’ 대신 정체성 정립해야

    • 선거 패배, 처절한 구조조정의 계기로 삼아야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6월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재선거 요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6월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재선거 요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보수 세력은 참패했다. 6·3지방선거에서 수도권 일부와 전통적 지지 기반을 겨우 사수했을 뿐, 행정과 지방 권력의 핵심 교두보를 대부분 상실한 것이 현실이다. 국민의힘은 광역단체장 4곳을 건졌고, 더불어민주당은 12곳을 휩쓸었다. 직전 지방선거의 ‘12대 5’ 구도가 완벽히 뒤집힌 성적표다. 일각에서는 “내란 척결 광풍과 이재명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 속에서 최악은 면했다”고 자위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는 보수 지지층의 막판 위기감에 기댄 결집일 뿐 당 지도부의 전략적 선전과는 거리가 멀다.

    현실은 광역의회에서 더욱 생생하게 드러난다. 지난 선거에서 68%를 차지했던 서울시의회 지분은 32%로 반토막이 났고, 대전은 82%에서 9%로 무려 73%포인트가 폭락했다.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외견상 균형을 맞춘 듯 보이는 것 역시 착시다. 선거 초반부터 불거진 공천 갈등과 내부 권력투쟁으로 후보들의 사기를 꺾어놓은 결과, 충분히 승산이 있었던 격전지 다수를 사실상 헌납했다. 이를 ‘약진’이라 포장하는 것은 패배를 감추려는 수사에 가깝다.

    張, ‘전면 재선거’ 구호를 사퇴론 잠재울 수단으로

    그렇다면 선거 패배의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 지역 조직의 부진이나 개별 후보의 한계만으로 전국적인 부진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전체 전선이 흔들렸다면 결국 지도부의 전략과 판단을 돌아볼 수밖에 없다. 당대표의 존재 이유 역시 바로 이 지점에서 나온다. 이는 제3지대 보수를 자처한 개혁신당도 예외가 아니다. 군소정당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단일화나 실무적 연대를 적극적으로 모색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승산이 높지 않은 선거에 뛰어들었다지만 “졌지만 잘 싸웠다”는 반응마저 이끌어내지 못했다면 그 또한 문제다.

    지금 보수는 지리멸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선거 패배라는 성적표를 받아 들고서도 ‘책임정치’라는 정상 시스템은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다. 계파 간 남 탓 공방만 반복할 뿐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책임을 둘러싼 논의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점이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분명 참정권 침해를 일으킨 중대한 사건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를 기존 음모론의 연장선에서 소비했고, 당권파는 패배 책임을 희석시킬 새로운 정치 의제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 결과 선거 참패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지도부 책임론은 뒷전으로 밀려났고, 논의의 초점은 ‘전면 재선거’ 여부로 옮겨갔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6월 10일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 관련 국민 참정권 회복을 위한 시국선언 대학생 간담회’에서 “전국 재선거를 실시하는 것이 이번 사태를 해결하는 최선의 길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재선거 구호는 청년들의 요구를 온전히 대변한다기보다, 당내 사퇴론을 잠재우고 권력을 연장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일 여지가 크다. 당장 지방선거 다음 날 열린 의원총회에 불참한 모습만 봐도 그렇다. 그의 거취에 대한 논의가 예상됐던 자리였다. 



    법적·현실적 관점에서 볼 때 ‘전면 재선거’ 가능성은 매우 낮다. 서울에서 투표용지가 부족했던 투표소는 6월 10일 기준 총 42개소다. 서울 투표소당 평균 기권자 수는 1342명이나 넉넉히 1400명으로 잡고, 용지 부족 소식에 투표장으로 오지 않은 이들까지 감안해 42개소의 기권자 전원을 참정권 침해 피해자로 간주하더라도, 최종 산출되는 인원은 5만8800명에 불과하다. 서울시장 선거 1·2위의 최종 격차인 6만259표를 뒤집기에는 모자라다. 설령 미투표자 전원이 정원오 민주당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었다고 가정하더라도, 오세훈 서울시장의 당선을 뒤집을 선거무효의 법적 요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진정 재투표가 필요한 곳은 한두 표 차이로 당락이 갈릴 수 있는 기초의회 선거구들이다. 지역 행정의 공백 상황을 막기 위해 국지적 재투표를 정교하게 요구하는 것이 보수 본연의 태도에 가깝다. 그럼에도 장 대표는 ‘전면 재선거’라는 뭉툭한 요구만 내세우고 있다. 그의 목소리에는 분명한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다. 이는 당 안팎에서 그의 행보를 책임론 회피로 해석하게끔 하는 결정적 요인이다. 선거 패배의 원인을 성찰하기보다 새로운 전선을 만드는 데 몰두한다면, 보수는 또다시 책임정치를 회복할 기회를 놓치게 될 것이다.

    6월 14일 경기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앞에 “부정선거 원천무효”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뉴스1

    6월 14일 경기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앞에 “부정선거 원천무효”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뉴스1

    위기의 보수, ‘진보 흉내’ 대신 정체성 정립해야

    여권이 입법부를 장악한 데 이어 행정부를 넘겨받은 후 사법부까지 무력화하려 하는 초유의 사태가 펼쳐지고 있다. 삼권분립이라는 제어장치가 흔들리는 위기 국면이 펼쳐진 지 오래다. 이번 지방선거 참패로 보수진영은 지역 거점마저 상당 부분 내줬다. 그럼에도 국민의힘 지도부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6월 17일 의원총회를 통해 당 차원에선 서울 등 7곳만 선거소청을 하기로 결정하면서 전면 재선거는 사실상 무산됐다. 그럼에도 지도부는 여전히 밥그릇 싸움에만 골몰할 뿐, 체제를 책임질 대안적 철학은 안중에도 없다.

    정체성 확립은 온데간데없고, 눈앞의 권력투쟁에만 매몰된 작금의 상황은 우연이 아니다. 3당 합당을 기점으로 YS계와 운동권 세력이 보수정당의 한 축으로 편입된 이후 보수는 고유의 철학을 정교하게 발전시키기보다 진보진영의 이념을 엉성하게 복제한 포퓰리즘적 행태를 보여왔다. 민주당이 ‘약자 보호’나 ‘골목상권’ 등의 도덕적 칼날을 들이대면 논리로 반박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대신 그들의 프레임을 베끼는 식이다. 

    예컨대 6·3지방선거를 앞둔 2월 11일 대구 서문시장을 찾은 장동혁 대표는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폐지’에 사실상 반대하는 발언을 하며 눈앞의 지지층에 영합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시장의 자율과 소비자의 선택권을 중시해 온 보수의 전통적 가치와는 거리가 있는 발언이었다. 당권파만의 문제도 아니다. 22대 총선을 앞둔 2024년 4월 1일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자영업자 육아휴직 제도’를 공약으로 제시했다. ‘자영업자’와 ‘육아휴직’이라는 단어가 공존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인구문제에 대한 치열한 고민 대신 화제성에 무게를 둔 접근이었다. 

    이제라도 보수는 자신의 본령을 망각한 채 대중의 호응에 기대온 과거의 방식을 과감히 버릴 필요가 있다. 보수의 경쟁력은 진보의 언어를 어설프게 흉내 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지속가능성과 국가의 미래를 위한 철학과 해법을 제시하는 데 있다. 무엇보다 지금처럼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정치공학에만 골몰하는 모습을 청산해야 한다. 책임정치의 실종은 공동체 전체의 공멸을 부를 뿐이다.

    연장선상에서 지적하고 싶은 것이 있다. 바로 선거철만 되면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롯한 전직 대통령들을 언급하며 그들에게 기대는 정치다. 보수의 역할은 과거의 영광을 반복 재생하는 데 있지 않다. 건국과 산업화의 역사는 대한민국의 뼈대를 세운 자랑스러운 유산이지만, 그것이 보수진영의 철학 부재를 덮어주는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물론 진보진영의 민주화 서사에 무비판적으로 동화되는 모습에는 더더욱 선을 그어야겠지만 말이다.

    이번 위기에서도 보수주의라는 정체성의 뼈대를 세우지 못한다면 다음 선거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실패를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 선거를 앞두고 반짝하는 인물을 영입하거나 유행하는 구호를 끌어다 쓰는 식으로는 위기를 돌파할 수 없다. ‘용병 정치’의 종착지가 어디인지는 윤석열 정부가 여실히 보여줬다. 나아가 윤석열 정부의 경험은 ‘철학 없는 권력’이 얼마나 취약한지도 알려줬다. 그토록 강조되던 ‘자유’는 연설문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그리고 자유를 참칭한 권력의 폭주는, 두 번째 탄핵으로 귀결됐다.

    선거 패배, 처절한 구조조정의 계기로 삼아야

    6월 10일 국민의힘 새 원내대표로 선출된 정점식 의원은 경선 과정에서 장동혁 대표의 거취 문제를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그는 옛 친윤계로 분류된다. 정 원내대표는 원내대표 당선 인사 이후 장 대표의 거취에 대한 기자들의 물음에 “의원들의 중의를 모아 집단지성을 발휘하겠다”며 “그 부분에 대해 중진 의원들 말씀도 소중히 듣고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지도부 책임론을 명분으로 판을 새로 짤 수도 있다는 정무적 계산의 신호다. 모름지기 보수정당이라면, 이번 행보는 질서 재확립과 권력 재편을 향한 정교한 포석이어야 한다.

    정점식 국민의힘 신임 원내대표가 6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원내대표 선출 의원총회에서 당선 소감을 밝히고 있다. 뉴스1

    정점식 국민의힘 신임 원내대표가 6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원내대표 선출 의원총회에서 당선 소감을 밝히고 있다. 뉴스1

    보수에게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6·3지방선거의 참패는 단순한 선거 패배가 아니라, 셧다운 직전에 울린 경고음에 가깝다. 국민의힘이 다시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말뿐인 쇄신을 넘어 당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외연 확장’이라는 명분 아래 상대 진영의 정치 문법을 무비판적으로 답습하는 관행을 돌아봐야 하고, 보수다운 언어와 철학으로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동시에 당 내부에는 책임과 처벌에 기반한 엄격한 시스템을 정착시켜야 한다. 무의미한 계파 싸움을 끝내고, 선택에 책임을 지는 이를 지도자로 세워야 한다.

    국가체제를 유지하려면 의무와 책임이라는 비용을 반드시 지불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는 권리의 언어만 비대해지고 책임의 언어는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586운동권 세대를 중심으로 “권리는 내가, 책임은 사회가”라는 식의 무책임한 사고가 사회 전반에 퍼지고 있는데, 보수마저 이러한 흐름에 맞서지 않고 있다. 진정한 보수주의자라면 책임을 회피하면 안 된다.

    보수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에드먼드 버크는 저서 ‘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에서 “변화의 수단을 갖지 못한 국가는 자기보존의 수단도 없다”고 말했다. 모름지기 보수라면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의힘이 뼈대를 다시 세우고 책임의 가치를 분명히 할 때, 등 돌린 지지층도 다시 돌아올 것이다. 지방선거의 패배를 단순한 악재로 넘길 것이 아니라, 처절한 구조조정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당장의 정치적 유불리에 매몰된다면 보수의 미래는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책임정치와 원칙을 복원해 낸다면 보수는 패배의 깊은 상흔을 딛고 다시 국가 운영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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